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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삼국지12회 – 마등의 의병과 조조의 분노
왕실을 위해 마등이 의병을 일으키고 부친의 복수를 하고자 조조가 군사를 일으키다.
이, 곽 두 도적이 헌제를 시해하려 하자 장제와 번조 간언한다.
"불가하오. 오늘 시해하면 뭇 사람이 복종하지 않을까 두렵소. 아직은 임금으로 모셔 제후를 속여입관 入關시킨 뒤 먼저 그 우익 羽翼[윗사람을 도와 일하는 사람]을 치고나서 황제를 시해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소."
이, 곽이 이를 따라 칼을 거둔다. 황제가 누상에서 선유한다.
"왕윤이 이미 죽었는데 군마 軍馬를 어찌 물리지 않으시오?"
이각과 곽사 말한다.
"신 등이 왕실에 공을 세웠는데 아직 벼슬을 받지 못 하니 감히 군사를 돌릴 수 없습니다."
"경은 어떤 벼슬을 바라시오?
이, 곽, 장, 번 넷이 각각 직함을 적어 헌상하여 이대로 관품 官品을 달라 졸라댄다. 황제가 할 수 없이 따르니 이각은 거기장군 車騎對軍 지양후 池陽侯 사예교위 司隸校尉 가절식 假節鉽이 된다. 곽사는 후장군 將軍 미양후 美陽侯 가절식이 되어 함께 조정 朝政을 장악한다. 번조는 우장군 右將軍 만년후 萬年侯가 되고 장제는 거기장군 평양후 平陽侯가 되어 병력을 거느리고 홍농 弘農에 주둔한다. 기타 이몽、왕방 등은 각각 교위 校尉가 된다.
그 뒤 성은 聖恩에 사례하고 병력을 거느리고 출성 出城한다. 또한 영을 내려 동탁의 시체를 찾아보니 살이 이즈러지고 뼈가 부러져 있으므로 향목 香木으로 몸뚱아리를 조각한 뒤 그 속에 안치하여 크게 제사를 지내는데 왕의 의관 衣冠과 관곽 棺槨을 쓰고 길일 吉日을 골라 미오 郿塢에 이장하려 한다. 장례할 때 하늘에서 크게 천둥 치고 비가 내려 평지는 수심 水深 몇 척이나 되고 벼락이 내리쳐 관을 쪼개니 시체가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각이 날이 개기를 기다려 다시 장례하지만 그날 밤에도 되풀이된다. 세 차례 다시 장례를 시도하나 모두 실패하고 이즈러진 살과 부러진 뼈가 모두 벼락불에 소멸된다. 하늘이 동탁에 노여워함이 정말 심하구나!
이각과 곽사가 대권을 잡은 뒤 백성에게 잔학하게 굴고 황제 좌우에 은밀히 심복을 두어 동정 動靜을 살피니 헌제가 이때 거동하는 것이 가시밭길이다. 조정 관원 모두 두 도적이 벼슬을 올리고 내린다. 주준에게 인망 人望이 있으므로 특별히 입조 入朝하도록 선유하여 태복 太僕에 봉하고 함께 조정을 다스린다.
어느날 서량 태수 마등 馬騰과 병주자사 并州刺史 한수 韓遂 두 장수가 군사 십여 만을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와 역적을 토벌하겠다고 성언聲言(선포)하는 것을 사람들이 알린다. 원래 두 장수는 일찍이 사람을 장안에 보내어 시중 마우 馬宇、간의대부 諫議大夫 종소 种邵、 좌중랑장 左中郎將 유범 劉範 세 사람과 내응 內應하여 적당 賊黨을 같이 도모하려 한 것이다. 세 사람이 몰래 헌제에게 상주 上奏하여 마등을 정서장군 征西將軍、한수를 진서장군 鎮西將軍으로 삼고 각각 밀조 密詔를 받고 힘을 합쳐 토적 討賊한다. 이각, 곽사, 장제, 번조가 두 장수의 진격을 듣자마자 함께 대책을 상의한다. 모사 가후가 말한다.
"두 군대가 멀리서 오니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견고히 수비하여 막아야 합니다. 백일 百日이 못 돼 군량이 소진되어 반드시 자퇴 自退할테니 그 뒤 병력으로써 추격하면 두 장수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몽과 왕방 튀어나와 말한다.
"이건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정병 精兵 만인을 주시면 마등과 한수의 머리를 베어 휘하 麾下에 바치겠습니다."
