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마흔여덟 번째
오른쪽만 옳은가요?
어려서 왼손으로 밥을 먹다가 야단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오른쪽은 옳은, 바른쪽으로 이해했고, 왼쪽은 ‘비뚤어지거나 꼬이다. 편안하지 못한 상태로 꼬여 있다’라는 뜻의 ‘외다’에서 온 ‘왼’이기에 좋지 않게 여겼습니다. 지금은 왼손잡이라고 달리 보지 않지만, 전에는 편견이 심했습니다. 매우 이성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과학자들도 편견이 심하답니다. 1961년 피터 미첼은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지만, 10년 가까이 그의 이론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답니다. 그런데 1978년 살아 있는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화학삼투이론을 체계화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막스 플랑크의 말을 인용했답니다. “새로운 과학 개념은 반대자들이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죽기 때문에 정착된다.” 얼마나 편견이 심한지 알 것 같습니다. 편견을 버리려면 공자가 하지 않은 네 가지, ‘절사絶四’를 배우라고 합니다.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입니다. 의意는 사의私意, 사견私見으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겁니다. 필必은 반드시 해야겠다는, 자기주장을 기필코 관철하려 하지 말라는 겁니다. 고固는 융통성 없는 고집을 버리라고 합니다.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아我는 나만을 생각하는 아집에 빠지지 말고 나를 비우고, 욕심을 버리랍니다. 대학 강의실 책걸상이 오른손잡이에게만 편하도록 만들어져 왼손잡이는 글쓰기가 매우 불편할 때였습니다. 어느 대학 총장이 강의실을 둘러보다가 한 학생이 몹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실태를 파악해 왼손잡이용 책걸상을 배치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 적이 있었습니다. 편견을 버리고 다양성을 품어 안을 때 사회가 안정된다는 걸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