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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리듬댄스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꿈꾸는백마강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 역사적 유래와 뜻
B.C 11.000 년 경. 지구 전역을 휩쓴 지각변동과 대홍수로 대부분의 인류는 전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3만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빙하기도 막을 내렸다.
지각변동과 대홍수로 높은 산(천산고원)으로 이어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에 서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었든 9종족은 홍수를 피해 살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동이족 (구이족 혹은 색족-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청인종)은 히말라야 산맥과 이어진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과 천산 산맥, 그리고 알타이 산맥을 넘으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에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실제는 훨씬 더 빨리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부터 5,000여 년 전에 우리 민족 일부가 중앙아시아 아랄해까지 진출했다.
떠난 사람들은 처음 몇 년간은 많은 이동을 했을 것이다.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고, 낙오되어서 초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후손들에게 우리가 떠나온 땅을 찾아가려면 해 뜨는 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였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전체가 우리 민족이 살았던 곳이다. 특히 투루크 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난 백인들로, 우리 민족과 백인들의 혼혈이다. 투르크 인들은 우리 역사에 돌궐족으로 등장하는,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
동이족은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방향으로 이동해 광대한 초원을 무대로 이동하며 살아온 북방 유목민족이었다.스키타이족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4천 년경 북극성이 용자리에 있을 때. 한웅이 아버지 한인의 뜻에 따라 현 몽골지역 음산산맥인 백두산 혹은 장백산 아래에 한국(환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백두산(장백산, 불함산)은 지금의 몽골고원의 남쪽 변두리를 병풍처럼 길게 두르고 있는 현재 이름의 음산산맥이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이 여진족들을 막기 위해 음산산맥(백두산-진짜 백두산은 내몽고 음산산맥) 아래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출처] [아리랑 민족의 비밀 6] 서울로 간 욕단|작성자 위너스보트
이천년 전 한나라 때 역사서인 <한서> “서역전”에 “총령”이 나오는데, 7세기 초 당나라 때 사람인 안사고(顔師古)가 이를 설명하여 주석을 붙이기를,
(옛날 역사책인) <서하 구사>에서 이르길, “총령은 그 산이 높고 큰데, 산 위에 온통 파가 자라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했다.
師古曰, “<西河 舊事> 云, 葱嶺 其山 高大, 上悉 生葱, 故 以名焉.”
고 되어있습니다. 이 기록은 “총령,” 즉 “파미르”라는 이름이 “파가 많이 나는 산마루”란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파미르 고원을 처음 넘은 사람들이 “파마루”라는 한국말로 고원의 이름을 지은 것이 “파미르”라는 현지어 발음과 “총령”이라는 중국어 이름의 뜻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아리랑 (亞里郞 )- 알이랑 - "알이" 란 크거나 신성한 것을 가르키는 말(몽골말로 깨끗하다,성스럽다는 뜻)
파미르 고원을 통과한 욕단 집안 사람들은 이후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연달아 넘습니다.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고 또 넘은 것이지요.
레닌봉을 배경으로 사막에서 대원 전체의 기념 촬영
베이스캠프 주변의 풍광
천산산맥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산맥으로 최고봉은 7,439미터에 이릅니다
오랑캐 천산문화
환인시대 천산문화
‘아리랑’의 뜻은 우리나라에 있지 않았다.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역사의 진실이 있다
1650년 전 영국은 우리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또한 한자(漢子) 역시 우리가 만든 문자다
<한자 검정 시험 1급> <영어단어 어원편> 두 권의 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자도 우리 민족이 아니면 못 만들었을 글자가 보이고,
영어 어원도 우리말 같은 부분이 있다. 우연히 <영어는 우리말에서 왔다>라는 유투브를 봤다. 영어에 한자가 들어 있었다.
아리랑의 뜻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한 이 책은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트린다. 영어도, 한문도, 그 외 세계 여러 언어도 대부분 우리 언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입증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 저자 : 임오르 청주 출생)
문자의 탄생!
믿을 수 없는 일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여태까지 중국 문자라고 알고 있던 한자가 우리 민족이 이
시기에 만든 문자인 것이다.
한문 = 동이문자 = 한족 = 한국인의조상 동이족 (東夷族)이 만든 우리글자
문자에 구슬 옥(玉)이 많은 이유가 옥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옥을 다듬는 뛰어난 솜씨는 현재와 비교해도 조금도
뒤 쳐짐이 없다. 흙으로 만들어 굽어진 요가 하는 사람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 시기 요가는 일상생활로 높은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글자에는 그 시대 사람들에 생활이 있다. 수레[수레 차(車)]가 있었으며 곡식을 일어(淘:일 도) 밥도 지어 먹었으며, 글방(塾:글방 숙 )에서 글도 배우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실천하고 사는 높은 문화가 있었다.
다행인 것은 한자가 구전으로 학습되었음에도 한자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히도 우리글에 흔적을 영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고구려어의 「城」을 의미하는 낱말 ‘kuru(溝漊)’와 만주-퉁구스어 ‘kure(kuri)’, 몽골어 ‘kur-’, 일본어 ‘kuru-’는 어원이 같은 동원어로 추정되고, ‘kuru(kuri)’의 어두자음 ‘k-’가 탈락한 것이 ‘uri’이고 ‘uri’의 어말모음 ‘i’가 탈락한 것이 ‘ul’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 고구려어의 「城」을 의미하는 낱말 ‘hol(忽)’은 몽골어계 ‘qota, qoto-, qori-’, 튀르크어계 ‘-qorū, qory-’, 퉁구스어계 ‘koto-(n), xoton’, 만주어 ‘hotō-(n)’은 어원이 같을 동원어로 추정되고 몽고어 ‘qoton’을 퉁구스어에서 차용한 것이 ‘koton’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만주어 ‘hoton’과 몽고어 ‘xoton’은 몽고어 ‘koton’에서 변화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고구려어 ‘kol(骨, 谷)’은 몽고어 ‘koton, kori’에서 차용한 어형일 것으로 여겨지므로 ‘koto~kori’에서 ‘k-’ 어두음이 탈락한 어형이 ‘ori’이고 ‘ori’에서 어말모음이 ‘i’가 탈락한 것이 ‘ol’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 ‘가르다(分岐)’에서 변화한 ‘kara-(k)(伽落, 加里)’는 만주어 ‘golo’와 ‘kalta(kata)’, 몽고어 ‘kelte’는 어원이 같은 동원어로 추정되고 ‘kari, kara’의 어두자음 ‘k-’가 탈락한 것이 ‘ari(ara)’이고 ari(ara)의 어말모음 -i(-a)가 탈락한 것이 ‘al’일 것으로 추정된다.
라). ‘kəri’는 ‘kari’의 동음이 형태표기로 추정되고 ‘kəri’의 어두자음 ‘k-’가 탈락한 어형이 ‘əri’이고 ‘əri’의 어말모음 ‘-i’가 탈락 어형이 ‘əl’일 것으로 추정된다.
마). 「아리랑」의 「아리」는 만주어 「分岐」의 의(義)를 지닌 ‘golo’, ‘kalta’의 어두음 ‘k-’가 탈락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랑」은 「良, 羅, 耶, 里」의 표기로 "터" 곧 「地, 大地, 原地」의 의를 지닌 낱말로 추정된다.
바). ‘kuri(u), kori(o), kari(a), kəri(ə)’는 경덜왕이후 터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어중모음 ‘-u-, -o-, -a-, -ə-’와 어말모음 ‘-u, -o, -a, -ə’가 고대국어에서 터쓰이어 호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 ‘kuri, kori, kari, kəri’는 ‘kuri>uri>ul, kori>ori>ol’, ‘kari>ari>əl, kəri>əri>əl’의 변화과정을 겪은 어형일 것으로 추정되고 ‘kuri, kori, kari, kəri’의 어말모음 ‘-i’가 탈락한 어형일 것으로 추정된다.
대 이동의 시작
b.p5,150년~b.p5,790년사이 백두산 대폭발이 있었다. 당시 화산재 분출량이 13.6억 톤이나
분출되었으며,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었고 요하 문명 지역에 살던 많은 신석기인들은 살기 위해 백두산 반대쪽으로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다. 백두산 반대쪽, 해가 지는 서쪽으로 문자를 소유한 가장 앞선 문명이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5,000km를 이동하는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일 년에 10km를 간다고 가정하면 약 500년에 걸쳐 갔을 것이고, 백두산 화산재가 온통 하늘을 덮어 많이 놀랐다면 몇 년 안 돼 중앙아시아를 거쳐 투르크메니스탄에 도착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에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실제는 훨씬 더 빨리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부터 5,000여 년 전에 우리 민족 일부가 중앙아시아 아랄해까지 진출했다.
떠난 사람들은 처음 몇 년간은 많은 이동을 했을 것이다.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고, 낙오되어서 초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후손들에게 우리가 떠나온 땅을 찾아가려면 해 뜨는 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였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전체가 우리 민족이 살았던 곳이다. 특히 투루크 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난 백인들로, 우리 민족과 백인들의 혼혈이다. 투르크 인들은 우리 역사에 돌궐족으로 등장하는,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서북(西北)으로 천산, 바이칼호,서(西)로 중원의 중심지 장안, 서안, 함양,남(南)으로 대마도-유구, 지나 남동연안-해남도,북(北)으로 이무르, 연해주, 사하린, 캄차가반도, 축지반도,캄차카(깜짝가), 알류산열도를 건너 알레스카땅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디안 선조가 되었다.이 모두는 <고조선>의 피와 뼈가 뭍힌 땅이다.
터어키말에서 발견된 우리말
[[한글에 소리원리를 쓰신 신 민수님에 블로그‘[스크랩] 한국을 형제국이라 부르는 터어키어와 한국어의 유사성’]]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잔은[핀잔]이라 부르고 접시는[텝시]라고 부르는 나라. 소를[스으르]라 부르고 닭을[타오]이라 부르는 나라. 물을(水)을 [수]라 하고 불은[아데쓰: 아 디었써]라고 부르는 나라.(참고: 우리나라도 불을 ‘아’라고 하였음. 아궁이) ...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아리랑 뜻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데서
우리 민족이 세계 곳곳에 새긴 살아있는 증거들을 만나게 된다.
우선 인터넷에 떠도는 아리랑의 뜻을 모아보면, 我(나 아)+理(다스릴 리)+朗(밝을 랑) 즉 “참 나를 깨달아 인간 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것” 이라는 설, 어떤 분은 아리다 쓰리다를 아리랑 쓰리랑으로 표현했다는 설, 아리랑의 랑이 고개 령(領)이라는 설, 그 외에도 亞里郞이라는 설, ‘아리랑’은 ‘안고싶은 이와 함께’라는 설, 아리랑은 아릿다운 임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임이라는 설, 적어도 학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나름의 아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진짜 아리랑의 뜻은 무엇일까. 정답을 찾을 수는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 뜻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아닌 멀리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글쓴이 : 꿈꾸는 백마강의 주석 참고)
꿈꾸는 백마강의 주석
B.C 11.000 년 경. 지구 전역을 휩쓴 지각변동과 대홍수로 대부분의 인류는 전멸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높은 산파미르고원으로 올라가
홍수를 피해 살았다.그리고 3만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빙하기도 막을 내렸다.
동이족은 히말라야 산맥과 이어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모든 문명들 역시 파미르고원에서 부터 퍼져 나갔으며.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파미르고원에는 9종족이 모여 살았다. 그래서 동이족을 구이족 혹은 색족이라고도 한다.
다인종이 다함께 섞여 살았던 것이다. 색족은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청인종을 말한다.
인도에는 푸른 피부를 가진 신들도 있다. 이들이 청인종인 모양이다.
“세파르”와 “시비리”는 같은 말이고, 이것은 욕단이 알이랑(알타이 산맥)고개를 넘어 발견한 “새 땅”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새 땅(욕단 집안의 땅인 “하르 하케뎀,” 즉 “그 동방 산지”)
시비리에 이르자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고 동방 산지로 이어집니다.
한반도 3/4 넓이의 연해주는 한반도와 붙어있고, 2천년 전 만들어진 온돌이 다수 발견되는 등 고조선 시대 이래 옥저,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민족의 땅이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 많은 유물과 유적을 연해주에서 발견,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서 한민족이 살던 곳입니다. 송화강과 흑룡강이 흐르는 우리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시호테알린(Sikhote-Alin)산백의 땅이 연해주입니다
이렇게 시호테알린 산맥과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연해주와 한반도는 아시아의 동쪽 가장자리에서 길다랗게 하나의 산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동방’과 ‘산지’ (HAR HA KEDEM) ‘동쪽’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하케뎀’인데 이는 정관사 ‘하’에 ‘케뎀’이란 명사가 부착된 형태이다. 원어사전은 ‘케뎀’이 ‘동쪽 끝 부분’, ‘동쪽 시작 부분’을 지칭하는 명사임을 가르쳐 준다. 이 단어에 정관사를 부착시켜 사용한 것은 동쪽 끝의 어느 한 지역을 확고히 나타내기 위함이다.
아시아의 동쪽 가장자리 한반도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연해주 의 길다란 산지 (시호테알린 산맥)욕단 집안의 땅
“하르 하케뎀,” 즉 “그 동방 산지” 의 위성사진 지형도
파미르 고원과 천산 산맥, 그리고 알타이 산맥을 넘으면 나오는 “시비리(ㅅㅂㄹ),” 즉 현재의 시베리아라고 말합니다 “시비리”라고 하는 말은 ᄉᆡᄇᆞᆯ, 즉 새벌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 한국어에서 ᄉᆡᄇᆞᆯ (새 벌)은 “새 땅”을 뜻하는 말입니다.
대홍수와 빙하기가 끝나자 파미르고원에서 살던 구이족들은 사방으로 나누어 흩어졌다.