가후가 말한다.
"이제 바로 싸우면 반드시 패합니다."
이몽과 왕방이 입 모아 말한다.
"만약 저희 둘이 패하면 참수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이기면 공께서도 수급 首級을 저희에게 주셔야 하오."
가후가 이각과 곽사에게 말한다.
"장안 서쪽 이백 리에 주질산 盩厔山이 있는데 길이 험준하니 장제와 번조 두 장군을 여기에 주둔시켜 견고한 수비 태세를 갖추면 그 뒤 이몽과 왕방이 병력을 이끌고 싸워도 됩니다."
이각과 곽사가 이를 따라 군사 1만 5천을 뽑아 이몽과 왕방에게 준다. 둘이 기뻐하며 장안 2백8십 리 밖에 진을 친다.
서량병 西涼兵이 도착하자 두 사람이 군을 이끌고 맞선다. 서량 군마 軍馬가 길을 막고 포진한다. 마등,과한수가 말 고삐를 잡고 나가 이몽과 왕방을 손가락질하며 욕한다.
"국가에 반역한 도적놈들아! 누가 가서 잡아올테냐?"
말이 미처 끝나기 전 소년장군 少年將軍 하나 나오는데 얼굴은 관옥 冠玉 같고 눈은 유성 流星 같다. 호랑이 몸에 원숭이 팔이요 호랑이 배에 여우 허리다. 손에 장창 長鎗을 쥐고 준마 駿馬를 타고 나는듯이 출진한다. 원래 이 장수는 마등의 아들 마초 馬超로 자가 맹기 孟起,나이 막 십칠 세로 영용무적 英勇無敵이다. 왕방이 그 어린 것을 업신여겨 말 몰아 맞서 싸운다. 몇 합 안 돼 마초의 한 창에 찔려 떨어진다. 마초가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린다. 왕방이 찔려죽자 이몽이 홀로 말 달려 마초의 배후를 노린다. 마초가 미처 모르니 마등이 진문 아래에서 크게 소리친다.
"뒤에 누가 쫓아온다!"
소리가 끊어지기 전 마초가 이미 이몽을 사로잡아 말에 싣고 온다. 원래 마초가 이몽이 추격하는 것을 명지 明知하고 고의로 아연 俄延(느릿느릿)하게 가다가 그가 말 가까이 와서 창으로 찌르기를 기다려 마초가 번개같이 몸을 돌리니 이몽이 허공을 찌르고 두 말이 나란히 달릴 때 마초가 원숭이 팔을 펼쳐 사로잡아버렸다. 군사들이 주장 主將을 잃자 바람에 날리듯 달아난다. 마등과 한수가 기세를 타고 추격해 크게 승첩을 거둔 뒤 애구 隘口(험하고 좁은 길목/산길) 가까이 진을 치고 이몽을 참수하여 호령한다.
이각과 곽사가 이몽과 왕방 모두 마초에게 죽은 것을 들은 뒤 비로소 가후의 선견지명을 믿고 그의 계책을 중용하여 견고히 관방 關防(요충지)를 지킬 뿐 적군이 도전해도 출전하지 않는다. 과연 서량군 西涼軍이 두달이 안 되어 양초 糧草(군량과 말먹이풀) 모두 모자라 회군 回軍을 상의한다.
그런데 장안성 안에서 마우의 가동 家僮(노비/심부름하는 아이)이 출수 出首(신고)하여, 자기 집 주인이 유범과 종소와 더불어 밖으로 마등과 한수와 연결하여 내응하며 정세를 살피고 있다고 한다. 이각과 곽사가 대노하여 세 집안의 가소 家少(식구)와 양천 良賤(양민과 노비)을 모조리 저잣거리에서 참하고 세 사람의 수급 首級을 성문 앞에 호령 號令한다. 마등과 한수가 군량 이미 바닥나고 내응도 누설되니 진지를 거두고 퇴군 退軍할 뿐이다.
이각과 곽사가 장제에게 군을 이끌고 마등을 쫓게하고 번조에게 군을 이끌고 한수를 쫓게 하니 서량군이 대패한다. 마초가 뒤에서 결사 항전하여 장제를 크게 쫓아낸다. 번조가 한수를 쫓다가 진창 부근에 이르니 한수가 말 고삐를 당겨 멈춰선 뒤 번조를 돌아보며 말한다.
