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중,교회,시립악대에 의한 음악
18세기 중엽 이전의 절대주의 왕정 시대에서 음악 행위는 일반적으로 세 기관에 의해 주도되었다.궁중,교회,시립악대가 바로 그것이다.음악가는 이러한 세 기관의 하나에 소속된‘고용인’이었다.이중에서 교회에 소속된 음악가는 때때로 궁중 또는 시립악대에 이중으로 소속되기도 했다. 궁중에서 개최된 이러한 음악회에서 군주나 귀족들은 아마추어 음악가로서 자신의 연주 기량을 발휘했다.청중은 그 음악회에 참석한 연주자들 자신이었다.고용인으로서의 작곡가나 연주가는 궁정 통치자의 주문에 따라 작곡하고 연주해야만 했다.예술인의 창작에 대한 자유의지는 통용되지 않은 것이다.말하자면 음악가들은 고용주의 요구에 의한 과제만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교회에 소속된 음악가들 역시 통제를 받았다.교회를 시청에서 주관했기 때문에 시청의 통제를 받은 것이다.칸토르(Kantor)로서의 음악가는 시립교회의 모든 예배를 위한 음악을 책임지며,정기적으로 칸타타,수난곡 등을 작곡해야만 했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에게는 음악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 계몽주의 사상으로 시민들의 의식 변화 시민들의 자의식 변화는 특히17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번지기 시작한‘계몽주의’사상의 영향이었다.이 사상은 그후 프랑스로 번졌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독일로 확대되었다.계몽주의 사상은 문화 영역을 비롯해 철학,신학,교육,법률 등 모든 부문에까지 침투되었다.이에 반비례하여 교회와 궁정의 영향력은 점차 힘을 잃어갔다.이러한 사회적 변혁기에 음악은 더이상 교회나 궁중이라는 특정 기관의 전유물이 될 수 없었다.점차 그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영향력이 커진 시민들은 그들의 문화적 향수를 위해 열심히 음악을 연주하고 연주회장을 방문했다. 이러한 가능성을 일반시민들에게 열어준 것이 첫째,독일어권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한 ‘콜레기움 무지쿰(Collegium musicum)’이다. ‘콜레기움 무지쿰’은 처음에는 폐쇄적인 영역에서 개최되었으나 곧바로 일반시민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공공연주회’로 발전하게 된다.
두번째 사적인 '음악연주모임(Musikkränze, Musikgesellschaft)’을 들 수 있다. 이 그룹 역시 처음에는 특정인들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후에는‘콜레기움 무지쿰’과 마찬가지로 그 수용 영역이 확대되어‘공공 연주회’로 발전하게 된다.그러니까 이 두 연주단체는 수십 년의 변화과정을 거쳐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시민을 위한‘공공 연주회’로 발전하여, ‘근대적인 연주회’의 초기 형태로서 그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 공공 연주회 프로그램 구성의 특징 18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공공 연주회’는19세기에 들어서 더욱 활성화된다. ‘공공 연주회’의 청중들은 사회적으로 불분명하게 정의되지만,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그 취향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청중들은 입장권을 구매한 대가로 나름대로 선호하는 음악을 듣고자 했다.각 연주회를 개최하는 비르투오소 또는 흥행업자(Agent)들은 이러한 청중들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왜냐하면,그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솔로 주자의 개런티,연주회장 대관료,선전비,세금 등의 연주회에 드는 일체의 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으며,따라서 연주회의 흥행 여부가 그들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연주회를 개최하는 비르투오소는 각 작품을 탁월하게 연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짧고 많은 곡들로 변화를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해야만 했다.이러한 프로그램 구성은 장르별 변화는 물론이고 음향적인 변화도 고려해야만 했다.즉,기악음악과 성악음악이 교대로 선보여져야 했다는 말이다. 당시의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 또 하나 언급할 점은 기악 작품,그중에서도 특히교향곡이 선호되었다는 점이다.당시의 분위기로는 기악 작품이 없는 연주회는 너무‘단조롭다’고 여겨졌으며,많은 청중들은 연주회의 개최자가 낯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교향곡 때문에 연주회에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한마디로 말해서,교향곡은‘입장권 대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장르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회를 개최하려는 자는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 교향곡을 우선순위로 고려해야만 했다.그 다음으로 인기 있던 장르는 기악 협주곡,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그런데,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그 임의성이다.즉,다양한 청중의 취향을 고려하여 한 음악회에서 가능한 한 많은 작곡가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오늘날의 연주 관행처럼-한 작품의 전 악장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그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한 악장씩만 발췌하여(예를 들어,교향곡의 제2악장,협주곡의 제3악장만 연주하는 식으로)연주하거나,또는 각 악장을 임의적으로 짜맞춰 구성하는 관행이 그것이다. <출처: 서양음악사100장면(2),pp.133~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