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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전
2019. 6. 향기 이영란
6월 현충일 즈음에는 항상 하동에 갔다. 산에 가서 매실을 따는 것이 주된 일이었는데, 매실 가격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는 제법 일이 많아서 온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식구들이 따온 매실을 저온 창고에서 분류하고 배송하기 위한 포장작업을 하곤 했다. 매실 값이 폭락하면서부터는 우리가 담아 먹을 매실만 따러가다가 이제는 아예 우리가 담아 먹을 매실도 이웃집에서 사서 시어머니가 택배로 부쳐오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동 일대와 하동과 접경지역인 광양에는 심어진 대부분의 나무가 매실나무인데 농산물은 물가인상률이 적혀 적용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의 사례가 되며 매실은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예가 된다. 매실을 따고 나서 항상 거치는 일정이 집 앞에 있는 감자줄기를 뽑아내고 흙을 뒤집어 감자를 캐는 일이었다. 감자 작황에 대한 품평회를 하면서 남편과 셋이서 해 치우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일하시면서 뱉는 어머니의 말의 리듬은 경쾌했고, 음성은 높고 기쁨이 섞여 있었다.
벼농사를 지었던 큰 논에는 커다란 하우스 3동이 자리하고 있는데, 수박을 길렀다가 취나물을 기르는 것으로 업종을 변경하였다. 결혼한 후 아이들을 낳았을 때 시부모님은 크고 잘 생긴 수박 2~3덩이를 안고 쇠고기를 사서 나를 보러 오셨다. 5월 초순부터 나오는 귀한 수박을 먹을 때 나와 남편은 맛을 알 수 없었다. 원래 팔기 위해 키우는 작물은 다른 방식의 먹을거리여서 키우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는 애당초 맛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1월부터 5월까지 생산해내는 취나물을 위해서는 1년의 시간이 통째로 걸리는 일이었다. 배추 장다리꽃이 피는 것처럼 취나물도 자라 꽃을 피우고 씨를 받고, 밭을 갈아 엎어서 씨를 틔우고 나서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나물이 자라났다.
감자를 기르는 밭은 크지 않지만 그 곳에도 작은 하우스 한 동이 있고 그 주변에는 고추, 가지, 오이, 호박, 감자, 부추, 고구마, 감나무 등 다양한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2~5,6모종씩만 심어도 한 여름을 보내고, 또 우리가 어쩌다 갈 때 먹을 수 있도록 싸서 보내는 양으로도 충분했다. 흙을 털어서 감자를 컨테이너 박스에 담을 때부터 어머님 댁에서 드실 것, 아이들이 어린 시동생 집에 보낼 것들, 그리고 건장한 우리 네 식구가 먹을 우리 집에서 먹을 것을 분류했다. 어머니의 일 동작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검붉은 흙이 길러내는 자연의 힘과 그것을 현명하게 다루는 어머니의 손길에 나는 경배의 마음을 느꼈다. 흙과 어머니의 손은 다름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는 곳은 모두 크고 잘생긴 열매를 맺었다. 어머니는 손을 대어야 할 때를 잘 알고 놓치지 않았고, 수확물을 싱싱하고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잘한 매실을 모아 약간의 주황 빛을 띨 때까지 두었다가 달콤한 맛이 나는 액기스를 담았고, 물커덩하게 씹히는 매실의 식감이 좋지 않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싸글싸글하게 씹히는 장아찌를 담는 법을 터득했다. 팔리지 않아 남아도는 대봉감을 깎아서 통 곶감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겨울날 시댁에 가면 처마 아래에서 주렁주렁 질서를 지켜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만져보고 물렁하게 익은 곶감을 떼서 아이들에게 주면 ‘맛이 있을 때 마이 무거라. 그만 할 때가 더 맛있는 기라’하며 좋아하셨다. 사실은 내가 먹고 싶어서 아이들을 앞세운 것이었다. 곶감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닌, 지리산 자락의 깊은 기운과 골짜기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과 어머니의 숭고한 노동을 함께 먹는 일이었다. 대봉감은 통곶감보다는 사실 감말랭이에 더 적당하다. 어마어마한 양의 감을 깎아서 이웃집의 건조기를 빌려 말리고 또 햇빛에 말려 마무리를 한 다음 자식들에게 싸 주셨다. 그 중에서 우리 가족은 감말랭이 소비의 가장 블랙홀이었고 나는 그 블랙홀의 중심이었다. 나는 그것을 학교에서, 혹은 주변 사람들과 조금씩 나눠 먹으며 내 것인 양 인심을 쓰고 생색을 내었다.
처음 결혼을 하고 시댁에 갔을 때 나는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작물들에 대한 감탄을 놓지 못했다. 앞의 모든 작물들과 고사리, 토란대, 토란, 죽순, 밤, 열무, 배추, 무, 차 등. 모든 현대문명이 사라진다 해도, 그 곳은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그 안도감이 내 생명연장에 대한 희망에서 비롯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명에 대한 동물적인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한다. 지리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고 강한 음기는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켰고, 깊고 긴 계곡을 타고 내려온 물은 아무리 가뭄이 심할 때에도 마르는 일 없이 풍족하게 흘렀다. 산의 능선 위로 빨리 져버리는 겨울해였지만 야박함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빨리 일을 마치고 저마다 집으로 들어와 저녁을 먹고 길고 긴 겨울밤을 보내며 동치미나 곶감을 먹었다. 겨울에도 지하수 물은 따뜻했고, 고방에는 고구마, 밤 싸라기, 고사리, 토란대, 무, 무 시래기 등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양식들이 많았다.