"저와 공은 동향인데 오늘 어찌 이리 무정하시오?"
번조도 말을 세우고 답한다.
"상부의 명을 어길 수 없소!"
한수 말한다.
"제가 국가를 위해 이렇게 온 것뿐인데 공께서 어찌 이렇게 핍박이 심하시오?"
번조가 듣고 나서 말머리를 돌려 병력을 거둬 영채로 돌아가며 한수를 보내준다.
그러나 이각의 조카 이별 李別이 번조가 한수를 놓아주는 것을 보고 숙부에게 돌아가 알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 이각이 대로하여 병력을 동원해 번조를 치려 하니 가후 말한다.
"목금目今(바로 지금) 인심 人心이 아직 안녕치 못 한데 자꾸 간과 干戈(무기)를 동원하면 몹시 편치 못할 것입니다. 차라리 술자리를 마련하여 장제와 번조를 불러 공을 치하한 뒤 자리 앉거든 잡아서 참함으로써 털끝만치도 힘 들이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이각이 크게 기뻐 하여 술자리에 장제와 번조를 부른다. 두 장수가 흔쾌히 참석한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각이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말한다.
"번조는 어찌 한수와 교통 交通하여 모반하려 했는가?"
번조가 크게 놀란다. 미처 대답하기 전에 도부수가 刀斧手가 끌고 나가 재빨리 술상 아래에서 참수 斬首한다. 장제가 헉! 놀라며 땅에 엎드린다. 이각이 일으켜 세우며 말한다.
"번조가 모반하여 죽일 뿐이오. 공은 내 심복이니 무엇이 두려우시겠소?"
번조의 군사를 거두어 장제 휘하로 한다. 장제가 스스로 홍농으로 돌아간다.
이각과 곽사가 자력으로 서량병을 패주시키자 제후 누구도 감히 맞서려 하지 않는다. 가후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어진 이와 호걸을 받아들이라 거듭 권한다. 이로부터 조정에 약간 생기가 돈다.
그런데 뜻밖에 청주에서 황건이 다시 봉기하여 무리가 수십만이고 두목들이 제각각으로 양민을 겁략 劫掠한다. 태복 주준이 도적을 토벌할 사람을 천거한다. 이각과 곽사가 누구냐 물으니 주준이 답한다.
"산동의 여러 도적을 깨려면 조맹덕 曹孟德이 아니면 안 되오."
이각이 말한다.
"맹덕이 이제 어디 있소?"
"동군태수 東郡太守로서 널리 군병 軍兵을 거느리고 있소. 그에게 명하면 기한 안에 도적을 토벌할 수 있소"
이각이 크게 기뻐하고 밤새 초조 草詔(황제의 칙서를 작성함)한 뒤 동군 東郡으로 보내 조조와 제북상 濟北相 포신 鮑信에게 함께 도적을 치라고 명한다. 조조가 성지 聖旨를 받들고 포신과 회합 會合하여 함께 병사를 일으켜 수양 壽陽에서 도적을 친다. 포신이 중지 重地(요충지)에 급히 들어가다 도적에게 해를 입는다. 조조가 적병을 추격하여 곧장 제북 濟北까지 다다르니 항복한 자 수만이다. 조조가 항복한 도적을 전구 前驅(선봉) 삼아 도처에 병마 兵馬를 보내니 항복하지 않는 자 없다. 백여 일이 안 돼 초안 招安(사면)하고 항복 받은 자 3십여만이고 남녀 모두 합치면 백여만에 이른다. 조조가 정예한 자를 뽑아 청주병 青州兵이라 부르고 나머지는 모두 귀농 歸農시킨다. 조조가 이로부터 위명 威名이 날마다 무거워진다. 첩서 捷書(승전 보고서)를 장안에 보내하니 조정에서 조조에게 진동장군 鎮東將軍의 작위를 더한다.
조조가 연주에 있으면서 현인 賢人을 부르고 선비를 받아들인다. 서로 숙부와 조카 사이인 두 사람이 조조에게 온다. 영천 穎川 영음 穎陰 출신으로 성은 순 荀,이름 욱 彧,자 字 문약 文若이니 순곤 荀昆의 아들이다. 전에 원소를 섬겼으나 이제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 왔다. 조조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크게 기뻐 말한다.
"이분은 나의 자방 子房(유방의 모사 장량/장자방)이다!"
