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2-10
하 늘 과 땅 사 이 에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에 기대지 않더라도 비취빛의 가을 하늘은 높푸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摩天樓)라 하여도 가을하늘에는 닿지 못한다. 그래서 애국가(愛國歌)는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라고 말하고 있다. 땡볕에 익은 들판의 누런 갈색의 볏대들이 가을 바람에 못 이겨 한들거리고, 초싹초싹 나부껴 대는 모습이 하늘의 거울인 명경(明鏡)에 비쳐지며 들과 하늘의 어울림이 더하여 간다. 파란하늘은 파란 바닷물의 넘실거림이라서 바늘로 찌르면 톡 터질 것 만 같이 얄밉기도 하다. 밤이면 푸른 하늘에 은하수(銀河水)들이 즐비(櫛比)하게 늘어서 있는 곳은 과연 어떤 곳인가? 하고 하늘을 보며 사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이 부풀어 오른 기대감은 과학(科學)이 우리의 눈에 보여줌으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베일의 면사포(面紗布)가 벗겨짐으로 숨기 워 졌기에 호기(好奇)와 기대(企待)에 들뜬 달나라의 계수나무의 환상의 꿈이 실망으로 다가오는 바로 그것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동화 속의 하늘나라의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교회의 어린이들이 모여 예배하는 주일학교 시간에 목사님께서 아이들에게 천국에 관한 설교를 하시게 되었다. 천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 왼쪽과 오른쪽에 생명나무가 있어 달마다 열두 가지 과일을 맺게 되어 우리는 그것을 따서 먹고살게 될 것이고, 그곳은 자수정, 녹보석, 홍보석 등, 우리가 보고 듣지도 못하였던 갖가지의 보석으로 꾸며져 있는 곳이며, 항상 즐거운 일만 있을 것이라는 천국의 활동사진을 생생하게 보여주셨다. 아이들에게는 별천지(別天地)의 천국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아니 그곳에 이미 가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지금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는 말에 늦게 들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 같아 아이들은 앞을 다투어 손을 번쩍 들었다. 어느 아이는 한 손으로도 부족하였던지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런데 유독 한 여자아이만이 손을 들지 못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목사님은 이상하게 여기며 그 아이의 앞으로 다가가 “너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니?” 하고 물으셨다. 한동안 난처해하던 아이는 손을 드는 대신에 무거운 입술을 떼어놓았다. “엄마가 주일학교 예배 마치면 빨리 집으로 와서 동생과 함께 놀라고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난 지금 천국에 갈 수 없어요” 사후(死後)에만 천국에 이른다는 왜곡된 가르침은 스스로의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장소와 시간의 제한(制限)을 받는 하늘나라인 천국보다는 시공(時空)을 벗어나는 무소부재(無所不在, 어디에나 있음)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늘나라(天國)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때가 다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1:15-공동번역성서). 구태여 장소를 규정하는 하늘나라를 말하자면 우리들이 담겨져 있는 지구는 허공(虛空)에 떠있다. 하늘에 떠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땅을 덮고있는 하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굳이 땅과 구분 짓는 하늘나라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성경의 끝 부분에는 종국(終局)의 새 하늘과 새 땅(新天新地)을 말하고있다. 새 하늘뿐만 아니라, 나의 사는 마을의 뜻을 갖는 신지(新地), 그러니까 다른, 나의 마을의 이름의 신평(新坪,새땅)을 말한다. 동양(東洋)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람인 천지인(天地人)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누런 들에서 보는 가을 하늘은 높고도 푸르다.
