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白沙 李恒福과 隱峰 安邦俊의 亂後 諸將士功蹟
白沙論壬辰諸將士辨 (백사논임진제장사변) 백사가 논한 임진년의 여러 장사에 대한 변론
安邦俊 (안방준)
崇禎癸酉冬十月。(숭정계유동시월) 숭정계유년(인조11,1633) 겨울 19월에
余寓居于綾州之月谷。(여우거우능주지월곡) 나는 능주의월곡에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有人袖白沙別集雜著一卷來示余。(유인수백사별집잡저일권래시여) 어떤사람이 [백사별집]에 실린 잡저 한권을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其中一款。(기중일관) 그 중 한 항목은
乃壬辰倭變時諸將士功罪是非優劣之論也。(내임진왜변시제장사공죄시비우열지논야) 임진왜란 때 여러 장수들의 공죄, 시비, 우열을 논한 것이었다.
白沙以文章自名。(백사이문장자명)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백사(이항복)는
爲此記頗詳悉。(위차기파상실) 이를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將欲傳之悠久。(장욕전지유구) 장차 오래도록 전하여
以爲定論。(이위정론) 정론으로 삼으려 했으니
意甚盛也。(의심성야) 그 의도는 매우 좋았다.
然其言或出於道聽。(연기언혹출어도청) 그러나 그의 말이 길에서 들은 것에서 나오기도 하고
或出於其時諸將之狀啓。(혹출어기시제장지장계) 당시 여러 장수들의 장계에서 나오기도 하여
種種無一可信。(종종무일가신) 여러 가지로 믿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어
不待辨說而眞僞自見矣。(불대변설이진위자견의) 변설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참과 거짓이 저절로 드러났다.
竊恐後之人。(절공후지인) 가만히 생각하건데, 후대 사람들이
不能深思講求。(불능심사강구) 깊이 생각하여 따져보지 않고
泛然看過。(범연간과) 범연히 보아 넘기면서
以爲白沙一時之人。(이위백사일시지인) 백사는 그 시대의 사람이니
其所立言。(기소입언) 그의 입론이
豈皆一一無實。(기개일일무실) 어찌 모두 다 실상이 없겠는가 하고
當必有疑之者。(당필유의지자) 반드시 의심할 사람이 있을까 두렵다.
此余所以不得不逐條分疏。(차여소이부득불축조분소) 이 때문에 나는 조목조목 분석하여
以犯僭踰之罪也。(이범참유지죄야) 무례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覽者察之。(현자찰지) 이 글을 보는 이는 잘 살펴주기 바란다.
o 白沙曰。(백사왈) 백사가 말하기를
上嘗論水陸諸將之功曰。(상상논수륙제장지공왈) 상(선조)께서 일찍이 수군과 육군을 지휘한 여러 장수들의 공을 논하면서
李元海上之鏖。(이원해상지오) 이순신과 원균의 해상 대첩과
權慄幸州之捷。(권율행주지첩) 권율의 행주 대첩이
當爲首功。(당위수공) 마땅히 으뜸가는 공이다.
此不易之定論。(차불역지정론) 이는 바뀔 수 없는 정론이다 하였고
又曰。(우왈) 또 말하기를
元均特因人而成事者。(원균특인이성사자) 원균은 다만 남을 의지해서 일을 이룬 자이니
固不敢與李舜臣抗衡云云。(고불감여이순신항형운운) 진실로 가히 이순신과 공을 겨룰 수는 없다 하였다.
白沙此言。(백사차언) 백사의 이 말은
何其誤也。(하기오야) 어찌하여 그렇게 오류를 범했는가?
當賊以舟師長驅向湖南也。(당적이주사장구향호남야) 왜적이 수군을 거느리고 멀리 호남을 향해 진격해 갔을 때
舜臣出萬死之計。(순신출만사지계)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계략을 짜내어
遮絶於閒山。(차절어한산) 한산도에서 차단함으로써
使賊不敢西棹者凡六年。(사적불감서도자범육년) 적으로 하여금 서쪽으로 노를 저어가지 못하도록 한 지 모두 6년이나 되었다.
