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원운계청풍김공담묘
生員 雲溪淸風金公澹墓
배유인강릉김씨 별조
配孺人江陵金氏 別兆
휘 : 담(澹)
자 : 명중(明仲)
호 : 운계(雲溪)
생 : 1640 ~ 1683.02.22
공의 휘는 담(澹)이고 자는 명중(明中)이고 호(號)는 운계(雲溪)이다.
우리 김씨의 계출은 청풍이고, 고려조에서 문하시중에 올라 청성부원군에 피봉 된 뒤, 휘 대유(大猷)가 시조이시다. 이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이 끊이지 않으니, 그의 성이 동방에 빛나는 가문이 되었다. 이조 중엽에 들어와서는 휘 관(灌)이 있어서, 호조참의에 오르고 증직이 의정부좌찬성이었고, 휘 의지(義之)는 한성부윤을 지내셨으며, 휘 우증(友曾)은 정주목사를 지내시고 병조판서에 증직이 되시어 청평군에 봉작이 되며, 불천위를 받고 왕림의 입향조가 되셨다.
고조부의 휘는 여광(汝光)이고 대호군의 지냈으며, 증조부의 휘는 계(繼)이고 학행이 탁월 하셨으므로, 그 이름이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신라에서 조선 선조 때까지 유학자들의 사우 관계를 정리한 책)에 올라 있으며 증직은 사헌부집의이다. 조부의 휘는 인백(仁伯)이고 학행이 고매하였으며 증직은 이조판서이다.
고의 휘는 극형(克亨)이고, 젊어서 잠야 박선생(潛冶 朴先生 : 박지계(朴知誡)의 호)을 섬겨가며 도덕과 학문을 배웠으니, 사우들 간에 존중되는 분이었고 호를 사천(沙川)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이 사천선생이라 하였으며 벼슬은 공조정랑을 지냈고, 증직은 의정부좌찬성이다.
사천공의 비문을 지은 분은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선생 문순공(文純公)이다.
어머님은 청송심씨이고 증 정경부인으로 동지중추부사인, 휘 대해(大瀣)의 따님인데 얌전하며 정직한 그 부덕을 모든 친척들이 칭찬하였다.
공은 경진년(1640인조18년)에 찬성공의 둘째 아드님으로 태어났다. 36세 되시던해에 1675 성균관 사마시 합격하시고 8년 뒤에 졸하시니, 아! 애통하도다 남아로서 뜻을 펼치지 못함은 하늘의 뜻임을 어찌 막을 수가 있더냐.
배위는 강릉김씨이시고 아버지 광의 따님이시고, 할아버지는 돈령부정을 지내신 우엄이시다. 생년과 졸년은 알지 못하고 제일은 02월17일 이시다.
생전에 따님만 세분 두셨는데 첫째딸은 전주인 이우희이고, 둘째딸은 무과에 등재한 전주인 이명진이며, 셋째딸은 이세은에게 시집 갔다.
아들이 없어서 사후에 심암공(막내아우) 휘 견(涀)의 셋째 아들을 계자로 삼았다.
아들 희는 1685년 태여나고 1742년에 졸하였으며, 묘소는 불당곡에 있다.
원 배위는 전주이씨 정랑 운대의 따님이고 묘소는 과천에 있다.
후 배위는 전주이씨 제년의 따님이시고, 두분의 묘소는 불당곡에 합장되었으나 현재는 유실되었다.
삼 배위는 홍천이씨 매성의 따님이시고, 묘소는 유실되어 위치를 알지 못한다.
삼 배위에서는 소생한 자식이 없다.
후일에 나타난 사 배위는 원주이씨 강연의 따님이시며, 묘소는 홍천군 서석면 장암곡 오좌이고, 이분의 소생이 평로 이시다.
아들 희는 배위를 네분이나 맞이 하셨지만 자녀는 아들 평로(1738~1786)와 원로로 계보를 이으셨다.
공의 묘소는 의왕시 왕곡동 산22-3 갈산 서북편 있으며, 배위 강릉김씨의 묘소는 의왕시 왕곡동 불당골 있다고 하지만 현재로는 찾을길이 없어서 후손된 입장에서 묘표에 별조라 쓰고 같이 전작을 하기 위함이다.
공이 돌아가신지 343년만에 청풍김씨판서공휘인백파종회에서 묘표를 마련하여 세우게 되었다.
2026년 4월 일립
11대 방손 만휴당공 후손 26세 상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