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과연 인간 의지는 자유로운가, 아니면 그렇지 못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관건이 아니라고 나 스스로 항상 반복해서 말했다. 완전히 다른 질문을 다루어야 했다. "자유롭지 못한 자연의 의지에서 자유로운 의지로, 즉 진정으로 윤리적인 의지로 건너가는 길은 영혼 생활 안에서 어떤 특성을 지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기 위해서 어떻게 신적-정신적인 것이 각각의 인간 영혼 내면에 살고 있는지를 주시해야 했다. 윤리성은 바로 인간 영혼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윤리적 자극은 영혼의 완전히 개인적인 본성 안에서 자체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6.
사람이 처해 있는 외적인 연관성에서 -명령으로서- 다가오는 윤리 법칙은, 아무리 그것이 애초에는 정신세계의 범주에서 유래했다 해도 ,의지 활동을 그 기준에 맞춤으로써 인간 내면에서 윤리적 자극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그런 법칙은, 인간이 그 법칙의 사고내용을 정신적- 본질적으로 완전히 개인의 것으로서 체험할 때만 윤리적 자극이 될 수 있다. 자유는 인간 사고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의지가 아니라 사고가 자유롭다는 것이고, 이 자유로운 사고가 의지를 강화한다는 말이다.
7. 그래서 이미 [자유의 철학]에서 나는 의지의 윤리적 성격과 관련해 사고내용의 자유를 특히 강조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8. 바로 이 생각 역시 명상 생활 속에서 더욱 더 강화되었다. 고차적인 정신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류의 작용-질서 중 지구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보다 휠씬 더 명확하게 윤리적 세계 질서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윤리적 세계 질서는 정신적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 자신의 표상 세계로 받아들여 파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9.
이 모든 관조는 여기에서 다루는 바로 이 인생 주기에 그때까지 쟁취한 포괄적인 진실과 결합되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인간이 '해명하기' 위해서만 사고를 이용하면, 세계의 존재와 과정을 진정으로 해명할 수 없다. 한 가지가 다른 것을 밝히고, 하나가 수수께끼라면 다른 것이 그 답이 되는,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지각된 외부 세계를 위한 말씀이 되는 그런 연관성 속에서 사고를 통해 과정을 주시할 수 있을 때 세계의 존재와 과정이 진정으로 해명된다.
10. 그런데 이로써 로고스가, 지혜가, 말씀이 세계와 그 작용 속에 관장하고 있다는 표상의 진실성을 체협하게 된다.
==>
얼마전 누군가 덕분에 다시 핀 [내 삶의 발자취].
아래 글들에 대해 첨삭지도를 받으며 ^^;;
"안그래도 정말 분노해야 할 것은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가르치는 교육구조"란 말에
'교육 내용을 넘어, 교육 구조도 그렇단 말이지'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데 저 [자유의 철학] 해설서로 보이는,
절대 자서전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내 삶의 발자취]를 읽다보면,
(하긴 슈타이너에겐 생각의 발달이 그 삶의 발자취일수도...)
외부에서 설계되어 주입되는 그 모든 '좋은' 교육과정과 내용도 문제라는 생각이 솔솔... ^^;;
그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던 발달들은 어디까지나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며 제안정도라는 걸까?
(특히 큰 아이들)
나는 아이안에 있는,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내적인간의 발현을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님 외적세계의 요구로부터 욕 먹고 싶지않은 욕심인가...)

하긴 아이들이 하고픈 것에서 시작하여
내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수업하던 3, 4월이
아이들 참여도나 배움이 좋긴 했었지..
근데 이건 완전히 다 뜯어고쳐야 되는 건데..
개학을 앞두고, 이거 곤란한데...
(근데 지성적 교육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지...)
누가?
준비 안 된 곤란함을 핑계삼아 한 학기만 버텨보고
다음 학기부터?
근데 이런 방식이라면 준비는 내 마음의 준비지,
내용의 준비는 미리 할 수 없는 거잖아?
수업을 시작해야 뭘 준비해야 할 지가 나오니..
그럼 그냥 해도 되잖아? 뭐가 문제지?
근데 이게 겉으로 보기엔
옛날에 하던 대안학교의 수업 방식과 뭐가 다르지?
정말 교사의 생각과 믿음, 의향만이 다른 수업이잖아!!
이건걸까?
개학을 앞두고 새로운 고민중.
(역시 개학 전엔 인지학 책을 읽지 말아야 돼...로 이상하게 결론 도출중)

<<뱀다리>>
21,
그 얼마 후, 나름대로 괴테 자연관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그 분야에서는 꽤 알려진 물리학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대화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물리학이 색채에 관한 괴테의 표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침묵했다.
