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OQhOb48qcQ
春夜宴 桃李園序 · 李白
夫天地者 萬物之逆旅요 光陰者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若夢하니 爲歡幾何오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라
況陽春召我以煙景하고 大塊假我以文章에야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
群季俊秀 皆爲惠連이어늘 吾人詠歌 獨慙康樂이라
幽賞未已에 高談轉淸하고
開瓊筵以坐花하니 飛羽觴而醉月이라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오
如詩不成이면 罰依金谷酒數하리라
천지는 만물의 여인숙(旅人宿)이오, 시간은 백 대의 나그네라
뜬구름 같은 인생 꿈만 같으니 기쁨을 누린들 얼마리오
옛사람이 촛불을 밝히고 밤에 노닌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음이라
하물며 화창한 봄날이 아지랑이로 우릴 부르고, 대지는 빛남으로 우릴 이르게 함에야
복사꽃 오얏꽃 향기로운 동산에 모여 천륜의 즐거운 일을 펼쳐놓으니
여러 준수한 아우들은 다 혜련이거늘 내 읊은 노래만 홀로 강락에 부끄럽구나
그윽한 감상 그치지 않음에 고고한 담소는 더욱 맑아지고
옥 자리 펴고 꽃을 마주하니 깃 달린 잔이 날아올라 달을 취하게 하네
아름다운 작품이 있지 않다면 어찌 고아(高雅)한 회포를 펴리오
시를 이루지 못한다면 금곡의 술잔 수로 벌주리라
[해설]
李白(701~762년) 唐. 字 太白, 號 靑蓮居士
桃李 예로부터 우수한 문하생이 많음을 桃李滿天下라 하였고, 덕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여도 사람들이 따름을 桃李不言 下自成(복숭아와 오얏은 꽃이 곱고 향기로우며 열매의 맛도 좋으므로, 오라고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뜻에서 연유)라고 했다. 후자의 말은 『사기』 李將軍列傳에 나온다. 사마천이 한 무제 때의 장수인 李廣을 평가하는데 쓴 속담이다. 李白은 漢代 李廣 장군의 25세손으로 추정된다. 흉노족들은 李廣장군이 활을 잘 쏘아 ‘飛將軍’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 장군이 많은 전공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자결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를 위해 눈물 흘린 것을 사마천은 ‘桃李不言 下自成蹊’에 비유했고, 850여 년 뒤 후손이 나와 ‘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이라고 읊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惠連(407~433) 謝惠連. 南朝宋人. 열 살 때 이미 문장에 능하였는데, 형인 靈雲은 그의 새로운 문장을 보고 늘 西晉의 시인인 ‘張華가 다시 살아나온다 해도 그 문장을 바꾸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칭찬했다. 27살의 나이로 요절. 뛰어난 작품으로 ‘雪賦’가 꼽힌다.
康樂(385~433) 謝靈雲. 어릴 적 이름이 客으로 사람들이 흔히 謝客이라 부름. 康樂侯에 봉해졌기에 謝康樂, 謝康公이라고 부름. 山水詩에 탁월한 강락의 시를 이태백이 좋아함.
金谷酒數 西晉의 石崇(249~300)이 화려하게 金谷園을 꾸미고 손님들을 초빙하여 연회를 베풀 때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로 술 석 잔을 먹였다는 古事에서 金谷酒數는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를 가리키는 말로 쓰임. 金谷은 하남성 낙양현의 서쪽 金水가 흐르는 골짜기. 석숭은 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하여 중국에서 부자의 대명사로 일컬어졌으며, 사후에 福 祿 壽의 三仙 가운데 祿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됨. 학문과 시에도 능했으며, 綠珠라는 애첩을 총애하여 百丈 높이의 누각을 지을 정도였다. 권력투쟁과 얽히다가 결국은 斬首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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