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77/백기완]‘노나메기재단’은 또 무엇인가?
이 땅에 수많은 재단財團이 있지만 ‘노나메기재단’을 들어보신 분이 얼마나 계실까 싶다. ‘노나메기’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이 대부분일 터. 혹자는 ‘노놔 먹자는 것 아니냐(일본말로 ’가보시끼’나 ‘분빠이’라고 한다던가)‘라고 하실 분도 있을 터이고, 메기라는 물고기 종류로 아실 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노나메기란, 노나메기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벗나래(세상)를 세우자”는 뜻이라고 하면 상당히 뜨악해 할 것같다. 하지만 ‘노나메기 벗나래’는 백기완 선생이 한 평생 투쟁하고 나아간, 오로지한 ‘바랄(꿈)’이었다. 그 바랄을 한순간도 잊지 않기 위하여 ‘선생님의 사람’들이 이심전심 뜻을 같이 하여 만든 재단. 이런 재단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흔치 않을 것같다.
그들이 지난해 11월 재단을 설립하며 만든 ‘창립선언문’을 찬찬히 읽어보며 가슴이 벅차 올랐다. 백선생과 노나메기재단(https://baekgiwan.org/ 이사장 민중화가 신학철)을 모르는 분들도 읽다보면 울컥하는 그 무엇이 올라올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하여, 창립선언문 전체를 전재하는 소이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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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이란 이름은 한국 근현대 역사에서 ‘저항’의 상징이다. 탁월한 민중사상가이자 사회혁명가였던 그의 한살매는 숨가쁘게 내달려 온 격동의 한국현대사 자체였다.
선생은 1950년대는 달동네에서 야학을 하며 도시빈민운동에 나섰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하에 1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녹화운동을 하며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60년 4․19혁명 이후부터는 함석헌, 계훈제, 장준하 선생 등과 함께 재야 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64년 굴욕적인 한일협정반대운동, 1969년 삼선개헌 반대운동, 1971년 유신헌법 반대를 위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1976년 3․1 구국선언, 1979년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불리는 전두환 군부쿠데타 저지 운동,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설립을 주도하고, 1987년 6․10항쟁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노동자민중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등 주요한 현대사의 굴곡마다 그는 천둥처럼 깨어있는 시대의 목소리였다. 폭포처럼 불의와 폭압을 향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리꽂히는 온몸의 실천이었다. 그로 인하여 그는 지난 군부독재시대 가장 많은 가택연금을 당하고 투옥되고 고문당해야 했지만, 2021년 2월 15일에 쓰러지는 그날까지 한국의 왜곡된 근현대를 온몸으로 깨부수고 평화, 평등의 진정한 새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랄(꿈)을 버리지 않았다.
혁명가 ‘백기완 선생’은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시인이었고, 민족․민중 미학의 뿌리이기도 했다. 선생은 민중의 원한과 분노, 바랄(꿈)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장산곶매, 이심이, 버선발, 뿔로살이, 쇠뿔이, 새뚝이, 달동네, 새내기, 비나리 …’등 기발하고 창의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토해내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 민요연구회, 민중문화운동연합, 민족미술협의회, 민족문화대학설립위원회 등 수많은 문화예술 운동의 산파를 맡았다. 이제는 한국사회를 넘어 전 세계 피압박 민중의 노래가 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작자로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자”라며 고비마다 문화혁명을 설파하였다.
한국사회 대표적인 통일운동가였던 ‘백기완 선생’의 꿈은 두 발로 분단선을 넘어 북녘 땅을 밟고 그리운 어머니의 묘소에 참배하고 큰누이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의 작은형은 국군으로 전사해 국립묘지에 묻혔고, 이산가족이었던 큰형은 전쟁 후 삼팔선을 넘어와 긴 세월 형무소에 갇혀야 했다. 피눈물의 가족사를 넘어 <백범사상연구소>, <통일문제연구소> 등을 설립하고, 평생 한반도의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섰던 그가 꿈꾸는 진정한 통일은 민중주도 해방통일이었다. 모든 제국주의와 권력자들의 폭압과 폭력을 넘어 “사람의 자유, 목숨의 자유, 자연의 자유. 이런 자유를 온 사회, 온 지구적으로 누리는” 일이었다.
‘백기완 선생’의 매일은 노동자 민중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발걸음이었다. 선생은 언제 어디서나 올곧게 노동자 민중의 편에서 사고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들이 해방되는 세상을 앞당기고자 한걸음을 떼었다. 선생은 평생 인간과 생명을 돈과 이윤의 노예로 삼고자 하는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모든 인간과 생명이 평등한 공동체, 곧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벗나래)를 세우자는 바랄을 실천하고자 올곧고 가열차게 투쟁하였다. 그리고는 이제 그 꿈을 꾸는 이들의 반석이 되었다.
본 재단은 “내 평생의 뜻을 후세대들이 잘 이어받아 주기를 바란다”는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자 한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백기완 선생의 삶과 문화예술, 민중사상과 투쟁, 노나메기를 향한 지극한 바랄(희망)을 기억하고 계승하고 실천하려는 젊은 버선발 니나(민중)들이 널리 뜻을 모아 설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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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쓰셨는지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셨다. 명문이다. 이런 선언문은 어떤 경우라도 소리내어 읽으셔야 제맛이 난다. 이 선언문만 봐도 왜 이런 ‘특이한 이름’의 재단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벗나래를 세우자던 백 선생님의 염원과 유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은가. '노나메기 세상'은 유토피아처럼 언제까지나 이룰 수 없는 '이상향理想鄕'일까? 아니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아무렴.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애 발버둥치는 게 사람이지 않겠는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이라는, 골백 번 강조해도 부족할 선생님의 ‘바랄’만큼은 세세년년 기억하며, 비록 미미한 존재일망정 실천하려 애쓰는 것이, 섣부르게나마 배운 사람의 몫이 아닐까. 하여, 나를 아시는 지인들만큼은 이 선언문 한번 찬찬히 소리내어 읽어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젊은 버섯발 니나(민중)들이여! 아리아리 꽝!*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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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리 꽝은 서양말 ‘화이팅fighting’을 빗대어 ‘아자’라는 말과 함께 선생님이 만든 기똥찬 우리말 응원 구호이다. 정작 서양인들은 운동경기를 응원하면서 ‘파이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렛츠 고 Let’s go‘(우리 같이 가자!)라는 단어를 ’아자‘로 대체해도 무난하겠다. ’가즈아!‘는 어쩐지 천박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럴까? 최근 어느 글을 읽었는데, 흔히 산의 정상에 올라 “야호”라고 소리치는데, 옛날 사람들은 “야호” 대신에 “어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야호는 남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메아리로 홀로 자신에게 돌아오지만 “어이-”는 다른 사람의 응답을 요구하는 구호라는 것이다. 상대적이자 공동체적인 삶의 표현이 ’어이‘인 데 비해, 즉자적卽自的이자 독자적獨自的인 삶을 추구하는 표현이 ’야호‘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것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