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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오랜 회원이었던 차재희 시인께서 별세하셨습니다. 깊은 애도를 표하며, 물빛문학동인으로 근조 화환을 보냈으며 몇 분이 조문 가기로 했습니다.
* 일시: 2025년 10월 28일(화), 19:00~21:00 T그룹 전화 토론
* 참석: 이진흥 선생님, 강명자, 고미현, 곽미숙, 김용순, 박수하, 박유경, 배정향, 이규석, 이자, 전영숙, 정정지, 박경화
* 토론 작품: (작품 평은 ‘작품 토론방’ 참고)
1. 꽃길: 이규석
2. 땅에 묻다: 곽미숙
3. 유리바닥길: 강명자
4. 긴 이별: 전영숙
5. 소리의 오독: 이자
6. 흰수염고래와 나: 박수하
7. 길, 가지 못한: 배정향
8. 정확하네라는 말을 들었다: 김용순
9. 막장, 황금 새장: 박경화
*
차재희 시인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봄을 기다리며
차재희
바람은 겨우내 내 안에
무엇을 심었나 보다
허락한 적 없는데도
제멋대로 들어앉아
반란을 일으킨다
어떻게 할까 햇볕에 태워볼까
잠재울 수 없다면
연둣빛 싹이라도 올려야겠다
*
어제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의 날이었다.
연구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낯선 전화번호로 부고가 왔고, 물빛 회원이었던 차재희 시인님이 별세하신 것이었다. 최근에 소식을 알고자 애쓰다 포기하던 중에 받은 소식이라 더욱 가슴 아팠다.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뵙고 손잡지 못한 채 떠나보내는 것이 너무 죄송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받은 부고라서 마음 놓고 울 수 있어 차라리 고마웠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 몇 번 뵈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어떤 말도 하지 못하시던 모습에 울고 싶은 것을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졌다.
함께 공부하던 시, 부르던 민요, 봉사하던 편지 활동 등이 차례로 떠오르고, 마지막에 민요와 편지 모임에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 가장 눈물겹다.
어느 날, 뭔가 이상한 느낌으로 예전 같지 않던 차여사님은 시간이나 방향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고 밖에 나오시면 길을 잃을까 봐 걱정되어 함께 활동하던 곳을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척 서운했을 것이지만 나로서는 차여사님을 지키고자 하는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참으로 순수하고 강직하며 진실하셨던 분, 겁이 많고 정이 많고 오직 바르기만 하셨던 분, 시를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셨던 분, 깊은 불심으로 만사를 곱고 긍정적으로 보셨던 분, 하나를 받으면 두 개, 세 개를 주시며 가진 것은 나누어야 편했던 분, 김치를 담그거나 참기름을 짜면 동생에게 주듯 내게도 꼭 건네시던 분, 목청이 좋아 찬불가와 민요를 잘 부르시던 분, 꾸밀 줄 모르는 있는 그대로 소박하셨던 분, 댁에 가면 정갈하고도 맑은 향내가 나도록 해놓고 살던 분.
나의 친정어머님과도 자주 만나 이야기 나누었고, 나와 친했던 은자 형님과는 친구처럼 지내셨다. 늘 소식을 묻는 그분들에게 나는 이 부고를 미룰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차여사님의 주소가 하늘나라로 바뀌었다고 전할 것이다.
돌아보니 함께 다닌 날들은 모두 웃음꽃이었고, 사랑꽃이었다. 온통 받기만 했었고 해 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토록 이기적인 나를 동생처럼 여기며 말없이 함께해 주셨던 것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걱정되어 연구실에 못 나오게 하자 어리숙하고도 의아하게 바라보시던 크고 순한 눈망울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그 무뚝뚝하면서도 매사에 진지하던 목소리가 벌써 너무 그립다. 이제 영 들을 수 없는 그 순진한 목소리···.
차여사님의 시 ‘봄을 기다리며’를 폰에 저장해 놓고 병이 낫기를 기다렸는데, 이 세상에서의 병은 다 낫고 이제 더 좋은 하늘나라에서 향기로운 꽃들과 시를 읊고 노래하기 위해 소풍 가셔서 행복하실 것이다.