알이랑, 즉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고 또 넘은 것이지요. 아리랑은 놀랍게도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이 지각변동과 대 홍수 후 셈 계통의 일신 신앙을 가지고 동방으로 이동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오면서 천산고원(파미르고원)에서 부르든 "알이랑 "찬송가를 불렀다 "알이"에서 큰알이 즉, 한(만물을 낳고 키우는 알 = 큰알 = 우주)이란 아주크다는 뜻 한알님,하날님, 한울님,하늘님,하느님,하나님 이렿게 모두 같은 "알"이란 어원에서 비롯됏다.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로와 아르박삿과 롯과 아람이요 /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은 벨렉 (15대 - 아브라함의 조상)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 이름은 욕단(한국의조상) 이며 / 벨렉은 다시 바베론 쪽으로 갔고 욕단만 자녀들을 데리고 동쪽으로 옮겨 갔다.성경에서 욕단의 후손들이 동쪽산에 살았던 산족들 이었다 한국어 "사내" ㅡ "사나이" 준말
"사나이" ㅡ "산아이" (산악 지역에서 온 사람 이라는 뜻)
욕단의 아들들이 거주하는곳은 메사(천산산맥의 한도시)에서 부터 스발 (한국어 : 새벌 = 세땅 = 새벌판 = 시베리아)로 가는 동쪽산 을 말하며 성경에서 욕단(단군)족속만 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나 동쪽 산 동쪽으로 이동하여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중앙아시아에 있던 천진산맥 천산지역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동이족 = 한민족의 조상(욕단의 후손들) 은 동쪽 메사(천진산맥)에서 동방을 향해 험한 산과 준령을 넘어가면서 스발 (시베리아)를 개척했고 백두산(음산산맥陰山山脈)에 고조선을 건국했다
백두산 = 장백산맥(長白山脈)은 대청산(大青山)이고, 음산산맥(陰山山脈) 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고개를 넘어간다 이 노래는 욕단 집안 사람들이 험한 산과 준령인 파미르 고원을 통과하고 이후 천산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연달아 넘고 넘어 중앙아시아에 있던 천진산맥 천산지역 에 다달을 때까지 동이족 (구이족) 이
대홍수 때 파미르 고원 알타이 산맥 알이랑 고개 에서 함께 살면서 큰하늘에 받치는 알이랑 "찬양가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동이족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민족이동 한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건국신화와 동북아시아 국가를 창건 하는 기원이고 뿌리 입니다.
알이랑 ㅡ 아리랑 대홍수 전에 하느님의 이름을 "알" 이라 호칭 했고 오늘날은 "엘"이라함
"알" = 하나님 "이랑" = 함께 ㅡ 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
(동쪽 험한 산과 준령을 동방을 향해 성령 하나님과 함께 넘어간다 는 것)
하느님 =god = 갓
한민족은 하느님 아들 천자라서 갓을 쓰고 다닌것
chosen people 하느님의 선민 = 조선사람(고려인)
알리 = 한 = 크다 한가위(한은 ‘크다’, 가위는 ‘가운데’)
아리랑 ㅡ 아리랑 (亞里郞 )- 알이랑 - "알이" 알타이 어족 - 알타이 산맥- 알타이어를 쓰는 사람 - 알지(박 혁거세)
- 알영부인(閼英夫人= 閼英妃,기원전 53년 ~ 4년)을 아리영(娥利英)·아이영(娥伊英)·아영(娥英) 등이라고도 한다.
알영정(閼英井) 또는 알영 우물은박혁거세 거서간(赫居世居西干 ㅡ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의 호칭)의 황 후가 된 알영부인의 탄생지이다. 현재 오릉내에 있는 숭덕전(崇德殿)내에 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땅에 에벤키Evenks) 족은 생김새가 한국인과 판박이로 같고 유전자 구조 역시 한국인의 70%가 일치함으로 우리와의 똑같은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요"가 에벤키족의 언어 사전에
아리(ALIG)는 고개,산허리,산등선으로 나타내고 ARI는 요정,망령,도깨비,혹은 혼불,도깨비불 등을 의미하고있다. 우리와의 아주특별한 유대관계를 추정 할 수있는 민족이다
시베리아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 모든 것이 꽁꽁 얼어있는 '야쿠츠크' (사하족 또는 야쿠트족)
*몽골로이드 시원(始原)인 바이칼호수안에 알혼섬 부리야트족 강강술래"의 어원 - 乾降 首알來 (건강 / 수알래) 하늘의 정기가 내리시네 / 머리 위에 '알'로 오셨네 /하늘과 땅의 정기를 받으세 / 붉은 '달'로 오셨네 <> 배달-민족 <=> 붉은 달-민족 <=> 붉달-민족 / <> 배달-겨레 <=> 붉은 달-겨레 <=> 붉달-겨레
브리야트 족, 시조 게세르 신화에 아바이는 아버지라는 뜻, 고수레, 성황당 등이 있는 같은 "아바이" 뿌리민족으로 현재 이북에서는 "아바이" 남한에서는 "아버지" 라 부른다.
우리 한韓민족은 예로부터 '배달의 민족'이라 불려왔습니다. '배달(倍達)'이라는 한자는 순우리말인 '밝달'에서 온 것입니다. '밝'은 '밝다'라는 의미이고, '달'은 응달과 양달이라는 말처럼 '땅'을 의미합니다. 배달의 민족이란 천지와 하나 되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밝은 마음을 가지고 '밝은 땅', '광명이 동방 땅'에서 동방문명의 열었던 민족을 한문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선조는 배달의 민족이며 우리는 배달의 후예입니다.
< 붉은 달 >
한韓민족'이란 천지광명인 환단(桓檀)'의 꿈과 이상을 성취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중국은 배달의 민족인 우리를 '동이족(東夷族)'이라는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배달의 민족이 '동이족'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약 4,700년 전 배달국 14세 자오지 천황께서 큰 활을 만들어 사용하면서부터입니다. 중국 한漢족은 이때부터 '동쪽에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의미의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러온 것입니다.
한국어는 크게 구분해서 이른바 우랄 알타이 어족(語族), 또는 드라비다 어족에 속한다.
한국어는 모든 우랄 알타이어와 마찬가지로 교착어이며, 이 점에 있어서 굴절(屈折:어미 변화 · 활용)어인 인도 · 유럽 어족과 구분된다.
한국어는 인종학의 관점에서도 그렇듯이 언어학의 관점에서도 우랄 알타이어의 양대 산맥, 즉 달탄어와 오세아니아어의 연결선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보다 직접적으로 달탄 · 몽골 · 시베리아어, 또는 대륙 · 드라비다어의 파생어에 속하고, 비슷하게 일본어는 헤브라이드 · 뉴기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하여 필리핀 군도 · 대만 · 유구 열도를 거친 다음 대한 한반도를 매개로 연속하여 대륙과 합해지는 오세아니아 · 말레이지아어 또는 도서(島嶼) 언어의 파생어에 속한다.
천산고원(파미르고원)에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릴때 건국신화에 나오듯이 환웅께서 천제에게 고하고 천부인을 받아서 3.000명을 이끌어서 히말라야 산맥과 이어진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과 천산 산맥, 그리고 알타이 산맥 알이랑 고개를 넘어 너머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에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지금부터 5,000여 년 전에 우리 민족 일부가 중앙아시아 아랄해까지 진출 우리민족을 이룬 것이라 .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
수메르의 기원은 배달족(한국)이다.!!! 수메르(메소포토미아)문명 BC.3500.지금의 이라크 지방에서 발생된 문명으로서수메르란 뜻은 '검은머리' 라는 뜻입니다.수메르인의 특징을 여러가지 살펴보면...
1.검은머리.키가작고 후두가 평평(편두형)동양인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2.태음력(음력)을 사용/3.순장제도를 사용/4.언어는 교착언어(우랄알타이어 에만 있음)사용/5.60진법을 사용했다/6.수메르는 회도문명(한국.몽고.일본 등), 채도문명(중국.화의족.지니족 등) /7.무덤양식은 웅관총 이다/8.윳놀이를 했으며...가지가 4개인것도 동일
이중,동일한 민족인지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언어와 무덤양식이 동일해야 합니다
수메르어와 한국고어 불완전명사.접두사.접미사가 완전히 같고 에~ 과~ 저~여기~ 여기 등 지구상에서 수메르어와 똑같은 언어는 한국어밖에 없습니다.삼국사기에 몇개의 고대 한국어가 기록되 있는데 일--아스. 이--디르 셋--에스 오--이하 수메르도 아스. 아사히.아침이라 하였으며 수사는 한국과 동일 했습니다.
수메르어로 물--메. 그물--구스라 하며 경기북부 언어중에서 수원을 메골.메산이라 했으며같은 물을 뜻하는걸 알수있습니다.
한국의 배달문명(홍산문명)이 1906년.만주 내이몽구 지역에서 발견 되면서이모든 의문점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원래 고산족 산이 많은곳에 살던 수메르인들은고향을 그리워하며 지구라트 인조산을 이라크평야에 쌓기 시작했으니...
성경에선 수메르인들이 바벨탑을 쌓았다.기록하고 있습니다.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의 역사기록에서
"우리 조상들은 고산에서 왔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최초 쐬기문자.설형문자를 수메르인들이 발명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홍산문명이 발견되면서...이미 배달민족.동이족이 이전 1500년 전에 문자를 발명하여 쓴것이 명확하게 증명 되었습니다.
인류최초의 문명은.수메르도 아니고 이집트도 아니며 중국의 황하문명도 아닌 우리의 홍산문명 입니다.
수메르의 언어중 단군. 딘 그리(din.gir) 탱그리(dengri) 가 나온다는 놀라운점이며 수사는 똑같이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전라도 지방에선 무당을 당골레라부르며 단군의 뜻은 '단군왕검' 제정일치시대 왕이자 무당을 뜻하는 말입니다.우리민족의 어원은 세계사를 아우르며 실로 위대한 민족이 아닐수 없습니다.
글자가 적힌 용골이 나온 하남성 안양현 소둔은 옛날부터 '은허(殷墟)' 라고 불리고 있었고,
사마천이 <사기> 에서 은나라의 수도가 있던 곳이라고 기록한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 발굴로 약 5,000점에 달하는 문자가 새겨진 거북의 등껍질과
소의 견갑골(어깨뼈)이 발견되었다. 해독된 갑골문의 내용을 통해 그때까지 역사상의 존재가 의문시되던
은나라가 실존한 왕조로 입증되었고, 가장 오래된 문자로서 갑골문자의 존재 역시 인정되었다.
갑골문자 초기 명칭은 거북의 등껍질과 소의 뼈에 새겼다해서 귀갑수골문자(龜甲獸骨文字)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줄어들어 주로 '갑골문자(甲骨文字) 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주로 은나라 왕실의 점술사가 점을 친 내용이며, 그 목적은 제사, 전쟁, 사냥, 농경, 날씨, 질병, 복점 등 실로 다양하다.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 보다 1000년 정도 앞선 고조선 골각문자(BC.4000~5400년 추정) 발견
당시 산둥 지역은 한민족을 포함한 동이(東夷)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했기 때문에 이 골각문자는 동이문자로 봐야 한다 “문자의 모양도 고대 상형문자인 동이문자 계열에 속한다” 지적했고 “은허 지역에서 발견됐던 갑골문자도 동이족의 골각문자가 발전한 형태라 강조했다는 것.갑골문자와 금문은 단순한 표의문자가 아니라 세계 문자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의미소 조합문자"이자 "순우리말로 구성된 문자" 라는 사실을 증명(동북 고조선지역 홍산문화 요하문명 홍산문명 상형문자와 은허 갑골문자)
중국 산동성과 안휘성에서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 [琵琶形銅劍] 이 출토
기원전 1600년~1046년에 존재했던 동이족의 일족 미국 대륙 진출
증거 갑골문자 113자 발견…
홍산문명에서 출토된 유물과 여신상 두상.연대가 수메르보다 훨씬 이전의 유물들..
중국어: 阿爾泰山脈・阿勒泰山脈, 문화어: 알따이 산줄기)은 러시아,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의 국경에 걸쳐 있는 길이 1,900km의 산맥이다. 아시아의 정중앙에 위치한 산맥으로 우랄산맥과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지역의 대표적인 분수계 가운데 하나이다. 알타이란 말은 몽골어, 튀르크어로 금(金), 황금(黃金)을 의미한다.
최고봉은 해발 4,506m의 벨루하산이다. 남쪽으로는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중가리아 지역, 남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남동쪽으로는 몽골과 접해 있고 러시아 남시베리아 서부에 있다.
알타이산맥은 중앙아시아에서 북동아시아에 걸쳐 있는 산맥을 말한다. 알타이는 몽골어의 알(Alt)과 타이(tai)가 합성된 말이다. 몽골어에서 'Alt'와 'Altan' 등은 '황금'을 뜻하며, 'tai'는 접미사로서 '~와 함께', '~을 가지다' 등의 뜻이 담겨 있었다.알타이산맥은 예부터 유목민족들의 활동 무대였고 돌궐 등의 민족이 이곳에서 발원하여 거대한 국가로 발전하는 등 몽골뿐 아니라 주변 초원 지대의 중심 지역 중 하나였다.
*바이칼호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소수민족 어웡키족이 '아리랑'과 '쓰리랑'과 비슷한 말을 쓰고 있다.
혹한과 야생의 땅- 알타이와 바이칼 자손들
요하를 해자로 삼고 천산산맥을 등진 자리에서 고조선은 요동벌판과 요서, 한반도를 지배했던 것이다.
*한민족 예상 이동경로를 표시함
우리나라의 언어는 알타이어산맥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와 만주, 한반도까지 잇는 알타이어 통구스 계통의 언어입니다. 러시아에서 우랄알타이어를 쭉 거쳐서 수메르 문화를 거쳐서 다시 히말라야까지..인도에 까지..
