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석훈 | 스포츠를 문화경제학의 한 장르로 집어넣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스펙터클이라는 아주 근대적인 하나의 현상에 스포츠를 뺄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화 현상 중에서 스포츠 현상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가?
한국의 좌파 중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 차베스는 코파 아메리카나처럼 중요한 대회에 한국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전화’를 거는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 전용기를 기꺼이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포츠 쇼비니즘으로 보면, 차베스도 보통은 넘는다. 스포츠에 대한 사랑으로 치면, 쿠바 카스트로의 야구 사랑도 예외일 순 없다. 그 최강의 쿠바 야구팀을 한국이 지난 올림픽에서 꺾었다. 카스트로는 “기가 막힌 좌완 투수가 하나 있었다”라고 직접 코멘트를 날려주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이든 반자본주의적이든, 스포츠만큼 대중적인 것이 없기는 하다. 스포츠는 사람의 열정을 만드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런 스포츠의 가장 대중적인 담론은 엘리트 스포츠와 대중 스포츠의 격차이다. 즉 구경할 것이냐 참여할 것이냐, 두 가지 중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정책과 정치를 구분해보자. 정책적으로는 무조건 대중 스포츠가 유리하다. 참여하는 대중 스포츠를 육성하면 개개인의 보건 조건이 좋아지고, 이것은 공공 의료보험의 지출을 줄여준다. 가능하면 개인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고, 그로 인해 전체 보건 지출을 줄이면, 더 값싼 비용으로 사람들에게 더 좋은 후생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은 정책 전문가가 스포츠를 보건 비용이라는 항목으로 보는 경우이다.
구경할 것이냐, 참여할 것이냐
|
|
|
ⓒXinhua 한국의 올림픽 은메달 수상자는 연금 금액이 금메달 수상자와 너무 차이 난다. 위는 베이징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 선수(왼쪽). | 정치적으로는 그 반대이다. 무조건 엘리트 스포츠가 유리하다. 국민 개개인이야 운동을 하든 말든, 어쨌든 표를 주는 엘리트 스포츠를 육성해 사람들에게 박수나 치면서 응원이나 하게 만드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정책과 정치는 조금 다르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아들에게 향한 사회적 비난의 시선을 돌리려는 듯, 노구를 이끌고 직접 월드컵 경기 현장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는 그 순간 쇼비니스트였고, 스포츠를 정치의 도구로 활용했다. 이 틀을 따라 노무현에서부터,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꼭짓점 댄스를 추었던 강금실까지, 한국의 이른바 좌파 역시 스포츠 쇼비니즘이라는 면에서 김대중의 틀을 벗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 다르게 이해찬은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대중 스포츠’를 주장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골프 중독자였고, 골프장 건설이 국민 경제의 중흥이라 주창할 정도로, 좀 이상한 대중 스포츠를 주창한 정치인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엘리트 스포츠의 지지자가 아니라 대중 스포츠의 지지자이기는 했다는 점이다. 그는 좌파가 모두 골프를 칠 정도로 부자가 되기를 바라기는 했는데, 현실적으로는 “좌파가 배불렀다”라는 손가락질만 산 것 같다.
김운용·정몽준도 스포츠를 중심에 두고 떠올랐던 정치인이고, 최근 김연아에 이르기까지 한국 최고의 파토스는 스포츠에서 나온다. 좋다. 너무 힘들고 괴로운데, 스포츠라도 놓고 박수라도 치고 골프 스타를 보면서 기쁨을 느끼겠다는데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스포츠 쇼비니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듯싶기는 하다. 원칙대로 따지면, 올림픽의 금메달은 아마추어 정신 위에 서 있는 것이고, 대다수 나라가 그렇게 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금메달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돈으로 환산한다 해도, 그것은 시장이 하는 일일 뿐, 국가 주도의 스포츠 쇼비니즘은 국제적으로도 창피한 일이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한다. 한국의 금메달은 대체로 월봉 100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는 이 체육연금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 정확한 이름은 ‘경기력 향상 연구연금’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로 금메달에 대해 월 100만원의 금액을 우리가 지불하고 있다. 점수로 따지면 동메달 20점, 은메달 30점, 금메달 90점이고, 90점을 채우면 연금 기준이 찬다. 그 이상이면 현금으로 환산해서 돈을 받는데, 기준상 은메달 3개가 금메달 하나의 가치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의 은메달 수상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린다. 평생 받을 수 있는 연금 금액이 그 순간 너무 차이 나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치면, 지난해에 일반인은 55억5000만원을 이 체육연금으로 받아갔고, 장애인은 21억원을 받아갔다. 80억원이 안 되는 돈이, 금메달을 위한 한국인의 ‘스포츠 쇼비니즘’ 비용으로 지불된 셈이다. 큰돈은 아니다. 대통령이 약간의 폼내기 사업을 위해서 수조원 혹은 수십조원을 수시로 쓰는 나라에서 100억원 미만의 돈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할 것도 없다. 어쩌면 올림픽 때마다 그리고 각종 대회마다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이 정도 돈으로 그들의 ‘경제적 동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별것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새만금에 쓰는 돈,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에 쓰는 돈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일이지도 모른다.
|
|
|
ⓒ사진공동취재단 정책적으로는 대중 스포츠가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무조건 엘리트 스포츠가 유리하다. 위는 2002년 월드컵 때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손을 흔드는 김대중 전 대통령. | 금메달리스트를 복지 스포츠 지도자로
그러나 이런 돈을 쓰는 나라가 OECD 국가 중 한국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건 국가 쇼비니즘, 그리고 스포츠 쇼비니즘을 위해서 어느 나라도 쓰지 않는, 한국만 쓰는 돈이다. ‘태극 마크’에 그 정도 돈은 써야 하지 않나? 한국이 쇼비니즘 국가가 되기를 바란다면, 그 이상, 아니 그 10배를 써도 할 말 없다. 그러나 이 정도 스포츠 쇼비니즘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올림픽 때마다 순위를 매기며, 국가 목표처럼 얘기하는 이런 바보 같은 쇼비니즘 올림픽을 하는 나라도 이제 한국밖에 없다. 솔직히, 창피하다.
박정희 시절, 사회주의 국가들과 함께 국가 쇼비니즘을 키운 건데, 국제 표준에 맞지 않는, 돈으로 금메달을 사고 국민이 박수치는 바보 같은 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게다가 이 체육연금은 다른 연금과 달리 국민이 내는 돈이다.
이렇게 하자. 이왕 주던 것은 지금 규모에서 계속 주고, 올림픽 금메달을 돈으로 사는 짓은 그만하자. 그들에게 사회체육사를 비롯한 정상적인 복지 스포츠 정책의 지도자로 사회적 역할을 주자. 이것이 엘리트 스포츠도 살고, 사회 체육도 사는 길이다. 중국도 체육연금을 주지 않는 지금,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런 짓을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태극 마크=돈, 금메달=100만원, 이게 스포츠냐? 상식을 되찾자. 그게 선진국의 스포츠이다. 이 지긋지긋한 스포츠 쇼비니즘, 이제 그만 좀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