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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3편)
20210408
달마가 열반에 들어 웅이산에 장사한지 3년 만에 위의 사신 송운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총령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 한 짝을 들고 홀홀히 가고 있었다. 이에 송운이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대사가 말하되 "서역으로 가노라" 하였다. 송운이 돌아와서 복명을 마치고 그 일을 자세히 보고 했더니, 황제가 무덤을 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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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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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내용이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오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달마대사의 죽음에 관한 일화가 나왔는데요..
제자들이 죽였다는 내용은 빠져있어 조금은 아쉽지만 당시의 스님들이 이런 내용까지 글로 올리기에는 좀 뭐 했나 봅니다.
우리는 그냥 옛 중생들의 일들이니 그러려니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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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본문 내용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랍니다.
그리고 주의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오늘 내용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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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의 죽음에는 일반 사람들이 믿기 힘든 장면들이 나오지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 이런 내용을 남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능하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일반 사람들이 죽어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들이랍니다.
그 이유는 육체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본성(불성/성령/마음)으로는 가능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이런 내용들은 죽어보지 않는 한 믿기 힘든 내용들이라 일반 사람들에게는 자세히 설명하기가 좀 그렇기는 한데요.
하지만 어차피 이러한 부분도 본성의 일 부분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특히 (부록 2)에 계시는 분들은 이번 내용을 잘 보시고 여러분들도 응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록 2) 계시는 분들은 그냥 수행만 하시는 단계를 벗어나 부처님이나 오늘 본문 내용의 달마대사처럼 산 사람 마음도 비추어보고, 죽은 사람 마음도 비추어보고, 죽은 동물들 마음도 비추어보고, 세상도 비추어 보고, 우주도 비추어보기도 하면서 도력(道力)을 키워 나가는 것이랍니다.
"도인의 삶은 비추어 보는 것"
입니다.
오늘의 비추어 봄의 능력은 그대로 다음 생에도 이어지게 되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도 이어지게 되는데요.
현재의 이 알아차림의 능력이 그대로 다음 생에도 연결이 되어 사업 쪽으로 풀리는 사람은 사업 쪽으로 풀리기도 하고..
정치 쪽으로 풀리는 사람은 정치 쪽으로도 풀리기도 하고..
학자나 과학자 쪽으로 풀리는 사람은 이쪽으로 풀리기도 하는데요.
여기서 아무리 알아차림이 뛰어나도 복이 따라주지 않으면 뒷마무리가 이루어지기 어렵답니다.
그리고 그 복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그 자리랍니다.
이 복(輻)을 다른 말로 운(運)이라고도 하는데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팥 난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그리고 현재에도 이름난 재벌들이나 정치인이나 연예인들도 우리 같은 사람들 눈에는 보통으로 흘려 보지를 않는데요.
특히 카네기, 빌 케이츠, 스티브 잡스, 이병철, 마쓰시타 고노스케 같은 사람들의 자태를 보면 전생에 수행(수도)을 했던 사람들로 저는 보고 있는데요.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제석 천황)이나 이와 유사한 단어들이 모두 왕(무리를 이끄는 정치인)이나 (거상)들을 뜻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건달바)란 용어도 지금으로 하면 연예인들을 뜻하는 내용이지요.
이러한 종류는 모두 비추어봄의 능력과 복(운)이 따라주어야 가능한 경우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화려하고 고귀할 때에 가장 실수하기 좋을 때이기도 하답니다.
제 경우도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번 생은 해볼 만큼 해봤으니 자숙을 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깨닫게 되면 자신의 과거생들도 알게 되는데요.
이 순간 누구나 참회를 하게 된답니다.
기독교에서는 회계를 한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부록 2)에 계시는 분들도 첫째도 둘째도 이번 생은 자숙하시고 다음 생을 준비하셔야 한답니다.
이번 생은 어떡해서든지 남의 마음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인연을 잘 이어나가시고 복덕을 쌓아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다음 생에서라도 그 인연은 도래한답니다.
특히 사람들 마음이나 살아있는 생명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마십시오.
이 인연법은 아주 질기고 무섭답니다.