수메르가 소라는 뜻으로 우리 전체 문화임. 그러므로 수메르에서 이스라엘 있는데가 수메르로 그러면 그쪽에서 나온 토기가 우리 신라에서 우리나라에서 나온 토기와 하나도 안틀리고 똑 같음
그래서 우릴 수메르 민족이라고 하여 거기서 우리가 유래되어 내려왔다는 짐작은 그 유적과 토기로 가능함
그리고 중국의 훙산문화 중국 대륙도 우리가 차지하고 있던것이며 근데 그 중국 대륙에 미토콘트리아 이브족
전 세계 인구의 90프로 차지하고 있는 다섯번째 만든 인류 유리인류(有离人留)를 전체로 볼때는 우리 인류는
중국 신석기시대 후기(약 7,000~8,000년 전)의 문화. (병). Hongshan. (웨). Hungshan culture. | 주로 랴오닝 성[遼寧省] 서부 일대에 분포한다. 1935년 랴오닝 성 츠펑 시[赤峯市] 훙산에서 발견되었다. 훙산 문화는 경제적인 면에서 농업과 목축업으로 우리 민족의 것이다 훙산 문화는 기원전 6000년부터 기원전 800년까지 중국 랴오허 강 유역 훙산 지역에 있었던 신석기 시대 문화이다. 훙산 문화 유적에서는 용 모양의 옥기와 비교적 낮은 온도로 구워낸 토기, 다양한 형태의 돌보습, 돌쟁기, 돌호미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로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를 통해 훙산 문화의 공예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어 사람들은 강가나 강이 잘 보이는 구릉의 비옥한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였고, 조, 수수, 콩, 밀, 보리, 쌀 등을 심어 경작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문명을 일구었다는 랴오허문명은 그동안 부단히 고조선의 영역이라고 주장되던 곳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단군조선보다도 빠른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경에 이미 고대국가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 국가를 ‘신비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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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혼
환국과 배달의 역사를 밝힌 훙산문화
모피어스네오 2022. 3. 21. 00:35
배달국
환국 말기인 6,000여 년 전, 지구 환경의 변화로 인류의 황금시절이 막을 내리고 세계 문명이 나비의 두 날개처럼 동서東西로 분화하였습니다.
백두산 마루에 신단수를 정하고, 그곳에서 천제를 올리며 삼신상제님께 나라 세움을 고했습니다. 신시神市(신 의 도시)에 도읍을 정한 동방 한민족의 첫 나라, ‘배달倍達’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은 하늘의 밝음을 뜻하는 ‘배(밝)’와 땅을 뜻하는 ‘달’을 합친 말로서 ‘밝은 땅’ 또는 ‘천지광명의 중심 되는 동방 땅’을 뜻합니다. 우리 민족을 ‘배달겨레’라고 부르는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배달을 ‘땅의 광명[地光明]’을 가리키는 ‘단槪 자를 써서 단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환단,은 환국과 배달 시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배달의 초대 환웅이신 거발환 환웅은 국가 통치 이념도 전수 받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머물러 살며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으로 다스려 깨우치고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재세이화 在世理化 홍익인간私益人間’입니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홍익인간을 단군조선의 국가이념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 9,000년 전 환국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통치 이념입니다.
그런데 ‘홍익인간’은 단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규범적인 가르침에 그치지 않습니다. ‘홍익인간’은 최상의 이상적 인간상을 지칭하는 말로서 정확하게 풀면 ‘홍익하는 인간입니다. 이때 ‘홍익,이란 천지의 웅대한 뜻과 이상을 역사 속에 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이란 '천지광명의 이상 세계를 건설하여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역사의 주인공’을 말합니다.
초대 환웅천황의 호칭인 거발환에는 신교문화의 깨달음의 핵심 내용이 깃들어 있습니다. 거발환은 '대원일大圓一'의 다른 말입니다. ‘대원일’은 ‘지극히 크고 무한히 조화롭고 하나로 통일된다’는 뜻으로, 하늘과 땅과 인간의 창조 정신과 목적을 압축한 말입니다. 천지인은 한잆이 크고 원융무애하며 서로 일체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배달의 통치 체제 또한 신교문화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신교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에 따라 삼백三伯과 오사五事제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삼백이란 풍백鳳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로서 오늘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해당하는 관직입니다. 현대 정치 체제의 기원이 배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인류 문명의 창시자 태호복희씨
태호복희씨는 5,500년 전, 배달의 5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입니다. 복희씨는 하도河圖를 그려서 역사상 최초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數 체계를 세웠습니다. 이 하도 한 장에서 태극, 음양오행원리와 공간과 시간의 순환원리가 나왔습니다.
태호복희씨는 또 팔괘八卦를 그어 주역의 기초를 닦음으로써, 천지 시공간과 인간의 변화법칙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나아가 최초의 해시계로 제어지는 규표圭表를 발명하고, 24절후를 발견하고 혼인 제도도 정했습니다. 복희씨는 한마디로 동양철학의 아버지요, 인류 문명의 창시자입니다.
태호복희씨의 성은 풍風씨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성씨였습니다. 그러나 풍씨는 15대 만에 끊어지고, 그 후손들은 8개의 다른 성씨로 분파되었습니다.
한국인은 역사를 잃어버려 태호복희씨가 우리 조상인 줄도 모르고 있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태호복희씨를 인문 시조人文始祖, 즉 ‘인류 문명의 첫 조상’이라 하여 지극히 높이 받들고 있습니다. 사실은 동이라고 해서 인두사신, 즉 뱀의 몸뚱아리를 한 괴물로 묘사하기도 했지만 '동이의 역사' 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한 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학과 농경의 아버지, 염제신농씨
염제신농씨는 약 5,200년 전, 배달의 8세 안부련 환웅이 다스리던 시대의 관리였던 소전少典이 중국 섬서성 강수姜水지역의 군병 감독으로 임명을 받고 강수에 가서 낳은 인물입니다.
신농씨는 산에 불을 질러 농토를 개척하고, 나무로 보습 같은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법을 발전시켰습니다. 또 수백 가지 풀을 직접 맛보아 의약을 개발하고, 시장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했습니다.
‘농경의 시조,, ‘의학의 시조’, ‘교역문화의 창시자’ 등으로 불리는 신농씨는 오늘날 호북성 수주隨州시 여산진
麗山鎭 열산列山에 신농국을 세웠습니다. 신농씨의 나라는 8대 유망愉罔에 이르기까지 약 530년 동안 존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렇게 인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태호복희씨와 염제신농씨를 중국의 조상으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중하삼조당을 지어 신농씨를 중국의 3대 조상 가운데 한 분으로 모시더니, 2007년에는 하남성 정주시鄭州市, 황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무려 20년 동안 제작한 황제헌원과 염제신농씨를 나란히 모신 거대한 석상[염황이제상炎黃=帝像]을 세웠습니다. 이 염황이제상을 세운 것은 중국의 탐원공정의 일환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제거하는 작업입니다.
현재 사학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른 바 환단고기를 바로 알고자 하는 데 대해서 환빠라고 비하 하기,우리 고대 역사는 만들어진 것, 유사, 사이비를 붙여서 망가뜨리고 있는 데, 식민사학의 껍질을 깨뜨리고 다시 우리의 고대사의 역사를 찾는 것만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식민사학에 제대로 대항해서 중국의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부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달의 진성기를 구가한 치우천황
배달은 4,700년 전의 14세 자오지 환웅 (치우천황)에 이르러 동북아 일대를 다스리는 강국이 됩니다. 유망 때에 신농국이 쇠퇴 하자 치우천황은 서방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을 배달의 영토로 흡수했습니다. 동북아의 천자가 되고자 모반을 꾀한 헌원을 10년 대전쟁(탁록대전) 끝에 굴복시 킨 것도 그 무렵입니다.
마침내 동북아를 평정한 치우 천황은 넓어진 강역을 다스리기 위해 도읍을 백두산 신시에서 청구靑丘(현 대룽하 유역)로 옮겼습니다. 배달의 전성기인 청구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치우천황은 당시 사람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져 복종할 정도로 위용을 떨친 ‘병법의 시조’로서,
동이족은 물론 중국에서도 숭배하고 추앙하였습니다.
3000년 전 주周나라 개국의 일등 공신이며 병법의 중시조인 강태공은 제나라 왕으로 봉해진 뒤 치우천황을 병주兵主로 모시고 제사를 올렸습니다. 한 고조 유방은 치우천황에게 제사를 지내고서 진秦의 수도 함양을 평정했으며, 천하를 얻은 뒤에는 장안長安에 치우 사당을 짓기까지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진秦•한漢 시대에 10월이면 항상 치우천황 능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때마다 붉은 기운이 진홍색 비단처럼 뻗쳐올랐는데, 그것을 치우기窒光旗라 불렀습니다.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치우천황은 동방 문명의 중심 축을 세운 성인 제왕입니다. 이 세 분이 활약하 배달은
초대 거발환 환웅 이래 총 열여덟 분의 환웅이 다스렸으며 1,565년간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동이의 올바른 의미
환단고기가 전하는 배달의 역사는 중국 역사책에 동이東夷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중화주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아 ‘동이’를 ‘동쪽 오랑캐’로 해석하지만, 본래는 중국에서도 그런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동東’은 태양이 떠오르는 광명한 방위를 말합니다. ‘이’ 는 ‘뿌리라는 뜻도 되고 ‘활을 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인仁’ 즉 ‘어질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이’의 올바른 뜻은 ‘동방의 뿌리 민족’, ‘활을 잘 쏘는 동방의 민족’, ‘동방의 어진 민족’입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동방 민족을 '동이'라 부른 것은 치우천황이 큰 활을 만들어 쓴 이후부터입니다. 큰 활의 위엄에 두려움을 느낀 한족이 배달민족을 가리켜 ‘큰 활을 잘 쏘는동방사람’이라 부른 것입니다.
중국 시서에 나오는 동이의 역사는 곧 배달 시대로부터 시작된 한민족의 서방 개척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동이'앞에 정식 국호인 '배달'을 붙여 '배달 동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동이족은 치우천황의 치우천황의 영토 확장을 계기로 서토西土 깊숙이 퍼져나가 중국의 역대 왕조를 이끈 주류가 되었습니다. 대만과 중국 학자들 스스로 '중국은 동이문화’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중국 역사의 시조인 항제헌원부터 동방 배달의 한 종족입니다.「사기』「오제본기』에서 헌원의 종족 이름을 유웅有熊이라 하였는데, 유웅씨는 배달 초기에 흡수된 웅족 계열입니다.
황제헌원뿐 아니라 오제五帝 소호, 전욱, 제곡, 요, 순도 모두 동이족입니다. 그 뒤를 이은 고대 3욍조의 개국조인 하나라 우禹, 상 (은)나라 탕湯, 주나라 문왕과 무왕까지도 모두 동이족 혈통입니다.
설문해자의 夷 설명
특히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제도와 풍습이 당시 그들의 상국上國이던 단군조선과 아주 유사합니다. 그리고 주나라 초기에 강태공이 제후로 봉해진 제나라도, 그 이웃인 노나라도 역시 동이의 나라였습니다.
동이는 중국의 역대 왕조를 일구었을 뿐만 아니라 신교 문화와 문물을 중국 땅에 전했습니다. 동이의 도자기 제조 술, 제철법, 역법磨法, 갑골문자, 천자天子 제도, 조세 제도, 윤리규범 등 다양한 문물제도가 전해졌습니다. 동이족은 지금의 산동성, 하북성, 하남성, 강소성, 안휘성, 호북성, 절강성 등 광대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면서 중국 황하문명의 근간을 이루었습니다.
한마디로 ‘배달 동이’는 중국에게 지배를 받은 민족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와 문명 발전을 주도한 지배 세력이었습니다.
환국과 배달의 역사를 밝힌 훙산문화
동북아의 역사는 참으로 오랫동안 왜곡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왜곡된 한민족 뿌리 역사의 진실이 중국의 홍산 문화 유적 발굴을 통해 송두리째 드러났습니다.
‘홍산紅山’은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전체가 적철광으로 뒤덮여 붉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배달 시대 이래 우리 조상들의 활동 강역이던 내몽골 지역과 중국 요령성 지역에서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이 대거 발굴되었습니다.
홍산 인근에서 나온 5,000~6,500년 전의 문명은 협의의 홍산문화이고, 만리장성 이북의 요서 일대에서 발굴된 최고 9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신석기, 청동기 문명은 광의의 홍산문화입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무려 9천 년 이상 된 고대문명의 출현은 20세기 고고학 최대의 발굴 사건이었습니다.
흥산문화 발굴은 1908년, 일본 학자인 도리이 류조우가 적봉 일대의 지표를 조사하다가 우연히 신석기 유적과 적석총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1922년 프랑스의 에밀 리쌍이 유적 발굴에 참여하였고, 1930년대 들어와 중국 근대 사상가 량치차오
梁啓超의 아들인 량쓰융梁思永이 내몽골의 적봉 홍산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전인 1935년 일본의 하마다 고사쿠田耕作 등에 의해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으로 홍산 유적은 한동안 잊히게 됩니다.
그 후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1년 8월, 내몽골자치구 옹우특기에 사는 한 농민이 과수원에서 갈고리 모양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녹슨 폐철이라 여기고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의 어린 동생이 그것을 가지고 놀다가, 녹이 벗겨지며 광택이 나타나자 옹우특기문화관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관에서도 이것을 창고에 넣어둔 채 방치 하다가, 10여 년이 지난 뒤 북경대 고고학자 쑤빙치 교수에게 보내어 감정한 결과,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옥기 玉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로선 가장 오래된 용 유물인 이 ‘C자형 옥룡’을 중국 정부는 ‘중화제일용 中華第—龍’ 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1984년)
유물이 발굴될 때마다 동북아의 시원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홍산문화는 세계 4대문명보다 앞선 것으로 제5의 문명입니 다 환국 문명의 자취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홍산문화는 인류 역사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매우 소중한 문화 자원입니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홍산문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것은 3,40년 전의 일입니다. 1979년에 요령성 객좌현 동산취촌東山村에서 제사 유적이 발견되고, 1983년 무렵 그 인근 우하량촌牛河梁村에서 적석총積石塚(돌무지무덤), 신전[廟], 제단[壇] 유적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산문화의 중심지이자 성지인 우하량 지역의 유적은 계급이 분화된 국가 단계의 고대 문명을 보여 주는 것으로 더욱 이목을 끌었습니다. 대형 적석총을 보면 최고 통치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중앙의 대묘大墓를 작은 무덤들이 둘러 싼 형태입니다. 한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신전은, 최고 통치자가 제사장으로 천제를 올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던 제정일치 시대의 유적임을 말해 줍니다. "
그렇다면 6천 년 전에 이미 국가 체제를 갖춘 뛰어난 이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우하량 유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적석총이 이를 말해 줍니다. 적석총은 고대에서 삼국 시대까지 계속 나타나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묘제입니다. 적석총은 충적층 지대인 황하 지역에 형성된 한족 문화권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 무덤입니다. 한족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검이나 관을 묻는 토광묘를 짓습니다. 결론적으로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배달 동이족인 것입니다.
