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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에 처음 갑니다. 철암 이야기, 철암의 아이들 이야기, 광활 했던 언니들 통해서 참 많이 들었습니다. 철암과 아이들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1. 첫만남
광활 지원한 동료들과 함께 기차 탔습니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다 보니 태백역 도착 안내 방송이 들립니다. 짐을 챙겨 창 밖을 봅니다. 태백역 간판 아래로 핸드폰 카메라 들고 계신 김동찬 선생님, 손 흔드는 보아가 보입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어서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내렸습니다.
김동찬 선생님도 처음 뵙습니다. 보아도 처음 봅니다. 포옹 인사합니다. 보아가 안아주었습니다.
2. 낙동강의 시작에서, 광활의 시작에서
선생님께서 차량 빌려오셨습니다. 차 타고 철암 갑니다. 자동차 스피커에서 ‘복지인의 노래’ 흘러나옵니다. 광활 31기의 첫 노래가 ‘복지인의 노래’라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가던 길에 잠시 멈춥니다. 낙동강의 시작, 황지 연못입니다. 밤의 연못에, 알록달록 물든 단풍잎 은행잎이 비칩니다. 반짝이며 비칩니다. 아름다운 모습 바라보며, 김동찬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듣습니다. 낙동강의 시작 황지 연못에서, 광활의 시작을 그려봅니다.
3. 재 넘어 철암도서관
철암단풍군락지에 내립니다. 길 건너 철암초등학교가 보이고, 조명이 만들어낸 단풍잎들이 떠다닙니다. 단풍잎 하나 없는 맨 바닥에도 단풍잎 조명이 비치니 그저 단풍 밭 같습니다. 보아가 먼저 그 위에 누웠습니다. 와, 어쩜 그런 생각을! 보아 옆에 누웠습니다. 동료들 함께 달려와 빙 둘러 눕습니다.
김동찬 선생님은 차로 도서관으로 가시고, 우리는 보아 따라 재 넘어 철암도서관으로 갑니다. 어두운 오르막길을 편안히 오르는 보아 따라 걸었습니다. 같이 걸으며 보아에게 고백(?) 했습니다. ’철암에 너무 가고 싶어서, 맨날 도서관 카페 들어갔어요. 거기서 보아 사진 많이 봤어요. 보아, 보고 싶었어요.’ 보아가 웃었습니다.
저 아래로 철암도서관이 보입니다. 아, 머리로 그리고 그리던 철암도서관. 나의 상상보다, 머릿속 그림보다 더 단단하게 서 있던 철암도서관.
4. 연탄불 고구마와 녹차, 그리고 마음들
철암도서관 앞 장작 더미에 흔적 남깁니다. 이름 쓰려고 보니, 아이들이 이미 우리 이름을 두 곳에나 써 놓았습니다. 고민하다 하트 하나 그립니다. 도서관 문 앞에서부터 시작해, 곳곳에 ‘환영합니다’ 적혀 있습니다. 한 쪽 벽에 아이들이 손수 쓰고 그리고 만들어 걸어놓은 그림들이 있습니다. 만나보지도 못한 내 이름이 곳곳에 적힌 작품들. 그 안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이 소중합니다. 이 곳에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 자연스레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 두 번 연탄불에 구우신 고구마. 뜨거운 고구마를 받았습니다. 시간 맞춰 구워주신 그 마음, 감사합니다. 함께 내어주신 녹차도 참 맛이 좋았습니다. 녹차와 고구마 먹으며 선생님께 면접 설명과 내일 일정을 듣습니다. 면접 이야기 들으니, 이곳에 면접 보러 왔음이 실감납니다.
5. 별
잘 준비 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다시 들어오십니다. 별 보러 가자 하십니다. 오는 내내 하늘이 흐려 별 하나 안 보였습니다. 내심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별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옷 챙겨 입고 선생님 따라 나섭니다.
