그날 아침, 아내와 여섯 살 난
딸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화물차의 시동을 걸어 오십분 가량 걸리는 그 교회로 달려갔다. 면소재지 있는 그 교회는 교인 이래야 전부 열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교회였는데 그 교회는 큰 걱정거리 하나가 있었다.
그 교회 마당에는 철 구조물 종탑이 서 있었는데 하도 오래 되어 낡고
녹이 슬어 언제 넘어질지 바람이 부는 날이면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한다. 인근에 있는 철공소에 부탁했더니 한 번 올라가 보더니 연락이 없고
다른 철공소에 의뢰를 했더니 팔십 만원을 달라고 하여 그 교회로서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못하고 있다면서 그 교회 목사님이 내게 삼십 만원을 줄테니
철거해 줄 수 없겠냐고 부탁을 했다
그때 나는 오갈 때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신앙공동체를 만들겠다고 천여 평의 부지를 어렵게
구입하여 그 땅 주인이 살던 허물어져 가는 빈집 마당에 짐을 내려놓고 거기에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빈방에 지내며 준비를 하고 있던 터여서 돈이
매우 궁한 때였다
나는 체격도 작아 그런 어려운 일을 잘 할 것 같지도 않았을 텐데 목사님은 하도 답답해서 그랬는지 무슨 생각으로
내게 부탁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이 내게 시키시는 일로 여겨 흔쾌히 승낙했다. 또한 작은 교회의 어려운 일은 그냥 해달라고 해도 해야할
텐데 삼십 만원을 준다는 말에 귀가 더 솔깃해졌다
이십 대 초반에 대구의 모 교회에서 높은 종탑을 세울 때에 청년들끼리 올라가서
장난도 치고 성탄절에는 종이로 큰 별을 만들어 달기도 해서 그 교회 마당의 종탑은 그것보다는 낮아 대수롭잖게 여겼다
오전 아홉시 쯤
도착하니 목사님은 출타를 하여 없고 나는 준비해 간 밧줄과 스패너 몇 개와 쇠톱을 허리에 차고 그 철탑을 기어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교회
지붕이 저 아래로 보였다 이제 어지간히 올라왔다 싶어 위를 쳐다보다가 적잖이 당황했다
생각보다 높아 여지껏 반도 못 올라 온
것이다 그 종탑은 땅에 닿는 부분은 사 미터 정도로 넓은데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져 삼분의 이쯤 올라가니 육십 센티 정도로 좁아졌다 사각 철탑의
안쪽에 서서 작업을 하면 실수해서 추락할 위험이 적은데 좁아서 안쪽에는 들어가서 설 수가 없고 철탑 바깥에서 한쪽 손으로는 철탑을 붙들고 한쪽
손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바람이 부니 철탑이 크게 흔들렸다
더우기 삼분의 이 지점에 까치집이 하나 있었는데 아래서 볼 때 농구공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이사할 때 이불 보따리만큼 컸다 그 까치집은 막대기와 흙으로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져 있는지 쉽게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을 뜯어내는데 온통 훍 먼지를 뒤집어 써야했다
까치집을 철거하고 위로 올라가니 교회 이름이 적힌 간판이 부착된 큰 사각
틀이 있어 어렵게 해체하고 맨 꼭대기에 오르니 면 소재지 전체가 보였다 바람에 철탑 전체가 흔들리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특히 맨 꼭대기에 설치된
내 키보다 더 큰 십자가는 네 개의 고정된 볼트를 풀었을 때 어디로 넘어질지 몰랐다
한 손으로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내게로
넘어지면 큰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철공소 사람들이 괜히 왔다가 그냥가고 괜히 팔십 만원이나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지금처럼
사다리차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한번 올라 와 보지도 않고 결정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전에 신문에 어떤 교회에서 전도사가 지붕에
올라가 수리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기사가 방정맞게 떠오르며 아침에 배웅하던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삶속에 생각하지도 않은
어려움과 맞딱뜨렸을 때 그때마다 회피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앞날에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한 두 번 있겠는가. 그래도 이 정도는 할 만하니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셨겠지 하며 기도하며 스스로 용기를 내었다
발을 헛디뎠을 때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밧줄을 허리에 감아 철탑에 묶었다 탑의 십자가를 고정시킨 마지막 볼트를 조심스럽게 풀며 어디로 넘어질지 가늠을 하여 그
십자가를 밧줄로 묶어놓고 마지막 볼트를 푸니 내가 선 반대쪽으로 넘어지며 텅하고 굉음을 내며 철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제일 어려운 작업이 끝난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적응이 되어 고소 공포도 사라지고 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스패너로 볼트를 풀고 녹슬어 풀리지 않는 것은
쇠톱으로 잘랐다 열두시가 되기 전에 바닥에 닿았는데 마당에 가득한 철 구조물의 잔해를 화물차에 싣고 있는데 마침 들어오신 목사님이 삼십 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셨다
봉투에서 삼만 원을 빼서 목사님 노모께 맛있는 사 드시라고 드렸다. 오는 길에 고물상에 들러 그 철거물을
팔았더니 삼 만원을 쳐주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삼십 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주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
지금도 운전을 하다가 높은
철탑에서 작업하거나 높은 빌딩에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청소나 페인트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