행군사마 行軍司馬(참모)로 삼는다. 조카 순유 荀攸는 자가 공달 公達인데 해내 海內(천하)의 명사 名士로서 일찍이 황문좌랑 黃門侍郎을 지내다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이제 숙부와 더불어 조조에게 오니 조조가 행군교수 行軍教授(군사 고문)로 삼는다. 순욱 말한다.
"제가 연주에 현사 賢士 하나 있다 들었는데 이제 어디 있는지 압니다."
조조가 누구냐 묻자 답한다.
"동군 東郡 동아 東阿 사람으로 성은 정 程, 이름 욱 昱, 자 중덕 字仲德입니다."
조조가 말한다.
"나도 그 이름 들은지 오래요."
사람을 향중 鄉中(시골)에 보내 심문 尋問하니 산중에서 독서하고 있어 조조가 삼가 모셔 오게 한다. 정욱이 찾아오자 조조가 크게 기뻐한다. 정욱이 순욱에게 말한다.
"저는 고루하고 아는 게 없으니 공께서 천거하시기 부족하오. 공의 향인 鄉人 중에 성이 郭,이름가 嘉,자 봉효가 당금 當今의 현사 賢士인데 어찌 망라하여 오게 하지 않으시오?"
순욱이 맹성 猛省(크게 반성)한다.
"제가 망각 忘卻할 뻔했소!"
조조에게 곽가를 연주로 징빙 徵聘(부름)하여 천하의 일을 공론共論토록 한다. 곽가는 광무 光武(광무제) 적파 嫡派(적통) 자손 子孫으로 회남 淮南 성덕 成德 출신의 성은 劉,이름 엽 曄,자 자양 子陽을 천거하니 조조가 그를 초대한다. 유엽이 다시 둘을 천거하니 하나는 산양 山陽 창읍 昌邑 출신으로 성은 만 滿,이름 총 寵,자 백녕 伯寧이다. 하나는 무성 武城 출신으로 성은 여 呂,이름 건 虔, 자 자각 子恪이다. 조조도 평소 두 사람의 명예 名譽를 알고 불러서 군중종사 軍中從事(군사 보좌관)으로 삼는다. 만총과 여건이 함께 하나를 천거하니 진류 陳留 평구 平邱 출신으로 성은 모 毛,이름 개 玠,자 효선이다. 조조가 역시 불러 종사(보좌관)로 삼는다.
또 어느 장수가 수백 인을 거느리고 조조에게 합류하는데 태산 泰山 거평 鉅平 출신으로 성은 우 于, 이름 금 禁,자 문칙 文則이다. 조조가 그의 활쏘기와 말타기가 숙련되고 무예가 출중한 것을 보고 점군사마 點軍司馬로 삼는다. 어느날 하후돈이 대한 大漢(큰 사나이) 하나를 데리고 오기에 조조가 누구냐 물으니 답한다.
"이 자는 진류 陳留 사람으로 성은 전 典,이름 위 韋로 용력 勇力이 과인 過人(비상)합니다. 전에 장막 張邈을 따르다가 부하와 불화 不和하여 수십 인을 죽이고 산중으로 달아났습니다. 제가 사냥을 나갔다가 전위가 사슴을 쫓아 산골짜기의 물을 건너는 걸 보고 군중으로 데려왔습니다. 이제 특별히 공께 천거합니다."
"내가 보니 용모가 괴오 魁梧(크고 높음)한 것이 필시 용력이 있겠구나."
"이 사람은 일찍이 친구의 보수 報讎(복수)를 하고자 살인하고 목을 잘라 들고 번잡한 저잣거리로 뛰어들었으나 수백 사람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쓰는 무기가 두 자루 철극 鐵戟으로 무게 팔십 근인데 이걸 지니고 말을 타도 날렵하기 그지없습니다."
조조가 즉시 전위에게 시범을 보이라 한다. 전위가 극을 끼고 말을 이리저리 빨리 몰며 시범을 보인다. 갑자기 장막 앞 큰 깃발이 바람에 흔들려 아슬아슬 넘어질 듯하니 여러 군사가 달라붙어도 소용없다. 전위가 말에서 내려 여러 군사를 고함쳐 물리고 한 손으로 깃발을 잡아세워 바람 속에 섰는데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조조가 말한다.
"이 사람은 옛날의 악래 惡來와 같구나!"
장전도위 帳前都尉로 삼고 비단 웃옷을 벗어주고 준마 駿馬와 화려한 안장을 하사한다.