공동체 이야기
다림, 좌고우면(左雇右眄), 도리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딸아이가 학교에서 책을 빌려다보는 것을, 옆에서 잠자코 바라다보았다. 책의 겉을 보니「메밀꽃 필 무렵」이라 쓰여져 있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 예전의 이효석의 소설이라는 것이 생각되어졌다. 아이에게 그 책을 건네 받아서 내용을 읽어보니, 꽤나 어려웠다. 1900년대의 초중반기에 쓰여져서 그런지 알 수 없는 옛말들이 많았다. 별 재미를 못 느끼며, 책의 겉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래쪽에「다림」이라는 그 책의 출판사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두툼한 표지를 열어 안쪽을 들여다보니, 아래쪽에 다림에 대한 말의 설명이 있었다. 다림은 어떤 물체가 수평인가 또는 수직인가를 헤아려 보는 일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라 적혀져있었다. 나는 사람 사는 집을 짓는 건축 일을 볼 때에 반듯하게 줄을 긋기 위해서는 검은색이 나는 먹줄을 띠우는 것과 높은 담이나 혹은 벽을 쌓아올릴 때에는 긴 줄에 돌을 매어 달아, 그 반듯하게 늘어뜨려진 줄에 맞추어 벽을 쌓아 올려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럴 때에 그 줄이 다림줄이라는 것이 연상되어졌다.
추석기간에는 전에 같이 계시던 박 선생님께서 오셔서 몇 일 동안 머물며 계시다 가시더니, 이번에는 우리를 종종 찾아주시는 김 선생님이 오셨다. 오시면 가만히 그저 머물러 계시지를 않는다. 여기저기 안팎을 살피시며, 돌보아야 될 여러 일들이 있으면 서슴없이 일에 나서신다. 이번에는 우리들이 미처 다하지 못한 들깨 거두어들이는 일을 같이해주셨다.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옛말인데 좌고우면(左雇右眄)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뜻인 즉, 이쪽저쪽을 돌아본다는 말인데, 앞뒤를 재고 망설이는 것을 이르는 말이란다. 우리 사람들은 때때로 망설이다가 일을 놓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도리라는 또 하나의 우리말을 가르쳐주셨다. 강원도의 둔례라는 산골마을에 사는 사촌형을 찾아갔었단다. 그 때에 사촌형이 큰 아름드리 나무로 통나무집을 짓고 있었단다. 그런데 주춧돌 위에 세워진 큰 기둥들이 매우 부실하게 세워져있었다. 각 기둥들을 사방에서 받쳐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어있지가 못하였다. 그리고 올려다 볼 때에, 위 부분에서 기둥과 기둥을 이어 주며, 그러면서 또한 서까래를 받치게되는 구실을 하는 도리가 제대로 수평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지 못하였다. 그런 상태에서 형님이 일을 하려고 그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 기둥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김 선생님이 보고, 기둥 무너진다고 소리를 쳤다. 그 바람에 다급한 형님이 그 위에서 뛰어내리다 큰 나무기둥에 옆구리를 맞게되었다. 그 후의 김 선생님의 뒷 얘기, “형님이 만일에 미쳐 피하지 못하여 그 큰 나무기둥더미에 머리나 허리를 맞았다면 큰 일일 번하였어요” “처음부터 여러 개의 기둥을 튼튼히 세웠어야했어요. 그리고 기둥과 기둥을 이어주는 윗 부분에 도리의 수평을 제대로 맞추었어야됐어요”
몇 일 사이에 다림 그리고 좌고우면(左雇右眄), 도리라는 말을 배웠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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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조점숙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대전서노회에 속하여있던「새터공동체」가 02년 10월 15일에 열린 제101회 대전노회에서 「새터공동체」로 설립허락을 받았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성남교회안수집사회.주식회사EG(이광형).영광교회2청년부(김영모외7인).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2인).어귀녀.정무래.김기홍.만나교회(전남홍외9인).동산베이커리.김기옥.낭월교회(6인).성대초등학교30회동창회(김경민.김기홍).김남완.대화교회여러분.통계청(임명선외1인).이영미.금산군사회복지사여러분(손숙희).최일용.금영훈.세광교회.향림원.벧엘교회(장옥자.황건서).충남공동모금회대전서노회사회부(강신택.소종영).채윤기(박현실).왕지교회.대덕교회.예수마을대전서노회.박종만.세상을름답게만드는사람들(12인).박정도.대전일보(김세원외1인).정진일.무명.옥천동부교회.추부나눔의집(손숙희외여러분).그리스도의집연무대교회남선교회(강신택외4인).벧엘교회(양순우외5인).한삼천교회.이순섭.조점숙.김창준.최종현(진수정)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