均則惶怯失措。(균즉황겁실조) 원균은 겁이많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自沈其戰船。(자침기전선) 스스로 그 전선을 침몰시키고
竄伏海島。(찬복해도) 해도로 숨었다.
舜臣引置軍中。(순신인치군중) 그러나 순신은 군중으로 대려다 놓고
優給資糧。(우급자량) 돈과 군량을 넉넉히 배급하였으며
其所獲首虜。(기소획수노) 노획한 적의 머리와 포로를
分載於均。(분재어균) 원균에게 나누어주어
使均非徒得免軍律。(사균비도득면군율) 원균이 군율로 다스려짐을 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又從而受賞焉。(이종이수상언) 또 상까지 받도록 했다.
均之於舜臣。(균지어순신) 원균은 이순신에게
卵育之恩。(난육지은) 난육(보살핌과 양육함)의 은혜를 입은 바가
固爲不貲。(고위불자 ) 참으로 셀 수도 없이 많았는데
而均也及其得志之後。(이균야급기득지지후) 균이 득의한 뒤로
反懷忌嫉之心。(반회기투지심)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품어
凡所以害舜臣者無所不至。(범소이해순신자무소부지) 이순신을 해치는데 못할 짓이 없었다.
做出海王之說。(주출해왕지설) " 바다의 왕"이라는 설을 만들어
傳播遠邇。(전파원이) 원근에 퍼트렸고
及淸正渡海。(급청정도해) 가등청정이 바다를 건너게 되자
密啓舜臣逗撓不進。(밀계순신주요불진) 은밀히 장계를 올려 이순신이 두려워서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하여
舜臣終至於拿鞫。(순신종지어나국) 순신은 결국 체포되어 국문을 받기에 이르렀다.
均代之。(균대지) 원균이 그를 대신하였으나
曾不踰時。(증불유시) 한시도 넘지 못하고
全師覆沒。(전사복몰) 온 수군이 침몰하니
有罪可誅。(유죄가주) 목을 벨 죄만 있지
無功可記。(무공가기) 기록할만한 공은 없는데도
顧乃與舜臣,(고내여순신) 도리어 이순신
權慄幷稱者。何也。(권율병칭자. 하야) 권율과 더불어 칭송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蓋世居京洛。(개세거경락) 대개 (원균은) 대대로 서울 지역에 살면서
族連貴近。(족연귀근) 그의 씨족들이 지위 높은 권신들과 끈을 맺고
又諂事時人。(우첨사시인) 또 시국을 담당한 사람을 아첨으로 섬겨
右之者多。(우지자다야) 그를 도와준 자가 많았다.
故欺罔君父。(고기망군부) 그 때문에 임금을 속이고
刑賞倒置。(형상도치) 형벌과 상을 뒤엎은 것인데
白沙其未之聞歟。(백사기미지문여) 백사는 그것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는가?
於榻前論功之際。(어탑전논공지제) 어전에서 공을 논할 때
何不以此陳達。(하불이차진달) 어찌하여 이를 아뢰어
使我先王昭知其是非。(사아선왕소지기시비) 우리 선왕(선조)으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명백히 알도록 하지 않았는가?
退有後言。(퇴유후언) 물러 나온 뒤에 말하기를
初以爲不易之定論。(초이위불역지정론) 처음에는 바뀔 수 없는 정론이라 하고
終以爲不敢與舜臣抗衡。(종이위불감여순신항충) 끝에서는 감히 이순신과 겨를 수 없다고 말하니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와 같은가?
均是余仲父東巖公妻元氏之姓親也。(균시여중부동암공처원씨지성친야) 원균은 나의 중부 동암공의 처 원씨의 친족이다.
