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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원본(原理原本) - 제3권
[38] 40일 복귀하고자 한 섭리노정의 근본의의
인간세계의 해와로 인하여 타락이 시작되었으니 그때부터 인간세계는 비원리존재(非原理存在)에 속하여 나오는 반면에 하나님은 원리적(原理的) 복귀(復帰)로서 태세(態勢)를 취하여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원리적으로 직계의 혈대(血代)는 지금까지 섭리의 한 소망으로 남게 되고 그 직계적 혈계(血系)는 비원리적으로 시작한 바는 사실이다.
이런 근본 뜻은 다시금 찾아 근본 혈통 계승을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본의(創造本意)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타락된 인간일망정 포기하지 못하고 원리적 복귀 원칙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계속되는 역사를 본 바는 논한 바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의 자식 중에 가인과 아벨로부터 제물을 받는 근본 뜻도 알 줄 안다. 가인은 사탄의 최초 혈통 계승 표시자요 아벨은 아담의 입장이니 종적으로 해와 대한 표시적 자식이기 때문에 근본 하나님이 찾을 수 있는 자식이므로 하나님은 다시금 찾고자 할 적에 첫 생산자보다 다음 자식 아벨을 사랑적으로 대한 원인은 알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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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도 하나님의 아벨 제물 받게 되는 이유는 미지로 나타나서 있다. 그것은 그 시대적으로 먼저 알 수 없는 원리복귀하고자 하는 역사적 뜻에 성사를 볼 것이 되지 못함으로 지금까지 미지로 되었다.
아담 해와 중심하고 찾고자 하나님은 하지 못한 것도 비원리 존재가 먼저 한 주인격 상대로서 있기에 한 주인 상대로 원리로 된 창조적 원리가 있기에 아담 해와로 인한 복귀를 못 하고 가인과 아벨로써 이성분립(二性分立)을 보아 순종과 불순종을 작정하게 하는 표정물(表定物)이 즉 아담 두 아들 제물인 것이다.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게 되는 것은 사탄적 생산혈통 계승에 결실존재(結實存在)였으므로 가인 제물보다 아벨의 제물을 받음이었다.
아벨이 더 성심 다하였다는 바는 성경에도 없는 것이다. 이 근본적 원리가 이런 원리로 되어 있는 원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근본 타락에 대하여 내 발표가 정론(正論)임을 알 것이다.
가인도 아벨 대한 반격(反撃)이 없었으면 다시금 기쁜 복귀(復帰)로 될 것이었으나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늘 대하는 반격(反撃)의 시작이 있으니 하늘 뜻 파괴를 시작하게 하는 기원점(基源點)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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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가인도 아벨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찾아 드렸으면 하나님은 사탄의 소유물(所有物)이란 분립(分立)을 방지하였을 것이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가인 한 자체의 행동이야 인간의 제일 슬픔의 시작이 기점(基点)을 짓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아벨을 죽이니 하나님은 아벨 대신 셋을 주어서 섭리(攝理)를 다시금 세우고자 하였다.
셋을 주어서 역사를 경과하는 도중에 셋 자손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가인 자손이 좋아하는 사탄 편 짝으로 가니 전 인류는 사탄 소유란 비원리(非原理) 세계를 조성한 셈이다. 그러니 이를 청산하고 뜻의 사람 택(択)함이 노아였다. 노아는 그 시대적으로 하나님의 소망의 존재이면서 그 시대 세계 인류보다 귀한 소망 존재였다.
노아를 중심하고 하나님은 뜻의 인간을 조성하고자 하니 전 세계의 전부(全部) 것을 분립하는 하늘 편(便) 쪽으로 분별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니 사탄 소유물(所有物) 불순자(不順者) 합하여 전멸(全滅)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불순자(不順者) 소유물을 세계상에서 없애기 위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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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비원리주인격(非原理主人格) 사탄을 근본적으로 추방하고자 함에서 시작이었으니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물만을 세계상에 시작하고자 함에서 대격(対撃) 취함이 노아 심판이다.
이 심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창조한 근본 원리적 입장을 복귀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사탄 침입받은 아담 해와로 인한 만물은 사탄 피로 인하여 하나님과 떠난 것이므로 전부를 청산(淸算)한 것이다. 노아를 택하심은 전부를 다시금 찾아 세우는 모양으로 노아의 방주(方舟)에 모든 생물을 노아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제2 창조이상(創造理想) 시작이 목적이었다. 이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의무적(義務的) 입장이란 것은 말할 것 없는 것이었다.