보건지소 뒤 공터에 돗자리 깔고 누웠습니다. 놀라운 기술을 탑재한 레이저로 보아가 별자리 찾아주었습니다. 오리온 자리, 마차부 자리.. 겨울철 별자리 오랜만에 눈에 담으니 좋습니다. 별을 눈에 담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 별을 함께 보는 사람들이 별보다 더 반짝이는 사람들이어서 감사했습니다.
6. 아침
꿈도 꾸지 않고 잤습니다. 눕자마자 잠들었습니다. 아침밥은 지성 오빠가 차려줬습니다. 박미애 선생님께서 끓여두신 어묵국, 어느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김치, 또 어느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반찬… 감사함으로 풍성한 아침 함께 먹었습니다. 지성 오빠가 차려준 아침밥 먹으며 다정 언니가 원래 그렇게 빨리 자냐고 물었습니다. 그럴리가요. 평소에는 눕고 나서도 한참 있어야 잠에 듭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 전날, 철암에서는 깊은 잠을 잘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던 게 참 맞습니다.
아침 먹고 잠자리 정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옵니다. 아이들이 면접실 꾸미고 준비하러 바쁘게 사라집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인사 나누었습니다. 지원이가 야무지게 포장해 온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좋은 결과 받으시길 바랍니다. 긴장 푸시라고 소소한 간식 좀 넣어 놨습니다!’ 와, 면접관에게 면접 응원 받았습니다. 꼼꼼하게 포장된 간식들에 지원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7. 면접
면접은 두 번 봅니다. 만화방에서 한 번, 비밀의 방에서 한 번. 저는 만화방 1번 면접자입니다. 지원이 안내 따라 쿡쿡방에서 대기하다, 만화방으로 향합니다. 만화 방 문 앞에 면접 응원 그림이 붙어있습니다. 면접관 먼저 자기소개합니다. 저도 자기소개 했습니다. 1분 자기소개… 무엇을 말할까 고민하다, 이름 학교 학년,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꿈꾸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면접관 분들이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세요.
’중학교 3학년 동안 복지관 경로당 마을축제를 다니는 네일아트 봉사단 활동을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광활 했던 하영언니가 철암도서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했는데 하영쌤을 전부터 알고 계셨나요?’
’혹시 악기 중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악기가 무엇입니까? 그 악기 중 가장 잘하는 곡이 무엇인가요?’
’사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그렇게 느낀 적이 있나요?’
’광활 30기 쌤들 중에 아시는 쌤들이 있나요?’
마지막 공통 질문도 뽑았습니다.
’겨울에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요?’
사실 김동찬 선생님께서 카페에 미리 올려주신 질문지를 미리 읽어보았습니다. 그때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면접관 아이들이 자기소개서에서 감동했고 배우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뽑아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자기소개를 얼마나 꼼꼼하게 읽었을까… 나도 기억하지 못하던 문장들이 막 튀어나옵니다. 최선을 다해 답했습니다. 눈 마주치려고 노력했습니다. 내 답변을 듣고 아이들이 즐겁게 웃습니다. 그 웃음에 나도 덩달아 신나서 이야기했습니다.
쿡쿡방에서 다시 대기합니다. 만화방에서 선물 받은 그림을 다른 동료들에게 자랑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티니핑 그림, ‘유빈핑’도 그려져 있습니다.
비밀의 방으로 면접보러 갑니다. 보아 따라 갑니다. 면접관 자기소개 듣고, 내 자기소개 하고.
’사회사업은 위로가 전해지는, 인정이 전해지는 그 통로에 서 있을 수 있는 귀한 일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시를 써 본 적이 있습니까? 도서관에 와 보신 적 있습니까? 광활 선생님 중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사랑받고 사랑해본 경험이 있나요?’
’하영 쌤을 어떻게 아셨나요?’
아이들의 마음 담긴 질문 듣고 공통 질문도 뽑습니다.