또한 우하량 제2 지점에서 발굴된 원형제단과 그 옆에 나란히 위치한 무덤군은 동방 우주론의 주요 사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원형 구조를 한 제천단은 ‘하늘은 원만하다’는 천원天圓 사상을 나타낸 것이고, 방형方形으로 짜진 무덤군은 ‘땅은 방정하다’는 지방地方 사상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천원지방 구조는 배달을 계승한 단군조선 시대 초대 단군왕검이 쌓은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과 근세조선 말에 고종 황제가 세운 원구단에서도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명나라 때 지은 북경 천단공원의 환구단에서모 나타납니다. 수천 년에 걸쳐 일관되게 이어져 온 제천단의 천원지방 구조로 볼 때, 5,500년 전에 세운 우하량 제단은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인 것입니다. 원형 제단이 3단 구조를 취한 점 또한 동방 우주론의 삼수三敎문화를 보여 줍니다.
이 홍산문화는 중국 땅으로 전파되어 황하문명의 발달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베리아과학원의 고고학자 세르게이 알킨 교수도 ‘홍산문화는 중원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중원문화가 홍산문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홍산문화는 동북아 고대문화의 최고봉으로서 중국 한족 문화와는 계통이 전혀 다른, 동방 한민족의 독자적인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홍산문화의 실체는 환웅천황 열 여덟 분이 다스린 배달의 역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해 놓은『환단고기』로만 해석이 가능합니다.
홍산문화 가운데 소하서小河西문화는 중국 남방의 신석기문화보다 1천 년이 앞섭니다. 여기에서 신석기 집단거주유적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홍륭와문화 유적지에서는 7,8천 년이나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귀고리가 발굴되었는데, 이 옥결과 같은 유물들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와 전남 여수 안도리에서도 나왔습니다. 이것은 만주와 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홍산문화가 세계인을 놀라게 한 여러 특징들 가운데 하나가 정고하고 다양한 옥玉문화압니다.
옥은 변하지 않는 보석으로 영생불멸을 뜻하고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옥황상제玉皇上帝’라고 합니다. 홍산인들은 옥으로 고귀한 신분을 나타내는 장신구, 신과 소통하는 신물, 천제天祭에 쓰는 제기 등을 만들었습니다.
홍산문화에서 또 주목을 끄는 것은 사해査海문화로, 여기에서 7,600년 전에 돌로 용의 형상올 만든 석소룡 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보구 문화 지역에서는 7천 년 전에 만든 봉 형상의 토기가 나왔습니다.
랴오닝 뉴허량과 내몽골 츠펑의 유적
4대 문명보다 앞선 6000년 전 문명
‘고조선 낳게 한 문명’이라는 시각 존재
발견된 곰상과 양반다리 여신상들은
‘우리와의 관련성’ 증거일 수 있음 보여줘
훙산 유적에 대한 접근 중요성 높아져
츠펑에 올라가면 만나는 라마불교 영향을 받은 사원.
여신묘와 적석총, 제단이 발견된 랴오닝성 뉴허량 유적. 사진은 제단 모습이다
젠핑(건평)박물관의 훙산 문화 유물. 사진은 밭쥐를 형상화한 석상이다.
뉴허량 제2지점에서 발견된 여신상의 얼굴. 복원된 여신상은 반가부좌 모습을 하고 있었다.
5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발굴된 토기 인물상.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쓴 채 수행하는 모습은 한민족 고유의 특징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 제공
예로부터 용은 천자天子를 상징합니다.
그동안 중국인들은 그들이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의 주인공이자 나아가 용 문화의 원류로서 천자문화의 주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이 황하문명의 용 유물은 아무리 멀리 잡아도 5천 년 전 것입니다. 그런데 만리장성 밖, 배달 동이의 영역에서 중국 것보다 2천여 년 이상 앞선 용봉 문화의 유물들이 나온 것입니다.
옥 문화와 용봉 문화를 비롯하여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놀라운 유물이 계속 쏟아져 나오자 중국의 정치 지도자, 역사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홍산문화의 진실을 감추고 그것이 중화문명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중국은 한민족의 고대 역사를 그들의 것으로 흡수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들은 ‘홍산문화는 중국 문화로서 세계 4대 문명의 근원이 되는 진정한 인류의 창세문화, 원형문화’라고 주장합니다.유적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환도도 발견되고 있다.
홍산 문화의 분묘에서는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로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돼지, 호랑이, 새 외에도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다. 높은 공예의 수준이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다. 《저룡(猪龍)》또는 《옥저룡(玉猪龍)》으로 불리는 홍산 문화의 옥용(용을 조각한 구슬)의 조형은 단순하며, 용이 원형으로 된 것이 많지만, 후기로 가면서 반용(盤龍), 문용(紋龍) 등의 구별이 분명해진다. 고고학자 중에는 홍산 문화가 이후 중원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홍산문화에서 적석총(돌무지무덤)이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한민족(韓民族)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 가 바로 그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 강단사학계는 홍산문화에 대해 침묵하거나 ‘우리나라 문화 코드와 달라서 우리 문화의 직접적인 원형이 아니다’라며 부정하고 있습니다.
뉘우허량 유적
1983년에 랴오닝성 링위안 시에서 젠핑 현에 걸친 넓은 범위에서 발견된 《뉘우허량 유적》(牛河梁遺跡, Niuheliang)에서는 홍산 문화와 차이가 큰 제사 시설이 발견되고 있다. 5㎢의 넓은 범위에 돌을 쌓아 만들어진 분묘나 제단이 정연하게 분포하고 있다. 또 돌 마루와 채색한 벽이 있던 신전이 발견되어, 눈을 비취로 만든 여성두상 도기가 발견되어 《여신묘》라고 불리게 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지하 1m에서 제사를 지냈던 장소나 제단, 벽화, 돌무덤(석총) 등이 발견되었다.
여신묘안에는 사람 세 배 크기의 도제의 상이 줄지어 있었다. 이 상은 신상으로 추측되며, 현재 중국 문화에서는 유례없는 것이다.
뉘우허량에서 발견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존재나 또 여러 가지 토지와 교역의 증거로 인해 이 시기에 선사시대의 수장국인 왕국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여신묘에서는 채도도 발견되었다. 부근에서 60개 이상의 고분도 발굴되었고, 이것들은 돌을 짜서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조약돌을 씌워 무덤을 만들었다. 그 내부에서 구슬 등의 유물도 발견되었다. 근처의 두 곳의 언덕 위에는 돌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가까운 곳에서는 석회암을 쌓아 올려 만든 둥근 무덤이나 사각형의 무덤도 있었다. 이러한 고분 중에서는 용이나 거북이의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홍산 문화에서는 제물을 바쳤다는 지적도 있다.
양사오 문화 초기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알 수 있듯이 홍산 문화의 유적에서도 초기의 풍수의 증거로 여겨지는 것이 발견되고 있다. 뉘우허량 유적 등, 홍산 문화의 제사 유적에 볼 수 있는 원형이나 방형(사각형)은 천단의 우주관이 벌써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시사하고 있다.
출처:한민족과 증산도(상생출판, 안경전 저)
[칼럼]오늘 수능 ‘최종정답’ 발표...동아시아사 ‘홍산문화’ 문항은 한국사로
홍산문화를 물어 본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동아시아사 1번 문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당국이 학생들이 이의 신청으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검토를 마치고 오늘(29일) 최종적인 정답을 확정 발표한다.
수능 시행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오늘 오후 5시 홈페이지에 지난 17일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의 이의심사 결과와 최종 정답을 공개한다.
이번에 제기된 영역별 이의신청 건수는 영어문제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349건(52.6%)를 차지했다. 그 외에 “동아시아사” 과목이 포함돼 있는 사회탐구에는 27개 문항에 115건이 접수되었고, 한국사는 2개 문항 15건 등으로 이의신청이 이뤄졌다.
그런데 사회탐구 속에 포함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늦었지만 개선 차원에서 이의 제기를 한다면 “동아시아사” 1번 문제로 출제된 ‘홍산문화’(중국식 발음 훙산문화)에 관한 내용이다.
문제를 검토하기 전에 그 문제가 출제된 교과서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7년 교육부 검정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교과서에는 신석기문화를 설명하면서 홍산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미래엔 교과서의 경우 동아시아 각 지역의 신석기 문화에 대해 “황허강, 창장강, 랴오허강 유역, 한반도와 일본 열도 등 여러 지역에서 기원과 계통이 다른 신석기 문화가 발달하였다”고 규정하고, 관련 신석기문화의 종류로는 “양사오 문화, 다원커우 문화, 룽산문화, 훙산문화”를 각각 들고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이어 ‘홍산문화’(중국식 발음 훙산문화)에 대해 “랴오허강 유역의 훙산문화에서는 채도를 비롯한 다양한 토기와 용 모양의 옥기 등 세련된 옥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고 밝혔다.
금성출판사의 경우는 본문에서 홍산문화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주석에서 “홍산문화에서는 옥기를 포함한 다양한 제사용품이 출토되었다”고 설명하고 있고, 우하량유적지에서 나온 여신상을 대표유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신석기문화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겠다.
“만주와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에 시작하였다. 신석기인은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하였으며, 다양한 생산활동을 하며 식량을 얻었다.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사냥 채집 물고기잡이도 여전히 식량을 구하는 주요한 수단이었다”(금성출판사 2019년 검정)고 설명하면서 암사동 출토 빗살무늬토기를 대표유물로 제시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기원전 8000년경에 시작된 만주와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라는 관점이 제시되었다면, 홍산문화는 한국사의 범주로 편입되어야지 중국사(동아시아사)의 범주로 넣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는 “약 5000년전 동아시아에는 한강, 대동강, 요하(遼河) 유역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고대독립문명인 고조선문명이 실재했다”고 주장했다.
또 홍산문화애 대해 많은 저서를 낸 바 있는 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교과서에) 고조선문화권 또는 고조선 세력범위 관련지도에는 요하문명의 중심지인 요서지역이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다. 요서지역을 고조선의 문화권/지역/영역/세력범위 등으로 인정하면서, 이 지역에서 새롭게 발견된 요하문명이 우리와 상관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비파형동검 [琵琶形銅劍]등이 분포되어 있는 요서지역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고조선 영역으로 보고 있다면 홍산문화(요하문명)는 우리 상고사와 떼어놓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조선의 비파형동검 분포지를 표시한 한국사 고등학교 교과서(비상교육,2019년 검정)와 홍산문화 강역을
표시한동아시아 교과서(금성출판사, 2017년 검정, 우측)는 서로 그 영역이 일치한다.
셰파르 라는 곳은 새바르- 시비르- 새발,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벌판'이란 뜻으로 현재 시베리아를 말하며,
시베리아의 최초 지명이 새발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어나 문화 또 기타 인류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아도
그들은 파미르 고원 - 천산 산맥 - 알타이어 산맥 - 천진산맥 - 천산지역 - 시베리아로 이동했으며,
그 아래쪽 남쪽으로는 만주벌판이 있는데,우리 고조선의 창건 및 활동 무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곳 동쪽의 산은,그들이 계속 이동했다면 마침내 동쪽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 '밝의 땅',
동방의 땅끝 동녘에서 가장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太白山=白頭山)이며,만약 그들이 그곳 주변 지역에서 근거지를 삼았다 한다면 밝달나라(배달나라)를 세운 '밝달겨레'의 조상 곧 우리 민족의 조상입니다.
또한 러시아 이르쿠츠크 땅에 에벤키 족은 생김새가 한국인과 판박이로 같고 유전자 구조 역시 한국인의 70%가 일치함으로 우리와의 똑같은 "아리랑" "쓰리랑"이 있고 하여 우리와의 아주특별한 유대관계를 추정 할 수있는 민족이다 . 이들 영역 안에는 한국인을 포함하는 몽골로이드 시원(始原)인 바이칼호수안에 알혼섬 부리야트족 강강술래"의 어원 - 乾降 首알來 (건강 / 수알래) 하늘의 정기가 내리시네 / 머리 위에 '알'로 오셨네 /하늘과 땅의 정기를 받으세 / 붉은 '달'로 오셨네 <> 배달-민족 <=> 붉은 달-민족 <=> 붉달-민족 / <> 배달-겨레 <=> 붉은 달-겨레 <=> 붉달-겨레
건 乾 : 마를 건, 하늘 건, [본음] 마를 간 <漧 고자(古字)> . 하늘. 뜻이 바뀌어, 천자(天子)·군(君)·부(父)를 뜻함이 들어가 있고 우리와 예벤키 족간의 긴밀한 상관관계가 충분한 역사적 자료가 많다 에벤키족의 아리링(Aliang)은"맞이하다" 뜻을 쓰리랑(Serereng)dmd )은 느껴서 알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느껴서 알다" 의 뜻 쓰리랑은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 라는 의미도 북방 샤머니즘의 장례의식 에서 쓰였을 것으로도 추정되고있다.