이런 노아는 인간 제2 조상으로 혈통 계승의 계대(繼代)를 잡고자 하는 기반작업은 어찌 되었느냐 하면 함의 행동으로 사탄이 하나님의 앞에 자기의 혈계적 증거격(血繼的 証據格)으로 서니 하나님 앞에 자기의 혈족이 있음을 세워서 다시금 침입하여 취하게 되니 함이 가나안의 아버지로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 나체(裸体)로 인한 행동으로 시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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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금 본다면 좋은 행동 같은데 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행동이 되며 하나님과 원수(怨讐) 된다는 행동인가는 두말할 것 없이 해와의 타락 근본을 표증(表証)한 사실인 근본과 합하는 혈연적 관계로 표시하였기에 사탄 침입은 또다시 가나안 부격(父格)으로 함을 통하여 시작해 본 것이 근본이었다.
그렇게 되니 하나님의 크게 심판한 목적은 제2차적으로도 근본시작(根本始作)을 보아 출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찾고자 하는 전목적(全目的)을 잃어버린 반대목적(反対目的)의 결과를 한 셈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심판은 하였으나 심판하기 전과 같은 시작점(始作点)을 본 것으로 되니 하나님은 근본목적(根本目的)과 요구를 다시금 찾아야 하게 되었다.
즉 심판할 때 하나님은 40일 주야를 두고 심판하였다. 이 사십일은 하나님의 뜻 성사의 시작으로 잡는 기본을 작정하는 기간임이 사실이다. 이 40일에 대한 목적은 사탄 전부를 추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사탄 추방 목적은 함으로 인하여 또 다시금 침입기대(侵入基台)를 잡고 하나님의 근본 뜻을 미성사(未成事)로 시작을 본 셈이다.
하나님의 40일 심판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되어졌다. 40일을 뜻에 맞게 찾으면 근본목적(根本目的) 성사를 볼 것이었는데 40일을 미성사(未成事)한 모양으로 나아가니 40일의 목적은 전부를 잃어버린 목적으로 시작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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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있어서 40일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이 되었으니 다시금 뜻을 세우는 길에는 40일이란 근본목적(根本目的) 성사가 최고 목적이면서 이것을 찾아 세워야만 뜻 성사란 목적 완성이니 이 40일을 중심하고 사탄분립을 작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십일을 사탄이 침입하게 되니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었으니 하나님은 40일이 사탄에 대하여 찾아 세워야 할 한 분기점(分岐点)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40일을 중심하고 섭리의 시작은 언제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노아의 40일 기간이 즉 심판의 모든 목적이니 이 40일 끝났을 때 행사로 하나님이 창조하던 완성을 표준한 때와 마찬가지로 출발하고자 하시었다.
노아는 사십일 지난 후에는 비둘기를 내보냄이었다. 이것은 창조 받은 세계에 사탄이 먼저 시작하였던 것을 다시금 찾아 성사(成事)할 표시의 상징이었다. 즉 비둘기를 내보냈으나 돌아 들어오지 않았다. 창세기 8/7에 보면 비둘기는 세상의 물이 마르기까지 왕래하는지라 하시었다.
먼저 내보낸 비둘기는 왜 노아한테 들어오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행하는가 하면은 먼저 사탄이 지금 이와 같이 되어서 행한다고 하는 표시로써 까마귀를 내보내심이었다. 사탄이 물로 심판받은 물 위를 다니면서 쉴 곳을 찾고 있다는 한 표시로 됨이 미둘기를 내보내심이 한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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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비둘기를 내보냈더니 비둘기는 지면의 물로 인하여 발붙이지 못하고 다시금 노아 방주로 돌아오니 노아가 손을 내밀어 들어오게 하고(창8/8~12 참조) 7일을 기다려서 비둘기를 내어 놓이니 저녁에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을 입에 물고 들어오는지라. 그 후 또 7일을 지내서 비둘기를 놓아주니 다시금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비둘기로 인하여 3차나 보내셔야만 비로소 완전히 지상을 찾아서 번식(繁殖)할 수 있는 배 없이 직접 살 수 있다는 한 표시로 되어 있다. 이 표시는 무엇이냐 하면 타락 때부터 진리(眞理) 전부에 대한 복귀의 한 표시로 되어있다.
첫 번 비둘기는 제1차 아담의 시작을 보려고 하였으나 비둘기가 물로 인하여 돌아온 것과 같이 그 영인체가 하나님 앞에 돌아온 것과 한가지고 즉 노아가 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받아들이심과 같이 아담의 영(灵)을 받아들이심이었다. 비둘기를 방주(方舟)로 받아들인 것과 같이 그 방주는 하늘 전부의 표시였다. 즉 3층천(三層天) 표시로 된 것이었다. 방주도 상, 중, 하로 된 것도 하늘 3층천 표시로써 기인한 것이다.