’광활로 2행시 지어주세요.’
와, 이럴수가! 2행시라니! 생각할 시간 1분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봅니다. 면접관 아이들이 운 띄워 줍니다. ”광!” ”광산지역사회사업활동은” ”활!” ”활기차고 활발한 아이들과 겨울방학 동안 따뜻함을 누리는 활동입니다.” 와아- 아이들이 박수치며 좋아해 주었습니다. 괜히 뿌듯해집니다.
비밀의 방에는 눈사람이 붙어 있습니다. 눈사람 곳곳에 면접 후기를 남기는 마지막 미션이 있습니다. 다정 언니는 눈사람 눈에, 지성 오빠는 눈사람 모자에.. 나는 눈사람 입술에 면접 소감 남겼습니다. 아이들이 눈사람에 입술이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8. 면접 기다리는 동안..
면접 기다리는 동안 구문소 걷기 함께할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나누어 먹겠다고 간식 한아름 챙겨온 승민이가 카멜레온 사탕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검정색 사탕을 먹다 보면 색깔이 변합니다. 빨간색은 사랑, 초록색은 행운… 색깔마다 의미가 있다고 승민이가 설명해주었습니다. 사랑과 행운을 입에 담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9. 구문소 가는 길
먼저 손잡아주는 아이들과 손잡고 팔짱 끼고 구문소까지 걷습니다. 걷고 걸으며 아이들과 이야기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 보아와 재인이는 서로를 올려줍니다. 보아는 공부를 잘 해요. 재인이는 춤을 잘 춰요. 보아도 춤 잘 춰요. 서로가 서로 자랑하기 바쁜 아이들. 무거운 건 바꿔 들고 같이 들고, 동생은 언니 오빠가 챙겨주는 아이들. 챙겨온 간식 나누어주고, 쓰레기는 대신 모아주는 아이들. 그 사이에서 따뜻함을 참 많이 느꼈습니다.
너른 공터에서 멈췄습니다. 잠시 쉬어갑니다. 쉬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과 뛰어 놀았습니다. 아이들과 삼겹살 게임 했습니다.
계속 걷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예성이에게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이야기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예성이가 세계 대전 이야기 들려줍니다. 세계 대전 속에 얽혀있는 각 나라들의 이야기를 줄줄 꿰고 있는 예성이. 역사를 왜 좋아하냐고 물으니, ’역사는 재미있어요. 역사를 잘 알면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하고 답합니다. 예성이의 지혜에 감탄합니다.
구문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이 청룡과 백룡이 힘 겨루기 하다 만들어졌다는 구문소 이야기 들려주었습니다. 파아란 강물을 바라봅니다. 버스 타고 돌아가기 전 아이들과 나뭇잎 하나를 주워 낙동강 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10. 점심
점심은 떡볶이 모둠과 김밥 모둠으로 나누어서 요리합니다. 엄청 배고파하던 아이들은 요리 시작하니 진지해집니다. 떡볶이 모둠에서 함께합니다. 아이들이 미리 준비해둔 레시피대로 역할 나눕니다. 사실 요리 하면서는 역할과 레시피가 많이 흐려졌습니다. 변수가 많았습니다. 떡은 딱딱하고, 엄청 커요. 양은 생각보다도 더 많고, 냄비는 작고.. 그래서 아이들은 상황 맞춰 합니다. 레시피에 얽매이지 않아요.
간이 애매합니다. 아이들과 돌아가며 연거푸 간을 봅니다. 김밥 만들다 떡볶이 구경하러 온 지성 오빠가 간장 써 보는 건 어떤지 묻습니다. 아이들과 간장도 넣어보았습니다. 계속 간을 봅니다. 김밥 모둠 아이들도 슬쩍 와서 같이 간을 봅니다. 떡을 집어 먹어요. 그래도 같이 먹을 친구들 위해 (개수가 적은) 어묵과 소세지는 먹지 않았습니다. 간을… 본 게 맞겠죠?