또 다른 소수민족인 부리야트족은 한민족의 기원지'로 알려진 러시아 바이칼호 내 알혼섬과 그 주변 은 한국의 서낭당이나 장승 같은 무속신앙의 상징물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바이칼호에서 맞부딪친 시베리아 원주민이 한국인과 구별이 어려울 만큼 얼굴이 똑같은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리야트족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똑같은 민족 설화를 갖고 있다. 한 노총각이 바이칼호에 내려온 선녀에 반해 옷을 숨겼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해 하는 선녀를 집으로 데려와 아들 열 하나를 낳았다. 하지만 방심하는 틈에 선녀는 숨겨놓은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얘기이다
브리야트 족, 시조 게세르 신화에 아바이는 아버지라는 뜻, 고수레, 성황당
은빛 설원의 전설, 중국 네이멍구 1부- 칭기즈칸의 후예, 부랴트족
한민족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괘를 같이하는데 인류 최초의 환국(桓國, 광명의 나라라는 뜻) 3300여년, 배달국 1565년, 단군기원 4348년 총 9200 여년의 역사가 된다. 배달국은 그 강역이 북으로 바이칼호 일대, 남으로는 한반도와 서해 서안 일대(지금의 중국 해안 지역), 서쪽으로는 몽골사막, 동쪽으로는 태평양까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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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 ] 알에서 태어난 인물 : 박혁거세, 주몽, 석탈해, 김알지
양수에 담긴 채 태어난 아기…알 속에 있는 듯 놀라운 모습 양수가 터지지 않고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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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족들이 백발의 백인이었을 것이다.*나정이라는 우물 옆 숲에 눈부신 *광채가 하늘로부터 내리뻗치고 있었고. 더욱 신기한 것은 바로 그 곳에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빛이 내리는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촌장들이 다가오자 흰 말은 크게 울며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는 엄청나게 큰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리랑 - 아리랑 (亞里郞 ) - 알이랑 - "알이" 알타이 어족 - 알타이 산맥- 알타이어를 쓰는 사람 - 알지(박 혁거세)- 알영부인(閼英夫人= 閼英妃,기원전 53년 ~ 4년)을 아리영(娥利英)·아이영(娥伊英)·아영(娥英) 등이라고도 한다.
알영정(閼英井) 또는 알영 우물은박혁거세 거서간(赫居世居西干 ㅡ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의 호칭)의 왕후가 된 알영부인의 탄생지이다. 현재 오릉내에 있는 숭덕전(崇德殿)내에 있다.
아리랑은 2012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아리랑의 '랑'은 령(嶺)의 변음이며 '아리'는 '장(長)'의 뜻을 지니므로 '아리랑'은 곧 '긴 고개'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장백산의 옛 이름인 '아이민상견'(阿爾民商堅)의 '아이'는 '장(長)'의 훈(訓)이며, '민'은 백(白)의 훈차이고, '상견'은 산(山)의 반절음이니 '장(長)'의 고어가 '아리'인 것이 분명하다는 설명과 함께, 아리수(阿利水)역시 곧 장강(長江)을 뜻하는 것으로 그 시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강을 부른 이름이므로 '아리랑' 역시 지역 마다 있는 가장 큰 고개를 부르는 이름이었음을 밝힌다. 덧붙여 '쓰리랑'은 '시리 시리 시리랑'에서 온 것으로 이는 '사리 사리' 혹은 '서리 서리'의 변음이며, 지방마다 높은재를 '사실고개', '서슬고개'로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꾸불꾸불 서린 고개길'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아리랑 -아리랑 (亞里郞 )- 알이랑 - "알이" 알{卵(란)}에서 왔다는 설이다. ‘아리랑’이나 ‘아라리요’에서 어근을 찾는다면 ‘알’이다. 또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근 ‘알’은 ‘알[卵(란)]’과 의미가 상통한다고 보는 것이다. 옛날 설화에 의하면, 신라, 가야, 고구려의 시조(始祖)인 혁거세왕, 수로왕, 동명성왕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시조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알’은 한민족의 시조이기도 하고, 뿌리이기도 하며, 국가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한민족의 시조는 ‘알[卵(란)]’에서 유래했다
꿈꾸는백마강추천 0조회 323.04.10 17:04
한韓민족"韓"이라는 한자
한韓민족"韓"이라는 한자 자체가 전국7웅의 한나라를 일컬을 때만 사용되는 것을 보아서, 아무래도 韓이라는 칭호 그 자체가 준왕 또는 적어도 준왕을 자칭한 고조선계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 韓'이라는 낱말이 들어가 마한, 번한, 진한의 삼한으로 일컬어진 것을 보면, 과거 진국의 영향이 줄어들고, 韓을 내세운 고조선 망명세력이 대세로 떠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韓의 문화가 나온것인 단군조선입니다. 단군조선때에는 삼한三韓관경제라 해서 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마한,진한,번한 입니다.12000년 전후 대홍수 물이빠지자 높은 산(천산고원)으로 이어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에서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살고 있었든 동이족( 9종족)은 홍수를 피해 살면서 살아남은 동이족 (구이족 혹은 색족-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청인종)은 살기 좋은 땅을 찾아 히말라야 산맥과 이어진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과 천산산맥, 그리고 알타이 산맥을 넘으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한반도로 오기 시작하고. 중동.유럽 남미.북미.아프리카,메소포타미아 수메르 까지 진출 문명을 형성함. [스리랑카에 존재하는 1만년 한국역사 - 참조] 1만년 전까지를 마고시대 =삼신할미 시대 =환인시대. 1만년전부터 고조선 건국전까지를 환웅시대.단군이 나라를 건국하고 고조선이 탄생 이때 국가형태로 건국한것 이후 마한 진한 번한이 전세계를 지배하다, 칭기스칸도 자신은 고구려 발해인이라고 몽골비사에 나옴. 터키를 건국한 오구즈칸도 고구려인. 단군조선시대에 나온개념 한韓은 인간의 광명, 인간안에 내재해 있는 영성을 의미합니다. 단군조선시대에 나온 한韓의 개념을 다시 살려 고종황제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꿉니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뀐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단군조선의 숨결이 살아있는 국호입니다. COREE는 조선(천하)인데 나라이름이 아니라 ‘훈민정음 해례’에 있는 황제가 계신 땅이다. 즉 COREA는 황제(하나님)가 계신 韓이었다. 고려민족을 몽골어로 "구린혼" 백의민족을 "차가훈"이라 한다 그리고 고조선을 "무지개민족" 또는 "무지개나라에서 온 사람들" 이라하여 "쏠롱고스혼"이라고 한다. 고구려 상징인 삼족오(三足烏 : 태양속에 사는 발이 세개인 까마귀)를 "케레이"라 부른다 또한 케레이라는 말은 "겨례"를 의미하고 이 말은 다시 고려(高麗)로 변음된다 그런데 "케레이"라는 말의 어원은 바로 "파미르고원"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까마귀를 상징하는 "케레이" 성경에도 등장한다 [사십일이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까마귀(케레이)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 하였드라 창8 : 6-7] 삼족오(三足烏) 또는 세발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이다. 해를 상징하는 원 안에 그려지며, 종종 달에서 산다고 여겨졌던 원 안의 두꺼비에 대응된다. 삼족오는 신석기 시대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삼족오'는 3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의미는삼신일체사상(三神一體思想), 즉 천(天)·지(地)·인(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 고조선 시대의 제기로 사용된 삼족정(三足鼎)과 연관시켜 ‘세 발’이 천계의 사자(使者), 군주 천제(天帝)를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삼족오의 발은 조류의 발톱이 아니라 낙타나 말 같은 포유류의 발굽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민족의 저 옛부터 독특한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사상 문화를 뿌리깊이 내리고 이것이 배달민족 "알" 사상 이었고 이 사상의 뿌리가 곧 우리 민요 아리랑 이었음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알[精子 ( + )의 卵子( - )가 사랑으로, 授受關係로 일체(-體) 를 이룬 精卵 = 生卵 = 한알 = 하느님(神)을象徵하며 우리가 말하는 "하늘" = "하느님"이란 옛 순수한 우리의 말임 과 경천애인의 사상(思想) 이 아리랑 어근(語根)에서 파생된것임 우리민요 아리랑에서 어원을 밝힌 글 입니다 . "알"은 "알라"에서 유래 헀으며 "엘리"와 같은 동의어 이며 가장 높은 문 "옐욘" 이는 곧 하나님 "엘"이며 히브리어 엘라,엘욘,알 등은 모두 ~ 위에 "지극히 높은자"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다" 라는 의미로 알라에서 유래된 말이다. 특히 "아리랑"은 히브리어 "올라"라는 소리이고 우리말의 "올라"라는 의미로 단어로 힘든 준령高山峻嶺 (높은 산과 험한 고개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을 오르는것을 뜻하는 아리랑의 "알"사랑 진짜 알맹이 참사랑 이다. 이 알맹이 사랑을 "알[[精子 ( + )의 卵子( - )가 사랑으로,授受關係로 일체(-體) 를 이룬精卵 = 알 = 天神을 象徵]]"것이라 하였고 이 "알"을 "알이"라 하였고 "알이"가 곧 "아리"다. 알알이가 곧 아라리이며 이 아라리를 찬미 찬송것이 곧 아리랑이다 |
예벤키 족
부리야트족
지금의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는 백발의 머리칼과 피부가 흰 사람들이 현재도 살고 있는데. 이곳 타림분지가 백인들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백인들은 제사장급 계급을 가진 동이족의 지배계급이었으며 흰옷을 입었다.
그래서 핀란드쪽에 살고 있는 백발의 백인들이 우리와 유전자가 유사하다고 하며 말의 어순도 우리와 같다.
신라와 경주의 옛이름인 “서라벌”과 “서벌” 역시 “새 땅”이라는 말의 원 발음인 ᄉᆡᄇᆞᆯ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라는 이름 역시 ᄉᆡᄇᆞᆯ>셔ᄫᆞᆯ, 즉 “새벌”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라왕족들이 백발의 백인이었을 것이다.*나정이라는 우물 옆 숲에 눈부신 *광채가 하늘로부터 내리뻗치고 있었고. 더욱 신기한 것은 바로 그 곳에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빛이 내리는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촌장들이 다가오자 흰 말은 크게 울며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는 엄청나게 큰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때였어요. ‘쩍’ 하고 알이 저절로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튼튼하게 생긴 사내아이 하나가 모습으로 탄생. 박처럼 생긴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아이에게 성을 ‘박’으로 붙여 주고, 이름은 나라를 밝게 비춰 준다는 뜻으로 ‘혁거세’라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박혁거세의 건국(기원전 57년) 이후 신라는 박·석·김씨 등 이른바 3성(姓)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건국 시조인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석탈해·김알지 등이 3성의 시조로 숭앙되었다. 이들 3성의 시조는 출생 과정의 신비로움으로 인하여 그 내용이 시조신화로 전하고 있다.
박혁거세의 등장을 알린 말은 고대 사회에서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또 부여나 고구려의 시조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에서 비추는 빛 또한 임신과 출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박혁거세 신화는 하늘의 자손이 강림하는 천손강림형 요소와 함께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난생신화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후손인 6촌장들이 박혁거세를 국왕으로 옹립한 것이다.
박혁거세 부인 알영부인(閼英夫人, 기원전 53년 ~ 4년)을 아리영(娥利英)·아이영(娥伊英)·아영(娥英) 등이라고도 한다. 알영정(閼英井)가에 용(또는 鷄龍)이 나타나 옆구리에서 여아를 탄생시켰다. 이때 여아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는데, 월성북천(北川)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빠졌다.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서 여아의 이름을 알영이라고 하였다.
설화는 알지(閼智)와 연결되어 닭토템을 가진 토착세력인 김씨부족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한편, 알영설화는 용토템에 가까우며 김씨세력과는 연결될 수 없고, 혁거세와 같은 시기에 이주한 집단으로 보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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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 ] 알에서 태어난 인물 : 박혁거세, 주몽, 석탈해, 김알지
양수에 담긴 채 태어난 아기…알 속에 있는 듯 놀라운 모습 양수가 터지지 않고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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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ㅡ 아리랑(亞里郞 )- 알이랑 - "알이" 알타이 어족 - 알타이 산맥- 알타이어를 쓰는 사람 - 알지(박 혁거세)
- 알영부인(閼英夫人= 閼英妃,기원전 53년 ~ 4년)을 아리영(娥利英)·아이영(娥伊英)·아영(娥英)등이라고도 한다.
알영정(閼英井) 또는 알영 우물은박혁거세 거서간(赫居世居西干 ㅡ 거서간은 진한 말로 ‘왕’이라는 뜻의 호칭)의 왕후가 된 알영부인의 탄생지이다. 현재 오릉내에 있는 숭덕전(崇德殿)내에 있다.
경주 나정
경주 황성공원에 건립된 박혁거세 동상
중국 황제의 딸 사소(娑蘇)가 처음 진한에 왔을 때 성스러운 아들 박혁거세를 낳아
뛰어난 철기문화로 육부촌 규합해 나라 건립 동국의 첫 임금이 되게 했다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서술산성모(西述聖母)는 한국 신화에서 선도산의 성모로, 《삼국유사》에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생모로 전해져 내려온다. 다른 이름으로 선도산성모(仙桃山聖母) 또는 사소부인(娑蘇夫人) 등으로도 불린다. 서술(西述)은 이름인 사소(娑蘇)의 다른 표기이다.
백인들은 주로 유럽쪽으로 이동했다. 남쪽으로 내려간 구이족들은 인더스 문명을 세우고. 서쪽으로 이동한 구이족들은 수메르문명을 세웠다.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도시 우르크 사람이다. 아버지 테라는 수메르 왕가의 후예 출신이었다.
아브라함은 시나이반도에 군사를 집결시키라는 야훼 신의 명령에 따라 아버지 테라와 가족들을 데리고 하란을 거쳐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땅인 가나안에 정착해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다.
구약성서는 수메르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동이족이란 말은 파미르고원에서 볼 때 동쪽으로 이동한 민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동이족은 알타이산맥과 바이칼 호수 방향으로 이동해 광대한 초원을 무대로 이동하며 살아온 북방 유목민족이었다.스키타이족이라고도 한다.
1457년(세조 3) 세조가 팔도관찰사에 수압령을 내렸던 책들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한 바 있는 『삼성기』는 한국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삼성은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가리킨다.