다음 비둘기는 2차 아담 예수를 표시함인데 예수는 아담 영(灵)이 보내심을 받아 땅을 찾아 번식(繁殖) 생(生)이 땅을 찾고자 하였으나 감람나무 잎만 물고 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뜻을 이루시려고 하였으나 땅이 아직 받을 수 있는 땅이 못됨으로 찾을 수 있는 약속(約束)을 세워서 기대성사(基台成事)한 표시로 된 것이며 3차 비둘기는 완전히 뜻 성사 시작을 완성하신다는 한 표시적(表示的) 내용을 보여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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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진리복귀(眞理復帰)에는 소생(蘇生)부터 장성(長生)으로 완성(完成)으로 한 목적달성(目的達成)한다는 만우주(萬宇宙) 창조원리(創造原理)를 표준(標準)하였기에 이렇게 표시(表示)된 것이다.
하나님이 7일 간격 둔 것은 첫 번도 완성하려고 한 것이 연장되니 즉 7일 이상연장(理想延長)되니 이런 간격(間隔)을 두어 역사(役事)한 것이다. 제1차는 한 기간을 두고 한다는 것이고 다음번도 이루지 못하면 한 기간을 두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이 하나님의 뜻은 제1차 비둘기적으로 성사하고자 하였으나 땅은 사망권(死亡圈)에 잠기었기에 돌아왔고 제2차 성사하려고 하였으나 땅이 받지 못하여서 돌아오고 제3차 만에는 아무리 하여도 성사한다는 한 한계(限界)를 표시함이다.
그러므로 성사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이 이루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고 땅들이 받들지 못함으로 연장(延長)된다는 한 표시로써 제1차 제2차 제3차로 연장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아담 타락으로 인하여 비둘기가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고 제2차 아담 완성자로 오신 예수는 땅이 받지 못하여 약속만 성사(成事)하고 돌아오고 완성 제3차 아담이 와서 완성한다는 뜻이므로 비둘기 3차는 돌아오지 않음은 뜻 완성할 바를 보여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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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노아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자기 몸이 지상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3차 아담 재림주로 인하여 지상에서 창조이상생활(創造理想生活)을 시작하여 직계적(直系的) 세계를 조성할 바를 표시되는 것이 목적으로 되었다.
그런 목적근본(目的根本)인데 노아 아들 함으로 인하여 다시금 목적파괴(目的破壞)를 시작하는 비원리존재(非原理存在)를 유인(誘引)하니 하나님은 근본(根本) 40일 심판목적(審判目的)은 불성사(不成事)로 되어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섭리하는 혈통 계승에 사탄 침입의 종적(踪蹟)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백 년 연장을 보는 바다. 그 근본 뜻은 사십일을 중심하고 사탄 대립의 성사(成事)를 시작하였으니 그 기본 40수가 기본적으로 원인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40일 수를 기본복귀(基本復帰)하여 다시금 이루려 하니 40일 가지고나 40년 가지고서도 안 되겠으니 4백 년으로 연장시켜서 4백 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제2 인간조상이 성사(成事))할 믿음의 기본성사(基本成事)인 노아의 믿음(信) 완성기대(完成基台)를 아브라함 택(択)함으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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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믿음을 세우심은 아담이 불신(不信)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금 기대(基台)를 찾아 세워야 사탄 대할 수 있는 기본(基本)이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노아의 근본 뜻 믿음 계승완성자로 택한 바이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되는 근본의의(根本意義)가 있는 것이다. 왜 아브라함을 택하였나 하면 노아 가정으로 택(択)함에서 실수하였으니 아브라함 한 자체(自体)로서 시작하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앞에 믿음의 기본을 세울 수 있는 때까지는 어떤 경로(經路)를 밟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이 흉년(凶年)을 당하여서 아브라함은 애급으로 내려가는지라.
그 당시에 아브라함의 처(妻) 사라는 아름다우므로 염려(念慮)하여 남매(男妹)로 된다는 약속과 동시에 애급에 감이었다. 이 사라는 아브라함의 처(妻)로 누이의 입장에 서게 됨도 아담 해와 입장인 큰 원리적 사실을 찾아 세우고자 함에서다.
그것은 애급은 사탄 대신국(代身囗)인데 그 국왕 바로는 아브라함의 처를 자기가 취하여 처로 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이 바로 대하여 아브라함에게로 찾아주니 바로는 아브라함에게 소유물(所有物)을 주어서 돌리심은 하나님으로 인(因)한 연고(緣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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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뜻 성사하는 노정에 제일 문제는 애급까지 가서 처(妻)를 소유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근본 한 해와가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빼앗으려 한 것을 다시 찾는다는 한 표시를 보여 그 후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시작한 것과 같이 원수의 모략(謀略) 중에서 하나님은 해와를 찾아서 복귀의 땅에서부터 뜻 성사함이 기대(基台)를 조성한 바와 같이 하나님도 하신다는 근본 뜻이 있음이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애급서 가지고 온 소유(所有)를 기본으로 하여서 뜻 기본을 삼아서 하나님의 뜻이 성사(成事)할 기본을 잡았다.
