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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내 삶의 발자취] 바이마르 시절 23.
장승규 추천 0 조회 80 25.08.30 00:5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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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8.30 03:00

    첫댓글 이 전여사님께서 괴테 색채학 번역서의 서문을 물리학자에게 쓰도록 했다는 야그를 --이 여사님을 대단히 존경하는-- 어느 발돌 쌤한테 전해 듣고 어이 상실했음요. 그 사람은 글씨만 번역했지 괴테의 정신성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순진하게 고백하는 거져. 완전히 '지성적 활동'에 머무르기, 이게 바로 오늘날 이른바 그 '똑똑하다는 학자'의 특성이예요. 영성, 정신성에 들어서면 즉시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두려워하면서 현재의 과학적 기준에 집착하는 이런 자세도 넓은 의미에서는 '교육 구조'의 부작용에 속해요. 현대 산업화된 국가의 학교 제도, 귀족 등 특정 계층이 아니라 이른바 하층, 평민을 위한 학교제도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1717년 독일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 왕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사 6세부터 12세까지 다니는 '국민학교Volksschule'를 의무교육으로 실시한 게 원형이예요. 뭐가 목적이었겠어요? 글씨도 가르치고 계몽해서 왕권에 충성을 다할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었어요. 19세기 들어서면서 왕정 체제가 무너지면서 국가가 그 역할을 떠맡았어요.

  • 25.08.30 03:26

    한국은 일본을 통해서 그 학교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저같은 늙은이들이 '국민학교'에 다닌 거져. 한국 사람들은 발돌 교육 강의서 읽으면서 요즘 부자들이 다니는 발돌학교를 상상하는데, 최초의 발돌학교는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망한 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길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였어요. 루돌프 슈타이너는 구시대 학교 제도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고, 담배공장 노동자들의 자식들을 어떻게라도 거두고자 한 에밀 몰트의 성의를 물리치지 못하고 많은 부분에서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단 몇 년 안에 드러났기 때문에 발도르프학교가 실패했다고 자주 측근에 말했어요. 일클리인지 어디인지 영국에서 한 어떤 강의에서도 그런 의중을 드러내는 말을 해요. "첫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의 행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요. '첫단추를 잘못 끼운 슈투트가르트학교를 한번 보세요." 백년 넘게 지난 오늘날 발돌학교는 완전 기형이져, 부유층의 특별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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