22. 당시 내가 얼마나 많은 주제에 있어서 그런 말을 들어야 했던가? 내게는 진실인 것이 그러하기를, 시대의 사고는 '그런 것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
829.
나도 얼마전, 나름 좋은 대학에서 평생 괴테를 전공하고 번역했다는, 바로 그 동네에서도 가끔 불러 얼굴을 보인다는, 꽤 알려진 퇴직 학자를 유튜브에서 만나 뭐라하는지 듣게 되었다. 그 대화는 52분쯤에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https://youtu.be/J0iqGvwX8k0?si=g4vV_jafgL1D9juQ
"뉴턴을 좀 쳐부수어 볼려고 40년 넘게 오래 절치부심하며 연구했지만... '과학적으론' 판정패입니다."
그리고 나는... 혼자, 아무도 들리지 않는 소리로, 씨부렁거린다.
'도대체 색채론을 번역은 했는데, 실험과 관찰은 안 해본 거 아닐까? 그 ㅂㄷ계의 어느 출판사처럼 내용의 이해는 저만치 두고, 글자번역만 골몰한걸까? 그게 가능은 한걸까? 뉴턴의 색채론을 쳐부수려고 했다기보단, 단순히 빛을 분광해서 색이 나왔다고 말하는, 단선적인 관점을 보완하려고 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과학하기'라는 것이 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탐구활동이 과학을 하는 일일진데, 한 해만 자연을 바라보아도 알게되는 색채의 순환을 괴테할머니는 책만 번역하느라 못보신걸까? 혼자 중얼중얼 횡설수설하다가 실은 "똑같은 결론입니다"하는 견강부회. 생리색, 물리색, 화학색의 기본 구분도 못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서둘러 끝!'
830.
하지만 (지금도) 내가 얼마나 많은 주제에 있어서 그런 말을 들어야 했던가? 내게는 진실인 것을 이야기하기를, 시대의 사람들은 입으로, 혹은 몸으로 말했다. "잘난척 그만하고, 괜히 씨끄럽게 분란 만들지말고, 조용히 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내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친절하지 않아도 되니 이야기를 나눠보거나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해명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런 사람들과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푸코의 글이 생각났다.
"사유하는 인간이기를 그만두고서는
사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철학적 웃음으로밖에는 대답할 길이 없다."
그렇게 냉소적이 되어갔다.
첫댓글 이 전여사님께서 괴테 색채학 번역서의 서문을 물리학자에게 쓰도록 했다는 야그를 --이 여사님을 대단히 존경하는-- 어느 발돌 쌤한테 전해 듣고 어이 상실했음요. 그 사람은 글씨만 번역했지 괴테의 정신성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순진하게 고백하는 거져. 완전히 '지성적 활동'에 머무르기, 이게 바로 오늘날 이른바 그 '똑똑하다는 학자'의 특성이예요. 영성, 정신성에 들어서면 즉시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다고 두려워하면서 현재의 과학적 기준에 집착하는 이런 자세도 넓은 의미에서는 '교육 구조'의 부작용에 속해요. 현대 산업화된 국가의 학교 제도, 귀족 등 특정 계층이 아니라 이른바 하층, 평민을 위한 학교제도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1717년 독일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 왕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사 6세부터 12세까지 다니는 '국민학교Volksschule'를 의무교육으로 실시한 게 원형이예요. 뭐가 목적이었겠어요? 글씨도 가르치고 계몽해서 왕권에 충성을 다할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었어요. 19세기 들어서면서 왕정 체제가 무너지면서 국가가 그 역할을 떠맡았어요.
한국은 일본을 통해서 그 학교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저같은 늙은이들이 '국민학교'에 다닌 거져. 한국 사람들은 발돌 교육 강의서 읽으면서 요즘 부자들이 다니는 발돌학교를 상상하는데, 최초의 발돌학교는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망한 후 피폐해진 상황에서 길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였어요. 루돌프 슈타이너는 구시대 학교 제도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고, 담배공장 노동자들의 자식들을 어떻게라도 거두고자 한 에밀 몰트의 성의를 물리치지 못하고 많은 부분에서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단 몇 년 안에 드러났기 때문에 발도르프학교가 실패했다고 자주 측근에 말했어요. 일클리인지 어디인지 영국에서 한 어떤 강의에서도 그런 의중을 드러내는 말을 해요. "첫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의 행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되요. '첫단추를 잘못 끼운 슈투트가르트학교를 한번 보세요." 백년 넘게 지난 오늘날 발돌학교는 완전 기형이져, 부유층의 특별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