이것은 만물 전부를 취하여 뜻 기대(基台)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다음은 롯이 잡아간 원수를 대하여 승리한 후에야 아브라함은 뜻 성사의 시작이 결정(決定)을 받게 되는 바다.
이것은 택한 자를 전부는 복귀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노정이 완성되니 아브라함은 약속에 대한 표시물(表示物)로써 3대 제물로 하나님과 첫 조건에 대한 성립의 기대(基台)를 완성하는 바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사탄 소유의 귀(貴)한 자와 같은 것은 데라의 아들을 빼앗아 내었으므로 사탄은 아브라함이 뜻하는 하나님 대하여서 아브라함이 무엇이나 순종하지 않은 그 무엇이 소유만 되면 소유하고자 하여 아브라함 뒤를 따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아브라함과 하나님과는 중대 약속 성립을 시작하게 되니 사탄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될 터를 시작함으로 이때 하나님에 대하여 사탄은 대립하여 서게 되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제물을 드렸으면 아브라함부터 기본기대(基本基台)는 잡아 4백 년 역사적 연장생활(延長生活)인 애급 생활은 없고 직접 하나님 책임분담(責任分担) 사명으로 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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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적은 무슨 목적이냐 하면 아브라함만 완전히 뜻 성사하면 사탄 대한 근본 추방(追放)을 시작하여 40일에 대한 노아 심판하였던 기본목적은 완성되어서 출발을 볼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나니 40일에 대한 뜻은 아직 완성적 기대(基台)를 잡지 못하게 되고 그에 연장적 4백 년이 탕감시대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 4백 년이란 연대는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연장하여 사탄이 침입한 것이니 이 4백년대 탕감하여야만 노아적 시대 입장에 입각함으로 아브라함에게 4백 년 연장을 보았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에 남아지는 바는 40수가 남아있는 모양으로 되니 40수가 만사를 해결하는 뜻 성사의 완성점(完成点)으로 남아지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선 뜻 아브라함은 뜻에 미성사(未成事)로 인하여 자손이 4백 년 고역생활(苦役生活)을 함이 크나큰 화근(禍根)으로 되는 기간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청산하여서 사탄 침입을 방지하고자 하니 제물표시로 되었던 실체자(實体子)로 인하여서 제물대신(祭物代身) 찾아 세우고자 하니 이삭을 모리아 산(山)에서 제물로서 헌제(献祭)를 명령하심이었다.
이 뜻을 아브라함이 3일 기간을 두고 헌제함의 합의(合意) 봄으로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노정에 사탄을 방지(防止)하였으나 사탄 역시 이삭에 대하여 선유(先有) 소유물 될 수 있는 제물소유(祭物所有)로 인하여 미련 갖고 대하게 되니 이삭 자식 중 이성적(二性的) 표시 자식으로 분립하여서 하나님은 뜻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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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야곱의 모친과 협조하여 에서의 기업(基業)을 빼앗아 넘기는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복중(腹中)에서부터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하나님께 아뢰니 여호와 하나님이 답하여 가로대 두 나라가 너의 복중에 있음이며 두 민족이 너의 복중으로부터 나누어지리로다.
이 족속(族属)이 저 족속보다 강함이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하시었다.(창25/23-24) 이것을 보아도 아브라함이 실수한 근본을 다시금 하나님은 뜻하시어서 분립(分立)하게 하는 역사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야곱은 약아서가(영급) 아니다.
하나님의 근본 뜻이 이와 같은 사탄이 먼저 제물(祭物)을 취할 수 있었던 대신이며 형의 존재인 에서를 두고 야곱은 다음번이으로 하나님의 뜻 중에서 사탄이 뜻하였던 소유물 전부를 빼앗음을 표시하기에 이와 같은 대립을 보게 한 것이다. 이것이 즉 후일에 예수의 한 역사(役事)의 본(本)되는 사실들로 되는 것도 알줄 안다. 이와 같이 하는 바는 사탄의 아브라함 자식에게 미련을 남기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뜻 성사를 보려고 하던 것을 이삭으로 통(通)하여서 야곱에서 비로소 성사(成事)하게 되니 아브라함을 대하였던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으로써 야곱까지 와서 첫아브라함 대한 하나님 뜻 성사를 보니 여기에 하나님은 3인을 상대하여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연장(延長)을 본 바에 근본원리(根本原理)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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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3대의 하나님으로 인한 명사(名詞)가 지금까지 좋은 이름으로 된 듯하고 현재 신앙자는 알고 있지만 크나큰 오해(誤解)를 알아야 한다. 이런 역사적 하나님편적으로 원리를 중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런 원리로 전부가 사탄 침입방지(侵入防止)하기 위한 목적인 동시에 근본 타락시작(墮落始作)의 복귀를 위하여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야곱부터 애급 출발은 야곱이 아브라함의 본(本) 뜻 4백 년 탕감노정 출발이 시작함이다. 왜 이삭부터 안되었는가 하면 이삭은 아담과 같이 두 주인을 상대하는 존재였기에 이삭부터 애급 4백 년 시작을 못 한 바는 논한 적이 있다. 야곱이 시작하였다는 것은 야곱은 근본 뜻 성사를 잡은 자(者)이니 야곱이 애급 출발하는 바의 근본원인(根本原因)이 있음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에 뜻 성사한 완성존재(完成存在)가 못 되므로 애급을 향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삭의 자식 에서라는 존재는 사탄 상대자(相対者)라는 서러움이 시작된 것이다. 어디까지나 제물 실수가 없었으면 아브라함 자식에는 에서라는 존재는 없이 근본 뜻 시작을 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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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이삭 자체로서도 40세를 중심하고 리브가를 장가들어(娶) 처(妻)를 택함이었다.(창세기 23/20) 이리하여 하나님이 뜻의 시작을 보게 하신 것이다.