부친의 복수를 하고자 조조가 군사를 일으키다.
조조의 이미지
이로부터 조조 부하 중에 문관으로 모신 謀臣이 있고 무관으로 맹장이 있으니 위세가 산동 山東에 가득하다. 태산태수 泰山太守 응소 應劭를 낭야군 瑯琊郡에 보내어 부친 조숭을 데려오게 한다. 조숭이 진류에서 피난 와서 낭야에 은거한 것이다. 당일 서신을 접하고 아우 조덕과 함께 집안 노소 老小 4십여 인과 수레 백여 량을 끌고 지름길을 따라 연주로 간다. 도중에 서주 徐州를 경유한다. 서주태수 도겸 陶謙은 자가 공조 恭祖로 사람됨이 온후 溫厚하고 순독 純篤하다. 일찍이 조조와 결납 結納(친교를 맺음)하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이제 조조 부친이 경과 經過함을 듣고 경계까지 나가서 영접하고 거듭 절하며 공경을 다하고 크게 잔치를 열어 이틀 간 환대한다. 조숭이 떠나려하자 도겸이 친히 성곽을 나와 배웅하고 특별히 도위 都尉 장개 張闓에게 병사 5백을 거느리고 호송하게 한다.
조숭이 집안 식구를 인솔하고 화 華、비 費 땅 사이에 도착하니 계절은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인데 큰 비가 갑자기 내려서 부득이하게 어느 고사 古寺에 묵어가기로 한다. 절의 중이 맞이하니 조숭이 가족을 편히 머물게 한 뒤 장개에게 명하여 군마 軍馬를 양쪽 행랑에 주둔하게 한다. 군사들의 옷과 짐이 모두 비에 젖으니 입 모아 원망한다. 장개가 수하 두목을 불러서 조용한 데에서 상의한다.
"우리는 본시 황건 잔당인데 억지로 도겸에게 귀순했지만 아직 좋은 대우를 못 받았다. 이제 조 씨 집안의 짐수레가 무수하니 너희가 부귀해지는 게 어렵지 않다. 오늘밤 이 경에 모두 우두머리를 베고 들어가서 조숭 일가를 죽이고 재물을 취한 뒤 함께 산중으로 가서 낙초 落草(산적이 됨)하자."
모두 응낙한다. 그날밤 풍우 風雨가 아직 그치지 않아 조숭이 정좌 正坐해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인다. 조덕이 칼을 뽑아 나갔다가 찔려 죽는다. 조숭이 황망히 첩을 깨워 방장 方丈(절의 주지)에게 달려간 뒤 담을 넘어 달아나려 한다. 첩이 뚱뚱해서 탈출하지 못하자 조숭이 황급히 첩과 함께 뒷간에 숨다가 난군 亂軍에게 죽는다. 응소 應邵는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원소에게 가버린다. 장개가 조숭 집안을 모조리 죽이고 재물을 취한 뒤 방화하여 절을 불태우고 5백여 인과 함께 회남으로 달아난다. 훗날 누가 시를 지었다.
간웅 조조가 세상에 으스대며
일찍이 여백사 집안 몰살하더니
이제 집안이 남에게 몰살되네
하늘이 틀림없이 복수하구나
그 자리에서 응소 應劭 부하 중에 도망하여 목숨을 건진 군사가 조조에게 보고한다. 조조가 듣고 통곡하다 땅에 쓰러진다. 여럿이 구하여 일으키니 조조가 이를 갈며 말한다.
"도겸이 군사를 풀어 부친을 죽였으니 원수놈과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이제 대군을 모조리 일으켜 내 한을 씻고 말겠다!"
순욱과 정욱에게 병력 3만으로 견성 鄄城、범현 范縣、동아 東阿 세 곳의 현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전부는 서주로 몰려간다. 하후돈, 우금, 전위가 선봉이다. 조조가 명하여 성지城池(성과 도시)를 함락할 때마다 성중 城中 백성을 모조리 도륙 屠戮하여 부친 원수를 갚는다. 당시 구강태수 九江太守 변양 邊讓이 도겸과 교분이 두터운데 서주의 어려움을 듣고 스스로 병력 5천으로 구원하러 온다. 조조가 듣고 대로하여 하후돈을 시켜 가로막아 죽인다. 그때 진궁이 동군의 종사 從事였는데 역시 도겸과 교분이 두텁다.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복수한다고 백성을 모조리 죽이니 쉬지않고 달려와 조조를 만난다. 진궁이 말한다.