其赴統制之日。(기부통제지일) 그가 통제사로 부임하던 날
歷拜于仲父。(역배우중부) 중부를 찾아와 인사를 하였고
均曰。吾非以此職爲榮。(균왈,오비이차직위영) 말하기를 나는 이 직책이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惟以雪恥舜臣爲快也。(유이설치순신위쾌야) 오직 이순신에게 치욕을 갚은 것이 통쾌합니다 하였다
仲父曰。令公能盡心破賊。(중부왈,영공는진심파적) 중부께서 말씀하사기를 영공이 적을 격파하는데 마음을 다하여
使其功業出於舜臣之上。(사기공업출어순신지상) 공업이 이순신보다 두드러질 수 있다면
則可謂雪恥。(즉가위설치) 치욕을 씻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徒以代舜臣爲快。(도이대순신위쾌) 한갓 이순신을 갈아치운 것으로 통쾌하다고 여기면
則豈可謂之雪恥也。(즉기가위지설치야) 어찌 치욕을 씻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니
均曰。吾遇賊而戰。(균왈,오우적이전) 원균이 대답하기를 나는 적을 만나 싸울 때
遠則片箭。近則長箭。(원즉편전 군즉장전) 멀면 편전을 쓰고 까까우면 장전을 쓰며
而及其搏擊也。用之以劍。(이급기박격야 용지이검) 육박전이 벌어지면 칼을 사용하고
劍折。隨之以挺。(창절 수지이정) 칼이 부러지면 정(기름칠한 곤봉)으로 싸우니
則蔑不勝矣。(즉멸불승의) 이기지 못할 리 없습니다.
仲父哂曰。爲大將。(중부천왈,위대장) 중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대장이 되어서
至於用劍與挺。(지어용검여정) 칼과 정을 사용하는 데 이른다면.
則其可乎。(즉기가호) 옳겠는가? 하였다.
均旣去。(균기거) 균이 돌아가자
仲父謂余。(중부위여) 중부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曰觀均爲人。大事去矣。(왈관균위인 대사거의) 원균의 사람됨을 보니 큰일을 하기는 글렀다
趙括騎劫。必不如是。(조광기겁 )필불여시 조괄과 기겁도 필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하고
嗟歎久之。(차탄구지) 오래도록 탄식하였다.
南中之人。至今言及此事。(남중지인 지금언급차사) 남쪽의 사람들은 지금도 이 일을 말하면
未嘗不扼腕也。(미상불액완야) 팔뚝을 걷고 분통하지 않음이 없다.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는 또 말하기를
權聘君嘗言於余曰。(권빙군상언어여왈) 권빙군(장인인 권율을 말함)께서 일찍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世以我幸州之事爲功。(세이아행주지사위공) 세상에서는 내가 행주에서 한 일을 공으로 여기나
此固可謂功也。(차고가위공야) 이는 참으로 공이라 할 만하다.
然全羅熊峙之戰爲最。(연전라웅치지전위최) 그러나 전라도 웅치 전투가 최고이고
幸州次之。(행주차지) 행주가 그 다음이었는데
我終以幸州顯者。(이종이행주현자) 나는 끝내 행주의 전공으로 드러났다.
蓋熊峙之戰。(개웅치지전) 대개 웅치전투는
在我首事之初。(재아수사지초) 내가 그 일을 맡았던 초기에 있었는데
賊氣方銳。(적기방예) 적의 기세가 한창 날카로웠으므로
乃能出死力血戰。(내는출사력혈전) 이에 죽을 힘을 다해 혈전을 벌여
卒保湖南。爲國家根本。(졸보호남 위국가근본) 끝내 호남을 보전하여 국가의 근본을 세웠으니
此其所以難也。(착소이난야) 이것이 어려웠던 이유이다.
而當是之時。(이당시지시) 그러나 당시에는
西路阻絶。聲聞不通。(서로저절 성문불통) 서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소식을 일릴 수 없어
我雖有功。無人褒奬。((아수유공 무인포장) 내 비록 공을 세웠지만 포장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故功不能顯。(고공불능현) 공이 드러날 수 없었다.
幸州之役。在我立功之後。(행주지역 재아입공지후) 행주의 싸움은 내가 공을 세운 뒤에 있었고
權位已重。(권위이중) 권위가 이미 중하게 되어
此其功之所以易顯也。(차기공지소이이현야) 이로 해서 그 공이 쉽게 드러났다.
此說深得其要云云。(차설심득기요운운) 이 말은 깊이 그 요체를 이해한 것이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 기역오이) 백사의 이 말은 또 잘못되었다.