야곱도 40세를 중심하고 에서의 기업(基業)을 빼앗는 기본역사(基本役事)를 시작할 바가 원리로써 짐작하여야 한다. 창세기에 야곱이 40 연령은 없으나 짐작하기는 에서가 축복 못 받게 되는 연령 숫자 에서의 40세에 헷 족속의 딸을 처(妻)로 인하여 이삭과 리브가가 근심하더라 하는 것을 보면(창세기 26/34) 야곱 연대(年代)도 사십 세를 중심하고 섭리하여야 할 바가 원리로 되어 있다.
이런 40년대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본을 잡으심은 기본(基本) 노아 심판 40일 수를 복귀한 기본원인수(基因數)로 인하여서 이와 같이 시작을 한 역사적 기원으로 인한 것이다.
야곱이 사후에 그 몸에 방부제(防腐劑)를 40일 발랐음은 야곱의 몸은 하나님의 뜻 완성자(完成者)이므로 이 한 존재는 사망하여서도 40일 기간과 같은 사탄 대한 40일 심판을 받아 사망한 자와 같은 사망이 아니고 40일을 완성한 성사자(成事者)로써 하늘 뜻 40일 기간상에 처하여 죽은 자라고 하는 표시로 40일 방부제를 바르게 한 뜻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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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40일 되는 사망기(死亡期)를 방지한 중심 존재가 된 것이라는 근본적인 뜻으로서 40일을 보게 한 것이다. 40일은 즉 사탄 추방기간(追放期間)이면서 생명소생기간(生命蘇生期間)이다.
여기까지도 야곱까지 연장하여서 애급 출발하게 되어 한 하나님의 기대(基台)를 잡아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란 연장(延長)은 우리는 생각하면 원통(怨痛)한 기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기간을 두고 하나님은 약속제물(約束祭物) 실수한 전부를 청산하여서 사탄 분립을 성사(成事)할 때까지는 어느 곳까지냐 하면 야곱의 12식구가 밧담, 아람, 라반에게서 얻은 소유를 가지고 가나안 땅에 돌아온 후에 뜻 성사의 시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이삭부터 야곱이란 3대(三代)란 것은 하나님의 뜻하는 약속 제물 중에 3제물 표시로 된 것은 소생(蘇生)부터 장성(長成)으로 장성부터 완성(完成)에로 하는 진리단계(眞理段階)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니 아브라함의 뜻 합의(合意)하게 성사하였으면 3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3대 후에 완성한 것도 전체 하나님의 뜻을 이 3대적(三代的) 단계로써 찾고자 하는 역사적 진리노정(眞理路程) 전부로 표시함이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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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수로 인하여 분립(分立)하여서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으로 야곱으로 하여 뜻 성사한 터는 진리노정에 대한 기본적 표시로 전개를 보게 되었다. 즉 아브라함은 아담 상징으로 이삭은 예수의 한 상징으로 야곱은 완성 상징으로 됨이었다.