*
죽은 소나무
허연
나는 무엇을 보고 흔들리는 걸까
죽은 소나무
그 끝에 붉게 달려 있는 솔방울
그 끝의 바람
혹은 새
아니다 나는 죽은 소나무가 가져온
기억에 흔들리고 있다
해 뜨는 쪽이 아닌 곳으로
팔을 뻗었던 소나무가 있었다
그게 운명이었는지 실수였는지
저항이었는지 모르지만
소나무는 죽었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은 많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도 저 소나무는
죽어서 십년을 간다
그 자리에서
죽은 소나무들이 자유로운
그 비탈에 서 있었다
*
흙이 있어 꽃이 자란 걸/ 이제야 보았네 (이규석 시 ‘꽃길’ 중)
지난주에 봉사하는 분의 요청으로 영덕 별파랑공원에 진달래를 심으러 갔다. 좋아하는 ‘진달래’에 마음이 움직여 따라갔는데 많은 것을 느끼게 된 하루였다. 지난봄 산불화재로 민둥산이 된 곳에 꽃이나 나무를 심는 행사였고, 많은 사람들이 봉사하며 참여하고 있었다.
산불이 나면 그 안타까움을 뉴스로 지켜보기만 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복구하는 모습을 보니 사람 사는 세상이 이래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소나무를 바라보며 진달래를 심고, 또 어느 날에는 꽃길이 된 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검은색 운동화에 꽃을 잔뜩 그려 넣고 그 신발을 신고 가는 곳은 어디나 꽃길이라고 한 적 있다. 꽃길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드는 것.
*
봉지 여니/ 양파가 집이 떠나갈 듯 운다 (곽미숙 시 ‘땅에 묻다’ 중)
주택에 살 때 지하실에 감자 한 박스를 갖다 놓고 잊어버린 적 있다. 몇 달 후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뭔가 수북이 자라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는데 감자가 제 살의 물기로 싹을 키워 줄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고요한 외침을 이 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한 듯했지만 엄청난 힘으로 서서 나를 노려보는 것 같던 누루죽죽하던 줄기들. 그것들이 어제는 양파가 되어 또 나를 부르는 느낌이었다. 힘없는 것들의 마지막 부활 같은 오싹하고도 신선한 발상의 시였다.
*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허연
어차피 나는
더 나은 일을 알지 못하므로
강물이 내게 어떤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강물이 내게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다
한 번도 서러워하지 않은 채
강물이 하는 일을 지켜본다
나는 오직 강물에만 집중하고
강물에만 눈물이 난다
저 천년의 행진이 서럽지 않은 건
한 번도 되돌아간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를 지나온 강물에게
내력을 묻지 않는다
모두 이미 섞인 것들이고
이미 지나켜버린 것들이고
강변에선
묻지 않는 것만이 미덕이니까
강물 앞에서 나는 기억일 뿐이다
부정확한 시계공이 가끔 있었고
뜻하지 않은 재회가 있기도 하지만
강물의 행진은
이유를 묻지 않은 채 계속된다
강물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
한 번도 서럽지 않다는 것
내가 기억이 된다는 것
*
24시 해장국
허연
중력이 없는 곳에서 울고 있다는 느낌
스쳐 가는 생각들
순서 없이 파고드는데
시가 아닌 건 없다. 잠들기 다 틀린 새벽
아무것도 남지 않고 시가 남았다.
한기가 심장까지 들어왔떤
비바크의 날들과.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운 없었던 친구들이
순서 없이 시로 온다.
유리창 가득 성애 낀 24시 해장국집은
영하 13도짜리 먼 나라
입김으로 흘러나온 경전들은
희게 희게 하늘로 간다.
말줄임표가 많은 해장국집
용케 시동이 걸리 첫차는 용역들을 태우고
태엽 장난감처럼
위태롭게 멀어졌다.
기대했던 걸 내려놓았다. 새벽에.
*
시를 쓴다는 건/ 유리바닥 위를 걷는 일 (강명자 시 ‘유리바닥 길’ 중에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다리 위에서 투명한 구간이 무서워 걷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얼빵(어벙)했던 내가 떠오른다. 투명한 그 바닥에서 아득한 아래를 보며 마치 벼랑에 서 있는 느낌이었는데 한 발만 내디디면 곧 떨어질 것 같아 후들거리던 내 다리를 내가 조절하지 못했었다.
