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길
일자 : 2019년 4월 11일(목)
장소 : 사랑채
참석 : 김종준, 정순창, 윤명한, 권정덕, 박정길, 이영희, 임유홍, 정인건, 최흥표
사월 봄날에, 솜구름처럼 피어오른 벚꽃나무의 순백의 영혼이 참으로 눈부시다.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나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가 환호하는 극치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다.
더욱이 벚꽃잎이 꽃비 되어 흩날리는 엔딩의 장려함은 無常의 지혜를 말해주는 듯하다.
봄은 잠시도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새롭게 바꾸어놓으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반갑다. 친구야. 오랜만에 순창, 명한이를 만나 즐겁고 뜻깊은 저녁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순창이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 등산 마니아이다. 존재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이기도 하다.
속세의 집착을 버리고, 일탈을 즐기는 신선 같은 여유로움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산행코스, 등산거리, 이동시간 등 산행정보를 정리하고, 두루 자연이 주는 감동을 사진에 담아, 동기카페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모든 해답은 위대한 자연 속에 있다. 여기 巨山이 곁에 있는 듯, 그의 침묵이 우리들을 편안하게 한다. 낮은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고 강건하다.
이에 비해 정덕이는 목소리가 크다. 조금 볼륨을 줄이더라도 진심이 잘 전해질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창 나이 때는 완전 음치였는데, 노년인 지금은 레퍼토리가 수십 곡이 된다고 한다.
음치도 연습하면 노래를 잘 하게 되는 모양이다. 목소리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정 화백은 觀相不如音相, 관상보다 음상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목소리는 인격의 표상이다.
목소리는 자신의 건강 상태나 감정, 의견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면의 표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군자들의 음성은 너그럽고 중후하며, 또 소리가 작든, 크든 힘이 있어서, 가락이 있고 울림도 있게 된다.
명한이는 애니멀 닥터이다. 영희는 피플도 애니멀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사람도 생물학적으로 동물이다.
우연히 개 디스크 이야기가 나왔다. 네 발 짐승에게는 디스크가 생기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디스크는 직립보행으로 장시간 척추에 하중 압력을 받는 인간에게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정보이다. 개도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디스크에 잘 걸린다.
모든 척추동물은 디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순창, 유홍, 정덕은 등산 팀이다. 유홍이가 산악회에서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축제 시기(4.13~4.21)에 맞춰
축제 최종일인 4.21에 산행을 한다고 일러준다.
종준이는 7월중 2주간, 북유럽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눈 내린 겨울에, 의사 지바고의 배경이 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도 하고 싶다고 운을 뗀다.
오늘은 애주가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영희는 과음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시곗바늘이 멈출 때까지 즐겁게 살자며.
어디 어느 곳에서 이처럼 마음껏 크게 웃을 수 있을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쇠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수타니파타
무소(코뿔소)는 무리를 이루지 않고 홀로 살아간다. 고대 수도승들도 결식을 하면서,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개개인의 깨달음의 길은 홀로 가는 외로운 길이다.
백매, 홍매
봄이 작년보다 11일이나 일찍 찾아왔다. 올해 봄은 서울 기준 2월 23일에 시작되었다.
최근 몇 년간 봄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 3월하순, 봄의 전령사인 매화와 산수유가 만개하였다.
매화는 꽃의 색깔에 따라 백매, 청매, 홍매라고 부른다. 백매와 청매, 옅은 연분홍매(홍매)는 언뜻 보면 비슷하여 구별하기 힘들다.
백매는 꽃받침이 붉고, 청매는 연두색이다. 둘 다 꽃은 흰색이다. 매화는 150살이 넘으면, 古梅, 老梅라고 부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는 4건이다. 순천 선암사 수령 600년, 백매와 홍매 두 그루, 구례 화엄사 450년 검붉은 흑매,
장성 백양사의 古拂梅 350년 홍매, 강릉 오죽헌 율곡매 600년 연분홍 홍매.
산수유 始木은 구례군 산동면에 있으며, 중국에서 가져와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나무의 시조이다. 나무의 수명은 약 1,0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뒤이어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개화하면서 예전 모습 그대로 봄기운을 돋우고 있다. 그러나 어딘지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상수리나무에는 겨울을 견디어낸 갈색잎들이 여전히 완고하게 매달려있고,
대왕참나무의 바짝 마른 고엽들은 꽃샘바람에 한 잎, 두 잎 흩날리고 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메타세콰이어 등
낙엽수들은 아직 미몽의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수양버들만이 가지마다 초록 빛깔이 완연하다.
4월은 꽃의 계절이다. 4월 상순, 빨간 산당화와 흰 산당화가 어울려 한가득 피어있다. 매화꽃이 지면서 살구꽃, 벚꽃, 복사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소리 없이 꽃이 진 가지마다, 말없이 연두색 잎을 내밀고 있다. 모든 것은 생명의 순환 안에서 돌고 돈다.
그리고 위대한 생명의 조화와 연결되어 있다.
대지를 뚫고 다양한 풀들이 힘차게 솟아오른다. 어느새 황폐했던 곳들이 녹색의 양탄자를 깐 듯 풀밭으로 변하고 있다.
풀은 나무가 아닌 식물을 일반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草本植物이라고 한다.
풀에는 대개 수명이 정해져 있으며, 편의상 한해살이, 두해살이, 여러해살이로 나눈다.
한해살이풀: 채송화, 봉선화, 해바라기, 백일홍, 코스모스 등.
두해살이풀: 유채꽃, 달맞이꽃, 애기똥풀, 개망초, 냉이, 쑥, 자운영, 보리 등.