熊峙之戰。(웅치지전) 웅치전투는
權元帥以光州牧使。(권원구이광주목사) 권원수가 광주목사로
雖受任節制。(수수임절제) 비록 절제사의 임무를 가지고 있지만
然其力戰之功。(연기력지공) 그 힘든 전투의 공은
則皆出於同福縣監黃進。(즉개출어동복현감황진) 모두 동복현감 황진에게 나왔으며
而賊兵亦不過數千。(이적병역불과수천) 적병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厥後賊擧軍至梨峙。(궐후적거군지이치) 그 후 적병이 대거 이치로 쳐들어오니
諸將皆退縮。(제장개퇴축) 여러 장수들이 물러나 움츠렸으나
黃進獨與魏大奇孔時億等。(황진독여위대기공시억등) 황진은 홀로 위대기,공시억등과 함께
終日力戰。賊兵大敗。(종일역전 적병대패) 온종일 힘껏 싸우니 적병이 크게 패하여
伏尸數里。(복시수리) 시체가 몇 리를 덮었고
賊大將亦爲進所射殺。(적대장역위진소사살) 적의 대장도 황진에게 사살 당했다.
倭中人至今 歎服不已。(왜중인지금 탄복불이) 왜인 중에는 지금도 탄복하여 마지않는 자가 있다.
無奈白沙久而忘之。(무내백사인니위웅치) 백사는 오래되어 이를 망각하고
以梨峙認以爲熊峙。歟。(이이치인니위웅치 여) 이치를 웅치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但梨峙則權元帥不與焉。(단이치즉권원수불여언) 다만 이치는 권원수가 참여하지 않았으니
寧有是理也。(영유시리야) 어찌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大抵梨峙。雖曰大戰。(대저이치 수왈대전) 대개 이치가 비록 큰 싸움이라고 하지만
其至比於幸州。(기디비어행주) 행주에 비하면
則大相懸絶。(즉대상현절) 서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況熊峙小戰。(황웅치소전) 더구나 웅치의 작은 싸움을
其視幸州。萬萬不侔。(기시행주 만만불모) 행주와 비교함은 전혀 가당치않다.
若以熊峙爲最。(약이웅치위최) 만일 웅치를 최고로 여기고
幸州次之。則幸州之戰。(행주차지 즉행주지전) 행주를 다음으로 여긴다면 행주전투를
人安得至今稱之也。(인안득지금칭지야) 사람들이 왜 지금까지 칭송하겠는가?
及白沙撰權元帥碑銘遺事。(급백사찬권원수바명유사) 백사가 권원수의 비명을 지으면서
改熊峙爲梨峙。(개웅치위이치) 웅치를 고쳐 이치로 기록하였으니
則所謂親聞權聘君之說。(즉소위친문권빙군지설) 이른바 몸소 권빙군에게 들었다는 설이
何若是其相反耶。(하약시기상반야) 어찌 이처럼 상반되는가?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러한가?
變初。釜,萊城陷。(변초 부,래성함) 변란 초기에 부산성,동래성이 함락되고
鳥嶺軍潰。(조령군궤) 조령의 군사가 궤멸되었을 때
巡察使李洸領兵至公州。(순찰사이광영병지공주) 순찰사 이광이 병사를 이끌고 공주에 이르렀는데
聞大駕西遷。(문대가서천) 대가가 서쪽으로 옮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卽令軍中曰。(즉영군중왈) 곧장 군중에 영을 내리기를
己未及矣。其各罷陣。(이미급의 기각파진)이미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각기 진영을 해산하라
時權元帥駐板峙。(시권원수주판치) 그때 권원수는 판치에 주둔하고 있다가
與其參謀官前萬戶朴大壽及靑巖察訪姜弘壽等。(여기참모관전만호박대수급청암찰방강홍수등) 참모관 전 만호 박대수, 청암찰방 강홍수등과 더불어
馳見洸。(치견광) 말을 달려 이광을 찾아보고
謂之曰。(위지왈) 말하기를
都城失守。君父播越。(도성실수 군부파월) 도성을 지키지 못하여 임금께서 파천하였으니
則爲臣子者。(칙위신자자) 신하가 된 자는
所當挺身赴難。(소당정신부난) 마땅히 앞장서 전쟁터로 달려가 적과 싸우다
與賊俱死。(여적구사) 적과 함께 죽을 뿐입니다.