환인은 우리말 하느님을 한문으로 음차한 것이고, 따라서 환이란 하늘의 준말인 한이다.
桓의 독음이 호관절(胡官切)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반절법'이라 하여 '호'의 초성 'ㅎ'과 '관'의 중, 종성 'ㅘㄴ'을 결합하여 '환'이라는 음이 된다. 桓은 그냥 '환'이다. 환단고기이고 환국이고 환인이고 환웅이다.
▶ 환桓·단檀·한韓이 환단고기의 철학 - ‘환桓’은 하늘의 광명, ‘단檀’은 땅의 광명, 한은 인간의 광명 환국桓國은 환한나라. 배달국은 밝은 나라라는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배달의 배는 '밝다'라는 뜻이고 달은 응달,양달이라 할 때처럼 '땅'이라는 뜻이다. 밝은 땅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모두 광명을 뜻한다. '환'은 두글자로 하면 '광명'이다. 우리 민족은 광명을 숭상했다
태백일사에 수록된 신시본기편을 보면 환단은 '한단'이 아니라 '환단'임이 명백하게 나온다.
自天光明(자천광명)을 謂之桓也(위지환야)오 自地光明(자지광명)을 謂之檀也(위지단야)니
[환단고기 태백일사] 태백일사에서는 하늘 광명을 환(桓)이라고 한다. 땅의 광명을 단(檀)이라고 한다. 하늘 아버지의 광명인
환(桓)을 받아서 그 뜻을 이뤄나가는 어머니 지구(mother earth)의 광명을 단(檀)이라 한다. 그래서 ‘환단’은 ‘천지광명'이고 천지는 다른 말로 우주이므로 '우주광명’이라 한다..
『환단고기』란 ‘천지광명을 체험하고 살던 한민족과 인류 조상들의 창세시대 역사문화 이야기’다 그래서 『환단고기』다.
그럼 한(韓)은? 역사의 주체인 인간의 마음과 영혼 속에 있는 천지광명, 우주광명을 한韓이라 한다. 한(韓)은 천지광명 즉 환단의 꿈과 이상을 성취하는 역사의 주인공이다. 하늘광명, 땅광명, 인간광명, 이것이 환·단·한이다.
환단고기는 삼신일체지도三神一體之道와 삼일三一정신을 문화와 생활에 구현하고 있다. 천부경의 삼극과 천일,지일,태일 사상 천지인 삼재사상 모두 삼신사상이다. 삼신을 천일신天一神, 지일신地一神, 태일신太一神이라 하여 하늘, 땅, 인간을 삼신의 현현체顯現體로 인식하였다. 환단고기는 삼신관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우주관, 신관, 조직관, 인성관이 융합되어 있다. 천일天一이 환桓이고 지일地一이 단檀이고 태일太一이 한韓이다. 그래서 태일(太一)이 대한(大韓)이다.
『단군세기』는 고려 말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이암(李嵒)이 1363년 관직에서 은퇴하여 저술했다고 한다. 이 책도 계연수가 백관묵으로부터 얻었다고 하는데, 47대 1,096년에 걸친 단군조선의 편년사가 펼쳐져 있다. 아울러 여기에는 그 역대 왕명과 재위기간, 치적 등도 서술되어 있다.
『북부여기』는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이 저술한 것으로 본다. 『단군세기 합편』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삭주의 이형식의 집에서 얻었다고 한다. 『단군세기 합편』 가운데 『단군세기』는 백관묵의 소장본과 글자 한 자의 차이도 없이 일치했다고 한다.
『태백일사』는 『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인 이맥(李陌)이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계연수의 스승인 이기가 소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주의 생성을 주로 다룬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인이 다스렸다는 환국의 역사를 적은 「환국본기(桓國本紀)」, 환웅의 치세를 서술한 「신시본기(神市本紀)」, 단군왕검이 나누었다는 진한(진조선)·마한(막조선)·번한(번조선) 중 마한과 번한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攷)』 등 단군신화와 관련된 경전교리에 관한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고구려·발해·고려의 역사 가운데 민족의 자존을 드날린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고구려본기」·「대진국본기」·「고려국본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4천 년경 북극성이 용자리에 있을 때. 한웅이 아버지 한인의 뜻에 따라 현 몽골지역 음산산맥인 백두산 혹은 장백산 아래에 한국(환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지구를 12개의 연방국가로 나누어 다스렸다. 한웅이 장자이기 때문이다. 18명의 한웅이 한국(환국)을 다스렸다.
☞ 『표제음주동국사략』에서 단군은 성이 환씨, 이름은 왕검이었다고 밝혔다.
☞환씨는 무릇 47세로 역년이 1212년 이라. (대동사강 단씨조선기)
☞ 桓儉卽檀君也. 환검은 곧 단군을 말한다. (조선세가보(朝鮮世家譜) 환씨단군조선(桓氏檀君朝鮮)
☞상원 갑자 10월 3일 환검(桓儉)이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가지고 태백산에 단목 밑에 내려오시
기원전 4천 년경은 현 내몽골 지역에서 흑피옥과 같이 발굴되는 홍산문명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지만 홍산문명은 대홍수 이전부터 시작된 문명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B.C 2.000년 경에 그의 아들 단군왕검이 그 자리를 물려받아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지었다. 47명의 단군이 있었다.
12연방국가 자체가 조선이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 등에는 조선을 쥬신, 탱그리 등 많은 이름으로 남아있다
고조선을 마한 변한 진한 등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처럼. 마한이 후에 고구려가 되고 변한이 백제가 되고 진한이 신라가 되었다.
지금의 한반도를 상상하지 말라!.
주변의 선비족 여진족 흉노족 몽고 돌궐 등 수 많은 민족들은 고조선으로부터 분화한 같은 민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웅이 백두산 아래 한국을 세운이래 동이족은 지금의 중앙아시아 부근과 현 중국대륙 전 지역에 걸쳐 대대로
살아왔다.
베트남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다.주변의 선비족 여진족 흉노족 몽고 돌궐 등 수 많은 민족들은 고조선으로부터 분화한 같은 민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웅이 백두산 아래 한국을 세운이래 동이족은 지금의 중앙아시아 부근과 현 중국대륙 전 지역에 걸쳐 대대로
살아왔다.
베트남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다. 고인돌이 세워져 있는 땅은 모두 환국 혹은 고조선의 지배 영역이자 문명이
전파된 곳이다.
고인돌은 아프리카에도 있다. 동이족은 정신문화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아리랑 (亞里郞 )- 알이랑 - "알이" 란 크거나 신성한 것을 가르키는 말(몽골말로 깨끗하다,성스럽다는 뜻)
3~5만 년간 지속된 빙하기 동안에는 지금보다 해수면이 120m 정도 낮았다. 빙하기에는 적도 부근이 지구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태평양 한 가운데 존재했었다는 뮤대륙이 대홍수 이전의 문명이다. 동이족은 북방유목민족과 뮤대륙에서 건너온 원주민의 피가 섰여있다고 한다.
뮤대륙은 정신문명이 발달한 대륙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의 어머니의 작고 둥그런 몸이 뮤대륙의 유전자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아틀란티스와 뮤대륙은 대홍수 때 지각변동으로 침몰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기원전 11.000년 쯤 3.600년의 공전주기를 가지고 있던 니비루 행성은 화성 근처의 소행성대를 지나고 있었다. 니비루 행성이 화성 가까이 지나가면서 인력의 변화로 지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남극의 빙산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떨어져 지각변동과 강력한 해일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지구에는 노아와 몇 명의 인간들만 남기고 모든 생명체들이 사라졌다 니비루 행성이 B.C 11.000년 경에는 대홍수를 일으켰고 B.C 7.400년경 태양계에 진입했을 때는 청동기 문화가, B.C 3.800년경 태양계에 진입했을 때는 철기 문화와 수메르문명이 시작됐다.
B.C 556년경에 금성 근처를 지날 때는 그동안 지구를 지배하고 있던 신들도 이 시기 모두 떠났다.
다음 태양계 진입 시기는 A.D 3.000년경이다. 앞으로 1.000년이 남았다. 화성이 파괴된 원인이 B.C 11.000년 경에 니비루 행성이 화성 가까이 지나가면서 생긴 건 아닐까. 금성 역시 대기가 손상된 원인이 B.C 556년 경에
니비루 행성이 금성 가까이 지나가면서 생긴건 아닐까.성경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는 B.C 2.304년 경에 일어났다. 수천년을 뛰어넘어 다시 부활한 청동거울과 비파형동검 / 인도에서 볼수있는 자치기,윷놀이/바이칼호
소수민족의 선녀와 나뭇꾼 전설,아리랑뜻까지
<만주원류고>보다 500 여 년 전에 간행된 <삼국유사>의 조선 건국 조선의 서울은 서경과 동경 두 곳에 있었다.
서경은 현 중국 산시성의 서안이라는 곳에 위치한 장안이었고 동경은 허난성에 위치한 낙양이었다. 조선시대 한성인 장안은 주나라 때 무왕이 도읍한 곳이기도 하며.고려시대에는 서경이었으며, 고구려의 평양이었고. 근세에 와서 한양과 경성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서경과 동경 두 지역이 조선시대 경기도 땅이였으며.황제가 머무는 땅인 중국이 경기도다. 예기라는 책에 의하면 조선은 1.770개의 크고 작은 나라(고을)가 모여 있다라고 쓰여있다 .
백두산(장백산, 불함산)은 지금의 몽골고원의 남쪽 변두리를 병풍처럼 길게 두르고 있는 현재 이름의 음산산맥이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이 여진족들을 막기 위해 음산산맥(백두산) 아래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청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건국된 나라다.
설화 ,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한민족에게도 있으며 또 현재 바이칼 주변의 소수 종족들도 이야기 바이칼 부근의 종족을 한민족의 기원카무이[Kamui]는 곰을 뜻하는 고대 우리말입니다. 환단고기의 웅족의 구멍 (穴)과 삼국유사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의 굴로 연관 지을 수 있겠네요.굴(穴)은 작게는 주거지 마을이나 크게는 특정 지역을 의미神이라고도 해석하는 것으로보아 원시 종교의 한 형태인 곰토템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네요. 또한 특이하게 이방인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고 합니다.잘 아시다시피 단군신화에 따르면 고조선은 곰의 후예 국가이지요.여하튼 고대 우리말로 곰, 즉 카무이는 신성한 것(쿠마,코무=곰)으로 여겨진 것은 분명합니다.이런 문화는 야무르, 캄챠카, 시베리아 지역의 곰 숭배 풍속을 기록에 남기게 되고, 다시 조지 프레이져경이 이 기록들을 그의 명저’ 황금가지’에서 언급합니다. 몽골 북부,중국 동북부의 옛 부족인 예벤키족 (퉁구스족의 옛이름,예맥족)의 후손이 지금도 아무르강,사할린 시베리아 동부에 살고 있는 길랴크족입니다. 사할링은 물론 일본 북쪽지방에도 전해져에도 전해져 쿠마시네-신에게 바치는 벼,쿠마시로-신에게 바치는 경작지,쿠마나비-신이 깃든 사물,쿠마노-신성한 나라,쿠마-곰으로 오늘날 일본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일본 북부 훗카이도의 아이누 신화에도 곰에게서 후손이 태어났다고 하니 神을 의미하는 카미의 어원은 한국어 ‘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도 일본어에서 귀에 익은 말인 ‘카미’로,카미가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은 우리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우연히 는 유튜브를 보았는데 영어에 많은 한자가 있었다.
무려 한자 278자를 찾았다고 했다. 한자는 동이족이 만들었지만 한자의 발음은 민족마다 다 달라 서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서울인 중국 말과 같도록 훈민정을을 창제하신 것이다.
즉 훈민정음은 한자를 읽는 발음 기호인 것이다.한자 영어단어 278개가 영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뭔가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어의 어근을 정리해 놓은 책 을 구입해 어근에도 우리말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았다.
영어단어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약 6십만 단어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단어 중에 우리말이 얼마나 어떻게 존재하는지 살펴봤더니 어근이 333개였다.단어 하나하나로 알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중 우리말 해석이 가능한 어근이 295개였다. 접미어 38개를 제외하면, 영어는 거의 다 우리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말이 알파벳으로 쓰여져 있는 것이다. 깜짝 놀랄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영국과 우리 민족은 무슨 관계였을까.
“영국은 우리 민족에 지배를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는
B.C 2.304년 경에 일어난 전 인류의 사건으로 성경 내용중 엔린과 경쟁 관계에 있던 이복동생 엔키가 노아에게 가라 않는 잠수함과 같은 배
마구르구르 (MA,GUR,GUR 이리저리 막 구를 수 있는 배)를 만들도록 지시하며 다가올 재앙을 귀뜸해 줬다.는 내용중 "마구르구르 (MA,GUR,GUR 이리저리 막 구를 수 있는 배)" "마구르구르 "= "막 구를 " 같이 우리말이 알파벳으로 쓰여져 있다
노아는 배를 만들던 노동자들과 자신의 가족과 동물들까지 모두 "마구르구르 "배에 태워 대홍수에서 살아 남았으며, 구약성서에서는 신들은 노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 과 인간이 생육하고 번식하도록 축복했다고 전해진다.
시베리아의 어원은 우리 말 시비리를 영어식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우리 말 울타리의 어원도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입니다. 곧 시베리아는 고대 우리 민족의 강역이었습니다..배달국 약1500년간,단군조선 약 2000년간, 북부여/ 고구려/백제/신라 약 900년간, 대진국+발해 약300년간,후신라,고려 약800년간 총 약 5500년간 한민족은 중국대륙이 주무대였습니다.
6000년 역사중 5,5/6는 중국대륙에서 0,5/6는 약 500년(조선) 한반도에서 살았다고 보면 됩니다.그러므로 우리민족은 중국대륙에서 산 기간이 더~~ 오래됐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출처] [아리랑 민족의 비밀 6] 서울로 간 욕단|작성자 위너스보트
이천년 전 한나라 때 역사서인 <한서> “서역전”에 “총령”이 나오는데, 7세기 초 당나라 때 사람인 안사고(顔師古)가 이를 설명하여 주석을 붙이기를,
(옛날 역사책인) <서하 구사>에서 이르길, “총령은 그 산이 높고 큰데, 산 위에 온통 파가 자라고 있어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했다.
