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교리라는 박제된 틀을 벗어나, 온 세상 속에 흐르는 보편적 진리를 찾아나서는 구도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고전 헬라어와 라틴어, 그리고 동양 고전을 읽어나가는 중에 최근 아주 흥미롭고 파격적인 신약학자의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데니스 맥도널드(Dennis R. MacDonald) 교수의 《복음서와 호메로스(The Gospels and Homer)》라는 책입니다.
오늘은 이 책의 서문을 바탕으로, 복음서가 어떻게 고대 헬라 세계의 최고 고전인 호메로스의 서사시(일리아스, 오디세이아)와 대화하며 쓰였는지 아주 쉽게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 복음서저자들은왜호메로스를모방했을까?
우리가 흔히 읽는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 같은 성경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책이 아닙니다. 1세기 복음서 저자들이 살던 세상은 헬라 문화와 로마 제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당시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읽고 외웠습니다. 오늘날의 ‘셰익스피어’나 ‘고전 필독서’ 같은 존재였지요.
맥도널드 교수는 복음서 저자들이 유대교의 전통에만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당대최고의문학이었던호메로스의서사시구도와캐릭터를가져와(Mimesis, 미메시스) 예수의이야기를재구성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종(異種) 문화의 언어를 빌려와 자신들이 경험한 신앙의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전하려 했던 것입니다.
2. 베끼기가아니다! ‘가치재평가(Transvaluation)’의위대한창작
“성경이 호메로스를 모방했다니, 그럼 성경이 표절이라는 뜻인가요?” 하고 놀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미메시스(모방)’는 단순한 베끼기가 아니라 원작을뛰어넘어새로운가치를창조하는고도의문학기법이었습니다.
호메로스의영웅(아킬레우스, 헥토르): 칼을 휘두르고, 상대를 죽이며, 군사적 무력으로 명예를 얻는 영웅입니다.
복음서의예수: 무기 하나 들지 않고,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며, 섬김과 희생으로 부활하는 구원자입니다.
즉, 복음서 저자들은 호메로스의유명한장면과틀을가져오되, 그속알맹이는세상의폭력적질서를뒤엎는 ‘사랑과섬김의보편진리’로채워넣었던것입니다.
3. 맥도널드교수가제시하는엄격한기준들
맥도널드 교수는 그저 직관이나 억측으로 모방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서문에서 그는 7가지의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1. 당대의인기도와보편성: 1세기 헬라 세계에서 호메로스가 실제로 얼마나 읽혔는가?
2. 어휘와표현의대조: 1세기 어휘집(아폴로니오스 소피스타)을 활용해, 아르카익 헬라어 시와 코이네 복음서 언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일대일로 입증합니다.
3. 후대문헌의증거: 비잔틴 시대의 초기 기독교 문학가들도 성경 이야기를 쓸 때 호메로스를 모방했음을 제시하여, 고대 독자들에게 이것이 보편적인 기법이었음을 증명합니다.
4. 우물안교회를넘어 ‘세상이라는성전’으로
이 서문을 읽으며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초기 기독교는 결코 우물 안에 갇힌 폐쇄적인 종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라는 익숙한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이방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최고 고전의 언어(호메로스)를 가져와, 그 세상을 구원할 진짜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냈던 것입니다.
종교는 영원히 다니는 학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진짜 진리를 살아내기 위한 훈련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깨달음을 안고, 저 역시 박제된 교리의 언어가 아닌 세상의 언어, 보편적 고전의 지혜로 진리를 탐구해 나가려 합니다.
이제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제1장《일리아스》와예수수난서사의놀라운병행성에 대해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