職耳。(직이) 그런데
公之罷兵。有何意歟。(공지파병 유하의여) 공은 병사를 해산하였으니 무슨 뜻이 있어서 입니까? 하였다.
大壽按劍而前。(대수안검이전) 박대수가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서
瞪目睨視。洸流涕曰。(징목예시 광유체왈)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이광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吾未之思耳。(오미지사이)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소 하였다
欲還聚散。卒軍已潰矣。(욕환취산 졸군이궤의) 다시 흩어진 병사를 모으려 했으나 군졸은 이미 달아나 버렸으니
無可奈何。(무가내하) 어찌 할 수 없게 되었다.
遂與權元帥及諸守令。(수여권원수급제수령) 마침내 권 원수 및 여러 수령들과 함께
同下全州。因爲再擧。(동하전주 인위재거) 전주로 내려가 다시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以此權元帥爲一道多士所推許。(이차권원수일도다사소추허) 이로써 권 원수는 한 도의 많은 선비들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
熊峙,幸州之戰。(웅치,행주지전) 웅치와 행주의 전투에서
諸將莫敢違令。(제장막감위령) 여러 장수들이 감히 명령을 어기지 않고
能成大功。(능성대공) 능히 큰 공을 세워
終爲恢復元勳者。(종위회복원훈자) 결국 국가를 회복한 원훈 공신이 되었다.
此其權輿。(차기권여) 이것이 그 시초인데
而白沙前後記事。(이백사전후기사) 백사는 전후의 기사에서
無此一款。(무차일관) 이 한 항목을 빠뜨르니
余惜其埋沒無傳。(여석기매몰무전) 나는 묻혀버려 전해지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幷錄于此。(병록우차) 여기에 함께 기록하였다.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는 또 말하기를
當嶺南陷敗之日。(당영남함패지일) 영남이 함락되어 패하던 날에
舜臣欲列艦露梁。(순신욕열함로양) 이순신은 노량에 전함을 배치하여
遏賊來路。( 알적내로) 적의 진로를 막으려 했고
又欲固守本道。(우욕고수본도) 또 본 도를 굳게 지키기 위하여
不窺閒山之口。(불규한산지구) 한산도의 어귀를 엿보지 않고
猶豫未決。(유예미결)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하였다.
順天府使權俊。光陽縣監魚泳潭。(순천부사권준 광양현감어영담) 그러자 순천 부사 권준과 광양현감 어영담이
移書起之。身自馳往。(이서기지 신자치왕) 편지를 일어나도록 하고 몸소 말을 달려 찾아가
力贊下海之計。(역찬하해지계) 바다로 내려갈 계책을 힘써 주장하니
乃始起兵。(내시기병) 비로소 병사를 출정시켰다.
論其功則舜臣爲首功。(논기공칙순신위수공) 그 공을 논하면 이순신이 으뜸이겠지만
語其心則於兩人差有愧焉云云。(어기심어양인차유괴언운운) 마음을 말하면 두 사람에게 조금 부끄러운 점이 있다 하였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 기역오의) 백사의 이 말도 역시 잘못이다.
自古煙臺之設。(자고연대지설) 예로부터 연대(봉화대)를 설치하는 것은
專爲外賊。(전위외적) 오로지 외부의 적을 알리기 위해서였는데
而平時則一炬。(이평시칙일거) 평시에는 횃불을 하나를
見形則二炬。(견형이칙이거) 모습이 보이면 횃불 두 개를
犯境則三炬。(범경칙삼거)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세 개를
合戰則四炬。(합전칙사거) 전투가 벌어지면 횃불 네 개를
下陸則五炬。(하륙칙오거) 육지에 내리면 횃불 다섯 개를 들어 올린다
以此烽火二炬。(이차봉화이거) 이 봉화의 횃불 두 개 올리면
列邑諸鎭。不待傳檄。(열읍제진 불대전격) 여러 고을과 각 진에서는 전령을 기다리지 않고
整頓舟師。卽赴營門。(정돈주사 즉부영문) 수군을 정돈하여 곧장 영문으로 달려가
猶恐後至之誅。(유공후지지주) 오히려 뒤에 도착할 때 받을 처벌을 두려워 하는데
安有守令偃然在官。(안유수령언연재관) 어찌 수령이 관청에 편안히 누워 있다가
移書責之。責之不聽。(이서책지 책지불청) 편지를 보내 질책하고 질책을 듣지않은
然後身自馳往力贊之理乎。(연후신자치왕역찬지리호) 뒤에 몸소 말을 달려 찾아가서 힘써 주장했을 리가 있겠는가?