땅이 아닌 아파트 건물 위에서의 삶은 내게 언제나 까닭 모를 불안감을 동반하게 한다. 이러한 삶이 일시적인 일이라고 여기면서 살지만 그 일시의 기간은 대책없이 길어지고 있다. 그것은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와 선택의 문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지난 5월 초순경, 시어머니께서 감자를 한 박스 보내오셨다.
“어머님, 감자 잘 받았어요. 그런데 감자를 이렇게 일찍 캐셨어요?”
“아이라, 동네에 하우스에서 감자 키운 사람 걸 한 박스 사서 부쳤어. 빨리 먹어보라고. 알이 크고 실하니 좋더라. 잘 먹어라.”
어머니는 전화를 길게 하지 않는다. 용건만 말씀 하시고 끝! 그러나 꼭 하실 말씀이 있을 땐 전화를 해서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그것도 가리고 가려낸 용건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자식이라고 해서 어찌 일일이 다 말을 하겠으며, 자식이라고 부모 일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 감자를 계속 먹고 있다. 감자채 볶음, 감자 조림, 감자 멸치 볶음, 된장국이나 카레에 넣어서 먹기 등.
그 모든 걸 제쳐버릴 압도적인 레시피를 찾았는데 바로 감자전이다. 재료의 종류와 비율상으로 야채감자전 혹은 애호박감자전으로 부를 수 있다.
재료는 아주 간단하다. 감자, 애호박, 양파, 밀가루, 소금! 요즘 정말 많이 나오는 야채이고, 제철에만 느낄 수 있는 맛을 가득 품고 있다.
나만의 요리 순서이다.
1. 좋아하는 노래나 유투브 영상, 혹은 팟캐스트를 틀어서 싱크대 주변 적당한 곳에 놓는다. 나는 노래는 최백호의 것을 가장 즐겨 듣지만, 나의 주 영상은 계속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최진석교수의 새말 새몸짓이고, 어제는 요조와 장강명이 진행하는 ‘책! 이게 뭐라고’를 들었는데 김정운씨가 나와서 얼마나 낄낄대며 들었는지 모른다. 김정운씨는 요새 여수에서 배로 40분 걸리는 섬에서 미역(美力)창고를 만들어 자발적으로 선택한 외로움에 쩔어 산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 외로움을 담보로 생산해 낸 콘텐츠는 매력적이었다.
2. 감자 4~5개, 양파 중간 것 2개, 애호박은 중간 정도로 1개를 준비해서 다듬어 둔다. 우리 집엔 붉은 양파가 많아서 그걸로 쓴다. 아무거나 오케이. 냉장고에 조금 늙어?버린 애호박과 동그란 모양의 어린 호박을 써서 부쳐보았는데 그것도 맛을 전혀 떨어뜨리지 않았다.
3. 감자에 물을 조금 넣어 믹서기에 갈아 두고, 애호박과 양파는 채 썬다. 너무 가늘지 않게 썰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한다. 씹히는 맛도 있고 부쳤을 때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내 의견이다. 감자 간 것에 소금과 밀가루를 넣고 간을 맞춘다. 비율은 적당하게. 주의할 점은 애호박과 양파 채 썬 것은 전을 부칠 때 같이 보태는 것이 좋다. 미리 보태어서 반죽을 해 놓으면 야채에서 물이 나와서 감자의 쫀득한 식감이 떨어지고 축 처져버린 야채가 보기 싫다.
3. 감자반죽에 애호박과 양파를 부쳐 먹을 만큼 각각 덜어서 섞어준다. 이 때 재료를 양껏 넣자. 감자반죽은 보조역할 정도로 느껴질 만큼.
4. 달군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조금씩 덜어서 감자전을 구워낸다. 구워지는 모습이 무척 먹음직스럽다. 익어가는 동안 초간장을 준비해 둔다.
5. 널찍한 접시에 예쁘게 담아낸다. 싱크대에 난장판이 된 그릇을 정리하고 먹거나 혹은 그 순서를 바꾸어도 상관은 없다. 나는 점심으로 감자전을 먹고 설거지하고 정리했다.
나는 좀 더 생생한 느낌을 가져보고자 글을 쓰는 도중에 감자전 재료를 준비하고 구워 먹고 나서 다시 책상에 앉아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애호박과 양파가 부드럽게 씹힐 때 감자가 받쳐주는 역할은 기막힌 환상의 조합이다. 햇빛과 바람과 달과 비의 기운을 맞으며 행복하게 자란 야채들은 나의 몸으로 들어가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또 작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감자전은 이런 음식을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6월은 감자전을 먹는 시간이다. 7월에도 해 먹고 그 맛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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