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발생 시 임원이 실질적인 책임 져야…심적 부담뿐 아니라 재산상 손실 우려도 금융기관 18곳 책무구조도 이달부터 시행…임원보수 상향 및 보험가입 등 ‘풍선효과’ 주목
[제작=필드뉴스]
[필드뉴스 = 김대성 기자] 국내 시중은행에서 대규모 횡령 등 금융사고 피해가 속속 발생하면서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책무구조제가 도입돼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은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자)에 대한 내부통제시스템 책임을 묻고 있지만 책무구조도 제출을 의무화하면서 고위 임원으로까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했다.
책무구조도는 내부통제 관리 의무 위반에 대한 검토 및 제재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 임원 직책별 책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무체계도와 임원별 책무의 세부 사항을 설명한 책무기술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책무구조도의 도입으로 비상이 걸린 금융지주와 은행의 내부통제는 한층 강화되고 금융사고도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까지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참여신청을 접수한 결과 총 18곳의 금융지주와 은행이 책무구조도를 제출하고 시범운영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금융지주는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NH금융, DGB금융, BNK금융, JB금융, 메리츠금융 등 9곳이며 은행은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IBK기업, 부산, iM뱅크, 전북 등 9곳에 이른다.
시범운영에 참여한 금융회사는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날로부터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관리체계의 실제 운영을 통해 자체 내부통제 역량 강화에 나서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참여 금융회사가 임원별 내부통제 관리조치 등의 효율적인 이행을 위해 전산시스템 또는 자체 체크리스트(수기) 등을 활용해 책무구조도 기반의 내부통제 관리체계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에게 담당 업무에 따른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도록 하는 문서로 임직원이 직접 책임져야하는 내부통제 대상 범위와 내용을 사전에 정해 금융회사의 전반적인 내부통제 관리를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사진=KB금융그룹]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은 지난달 30일 책무구조도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KB금융지주는 올해 초 ‘내부통제 제도개선 TFT’를 구성하고 책무구조도 관련 컨설팅을 거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하위규정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책무구조도를 마련했다.
또한 ‘책무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내부통제 업무매뉴얼’에 따른 점검 활동과 개선조치 사항을 상시 등록하고 관리하는 한편 각 부점장들의 효과적인 내부통제 관리활동을 돕기 위한 ‘부점장 내부통제 업무매뉴얼’도 함께 운영키로 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달 28일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가장 먼저 제출했다. 이에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달 24일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내면서 책무구조도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5일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책무구조도 도입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받는 임원과 관련 본부 부서장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설명회를 실시하는 등 책무구조도에 기반한 내부통제 관리 체계가 조기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도 지난달 28일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한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의 시행으로 금융지주와 은행의 내부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금융지주와 은행에 근무하는 고위 임원들은 책무구조도의 시행으로 자칫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책무구조도는 금융지주와 은행이 제출할 때부터 시행되나 본격적인 적용은 내년 초부터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하고 각 임원이 금융사고 방지 등 내부통제 의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도록 마련된 제도인만큼 내부통제 책임 영역이 명시되면서 담당 임원이 금융사고의 책임을 지게 된다.
연말을 앞두고 금융권의 대폭적인 인사가 예고되는 가운데 고위 임원들은 책무구조도 시행으로 인해 금융사고 발생 시 예전과 다르게 직접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리스크를 안고 있는 부서의 담당 임원들은 이에 따른 보수 인상이나 금융사고에 대비한 보험 가입 등 ‘당근’이 주어지지 않으면 리스크를 안고 계속 근무해야 하느냐 아니면 책무구조가 적용되기 이전에 회사를 떠나야 할지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지주나 은행은 고위 임원의 이같은 고뇌를 알고는 있지만 가뜩이나 금융권의 고위 연봉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만큼 이들에게 보수 인상 등 유인책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A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책무구조도가 실시되면 금융사고 발생 시 부하직원들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몽땅 짊어질 수 밖에 없다”면서 “추후 퇴직 보수나 인센티브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전에 이제 그만둬야 하나 고민중”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금융권 인사에 대한 퇴직금 지급은 각 회사마다 산정 기준이 다르지만 고위 임원이 퇴직 시 회사에 지급할 대금이 있는 경우 회사와의 합의를 거쳐 보수 및 퇴직금에서 공제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고위 임원에 대한 퇴직 보수는 이사의 위임 업무 성격, 위임 업무 수행 결과를 고려해 보수를 결정해 지급하고 회사의 경영성과 등을 고려해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상당수 금융회사는 고위 임원에 대한 장기 성과 인센티브를 부여하면서 3개년 경영 성과에 대해 차 3년간 분할해 지급하고 있어 책무구조도 시행이후 발생한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책임 문제뿐만 아니라 인센티브를 받는 데에도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고위 임원들은 오는 연말께 회사를 떠나면 성과 인센티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지만 리스크가 높은 부서에 근무하면서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퇴직금뿐만 아니라 성과 인센티브마저 날릴 수 있다는 데 속앓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정년을 몇 년 앞둔 임원들은 좀 더 근무기간을 채우려다 책무구조도 시행으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인세티브를 고스란히 잃게 되는 것보다 아예 지금 임원직을 그만두는 것이 재정적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와 은행들의 금융사고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책무구조도가 예상 밖으로 고위 임원들의 줄퇴진 현상과 고위 임원에 대한 보수 상향 또는 책무구조도 위험에 대비한 보험가입 등 예상치 못한 ‘풍선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연말이 다가올수록 금융지주와 은행의 고위 임원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