예수는 이삭과 같은 입장임에 사람만 믿었다면 죽음 없이 야곱 뜻 합(合)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삭도 죽음을 면함도 뜻을 세우심으로 면(免)한 바와 같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基台)를 잡지 못하니 미성사(未成事)할 수 있는 표시적 일대(一代) 복귀역사(復帰厂史)와 모세로 인하여 민족복귀노정(民族復帰路程) 실수로 인하여 십자가(十字架)까지 관련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뜻 완성자(完成者)는 야곱이었다. 야곱이 뜻 성사하기 위하여서는 제1차 가나안을 떠나는 생활이 야곱 앞에 있었다. 즉 장자(長者) 기업(基業)을 취하고는 야곱은 기업 성사할 자로 라반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여기에 야곱 앞에 전개(展開)는 전부가 후일에 예수님의 할 사명적 표시로 되는 것은 한 뜻 기대성사(基台成事)는 야곱이므로 야곱은 뜻의 완전한 기대완성(基台完成)이 있어야겠으니 야곱은 하란 생활의 시작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가나안 복지(福地)까지는 전부가 이스라엘이 나가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기대(基台)가 되어야겠으니 일대(一代)에서 하나님의 뜻에 전부를 표시한 역사로 전개할 의의(意義)로 보는 바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3대제물(三大祭物)은 아브라함을 소생(蘇生)으로하고 사탄 대하여 장성적(長成的) 이삭이 시작을 보고 야곱이 시작으로 노정 완성하니 이 역사적 3대조상(三大祖上)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적 전부를 표시하는 바로 전개(展開)를 보여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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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제물의 전부는 전인류(全人類) 대한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실수 복귀는 전인류에 대한 한 표징적(表徵的) 사실로 전개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일대 가나안 복귀까지에 전부는 가나안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 4백 년 생활과 상대되는 기본일대(基本一代) 복귀 역사다.
이 야곱의 가나안 복귀노정(復帰路程)은 이스라엘 전체 민족이 가나안 복지노정에 본(本)되는 노정이다.
이리하여 야곱은 복귀노정에 야곱의 뜻을 성사하게 하는 에서가 있었다는 것은 아담 아들 가인과는 반대로 야곱 대함이 시작보니 기본 가인과 아벨적 근본 뜻을 합의 본 셈이므로 그러기에 근본 아담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뜻에 속한 것과 같은 완성 보니 뜻 성사를 보는 바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찾아들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 에서가 야곱을 대하여 반대하여 원수 시(示) 하였다면 하나님의 뜻 성사에 큰 문제가 될 것이었으나 에서 야곱을 환영하며 에서도 후일에 하나님 대하여 순종의 한 간접적 기본을 잡아 세웠음이었다.
그러므로 에서의 후손은 가나안 땅에서 원수 대립이 안 되고 가나안 땅에서 기업지(基業地)를 소유 계속한 원인을 세우심이 기대(基台)가 에서가 야곱 대하여 환영한 결과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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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야곱 가나안 복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생활로부터 가나안 복지(福地)로 오는 한 본(本)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란 생활노정(生活路程)에서 대하는 라반이란 존재는 사탄의 대상존재(対像存在)로써 야곱이 전부를 해치고 자기의 욕망 충당을 세우려고 하는 자였다.
라반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우상숭배자(偶像崇拜者)였다.(창세기 31/19) 이리하여 하란 생활에서 재물을 취하여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려고 할 때 라반에 대하여 야곱이 취할 수 있는 자유삼일(自由三日, 창세기 31/21~22)이 있었던 바다. 이 3일간을 중심하고 라반에게서 얻은 전소유(全所有)를 분립하게 하여 소유권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리하여 라반은 3일 후에야 길느앗산(山)에 대(対)하였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음으로 자기 뜻을 성사 못하고 자기의 우상(偶像)을 가져간 것을 찾다가 라헬이 그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우상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낙타의 안장 아래(駱駝鞍下)에 두고 타고는 지금 딸은 경수(脛水)가 적출(摘出)하여 일어나 환영하지 못한다 하여서 우상(偶像)을 라반이 찾지 못함에 뜻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야곱한테 공격(攻撃)을 본 것이었다.
야곱에게는 레아 라헬 두 처(妻)가 있었다. 그 뜻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대하고자 하는 뜻 중에는 하나님의 두 여성이 있다고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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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뜻 아닌 레아적(的) 여성과 야곱의 뜻이 중심인 라헬적(的) 여성이 있다는 표시로서 보여줌이었다. 여기에는 근본 해와의 잃어버린 하나의 찾아야 할 근본적 여성이 있는 바라는 것의 표시였다.
그것은 라반이 뜻 이룬 레아의 존재와 한가지 표시였다. 이것은 먼저 잃어버린 전인류 대한 타락 시작 본 모(母) 해와로 표시한 바이다. 라반이 레아를 주고는 칠일 기간을 채운 후에 라헬을 처를 삼게 하였다.
이 칠일 기간(창세기 29/28) 일수(日數)는 즉 노아가 비둘기를 내보내듯 일수에 하나의 섭리완성적 일수로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뜻 성사하고야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라헬 찾은 것은 하나님의 후일 잃어버린 해와를 찾아 근본 뜻 성사할 목적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레아 아들과 라헬 아들 합하여 뜻 완성을 표준한다는 전세계 인간 찾아야 할 근본 목적을 표시한 것이었다.