시인들이라면 한 단어, 한 행, 한 연을 쓰는 일이 때로는 피를 말리듯 어렵고 조심스러울 때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시에서뿐만 아니라 사는 일 자체가 유리 바닥이나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흘러서 그렇지 어찌 보면 삶은 아슬아슬함의 연속이며 돌발상황을 품고 있는 화약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 지극히 감사할 일인 것이다. 시멘트 돌다리라 해도 유리 바닥인 듯 조심히 걸으며 살 일이기도 하다.
*
누구도 그가 아니니까
허연
누구도 그가 아니고
그와 비슷하지도 않으니까
일터에 간 자식이 돌아오지 않거나
수학여행 간 자식이 오지 않은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말을 걸 수 없을 테고
눈을 볼 수 없을 텐데
밥 먹고
게임하고
늦잠 자는 것도 볼 수 없을 텐데
그건 어떤 걸까
어느 한쪽 편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겠지
왜냐면
그가 답을 안 하는 걸 테니까
답이 없는 건
냄새도 소리도 웃음도 없는 거니까
그를 되돌려놓을 수 없는 거니까
몇 날 며칠 바닥을 구르고
몇 끼를 굶고 잠을 안 자도
그는 오지 않는 거니까
부르면 대받해주던
그가 오지 않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가슴이 온통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리니까
두 다리로 설 수도 없을 테니까
누구도 그가 아니고
그와 비슷하지도 않으니까
*
시어들
허연
말들이 아팠고 말들이 거지였고 말들이 광장이었다
연못이 있었고
PC방이 있었고
이별이 있었고
역병이 있었다
미끄럼틀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고
버스가 있었고
포플러가 있었다
말들이 있었고 말들이 날아다녔다
말들이 얼어붙고 말들이 묻혔고 말들이 발견됐다
말들이 지쳤고 말들이 괴물이었고 말들이 죽었다
기다림이 말을 먹고
바람이 말을 먹고
처형이 있었다
*
신도 손 쓸 수 없는 순간이 너무 많은 이곳/ 슬픔이 잡초처럼 무성하다 (전영숙 시 ‘긴 이별’ 중)
신이 있다고 믿는다면 완벽하게 그를 믿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신마저 손 쓸 수 없다면 그는 신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허다한 세상인가. 우리의 믿음을 단숨에 꺾어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무수한 세상인가. 그래도 신을 믿어야 한다. 그 허무한 기대마저, 그 꺾어진 믿음마저 신이 주는 것이다. 그 일을 통해 또 다른 기대와 믿음을 더 깊이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이 이미 다 만들어서 펼쳐놓은 프로그램 같기 때문이다. 너무 억지 같은 생각인가?
신이 없다고 생각하기엔 세상은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다. 사람마저 자연 속 일부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나야말로 신이 손 쓸 수 없는 순간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자연의 일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허연
빼다 박은 아이 따위 꿈꾸지 않기. 소식에 놀라지 않기. 어쨌든 거룩해지지 않기. 상대의 문장 속에서 죽지 않기.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연습을 하자. 언제 커피 한잔하자는 말처럼 쉽고 편하게, 그리고 불타오르지 않기.
혹 시간이 맞거든 연차를 내고
시골 성당에 가서 커다란 나무 밑에 앉는 거야. 촛불도 켜고
명란파스타를 먹고 헤어지는 거지. 그날 이후는 궁금해하지 않기고.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 돼.
중독되면
누가 더 오래 살까? 이런 거 걱정해야 하잖아.
뻔해,
우리보다 융자받은 집이 더 오래 남을 텐데.