其時舜臣與諸將。(기시순신여제장) 그 당시에 이순신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齊會于南別館。(제회우남별관) 남별관에 모였는데
諸將爭言賊勢鴟張。(제장쟁언적세저장) 여러 장수들이 다투어 말하기를 적의 위세가 등등하여
決不可當(결불가당)。결코 대적할 수 없으니
不如固守前洋。以觀其變。(불여고수전양 이관기변) 앞바다를 굳게 지키면서 관망하만 같지 못합니다 하였다
舜臣猶豫之除。(순신유예지제) 이순신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鹿島萬戶鄭運。(녹도만호정운) 녹도 만호 정운이
按劍而前。放聲大哭。(안검이전 방성대곡)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가 목놓아 통곡하면서
勸舜臣出戰。(권순신출전) 아순신에게 출전할 것을 권하고
自請爲先鋒。聲色俱厲。(자청위선봉 성색구여)) 스스로 선봉이 될 것을 청하였는데 목소리나 낯빛이 모두 사나웠다.
舜臣用其計。(순신용기계) 이순신이 그 계책을 수용하고
卽日發船。(즉일발선) 그날로 전함을 발진시키니
諸將皆曰。倭不足畏。(제장개왈 왜부족외) 여러 장수들이 모두 말하기를 왜적은 두려운게 없으나
而鄭運之目可畏。(이정운지목가외) 정운의 눈이 무섭다
若使倭皆如鄭運。(약사왜개여정운) 만약 왜적이 모두 정운과 같다면
則吾輩終不得一倭而死。(칙오배종부득이왜이사) 우리들은 끝내 한 명의 왜적도 잡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相與憤罵云。(상여분매운) 하며 서로 분통을 터뜨려 꾸짖었다 한다
然則起舜臣者乃鄭運。(연칙기순신자내정운) 그렇다면 이순신을 일으킨 자는 곧 정운이요
而非後與泳潭也明矣。(이비후여영담야명의) 권준과 어영담이 아님은 부녕하다
厥後丙午年間。(궐후병오년간) 그 후 병오년(선조39, 1606)간에
白沙撰舜臣碑銘及遺事。(백사찬순신비명급유사) 백사는 이순신의 비명과 유사를 지으면서
乃曰公會諸將計事。(내왈공회제장계사) 말하기를 공은 여러 장수를 모아놓고 계획할 때
鹿島萬戶鄭運及公軍官宋希立奮。(녹도만호정운급공군관송희립분) 녹도 만호 정운과 군관 송희립이 분발하여
願以死自效。辭語慷慨。(원이사자효 사어강개) 죽기를 자청하고 비분강개하게 말하니
公大悅。領水軍下海云。(공대열 영수군하해운) 공이 크게 기뻐하여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내려갔다. 하였다
則前日之俊與泳潭。(즉전일지준여영담) 그렇다면 전일의 권준과 여영담이
今變爲運與希立。何也。(금변위운여희립,하야) 지금에는 정운과 송희립으로 변했으니 어찌된 일인가?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러한가?
變初。俊聞訛言。(변초,준문와언) 변란 초에 권준은 거짓 소문을 듣고
以爲國事無復可爲。(이위국사무복가위) 국사를 다시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여겨
自水營陰遣人與心腹品官及下吏輩。(자수영견인여심복품관급하리배) 수영에서 은밀히 사람을 보내 심복 품관 및 하리배와 더불어
公然出官穀八百餘石。(공연출관곡팔백여석) 공공연히 관곡 팔백여 섬을 빼네
分載二船。爲逃避之計。(분재이선 위도피지계) 배 두척에 나누어 싣고 도피할 계획을 세웠다.