여러해살이풀: 민들레, 범부채, 제비꽃, 패랭이꽃, 참나리, 수선화, 옥잠화, 붓꽃, 튤립, 제라늄, 배초향, 국화, 갈대 등.
인간에게 이로운 점이 발견되지 않은 풀을 잡초라고 통칭한다.
잡초의 씨앗은 몇 년 혹은 수십 년을 땅 속에서 버티는 능력이 있어 근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잡초는 번식력이 왕성하여, 토양의 건조를 지연시키고 황폐화를 막아준다. 들판을 푸르게 한다.
처음엔 한해살이풀이 나다가, 다음엔 여러해살이풀, 그 다음엔 나무, 이렇게 해서 모든 풀들은 다른 풀을 위해 건강한 땅을 만들고,
사라지고 또 태어난다. 에머슨은 ' 잡초란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 ' 이라고 하였다.
宿根草는 여러해살이풀을 뜻하는 말로 흔히 야생화라고 불리는 꽃 들이다.
야생화는 스스로 피는 계절을 알아, 때가 되면 꽃이 피었다가 진다.
숙근초는 가을이나 겨울에 땅 위의 부분이 말라죽어도, 뿌리나 땅속 줄기가 살아남아, 이듬해 봄이 되면 새로운 줄기와 잎이 돋아난다.
이처럼 숙근초들이 보여주는 열정적인 생명력과 기적과 같은 적응력은 다른 식물 유형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모란과 같은 일부 다년생 식물은 수십년 동안 살 수 있다. 바나나는 가장 큰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 3~10m 정도 ).
대나무 역시 나무처럼 보이지만 식물학적으로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 아이가 내게 두 손 가득 풀잎을 가져와서, ' 풀이란 무엇인가요? ' 하고 묻는다.
내가 그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아이만큼이나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데.
휘트먼은 ' 나 자신의 노래 ' 에서 풀은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 바로 인간의 본질이고,
이것을 통해 조물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나 자연만물 모두가 본질적으로 신성하며
존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을 대하면, 한 포기의 풀에서도 우주의 신비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풀의 이미지는 자연의 상징으로, 풀을 통해 인간은 물론 만물이 평등함을 노래한다.
Grass 정원은 흔히 보던 꽃 중심의 정원이 아닌 다양한 형태와 크기, 잎의 질감을 가진 그라스류로 구성된 이색적인 정원이다.
그라스는 말 그대로 풀이다. 그중에서도 장식용풀은 정원용 그라스, 조경용 그라스라 불리우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 유통되는 대표적인 품종으로 억새류, 수크령류, 새풀류, 파이쿰 등이 있다.
한여름 푸른 잎으로 태어나 가을을 거쳐 겨울까지 느긋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라스는 계절의 시작과 끝을
다양한 매력으로 연출한다. 아침, 저녁 빛에 물들거나, 늦가을 갈변된 그라스들이 바람 따라 일렁이고,
흰 눈이 쌓여 운치를 자아내는, 자연의 고급스러운 경관은 시각적 감동과 사유의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잠원 한강공원에 조성된 그라스공원에 핑크 뮬리( 일명 분홍억새 ) 를 포함해 25종의 여러해살이풀들이 식재되어 있다고 한다.
유명한 정원디자이너인 피에트 우돌프는 ' New Perennial Movement, 다년생식물 위주로 정원을 조성하자는 운동을 전개하여
대평원의 야생화 초원을 연상시키는 디자인 구성으로, 마치 선명하고 화려한 원색의 캔버스 그림 같은 배식 기법을 연출하였다.
그는 주로 자연과 예술 그리고 시간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모든 사물은 멈춰있는 듯하지만 시간에 따라 흐르면서, 변화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피에트 우돌프의 새로운 식재 디자인은 ' 초본식물을 이용한 색의 정원 ' 을 연출했던 거트루드 지킬,
' 자생종을 활용한 식물 디자인 ' 의 칼 푀르스터 등 선배 디자이너의 축적된 디자인 노하우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념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칼 푀르스터는 ' 정원 왕국의 칼 대제 ' , ' 숙근초의 아버지 ' 등 수많은 수식어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도 ' 꽃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 ' 는 신념하에
정원을 가꾸고 정원문화를 확산시키는 일관된 삶을 살았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 일곱 계절의 정원 ' 은 초봄, 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동안 늘 피어있으며,
늘 변화하는 정원을 의미한다. 그의 대표적인 정원은 포츠담 보르님에 위치한 자택 정원이다.
테마정원 중 선큰 정원이 가장 중요한 핵심구간이다. 선큰 정원은 전체적인 지면보다 다소 낮은 곳에 위치해있다.
사방에 마련된 계단으로 내려가, 주위를 둘러보면 문득 별천지에 와있음을 느끼게 된다.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동안, 인간들도 꽃이 되어버린다.
선큰 정원은 4월부터 10월까지 숙근초와 달리아를 심어 꽃이 피어있되, 계절마다 색다른 그림이 펼쳐지게 고안된 정원이다.
늦가을과 겨울에는 키 큰 숙근초와 갈색 억새풀들이 어우러진 고즉함을 담은 정원이다.
그는 꽃이 사람을 우주의 섭리와 연결해주는 매개체라고 하였다.
' 정원은 한 시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계절에 걸쳐 그 아름다움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 봄이든 늦은 가을이든, 어떤 날씨에도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 - 피에트 우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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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길이는 유눙한 문장가가 되었다.
글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 작은 소재로
맛있게 요리를 한다.
정길아!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