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사태 1년…회생 논쟁만 공회전 '춘래불사춘'
이병우 기자2026. 2. 4. 14:48
공과금 1400억 미납에 임금 체불도
"회생은 멀어지고 불안은 깊어졌다"
'청산 경고음' 점증…채권단 '신중 모드'
전문가 "노사·관계자 합의 시급" 조언
"노노갈등 장기화 땐 '골든타임' 상실"
안수용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장(오른쪽)과 강우철 마트노조 위원장(가운데)가 3일 청와대 인근에서 홈플러스 사태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단식을 하고 있다.[출처=연합]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가 다음달 4일이면 1년을 맞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점포 폐쇄와 구조조정이 올해도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뚜렷한 반전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는 현재 직원 약 2만명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한 상태로, 경영 정상화 시점 역시 불투명한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계에 대한 공포가 예상보다 훨씬 크고 빠르게 현장에 퍼지고 있다"고 했다.
◆ "10만명의 근로자 다 죽는다"
4일 업계 내용 종합하면 지난달 21일 기준, 홈플러스는 직원 약 2만명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 명절마다 나오던 설 상여금은 물론, 2월 급여 지급 여부도 불투명하다. 홈플러스의 월 고정 운영비는 인건비 약 650억원, 점포 임대료 300억원, 세금 200억원 등을 포함해 총 12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현재 1월 급여 미지급분 외에도 지방세와 전기요금 등 공과금 약 1400억원을 체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체불 사태가 장기화되자, 노조는 법적 대응에 나섰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마트산업노동조합(노조)은 임금 체불 등의 혐의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홈플러스 공동대표)을 고소한 상태다. 현장에서는 월급을 받지 못해 당장 생활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는 '홈플러스 사태 해결방안 마련 촉구, 무기한 공동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안수용 홈플러스지부장은 "지난해 고용노동부 장관과 정치권에서 '선량한 인수자를 찾겠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금 그 약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며 "현장은 임금 체불로 카드사 독촉에 시달리고, 자녀 등록금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처절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안 지부장은 "이대로라면 홈플러스는 파산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10만명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이 고통을 더 이상 개인의 희생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 일반노동조합도 1월 임금 미지급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 한국산업은행장을 수신자로 한 청원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원문에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1월 임금 체불 문제를 즉시 해결하는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 △산업은행의 긴급 운영자금 지원 △임금 체불 해소와 협력업체 피해 최소화 등의 요구가 담겼다.
일반노조는 "물품 대금 지급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는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 연쇄적인 경영 위기를 막아야 한다"며 "홈플러스는 수많은 국민의 삶과 연결된 중요한 유통 채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MBK파트너스가 2015년 차입매수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현재의 구조적 문제가 시작됐다"며 "철저한 수사와 함께 기업회생 절차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산업은행을 통한 긴급 운영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불투명한 앞길…DIP 대출 조달도 '안갯속'
근로자들의 절규에도 현 상황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회생 계획의 핵심 축인 긴급 운영자금(DIP) 대출 조달이 불투명해진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에서 총 6000억원을 확보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3000억원 규모의 DIP 대출과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을 통해 각각 3000억원씩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전국 10개 점포를 추가로 매각해 1000억원 이상을 확보하면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 홈플러스 측 설명이다.
핵심은 DIP 조달 여부다. DIP 대출은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이 사업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받는 긴급 자금으로, 회생의 성패를 가르는 '생명줄'로 불린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자신과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산업은행이 각각 1000억원씩 분담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회생계획안 제출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자금 조달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회생계획안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산업은행은 DIP 대출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만일 계획과 달리 DIP 조달이 무산될 경우, 홈플러스가 청산 수순으로 내몰릴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회생계획안에 포함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만으로는 단기 운영자금 부족을 메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DIP 대출과 익스프레스 매각이 모두 성사되더라도 완전한 회생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DIP 자금은 통상 시장금리보다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는 단기 고금리 자금으로, 미래 현금흐름을 앞당겨 쓰는 성격이 강하다. 다시 말해 사업 경쟁력 회복과 수익 구조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부채 부담만 키우는 구조가 될수 있다.
◆ 노노 갈등 지속시 '골튼타임' 놓칠 수 있어
노조 간 이견, 이른바 '노노(勞勞) 갈등'도 또 다른 변수다. 현재 홈플러스 내부 여론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리면서 기업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먼저 전체 직원의 약 87%를 대표하는 홈플러스일반노조와 직원 대의기구인 한마음협의회는 "회생이 마지막 기회"라며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에 대해 조건부 동의안을 가결했다.
일반노조는 △익스프레스 매각 시 고용 승계 및 잔류 선택권 보장 △DIP 자금 유입 시 급여 최우선 지급 △월 2회 이상 노사 협의체 운영 등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반면 전체의 약 13%를 차지하는 마트산업노동조합은 해당 회생계획안을 '청산형 구조조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는 "회생 절차의 성패 가를 핵심 변수들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 간 조율과 이해관계자 합의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회생 국면에서 노조 간 입장이 갈리는 것이 이례적이진 않지만, 이번처럼 방향성 자체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노노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채권단과 법원 모두 회생 계획의 실행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