師古曰, “<西河 舊事> 云, 葱嶺 其山 高大, 上悉 生葱, 故 以名焉.”
고 되어있습니다. 이 기록은 “총령,” 즉 “파미르”라는 이름이 “파가 많이 나는 산마루”란 뜻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파미르 고원을 처음 넘은 사람들이 “파마루”라는 한국말로 고원의 이름을 지은 것이 “파미르”라는 현지어 발음과 “총령”이라는 중국어 이름의 뜻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파미르 고원과 천산 산맥, 그리고 알타이 산맥을 넘으면 나오는 “시비리(ㅅㅂㄹ),” 즉 현재의 시베리아라고 말합니다 “시비리”라고 하는 말은 ᄉᆡᄇᆞᆯ, 즉 새벌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 한국어에서 ᄉᆡᄇᆞᆯ (새 벌)은 “새 땅”을 뜻하는 말입니다.
신라와 경주의 옛이름인 “서라벌”과 “서벌” 역시 “새 땅”이라는 말의 원 발음인 ᄉᆡᄇᆞᆯ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라는 이름 역시 ᄉᆡᄇᆞᆯ>셔ᄫᆞᆯ, 즉 “새벌”에서 나온 것입니다.
새벌에서 시비리, 시베리아, 세파르, 서라벌, 서벌, 서울이 나왔고, 이 모두가 새 땅이라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세파르”와 “시비리”는 같은 말이고, 이것은 욕단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발견한 “새 땅”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새 땅, 즉 시비리에 이르자 광활한 평야가 펼쳐지고 동방 산지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르 하 케뎀,” 즉 “그 동방 산지”는 과연 어디일까요?
동시에, 성경 전체에서 “하르 하 케뎀 (그 동방 산지)” 그리고 “하 케뎀 (그 동방)”이라는 표현은 단 한번, 욕단과 그 후손의 거주지를 지칭할 때만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얼핏 막연해 보여서 아무데나 쓸 수 있을 것같은 “그 동방” 또는 “그 동방 산지”라는 표현을 하나님께서 욕단의 거주지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특별히 구별해 놓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산지인 백두대간이 바로 그 동방 산지라고 말합니다. 하케뎀에서 케뎀은 “시작” 또는 “맨 앞쪽”과 “동쪽”이라는 뜻이 동시에 있는데, 이것을 지리적으로 적용하면 곧 “동쪽이 시작되는 맨 앞쪽,” 즉 “동쪽 끝”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은 한반도이고, 한반도는 70%가 산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욕단과 그 열세 아들들은 한반도를 포함한 드넓은 새 땅을 그들의 거주지로 삼아 한민족이 정말 처음부터 선택받은 아리랑민족 한민족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아리랑민족의 정체성이 회복,활성화 되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유럽을 휩쓴 우리 민족의 발자취
약 3000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 거주하던 우리 민족이 역사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기원후 370년(흑해정착)~435(아틸라 사후 멸망)까지 고대 로마의 쇠퇴기 당시 고대 로마의 몰락에 직,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정체불명의 유목민들로 등장한다. 유럽대륙을 정복한 정체불명에 무리, 훈족으로 등장하는 무리 들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370년경 흑해 북안의 동고트족을 무찔러 그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고, 이어서 다뉴브강 하류의 서고트족에 육박했다.
서고트족의 일부는 훈족의 압박을 피하여 동로마에 이주하였다.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은 현재의 독일 북부 폴란드 덴마크까지 점령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금의 덴마크에 3부족[유트족(Jutes), 앵글족(Angles), 색슨족(Saxon) ]이 살고 있었다.
영국 민족은 지금의 덴마크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영국 민족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에 영국은 로마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예벤키족
동(東)으로 울릉도-동해,
서북(西北)으로 천산, 바이칼호,
서(西)로 중원의 중심지 장안, 서안, 함양,
남(南)으로 대마도-유구, 지나 남동연안-해남도,
북(北)으로 이무르, 연해주, 사하린, 캄차가반도, 축지반도,
캄차카(깜짝가), 알류산열도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
이 모두는 <고조선>의 피와 뼈가 뭍힌 땅이다.
조회수 7,301회 2023. 3. 2. #천공스승 #역사문화질문: 스승님 감사합니다. 경산지역에서 생활공부중인 홍익인간입니다. 오늘 여쭙고 가르침을 받고자하는 내용은 아리랑에 관한 내용입니다. 각 지역에는 대표적 아리랑 노래가 있습니다. 지역마다 아리랑 유래의 소재는 다양하게 전해 내려옵니다. 그중 경상도의 대표 아리랑은 아랑이야기를 소재로 한 밀양아리랑이 있습니다. 아리랑의 '아리'는 사전적으로 밝음 / 광명 / 깨달음이란 뜻이 있는 걸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아리랑은 고된 삶의 한이 담긴 주제가 또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리랑을 부르면 울컥하고 눈물이 나고 답답하던 가슴이 열리는 듯합니다. 밀양은 아리랑을 주제로 문화 축제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아리랑을 가치있게 재조명하여 아리랑에 대한 말씀을 듣고저 합니다. 그리고 아리랑과 무속적 연결성에서 저희가 모르는 내용들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아리랑은
2012년 12월, 대한민국의 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14년에는
북한의 인류무형문화유
산으로 등재되었다.
지역별로
각각 다른 아리랑이 전해져 온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한반도와 해외 한민족 사회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노래이며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발생된 아리랑은
강원도
정선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어
1억 한민족의 민요가 되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阿里娘打令(아리랑타령)이 있으며, 한자 표기는 원래
어원이 아닌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한 음차 표기이다.
아리랑이
역사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이므로
근대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의
기원설을 비롯하여, 메리 테일러·님 웨일즈·고권삼 등에
의해 추가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여말∼선초에
재구된 정치적 성향의 노래로 인식
되기도 한다.
[출처] 아리랑의 숨은 뜻"|작성자 화풍
아리랑의 숨은 뜻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10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10자)
*나를 저리고 가시는 임은(10자)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10자)
*아리랑-
아리 라는 말은
크거나 신성한 것을 가르키는 말(몽골말로 깨끗하다,성스럽다는 뜻)
고대 하천을 이르는 말이며 "한"과도 같은 뜻이다.
(한강의 원래 이름은 아리수 였다)
"알리"는 크다의
한'은
한국,한민족,한반도,한글,한복 등 한국과
한국민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 한(韓)은 환(桓)에서 왔다.
한'이라는 말은 우리 문명의 출발인 환국에서부터 우리의
운명을 같이 해 온 9천년이상 된 단어 이다.
한'이
가지고 있는 뜻은 ...하늘,밝음,빛,하나,
크다,등등이다.
이중에서도
한'은 하늘의 준말이며 하늘의 가장
본래의 뜻이다.
실제로 한민족의
9천년 역사는 하느님을 찾아 나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이동의 역사였다.
한편.
랑(郞)은
환웅천왕께서 동방문명 개척을 위해
태백산으로 오실때
거느리고 오신
재새핵랑군(齋世核朗軍)을 의미하거나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을 의미한다고 해석할수가 있다.
랑'은
우리민족 고유의 풍류도인 낭가'사상을
이어받은 일꾼을 뜻한다.
*아리랑을
한문으로 쓰면 亞里郞이니 "하느님의 마을에
있는 군대가"가 된다.
격암유록에서는
'아리'를 다른말로 십승촌(十勝村) 또는
궁을촌(弓乙村)으로 표현했다.
극이 없는
십(十)의 세계를 불교에서는 용화세계,기독교에서는 천국,
동양에서는 무극이라는 용어로 불러왔다.
*아라리요-
아라리요를
한글로 봤을때는 하느님의 군대를 알라는
뜻으로 볼수있고
아라리요를
한문으로 볼때는 하느님의 자리가 육임군(핵랑군)에 의해
전 세계에 펼쳐질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다.
*아리랑 고개-
한문으로 아리령(嶺)으로 푼다.
이별의 고개,
설음의 고게로 인식되어 온 이 아리랑고개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사실 지도상에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 아리랑 고개를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옛부터 그렇게 고대하던 후천 10천세계(이상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넘어야만하는 고개(위험한 고개)를 의미한다.
*나-
여기서
나'는 아리랑의 문맥으로 살펴볼때 "상제님""하느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수있다.
*십리-
후천 10무극 세계를 의미한다.
*발병(發病)난다-
10무극 상제님을
모르고 상제님을 버리는 사람은 후천세상을 못가고 약이 없는
괴질병(병겁)에 걸려 죽는다는 이야기다.
이 구절이 널리 애창되어
온 것은 우리 선조들이 후천 대 개벽기에 대비하여 오늘날의
후손들을 깨우쳐주기 위한 깊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리랑을 다시 해석하면...
하느님의
마을에 있는 군대인 핵랑군을 알라.
그래야
후천 10천 세계로 무사히 넘어갈수 있따.
상제님을
버리고 가는 사람은 후천세계로 못
넘어가고 병겁으로 죽는다.
모셔온 글
[출처] 아리랑 쓰리랑 뜻 연구, 조용호 박사|작성자 조용호 박사
아리랑 쓰 리랑
啊女郞 是 女郞
Arirang is a holy lady
밀양 아리랑에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과 진도 아리랑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이 있다. 이렇게 변형된 후렴구는 무슨 뜻을 갖고 있을까?
중세국어와 중세한어를 혼합하여 구성하는 진화된 향찰의 시문법 규칙에 따라, 두 번째 음절의 리을 음소를 니은 음소로 바꾸고, 세 음절인 경우는 '니'를 '뉘'로 바꿔주면, '아리랑은 아가씨!' 라는 뜻이 된다.
[암호문장]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음절변형] 아니 아니랑 쓰니 쓰니랑
[일반문장] 아니 아뉘랑 쓰니 쓰뉘랑
[한문표기] 啊你 啊女郞 是你 是女郞
[국문의미] 그대! 아리랑! 그래, 그대! 아가씨!
이것을 줄인 형태는 무슨 뜻을 갖고 있을까? 민요에 아리랑 쓰리랑이라는 후렴구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음절의 리을(ㄹ)을 니은(ㄴ)으로 바꾸고, 다시 니를 뉘로 바꿔주면, 아리랑은 아가씨라는 뜻이 된다.
[암호문장] 아리랑 쓰리랑
[음절변형] 아니랑 쓰니랑
[일반문장] 아뉘랑 쓰뉘랑
[한문표기] 啊女郞 是女郞
[국문의미] 아리랑은 아가씨!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이나 아리랑 쓰리랑은 아리랑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이고, 이를 통해 노랫말에서도 아리랑은 아가씨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뜻을 아가씨라는 의미로 바꾼 사람들은 이러한 열쇠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아리랑이 한문 구조를 이용하여 만들어졌고, 아리랑을 아뉘랑이라는 뜻으로 정의하였으므로, 아리랑은 아뉘랑이다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아리랑은 아뉘랑이다
이 문장을 한문으로 만들면, 아리랑 쓰 아뉘랑이 된다. 한문에서 '……은 ……이다' 를 뜻하는 동사는 쓰(是)이며, 우리말로는 '시'라고 읽는다.
아리랑 쓰 아뉘랑
啊女郞 是 啊女郞
그렇지만 이 한문은 내용이 너무 평범해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한 문장이라고 할 수 없다. 누구나 이해할 평범한 문장은 의미가 없다.
평범한 문장을 특정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특수한 문장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문장 일부를 조작하면 가능하다. 쓰 아뉘랑을 쓰아 뉘랑으로, 다시 쓰 뉘랑으로 만들면 된다.
아리랑 쓰 아뉘랑
아리랑 쓰아 뉘랑
아리랑 쓰 뉘랑
이렇게 가능한 이유는 쓰아(是啊)는 그래요, 맞아요!라는 뜻이지만, 이와 같은 문장에서는 '……은 ……이다' 라는 의미도 동시에 갖게 되어 쓰(是)와 같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번째 음절 뉘를 리로 바꾸면, 아리랑 쓰리랑이 되고, 아리랑은 아가씨!라는 뜻이 된다.
아리랑 쓰 리랑
아리랑 스 리랑
아리랑 시 리랑
啊女郞 是 女郞
아리랑은 아가씨이다
"알리"는 크다의 "한"과도 같은 뜻
한가위(한은 ‘크다’, 가위는 ‘가운데’)
[출처] 아리랑의 어원(뜻) 오월1일|작성자 이신홍
아 : 아닙니다, 아서라, 거절하다
리 : 가다, 떠나다,
랑 : 소리, 말하다, 사브랑, 랑께
해설
떠나가는 게 아닙니다 말이요, 떠나지 마 랑께, 가지 마오
阿 : 언덕아, 阿修羅, 阿斯達,
離 : 떠날 리, 離婚
朗 : 밝을랑, 朗誦, 朗讀
해설
떠나는 것을 언덕이 가로막는 낭랑한 소리로 즉 가지 마오
Arirang = Alilang
A : 접두사 부정 no, not, without
li : leave
lang : language(언어, 말하다, 랑께(라니까)
해설
떠나지 말란 말이요, 떠나지 말라니까
유사 단어 ; alibi(장소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말이나 한자 영어에서 한 가지로 떠나가지 말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리랑은 언어의 로제 스타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간은 맞나면 해여 지는 것이 상사이여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 간이별, 친구, 수많은 이별 중에 죽음으로 이별이 제일 슬프지 않을 가한다.