김밥 모둠 끝나는 거 기다리다가 떡이 다 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맛있던지! 간도 애매하고, 떡볶이는 국물을 잔뜩 머금었지만 정말 맛있었습니다. 김밥은 엄청 커서 한 입에 다 넣으면 볼이 빵빵해집니다. 예헌이랑 볼 빵빵하게 김밥 집어넣고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11. 웃음으로 공 치는 필드 하키
보건지소 뒤 공터에서 아이들과 필드하키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해보고 오랜만입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 규칙 불러 주십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규칙이 있습니다. ’실수로 하키 채로 다른 사람을 치면, 모두 달려가서 안아주기.’
오랜만에 엄청 뛰어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참 잘합니다. 같은 팀 다른 팀 할 것 없이 서로서로 칭찬했습니다. 웃음으로 공 치는 아이들과 많이 웃었습니다.
12. 구름 위를 걷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 올랐습니다. 자동차 안에서도 신나게 노는 아이들과 함께하다보니 금세 도착했습니다. 구불구불 올라가는 내내 꿈 꾸는 것 같았습니다. 높은 산과 지천에 깔린 구름이 신비로웠습니다. 경이로운 풍경을 눈에 담습니다. 카메라에 아무리 담아보아도, 눈에 담는 게 제일입니다. 다른 곳에서 놀러오신 분들도 꽤 계셨습니다. 인사 잘 하는 아이들 보시고는 어디서 왔는지 물으십니다. ’철암이요!’ 씩씩하게 답하는 아이들 무리에 함께 있으니 나도 그저 철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적고 꾸민 편지를 나누어줍니다. 직접 읽어주고 안아줍니다. 면접관이 면접 본 사람에게 ‘꼭 붙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꼭 오실거죠? 겨울에 재미있게 놀아요.’ 하는, 신나고 특별하고 정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이들 편지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그 안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이 소중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용돈 모아 사 온 컵라면 함께 먹습니다. 구름 사이로 붉게 내려 앉는 일몰 보다가 자연스레 아이들 얼굴로 시선이 갑니다. 일몰이 아름답다 하여 갔지만, 라면은 나눠 먹고 간식은 서로 챙겨주는 아이들, 일몰 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을 더 많이 눈에 담았습니다.
13. 배웅
집에 가야 합니다. 지성 오빠를 먼저 철암역에서 배웅합니다. 모두 모여 꼭 안아주고 배웅합니다. 곧, 다시 또 보자고 인사했습니다. 이번 겨울에 꼭 보자고 인사했습니다. 다정 언니는 태백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탔습니다. 두 차로 나누어져 이동했습니다. 다정 언니 버스 시간과 석범 오빠와 나의 기차 시간 모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 나와 석범 오빠는 태백역에 남고, 아이들과 선생님은 다정 언니 배웅하러 버스터미널로 뛰어갔습니다. 아이들이랑 인사 나누지 못하고 기차 타게 될까봐 조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서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 올라 옵니다. 마지막까지 포옹 인사하고, 떠납니다.
차창 밖으로 기차 떠날 때 까지 손 흔드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오래오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에 담았습니다.
단 하루 만에 철암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면접 응원해주며 사랑 많이 받고 오라던 언니들 말이 정말 맞았음을 매 순간 느꼈습니다. 면접 보러 가서, 따뜻한 것들을 잔뜩 품에 안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빠져나가지 않고,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안아주는 따뜻함을 잔뜩 받았습니다.
'이웃이 있고 인정이 있어 누구나 정붙이고 살만한 마을'. 그 마을, 철암에서 '누구나'가 되었습니다.
2024.11.8-9. 차유빈. 아동 면접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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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빈 님, 이번에도 홈페이지 만드실 거죠?
기대합니다.
이 글 첫 줄이나 끝 줄에 홈페이지를 링크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