가끔 기도는 할게. 그대의 슬픈 내력이 그대의 생을 엄습하지 않기를. 나보다 그대가 덜 불운하기를, 그대 기록 속에 내가 없기를.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말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너무 많은 길을 가리키고 서 있는 표지판과
너무 많은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새들과
너무 많은 바다로 가는 배들과
너무 많은 돌멩이들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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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꽃잎이 피었다가/ 잠깐만에 지는 소리 (이자 시 ‘소리의 오독’)
꽃 피는 소리가 있다면 아마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사시사철 오나가나 귀를 틀어막고 인상을 찌푸리며 예민해져 서로 싸우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한 번쯤은 꽃들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피는 소리와 지는 소리도 다르겠지. 무슨 말로 자신을 표현하며 어떤 소리로 이 세상을 노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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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우주 속으로 들어가고/ 우주는 내 안에 불을 켜 준다 (박수하 시 ‘흰수염고래와 나’ 중에서)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 우주 속에서 나도 하나의 별이 되어 이미 불 켜져 있다. 나는 어떤 힘으로 어떻게 나를 밝히며 이 우주를 빛나게 할 수 있을까? 우주까지 빛나게 하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만이라도 밝혀, 별 하나로서의 역할이라도 충실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자리에서, 나만의 빛을 뿜으며 조요히 스러질 때까지···.
*
이장
허연
뼈의 입장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다가
이미 알고 있었던 일들이
나를 놀라게 한다는 걸 알았다
모든 예상된 일은
예상치 않게 나를 흔든다
물론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뼈가 됐다는 걸
나는 이장을 후회할 수 없다
다 예상했었고
모든 충격은 파도처럼 왔다 가니까
결심은 파도가 오기 전에 하는 거니까
파도가 가면 후회만 하면 되니까
무덤만 보고 사는 게 의미 없어서
뜨겁게 달려오곤 했던
그리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밋밋해지고 식는 게
스스로 창피해서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결심을 하고
어머니를 꺼냈고
다시 만났는데
그녀를 생각만 하다가
이제는 그녀의 뼈를 보는 일
뼈와 처지가 같아져버린
어머니를 보는 일
잠깐 무섭다가
부질없는 바람 탓을 하다가
이 커다란 동산에 뼈로 남은
무수한 존재들을 생각하다가
그나마 뼈로 지탱해준 기억들에게 감사하다가
산을 내려간다
*
더 멀리 더 작은 알몸으로/가장 하늘 가까이 가는/낙타를 생각하라고 (배정향 시 ‘길, 가지 못한’ 중에서)
이 시를 읽으니 101세 시어머님이 연상되었다. 고요히 누우셔서 가장 가볍게, 가장 맑은 몸으로 하늘 향해 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나쁜 일도, 못된 일도 하지 않는 아기 같은 순수함으로 하늘 부름을 기다리고 계시는 어머님. 언젠가 정신이 맑으실 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주님 아버지를 따르며 살았는데 천국에 가면 상은 못 받더라도 매는 맞지 않겠제?”라고 나에게 물으셨다. 수줍게 미소 지으며 주님 아버지와 매일매일을 함께했던 어머님, 그 순한 양처럼 따르던 믿음을 주님께서 어찌 저버리시겠는가! 가장 따듯한 품으로 맞이하실 것이다.
*
낯선 그녀의 말이 공연히 마음에 남아/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김용순 시 ‘정확하네라는 말을 들었다’ 중에서)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가 마치 나의 분신 혹은 전생이나 미래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들은 깨어진 거울 조각처럼, 퍼즐처럼 내가 볼 수 없는 내 모습의 일부를 보여줄 때가 있다. 만나는 모든 것이 그렇게 하나의 퍼즐이 되어 나를 완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함께 공부하는 시인들, 소리하는 분들에게까지 나는 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할 때가 더 많지만.
사는 일, 만나는 일이며 버티고 견디는 일이다. 주고받는 일이다. 나는 내 분신이나 과거, 미래일 수 있는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나 마나 슬픔이 아닌 사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
나야말로 몇 겹씩 포장된 막장 인생인 것을 말할 수 없었어 (박경화 시 ‘막장, 황금 새장’ 중에서)
나인 듯, 누구인 듯 다 고백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막장과 황금 새장, 포장지를 뚫고 새롭고 더 아름다운 시를 쓰러 나가보자. 세상은 더럽고 슬프면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다른 고백을 위해 읽고 쓰고, 쓰다가 죽고, 죽어서도 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