또 여기에 라반이 행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탄 세계에 불신으로 인(因)하면 이와 같은 야곱의 목적이 두 번 만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예수도 이와 같은 한 완성을 성사할 바의 뜻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야곱과 합하여서 아버지 라반을 대하여 선 처(妻) 라헬의 태도와 같이 하여야만 후일에 하나님의 뜻이 완성을 본다는 한 표시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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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이 만일 우상(偶像)을 아버지한테 보였으면 야곱과 전부는 큰 미성사(未成事)를 가져오는 문제로 되는 것이나 라헬의 한 승리를 가져온 중심은 경수(脛水)로 인하여서 승리한 바와 한 가지로 야곱 처(妻) 라헬의 말로 인하여 우상을 없게 한 바와 같이 후일 하나님 뜻 노정에 이와 같은 여자의 경수(脛水)로써 사탄 전부를 승리하는 기대(基台)가 시작한다고 하는 예시적(例示的) 내용을 표시한 것이다.
이것은 두처(二妻)의 태도와 같이 제2차 해와로 인하여 사탄을 굴복시켜 뜻 완성을 한다는 한 승리적 표시였다. 이 야곱의 일대기 전개가 예수님의 노정으로 시작된다는 것도 한 표시로 된 것이다.
이 야곱의 전체 목적 성사(成事)는 애급 노정상에 다시금 시작의 본(本)으로 나타나서 하나님도 사탄 대하게 하는 근본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전체 하나님의 역사적 노정을 표시한 존재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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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아담 실수한 것을 이삭으로 복귀와 같은 예수 제물표시(祭物表示)로 불신하니 십자가(十字架)로 시작하고 야곱과 같은 재림주격 성사(成事)로 완성되는 한 표시로 된 자(者)들이 하나님을 대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라는 대상자(対像者)인 뜻에 섭리를 표시한 존재들이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연장된 후일에 전부를 표시한 기본(基本)들이니 믿음이 기본되는 바가 성립되니 믿음의 조상이라는 기본의의(基本意義)가 있다는 바를 말함이다.
야곱은 1대로 혈대(血代) 복귀자(復帰者)며 모세는 2대로 그 기대상(基台上)의 민족복귀(民族復帰)의 사명을 갖고 출발한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뜻 노정은 구약 역사(役事) 중에 전부 표시하여 맞추고자 함이 근본으로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은 야곱 성사부터 할 바가 모세부터 시작한 것이다.
모세는 야곱이 근본목적 완성하여야 할 표시적 노정으로써 후일 예수의 제2 책임노정(責任路程)을 표시로 하면서 하나님의 직접 책임 기대(基台) 잡은 노정의 시작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 역시 야곱 계승적(継承的) 성사(成事)로서 출발하심이 출(出)애급 노정이다. 모세= 아브라함 + 자손 = 제물찾음 = 하나님 취하여 역사.
그리하여 예수님의 본(本) 되는 노정(路程)을 하나님과 합하여 성사(成事)하여 놓았다. 그러므로 야곱이 나간 곳이 완성을 본(本)으로 모세는 출발하게 되었다. 이 모세의 본이 될 수 있는 노정이 완성을 시작하였기에 믿음의 조상들로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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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예수의 앞에도 이와 같은 완성목적(完成目的)하고 나가야 할 표시의 노정으로 모세도 출발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섭리한 바에 근본본의(根本本意)는 사탄 대한 40일 완전 복귀 문제로 귀인(帰因)하는 것이다.
이 모든 어려운 역사(役事) 시작의 연장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도 애급 궁중(宮中)에서 자라게 하는 것도 택한 백성을 제2차로 노아 후에 사탄한테 빼앗겼으나 사탄한테 주었다가 다시금 사탄 대하여 반대노정(反対路程)을 세우려니 모세 역시 40년 동안을 바로 궁중에 있다가 40세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출발하게 한 것도 이 근본 40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근본 뜻 성사 목적이었기에 모세 역시 40세에 애급 대하여 반대하는 것이다.