余於是時。(여어시시) 내가 이때
以募義兵事往本府。(이모의병사왕본부) 의병을 모집하는 일로 본부(순천부)에 갔다가
目覩其事。痛之切骨。(목도기사 통지절골) 그 일을 목도하고 뼈에 사무치게 통분하여
卽以其狀爲別紙。(즉이기장위별지) 즉시 그 정상을 별지에 적어
陳書于行朝大臣。(진서우행조대신) 행조의 대신에게 글로 아뢰었다.
而持書者適本府人。(이지서자적본부인) 그러나 편지를 가지고 간자가 마침 본부의 사람이었는데
中途開緘。拔去別紙。(중도개함 발거별지)중도에 편지를 뜯고 별지를 빼어내 버려서
使俊罪不得暴揚於當時。(사준죄불득폭양어당시) 권준의 죄를 당시에 들춰낼 수 없게 되었으니
余所最恨者。(여소최한자) 나는 이를 가장 한스러워하고 있다.
況射殺賊將竺前守。(황사살적장축전수) 더구나 축전수를 사살하여
手斬其頭者(수참기두자)。그 머리를 벤 자가
興陽武人陳武晟也。(흥양무인진무성야) 흥양(지금의 고흥)의 무인 진무성인데
而俊以中軍將 奪爲己功。(이준이중군장 탈이기공) 권준은 중군장의 신분으로 이를 빼앗아 자신의 공으로 삼았다.
俊之無狀。至於如此。(준자무장 지어여차) 권준의 볼품없는 짓이 여기에 이르렀다면
則移書力贊。칙이서역찬) 편지를 보내 힘껏 주장한 일은
決非俊輩之所能爲也。(결비준배지소능위야) 결코 권준같은 무리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o 白沙又曰。(백사우왈) 백사는 또 말하기를
守城之功。(수성지공) 성을 지킨 공에 대해
世人獨稱延安李廷馣。(세인독칭연안이정암) 새상 사람들이 연안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이정암만을 일컫고
不及晉州金時敏。(불급진주김시민) 진주에서 순절한 김시민을 언급하지 않으니
此亦倒置。(역차도치) 이 또한 도치된 것이다.
廷馣之功。固可嘉奬。(정암지공 고가가장) 이정암의 공은 참으로 칭찬하고 장려할만 하지만
至與時敏竝論。(지여시민병론) 김시민과 나란히 논한다면
則亦不無差等。(즉역불무차등) 또한 차등이 없지 않다.
而兵不滿萬。(이병불만만) (대개 이정암이 대적한 자는 흑전장정인데) 적병이 채 만 명도 되지 않았고,
廷馣所領。又過數千 (정암소령 우과수천) 정암이 이끈 병사는 또한 수천 명이 넘었다.
時敏只率所領而援兵甚小。(시민지솔소령이원병심소) 그러나 김시민은 단지 거느리던 군사만 있었고 원병도 매우 적은데다
所敵者行長。(소적자행장) 상대했던 적은 소서행장으로
而賊兵之數。不可以十數萬計。(이적병지수 불가이십수만계) 적병의 수는 십수만 명이 넘었으니,
而至與延安等而比之。(이지여연안등이비지 ) 연안과 대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亦非定論云云。(역비정론운운) 또한 정론이 아니다 하였다.
白沙此言。其亦誤矣。(백사차언 기역오의) 백사의 이 말은 또한 잘못되었다.
變初。賊自釜,萊長驅北上。(변초 적자부 래장구북상 ) 변란 초기에 왜적은 부산과 동래로부터 승승장구 북상하여
留屯嶺南者。不過數萬 (유둔영남자。불과수만) 영남에 주둔한 자가 수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而晉州以東傍邑之賊。僅數千。(이진주이동방읍지적 근수천) 진주 동쪽에 인근 읍의 왜적이 겨우 수천 명이었으며
晉州以西至湖南。時未被兵。(진주이서지호남 시미피병) 진주 서쪽으로부터 호남까지는 당시에 아직 병화를 입지않아
列邑官軍。處處出沒。(열읍관군 처처출물) 여러 소을의 관군들이 곳곳에서 출몰하였다.
