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7번 게이트에서 200m 정도를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황인용 MUSIC SPACE CAMERATA’란 현판이 달린 콘크리트 건물이 나온다. 이 투박하고 무덤덤한 회색 건물이 클래식을 뿌리로 한 음악 감상실이란 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주차장 옆 좁은 계단을 올라 묵직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법의 문이라도 통과한 듯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직사각형 구조로 높고도 깊게 파인 실내는 그 흔한 기둥 하나 보이지 않고 눈에 걸리는 구조물도 없다. 3층 높이의 건물을 하나로 뚫어 천장을 높이고, 장애물을 없앤 것은 오직 음악의 울림을 최적화하기 위함이다.
회색 콘크리트에 숨겨진 거대한 음악의 숲
카메라타는 1960년대 말 아나운서 활동을 시작으로 35년간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황인용 씨의 보금자리이자 음악 감상실이다. 외부에서 보면 건물이 양쪽으로 나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왼쪽이 그의 사택이다. 황인용 씨는 1970~80년대 대표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황인용의 영팝스’를 비롯해 클래식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로 활약했다. 그런 그가 은퇴 후 음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담아 지난 2004년 9월에 문을 연 곳이 바로 카메라타인 것이다.
카메라타에는 황인용 씨가 프리랜서로 활동할 당시 틈틈이 수집한 클래식 음반과 오디오시설이 보물처럼 모셔져 있다. 이곳을 ‘황인용의 집’이 아닌 ‘음악 감상실’로서의 존재로 자리잡게 한 것도 바로 이 보물들이다. 맨 앞쪽 벽면을 가득 점령하고 있는 것은 오디오와 앰프들. 그것도 1930년대 웨스턴 일렉트릭제 극장용 스피커와 앰프들이다. 그 크기가 너무도 거대하고 위용 있어 과연 이 공간이 스피커의 힘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오디오 옆으로 또 다른 보물인 LP 레코드가 가득하다. 수많은 장식장에 빽빽하게 정리된 레코드판의 수는 무려 1만5,000여 장. 장식장에는 ‘홍석현 컬렉션’, ‘삶과 꿈 컬렉션’, ‘김경원 박사 컬렉션’ 등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레코드가 탄생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그 까마득한 세월을 말해주듯 음반 한 장 한 장의 모습은 무척이나 낡고 남루하다. 빛바랜 음반의 숲 앞으로는 역시나 나이 지긋한 턴테이블이 놓여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 번쯤을 꿈꾸어 보았을 이 공간, 돈으로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로망의 순간을 보고 있자니 이곳의 주인이 부럽고 또 부러워진다.
빛이 흐르는 벽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머리를 든다. 천장을 메운 유리창 너머로 겨울 하늘과 낙엽 진 앙상한 나무, 바람과 빛의 움직임까지 내다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몽글한 자갈 하나와 그 자갈과 끈으로 이어진 연필 한 자루, 메모지와 연필깎기가 놓여 있다. 메모지의 쓰임새는 신청곡을 받기 위함이다. 커피와 머핀이 나오고 이어 감미로운 클래식이 흐르자 아직 아무도 찾지 않은 이곳이 전부 내 것이 된 양 설레기까지 한다.
‘카메라타’는 이태리어로 ‘작은방’ 혹은 ‘동호인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전성기인 16세기 말 피렌체의 예술후원자였던 ‘조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살롱에 모였던 시인, 음악가, 화가, 문인, 건축가 등 예술가들의 소그룹을 통칭하던 말이기도 하다. 이름의 숨은 뜻을 알고 나니 이곳의 존재를 더욱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과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모여 언제든지 음악을 논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카메라타는 바로 그러한 태생의 의미를 가진 곳이다.
카메라타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로 1만원의 입장료를 내면 커피와 머핀을 맛보며 아날로그적 풍미와 클래식 뮤직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매주 토요일 7시면 연주회도 열린다니 이번 겨울 클래식한 감수성을 일깨우러 헤이리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찾아가는 길 자유로에서 성동IC(경기영어마을, 통일동산 표지)로 진입. 첫 번째 사거리(성동사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500m 직진한다.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한 뒤 우측 헤이리 7번 게이트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다시 200m 직진하면 우측으로 콘크리트 건물인 카메라타가 보인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29. (031)957-3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