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화 되어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확전 일로에 있는 이스라엘과 중동의 국가들 그리고 한반도에서 두 국가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뒤틀려버린 남북관계를 지켜보면서 세계적인 군사 역사학자인 존 키건의 혜안까지는 지인분들과 공유하고 매듭을 짓는 것이 도리일 성싶어서 올려봅니다. 자꾸 고별의 약속을 번복하게 되어 심히 죄송스럽습니다.
“[20세기에만 1차 대전으로 천만 명, 2차 대전으로 5천만 명이 죽었으며, 1945년 이후의 전쟁들로 또 5천만 명이 생명을 잃었다. (존 베리는그의 기념비적인 책 ‘대유행 독감’에서 보건 당국자들이 1차 대전에서 수십 만명의 군인들이 참호에 몰리고, 국경을 넘어 이동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퍼뜨릴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때문에 전염병 전문가들은 전쟁의 학살로 대략 1천만 명이 죽은 것에 더해, 5천만 명이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개발해낸 핵무기라는 엄청난 파괴력에 생존을 위협당하고 있고, 온갖 테러의 위협 앞에서 가슴 졸이고 있으며, 선량한 목숨들이 아무 이유 없이 살해당하는 전쟁의 현장을 치를 떨며 지켜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화합과 공존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진리로 자리잡은 21세기에도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말 전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인류에게 지워진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전쟁 그 자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존 키건은 전쟁이 20세기에 미친 영향과, 대규모 산업국가들의 총력전에서부터 민족적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저강도 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다양한 모습, 인간 본성과 역사에 비추어본 전쟁의 기원, 국가가 정책 수단으로 전쟁을 동원하는 문제, 개인과 집단의 전쟁 경험과 전쟁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마지막으로 전쟁의 미래, 특히 전쟁 없는 세상이 가능할지의 문제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대가다운 솜씨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깊은 통찰로 우리를 이끈다.]
냉전 시기 내내 지속된 공포의 균형이 핵전쟁을 예방해주기는 했지만 우리가 핵전쟁을 영원히 피해갈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 나는 낙관적이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무모한 종(種)이지만 합리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1945년 이래 우리가 핵무기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우위를 점했던 건 변덕스러움이나 무모함보다는 합리성이었다. 오직 단 한 차례 진정한 핵 위기가 있었을 뿐이다. 1962년에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했고, 하여튼 그 위기는 합리적인 타협에 의해 해결되었다. 쿠바 사태와 같은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가 다른 많은 협정과 조약을 통해 핵무기 보유 국가의 수를 제한하고, 핵 열강 자신도 보유할 수 있는 핵무기의 수를 제한하며, 특정 지역에 배치될 수 있는 핵무기의 유형과 핵무기가 배치되는 지역을 제한해 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제 협약을 통해 우주는 비군사화되었고, 이것은 남극 대륙도 마찬가지다. 유럽은 중거리 미사일 배치 금지 구역으로 정해졌다. 미국과 구소련은 핵무기의 수를 줄여왔고 계속해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일련의 조약들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세계 대부분의 주권국이 핵무기를 영구히 보유하지 않겠다는 비확산 조약에 서명했다는 점이다.
또한 제트 전투기 한 대의 백만분의 1 가격에 대량생산되는 살상용 강선총은 거의 보편적인 재앙이라 할 수 있다. 이 화기는 가볍고 조작법이 간단해서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어린이 – 비공식 군대의 사병으로 점점 더 자주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도 과거의 군인이 결코 달성할 수 없었던 정도로 살상을 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국제적 군축 노력의 긴급한 현안으로 그런 무기의 유통, 궁극적으로는 생산을 통제하는 군축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점은 무기의 개인 소유를 금지하는 국가들에서 살인 비율이 낮게 나타나는 사실로도 입증된다.
뿐만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이 와해되기 쉬운 가난한 국가들이 전쟁 선동에 가담하거나 불안정의 결과로 민족간 갈등을 겪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체성과 경제적 복지를 담보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원조 및 개발 프로그램은 이런 국가들의 경제 구조를 튼튼하게 만들어 그들 정부가 줄곧 맞서 싸우는 정치 불안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직업적 전사보다 전쟁의 효용을 더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직업적 전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쟁을 멀리하는 사람도 없다. ‘폭력은 거의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말은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언이다. 이 말은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군인인 전직 참모총장이 내게 해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 먹히지 않을 때 오직 폭력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폭력은 법의 지배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수단이다. 만약 우리가 전쟁을 종식하기 원한다면 지금까지 언급한 전쟁의 원인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와 함께 우리는 폭력이 사용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무력을 행사하는 명예로운 전사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존 키건(전쟁 사학자) 저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지호 출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