李舜臣領舟師。(이순신영주사) 이순신이 수군을 이끌고
雄據閒山。聲勢甚張。(웅거한산 성세심장) 한산도에 웅거하여 위세를 크게 떨치니
且其時。賊兵不久退去矣。(차기시 적병불구퇴거의) 또 그때 적병은 오래지 않아 퇴각하였다.
余姨本州居鄭維敬。(여이본주거정유경) 나의 이종사촌으로 본주(진주)에 사는 정유경이
同時敏入城。力戰有功者。(동시민입성 역전유공자) 김시민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힘써 싸운 공을 세웠는데
嘗爲余言此事。(상위여언차사) 일찍이 나에게 이 일을 말해 주었으니
白沙之道聽。(백사지도청) 백사가 길에서 들은 것과
豈若吾親聞於維敬者乎。(기약오친문어유경자호) 내가 친히 정유경에게 들은 것과 어찌 같겠는가?
況平行長。 (황평행장) 더구나 평행장(소서행장)은
當初與玄蘇,平義智,平調信等。 (당초여현소 평의지 평조신등) 당초에 현소, 평의지, 평조신 등과
直指京城。因向平壤。(직지경성 ,인향평양) 곧바로 서울을 거쳐 평양으로 향했다가
癸巳正月。(계사정월) 계사년 정월에
爲李提督所敗。(위이제독소패) 이 제독(이여송)에게 패하였다.
四月。與天將講和。(사월,여천장강화) 4월에 명나라 장수와 강화를 맺으니
京城及諸道之賊。(경성급제도지적) 서울과 여러 도의 왜적들은
皆退屯嶺南。(개퇴둔영남) 모두 퇴각하여 영남에 주둔하였다.
而時敏之戰。(이시민지전) 그런데 김시민의 전투는
乃壬辰夏秋之交也。(내임진하추지교야) 곧 임진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있었다.
則行長一身。分而爲二。(즉행장일신 분위위이) 그렇다면 평행장의 한 몸이 둘로 나뉘어
一在平壤。一在嶺南耶。(일재평양 일재영남야) 하나는 평양에 있고 하나는 영남에 있었 것인가?
且圍一邑之賊。(차위일읍지적) 또 한 읍을 포위한 적병을
不可以十數萬計。(불가이십수만계) 10여만 명으로 셀 수가 없다고 한다면
則彼分布諸道者。(즉피분포제도자) 여러 도에 분포한 적은
當不知其幾千萬億。(당부지기기천만억) 몇 천만 명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白沙之不思。其亦甚矣。(백사지불사 기역심의) 백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바가 또한 심하다.
至於延安。處於平陸。四面受敵。(지어연안 처어평륙 사면수적) 연안은 평평한 육지에 자리잡아 사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으니
非晉州天險之比。(비진주천험지비) 천험의 요새인 진주와 견줄 수 없었다.
海西一路。賊兵彌滿。更出迭入。(해서일로 적병미만 갱출질입) 해서의 한 길은 적병이 가득하여 빈번히 나들었고
至與賊將景隆。移書往復. 曠日持久。(지여적장경륭 。이서왕복 광일지구) 적장 경륭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여러 날을 견디어냈다.
且其時海西人民。太半附賊。(차기시해서인민 태반부적) 또 그 당시 해서의 백성들 태반이 적에게 붙어
或縛執奉命使臣。(혹박집봉명사신) 혹자는 어명을 받든 사신을 포박하였고
或持牛酒餉賊者。(혹지우주향적자) 혹자는 소와 술을 가지고 적병에게 향응하느라
絡繹於道。(낙석어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니
其勢之難。有倍於晉州。(기세지난 유배어진주) 그 형세의 어려움이 곱절이나 더했다.
而白沙以爲不可與等而比之。(이백사이위불가여등이비지) 그런대도 백사는 대등하게 견줄 수 없다고 하니
定論果如是乎。(정론과여시호) 정론이 과연 이와 같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