아리랑은 장송곡 이별곡 농요 승리의 곡 남북 간의 국가로 불러지고 가게의 상호 책의 제목 방송국의 회사명
등으로 사용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나를 두고 가지 마오)
쓰리랑 쓰리랑 쓰라리요 (가야해 가야해 나는 가야해요)
阿離朗 阿離朗 阿我離要
是離朗 是離朗 是我離要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환콘26,27회 몰아보기] 환단고기 북콘서트 연세대편-신지비사에 숨겨진 단군조선 삼한의 비밀
최근 영국에서 동이족 연구진행되자 난리난 중국 현재상황
“언젠가는 당신들이 올 줄 알았다.” 중국학자 폭탄선언에 난리난이유
호선무 (고구려의 전통 춤사위와 춤세임)
고려기(高麗伎) 절목 중에는 “호선무(胡旋舞)가 있어, 춤추는 이는 공위(球上)에 서서 바람처럼 돌았다
(旋轉如風)”고 한다. 남북조(南北朝, 386~586년) 시대 남조의 송(宋, 420~479년) 나라 시기에서
아제로바이젠 북부 다게스탄지역과 한국 / 인도 / 코카스지역 / 우크라이나 / 위그루족 / 만주족 /러시아 /
페르시아 / 비잔틱제국 / 아랍등 민속 춤에서 우리 고전무용 호선무(팽이춤 )는 춤으로본 조상님들의
광활한 활동 영역으로 드러나는 광개토대왕 영토확장의 한민족의 역사 이다.
춤으로 본 조상님들의 활동 영역으로 드러나는 한민족의 고유역사
훈족이 지배했던 아제로바이젠 북부 다게스탄지역과 한국 / 인도 / 코카스지역 / 우크라이나 / 위그루족 / 만주족 /
러시아 /페르시아 / 비잔틱제국 / 아랍등 민속 춤에서는 우리 고전무용 호선무(팽이춤 )와 칼춤 ,강강술래,
농악의 회전돌기 ,살판(땅재주) ,남사당 ( 땅재주, 줄타기) 장고춤등과 여러모습에서 매우흡사한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으며 특히 기본 동작 중 양발 다리를 교차로 꼬는 춤사위는 한국고전 무용의
핵심 보법으로 고구려 벽화와 돌 조각에 세계적 유물로 남겨져 있다.
ㅡ 마도로스 리 ㅡ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에서 연행된 춤. | 개설 고구려(高句麗)나 강국(康國: 현재의 사마르칸트) 등에서 전래된 당나라 궁정 연회 춤의 하나. 연원 및 변천 고구려나 백제의 호선무는 남북조시대에 중국에 전해졌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중원을 통일시킨 ...
고대 지나(支那)에서의 한류(韓流)
지난 90년대 말을 기점으로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를 강타한 ‘한류(韓流)’가 20년이 지난 이제는 ‘전지구적 한류(Global Korean waves)’로 바뀌었다.
약 19년 전인 2001년 중공은 이른 바 “동북역사공정”으로 삼조선, 고구려 역사가 이른 바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여 약 7년간 양국이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논쟁이 지속된 바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점에서 이른 바 고대 ‘중국(中國)’으로 전달된 역사적 ‘한류(韓流)’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한 번 돌아보자.
바로 춤과 노래와 같은 것에 관한 이야기다. 음악이든 춤이든, 국가 간 예술의 교류는 두 나라 사이에 국교가 수립된 이후 비로소 시작되며, 특히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교류가 활발하게 된다. 예컨대 《수서(隋書)》 “음악하(音樂下)”를 보면 지나 대륙에서 “고려(高麗) 음악은 후위(後魏, 386~534년)가 자국과 고구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나라로, 고구려 출신인 고운(高雲, ? ~ 409년, 북연의 초대 황제)이 수립한 북연(北燕)의 풍씨(馮氏)를 없앤 뒤 (436년) 그 고구려 기(伎)를 얻었다” 고 한다. 그 외 “소륵(疏勒, 동투르키스탄 카쉬가르), 안국(安國,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기(伎)는 서역(西域)과 통한 이래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음악과 춤이 지나 땅의 왕조들에 언제, 어떻게 알려졌는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보자. 고대적 한류로 음악과 대사 춤이 곁들인 예술인 고려기악(高麗伎樂), 간단히 고려기(高麗伎)가 지나 땅에 전달된 기록은 《구당서(舊唐書)》의 “음악2(音樂二)”가 있다. 이에 따르면 멀리는 남북조(南北朝, 386~586년) 시대 남조의 송(宋, 420~479년) 나라 시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 북위(北魏)와 남조(南朝) 송(宋)나라 지도
수(隋)나라 궁정의 공식 악장 ‘7부기(七部伎)’와 ‘9부기(九部伎)’에 든 고구려 음악과 춤 고려기악(高麗伎樂)
“송(宋) 시대에 고려기악(高麗伎樂)과 백제기악(百濟伎樂)이 있었다. (북)위(魏)나라 탁발(拓跋)때에 이를 얻었으나 다 갖추지 못했다. (북)주(周)나라 군대가 제(齊)나라를 없애자,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二國)가 그 음악(其樂)을 바쳤다. 수(隋) 문제(文帝)가 진(陳)나라를 없애고,청악(清樂)과 문강예필곡(文康禮畢曲)을 얻어, 9부기(九部伎)에 고려기악(高麗伎樂)은 넣었으나 백제기(百濟伎)는 얻지 못했다” 한다.
고구려는 6세기말 북주(北周) 궁정에서 노래와 춤을 펼쳐 북주황제를 축하하였다. 북주는 고구려 낙랑 왕씨(樂浪 王氏)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선비족 우문태(宇文泰)가 세운 나라이다. 그 이래 300년간 수(隋), 당(唐) 등 지나 왕조는 매년 또는 수시로 고구려악무를 궁중음악으로 연주하거나, 외국 사신을 맞을 때 항상 연주하였다. 수나라가 남북조를 통일한 뒤 고구려악은 ‘7부악(七部樂)’과 ‘9부악 (九部樂)’의 하나가 되었고, 당나라 때에는 10부악(十部樂)’의 하나였다. 고구려악무는 대개 탄발악기와 노래하며 춤추는 가무(群舞)가 주를 이루는데, 긴 소매를 흔드는 것이 그 선명한 특징이었다.
이와 관련, 《수서(隋書)》의 “음악하(音樂下)”는 수나라(581~619년)가 세워진지 직후인 그 “처음에 개황(開皇, 581~600) 때에 영(令)으로 정해 ‘7부악(七部樂)’을 두었는데, 하나는 ‘국기(國伎)’,둘은 ‘청상기(清商伎)’,셋은 ‘고려기(高麗伎)’,넷은 ‘천축기(天竺伎, 인도)’,다섯은 ‘안국기(安國伎, Buhara)’,여섯은 ‘구자기(龜茲伎, Kucha)’,일곱은 진(晉)나라 가면기(假面伎) ‘문강기(文康伎)’였다”고 한다.
▲ 오늘날 동투르케스탄 땅 투르판 서쪽의 쿠차와 카시가르
수나라 음악 두 장르 바로 뒤에 고구려 것을 넣고, 그 뒤에 오늘날의 인도,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동투르키스탄(신강) 위구르족 지역 쿠차 음악을 넣어 고구려 음악이 4개 외국 음악 중 맨 먼저 연주되고 있었다.
수(隋)나라는 지나의 남북조시대 난립했던 여러 왕조를 통일하였다. 그 뒤 문제(文帝)는 개황(開皇, 581∼600년) 때 이웃 나라의 음악인들을 불러모아 궁중에 상주시키면서 음악활동을 전개시켰다. 이것이 칠부악(七部樂)이다.
수나라 때 백제음악과 신라음악
한편 백제기(百濟伎)와 신라기(新羅伎)는 수나라 조정의 공식적 프로그램인 ‘칠부악(七部樂)’에 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른 5개국 즉 소륵(疏勒, Kashgar), 부남(扶南, Phnam, 캄보디아), 강국(康國, Samarkand), 돌궐(突厥, Turk), 왜국기(倭國伎) 등 다른 나라의 음악과 함께 섞여 때때로 연주되었다.
수나라 대업중(大業中: 605~618년, 611년경)에 양제(煬帝)는 칠부악(七部樂)에 두가지를 보태 9부(九部)를 만들었다. 청악(清樂), 서량(西涼, 돈황, 감숙지역), 구자(龜茲), 천축(天竺, 인도), 강국(康國), 소륵(疏勒), 안국(安國), 고려(高麗) 음악, 그리고 예필(禮畢)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수서》, 하>는 “나중에 (9부악은) 차차 번성하여 그 소리를 모아 태악(太樂)과는 별도로 했다. … 고려(高麗) 가곡(歌曲)에는 <지서(芝棲)>가 있고, 무곡(舞曲)은 <가지서(歌芝棲)>가 있다. 악기로는 탄쟁(彈箏), 와공후(臥箜篌), 수공후(豎箜篌), 비파(琵琶), 오현(五弦), 적(笛), 생(笙), 소(簫), 소피리(小篳篥), 도피피리(桃皮篳篥), 요고(腰鼓), 제고(齊鼓), 담고(擔鼓), 패(貝) 등 14종이 1부(一部)이다. 악공(工)은 18명이다”고 한다.
▲ 소피리(小篳篥)와 무용총 고구려 완함 연주자
수나라 때 9부악(九部樂)의 하나였던 고려기는 그 뒤 당나라 태종(太宗)의 정관(貞觀, 627∼649) 때 보강된 10부기(十部伎)의 하나가 되었다.
수나라 당시 백제악과 신라악은 중앙아시아의 소륵(疎勒)이나 강국(康國), 왜국(倭國)의 음악처럼 잡기(雜伎)의 하나로 분류되었다. 백제악은 고려기처럼 공식적인 7부기(七部伎)나 9부기(九部伎)에 끼지는 못했지만, 당나라 궁중에서 오래도록 연주되었다.
고려기(高麗伎) 절목 중에는 “호선무(胡旋舞)가 있어, 춤추는 이는 공위(球上)에 서서 바람처럼 돌았다(旋轉如風)”고 한다. 이는 수, 당 대 지나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으로 보인다.
▲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 제22굴 속 호선무 벽화 그림
고구려 호선무(胡旋舞)를 본 당시 지나인들의 감명은 어떠했을까? 고구려 호선무와 비슷한 강거(康居)의 호선무(胡旋舞)를 본 성당(盛唐) 시인 잠삼(岑參, 715~770)은 자기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꽃 같아라, 춤추며 북으로 도니, 세상 사람들 눈이 있으나 볼 틈이 없네。
높은 집 땅 가득히 붉은 카펫(紅氍毹), 한 곡 시험 삼아 춤추니 천하가 없네.
이 곡은 호인(胡人)이 한(漢)으로 전해왔나니 모든 손님이 보고 놀라 찬탄하누나!
如蓮花,舞北旋,世人有眼應未見。
高堂滿地紅氍毹,試舞一曲天下無。
此曲胡人傳入漢,諸客見之驚且嘆
그 뒤 중당(中唐)의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호인 계집이 추는 호선무(胡旋舞)를 보고 다음의 시를 지었다.
호선녀(胡旋女),호선녀, 마음은 현(絃)에 울리고, 손은 북(鼓)에 응하네。
현(絃)과 북(鼓) 한 번 소리 내니(一聲) 두 소매가 솟누나(雙袖舉),
눈 나리듯 사뿐히 날아(迴雪飄颻) 쑥 되듯이 춤추네(轉蓬舞)。…
곡(曲)이 마치자 부 번 절하여 천자(天子)에게 사하니(再拜謝),
천자가 살며시 이빨을 열어 웃노라(微啟齒).
호선녀(胡旋女)는 강거(康居)를 나섰으니,
헛되이 동으로 와서 만여리라(徒勞東來萬里餘)。
胡旋女,胡旋女。心應絃,手應鼓。
絃鼓一聲雙袖舉,迴雪飄颻轉蓬舞。
左旋右轉不知疲,千匝萬周無已時。
人間物類無可比,奔車輪緩旋風遲。
曲終再拜謝天子,天子為之微啟齒。
백거이의 시벗인 원진(元稹)도 〈호선녀(胡旋女)〉 한 수를 지었다.
천보(天寶) 세월도 끝나려는데 호(胡)가 어지럽히려 하니,
호인(胡人)이 계집을 바쳐 호선(胡旋)에 능하네.
돌고 돌아서 명황(明皇, 당 현종)은 자기도 모르게 홀려버렸네,
요사스런 호(妖胡)야, 어찌 장생전(長生殿)에 이르렀는고.
호선(胡旋)의 뜻은 세상이 모르되, 호선의 얼굴(容)은 내가 능히 전하리니.
天寶欲末胡欲亂,胡人獻女能胡旋。
旋得明皇不覺迷,妖胡奄到長生殿。
胡旋之義世莫知,胡旋之容我能傳。
이 시들은 당나라인들이 고구려 호선무와 유사한 강국 호선무를 본 충격과 감응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고구려 호선무를 보았을 때도 비슷한 감상을 가졌을 것이다. 한편 지나 무용학자 왕극분은 고구려 <호선무>는 강국(康國)의 영향을 받은 춤이라고 하였다. 강국기(康國伎)에도 호선(胡璇)을 행하는 춤이 있었고, 백거이(白居易)와 원진(元稹)이 묘사한 강국의 <호선녀>시(詩)가 유명한 것을 기초로 한다. 다만 왕극분은 강국의 <호선녀> 춤은 `공위에서 춤추지 않고 작은 양탄자에서 빙글빙글 도는 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무용학자 이종숙은 당나라 연회 기예(技藝)의 한 종류로 정착된 것은 [고구려기] <호선무>임을 “고구려 호선무의 정체성 연구”에서 논증했다. 고구려의 <호선무>는 수, 당대보다 앞서 일찍이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중국에 전해졌다. 강국(康國)의 <호선녀>는 호인(胡人)이 당나라 현종(玄宗) 때 도는 춤(旋舞)에 뛰어난 여자 기예인을 헌정한 것인데, 이것이 본래 당나라에 먼저 있었던 고구려기 <호선무>와 유사하게 도는 행위[旋轉]가 많은 춤이어서 그녀를 묘사하는 말로 <호선녀>라고 명명하였고, 그 말이 정착되었다고 보았다. 고구려 호선무와는 다른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