모세가 40세를 바로 궁중에서 전부를 잘 유지한 후에(사도행전 7/23) 하나님은 택하여 또 40년간을 두었다가 역사(役事)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바로 대(対)한 출발 때는 80세였다.(출애급기 7/7) 이와 같이 40수를 두고 역사(役事)한 것은 40일 수를 잃어버린 것과 같이 되었던 것을 찾아서 탕감을 정하려니 40세에 택하는 섭리를 시작하게 하여서 80세에 성사(成事)로서 모세를 세워서 역사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재출발하는 모세는 승리노정(勝利路程)을 잡고 나간 것은 40일 복귀의 목적완성이니 40년 후 40년 하늘 뜻의 준비기간으로 대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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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모세 40년 애급이 바로한테 준 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가 지배하니 기본 40일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4백 년이란 연수로 보았으니 모세는 이 40일을 사탄으로부터 하늘 40수로 찾아 세워야겠으니 애급 40을 주었다가 하늘 40으로 탕감하여 하늘이 기본 40일 수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잡고 나서는 양상이니 애급 출발이라는 시작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40일을 전체적 완성을 하여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전부가 40일 완성하여야만 노아 심판 근본 목적 달성한 하늘 백성으로 보는 것이겠으니 즉 근본 하나님의 창조본의(創造本意)인 말씀을 복귀하겠으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하여 놓고 근본 뜻 성사에 기본 말씀 성사의 약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즉 40일 주야(晝夜)를 통하여 금식(禁食)하여서라도 성사할 목적으로 되니 모세는 40일을 완성하려니 금식하여 40일 근본 심판 근본이 복귀가 목적이니 40일로 인하여 말씀에 대한 두 석판(石板) 받음이다. 이것은 무엇이나 40일의 완성이 다시금 성사한 기반이 되는 아담 해와의 성사를 완성한 본(本)이라는 것이 시작을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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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전백성은 말씀과 하나 되어야만 뜻 완성이라는 곳으로 나아갈 바의 근본인데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40일에 대한 제2차 완성도 다시금 미완성을 본 것과 같이 되니 이스라엘 백성에는 다시금 고통의 수 40수로 남아지게 되었다.
40수 미완성은 재창조 복귀 미완성수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정탐꾼이 가서 정탐한 날 40일이 최후로 이스라엘 백성이 전체 뜻 성사냐 미성사냐 하는 간격 둔 대상일 수(対峠日數)가 40일이었다.
이 40일을 두고 한 전부를 믿고 나가면 근본 40일은 승리의 기본 될 날이었는데 이 정탐기간 40일을 잘 믿고 넘지 못함과 같은 결과로 나타나니 광야 40년 고역의 시작을 본 것이었다(민수기 14/30~34).
이리하여 40일 기본은 완성 못하고 40일 완성으로 바라보던 전 백성 대표자는 다시금 사탄 소유물이 되어 광야에서 사십 년간에 사망하는 바가 시작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뜻 노정에서 40일의 승리적 목적을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 세워야 하는 중대기간(重大期間)으로써 남아지게 되었다. 40일 세우는 날이면 사탄 추방의 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십일이라는 날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찾아 세워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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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탕감과 동시에 완성할 것이 섭리노정(摂理路程)의 한 뜻으로 되었다. 모세 40일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여서 사탄은 어떻게든지 침입하여 모든 목적을 파괴하는 것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은 다시금 엘리야를 세우심이었다. 엘리야는 사탄 전멸(全滅)시키기 위한 대표적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바랄 신(神) 팔백여를 멸하고는 40일 주야로 호렙산(山)까지 가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모세 40일에 대한 승리점(勝利点)을 완결짓는 한 표시로써 엘리야 호렙산(山)까지 40일 기간이 있음이었다. 이리하여 엘리야로부터 노아 심판 40일을 완성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기본 출발할 수 있는 터를 조성하기 위한 총결전자(總決戦者)가 엘리야였다.
그것도 백성이 불신, 불순중, 모시지 않음(不侍)으로 인하여서 사탄 침입의 연장을 보아서 메시아 전까지 당도하겠으니 하나님은 40수 십진배수(十眞培數) 연수로써 4천 년 기간인 40수 연장으로 인한 메시아 때까지 침입하여 역사(役事)하겠으니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셔서 목적 성사를 예고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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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엘리야라는 존재는 세례요한으로 시작하여 사탄 전멸 목적 완성하여야 할 엘리야적 목적달성 못한 셈으로 되니 예수님 앞에까지 40일에 대한 역사적 탕감과업(課業)의 연장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탕감하기 위한 총결산기(總結算期)가 예수 40일 금식기간인 광야생활(拡野生活)이다. 이리하여 승리함으로 심판 목적은 완성할 기대(基台)는 잡았으나 사람이 합하여야만(누가복음 4/13 참조) 성사할 예수 앞에는 미성사(未成事)란 결과로 인하니 40일에 대한 미완성을 본 것과 한가지로 되었다.
그러니 십자가로 인하여 사탄 대(対) 승리를 목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패한 듯 하나 40일간을 찾을 수 있었다는 목적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은 십자가 후로 인하여 예수 앞에 복귀되면서 기본완성의 터를 시작하여서 출발의 영광을 본 것이 예수가 십자가 후 부활하여 40일 기간의 성립을 보아서 하나님의 기본 40일 노아 근본(根本) 사탄 추방 목적을 성립하여 놓은 것이 근본 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노정에 40일 기간이 문제로 되어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역사적 모든 것 완성자로 뜻 출발 중심존재로 되는 것이다.(51. 10. 26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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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感思합니다 我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