"이제 듣자니 명공께서 대병 大兵으로 서주에 임하여 존부 尊父의 원수를 갚는다며 이르는 곳마다 백성을 모조리 죽인다 해서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말씀드리오. 도겸은 어질고 군자이니 이익을 좇아 의를 저버릴 인간 따위가 아니오. 존부께서 해를 입으신 건 장개가 한 짓이지 도겸의 죄가 아니오. 그리고 주현 州縣의 백성이 명공과 무슨 원수요? 죽이는 건 상서롭지 못하니 바라건대 거듭 생각하시고 행동하시오."
조조가 노해 말한다.
"공께서 나를 버리고 가고 이제 무슨 면목으로 온 것이오? 도겸이 내 일가를 살해했으니 적담완심 摘膽剜心(쓸깨를 떼어내고 가슴을 도려냄)으로 내 한을 풀겠소! 공께서 도겸을 위해 유세한들 내 귀에 들리겠소?"
진궁이 작별하고 나가며 탄식한다.
"내 무슨 면목으로 도겸을 만나랴!"
말을 몰아 진류태수 장막 張邈에게 가버린다.
조조 대군이 가는 곳마다 인민 人民을 살륙하고 분묘 墳墓를 발굴 發掘(여기서는 그냥 파헤친다는 뜻)한다. 도겸이 서주에 있다가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복수한다면서 백성을 살륙함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한다.
"내가 하늘에 죄 지어 서주 백성이 큰 어려움에 빠지구나!"
급히 여러 관리를 모아 상의하니 조표 曹豹 말한다.
"조조 군사가 몰려왔는데 어찌 속수무책 죽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제가 사군使君(지방 장관)을 도와 적병을 격파하겠습니다."
도겸이 할 수 없이 병력을 이끌고 출영 出迎하니 멀리 조조 군이 포상용설 鋪霜湧雪(서리와 눈으로 덮인 듯이 수가 엄청남) 같고 중군 中軍에 세워놓은 백기 白旗 를 두 개 세워 "보수설한 報讎雪恨(복수해한을 풀음)" 네 자를 크게 적었다. 군마 軍馬가 진세 陣勢를 펼치니 조조가 말 몰아 출진 出陣하는데 몸에 호소 縞素(하얀 소복)을 입고 채찍을 들어 크게 욕한다. 도겸도 문기 아래 출마 出馬하여 몸을 굽혀 예를 다하며 말한다.
"제가 본래 명공과 연결하고 싶어서 장개를 시켜 호송하였소. 뜻하지 않게 예전 도적 시절의 마음이 바뀌지 않아 이 지경이 됐소. 정말이지 저 도겸의 고의가 간여된 게 아니니 명공께서 살펴주시기 바라오."
조조가 크게 욕한다.
"늙은 필부 놈아! 내 부친을 살해하고도 아직도 감히 난언 亂言을 지껄이냐!누가 늙은 도적을 사로잡겠냐?"
하후돈이 듣자마자 출격한다. 도겸이 황망히 진지로 도망간다. 하후돈이 추격하니 조표가 창을 겨누어 말 달려 앞을 막아 대적한다. 두 말이 붙는데 갑자기 광풍이 크게 일어서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니 양군 모두 혼란하여 각각 병사를 거둔다.
도겸이 입성 入城하여 여럿과 계책을 의논하며 말한다.
"조조의 병세 兵勢가 커서 맞서기 어려우니 내 자신을 포박하여 조조 진영에 간 뒤 내 몸을 토막내게 하여 서주 일군 一郡의 백성 목숨을 구하겠소."
말이 미처 끝나기 전 하나가 나와서 말한다.
"부군 府君께서 오랫동안 서주를 안택 安宅하시니 인민이 은혜에 감사합니다. 지금 조병 曹兵이 비록 많으나 아직 우리 성을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부군께서 백성과 더불어 굳게 지키시되 절대 출격하지 마소서. 제가 재주 없으나 작은 계책을 써서 조조가 죽어 장례할 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
여럿이 크게 놀라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 묻는다.
본래 교분을 바랐는데 도리어 원수가 되구나
그는 절처봉생 絕處逢生(기사회생)의 계책을 알까?
과연 이 사람은 누굴까? 다음편에서 풀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