부처님도 이 인연법만큼은 오래도록 못 벗어나셨고요.
저 또한 이번 생에 톡톡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답니다.^^
제아무리 큰 도인이라 해도 이 굴래는 벗어날 수가 없답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이것을 큰 바퀴(輪)로 비유를 했고요
이 인연법은 수십 억겁 동안 이어온 법이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십만 겹으로 얽히고 얽혀 있답니다.
저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끈]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들의 영향으로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지금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달마대사 또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인해 그렇게 허무하게 가신 것이고 달마대사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그 죽음을 받아들인 거랍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또한 단 한 명도 도인이 아닌 사람이 없지요 그것을 자신이 모를 뿐이지요.
안 그러면 지금처럼 사람으로 태어날 수가 없답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도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하시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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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을 보면 송운(宋雲)이라는 사람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달마대사와 만났던 일을 황제에게 고하는 내용인데요.
문제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달마대사를 만났다는 송운(宋雲)의 이야기에 황제가 깜짝 놀라서 무덤을 확인하는 내용이랍니다.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죽은 사람이 송운에게 다시 나타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요.
그러나 가능하답니다.
그 이유는 육체로는 불가능한 것이 본성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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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운(宋雲)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실존 인물인데요.
[중국, 남북조 시기의 승려. 돈황 사람. 생몰연대 미상. 북위말, 효명제의 사절로서 중앙아시아제국을 방문했다. 518년, 불전을 구하러 가는 숭립사의 승 혜생 등과 함께 낙양을 출발, 서역남도를 거쳐서 아프탈, 우쟈나, 간다라 각국을 역방, 각각 국서를 봉정했으며 521년경에 귀국했다고 한다.]
라고 되어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서역(西域)이란 중국에서 봤을 때 서쪽 지방 즉 서양(西洋)을 말한답니다.
이 당시에 이런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떠나는 길이랍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엄청난 공포와 고생과 고난이 따르게 되지요.
이런 환경에 처해진 송운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극도로 힘들게 되면 오온과 생각 등을 저절로 내려놓게 된답니다.
이때 본성은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랍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육체에서는 불가능하답니다.
그 이유는 오온과 생각 등으로 철저하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도 몸이 허하면 귀신이 보인다고도 하잖아요.
이렇게 몸이 허할 때에도 오온과 생각 등은 내려놓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심성이 맑은 사람..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고도 표현함)
이런 사람들도 오온과 생각 등이 많이 내려진 상태의 사람들이라 가능하답니다.
천부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맑은 사람도 있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세상 풍파를 거치면서 맑아지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리고 아주 급박한 상황에서도 오온과 생각 등이 멈추면서 본성의 힘이 극대화될 때도 있답니다. (초인적인 능력이 나올 때가 있음)
그리고 특히 잠을 잘 때는 누구나 오온과 생각 등은 내려놓게 되어 있지요.
바로 이럴 때 본성이 드러나게 되고 바로 이럴 때 죽은 사람의 본성과 산 사람의 본성은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답니다.
때로는 세상에서는 이것을 귀신(鬼神)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알려져 있는 것처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귀신이 사람을 해코지 한다느니..
유령이 사람을 해코지 한다느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본성과 하나가 되었을 때 비추어지는 봉성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스스로 겁을 먹고 피해를 보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으면 모두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그 어떤 자리보다도 안락하고 편안한 자리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이쪽 세계를 모른답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죽고 나서 본성이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본성은 알아차림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생각은 못 하더라도 마음의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답니다. (2% 정도)
이럴 때 우리 같은 사람이 그 마음을 안정 시켜주는 경우는 있는데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안정을 찾는답니다.
그 외에는 아무리 부처님이라고 해도 죽은 사람을 어쩔 수는 없답니다.
부처님 자신도 대장장이의 아들인 [쭌다]가 준 돼지고기를 잘못 드시고 돌아가셨는데요. (불교 학자 쪽에서는 버섯요리라고도 함)
그 외에는 거의가 편안하게 안정을 취한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가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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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그 자리를 비추어보면 금방 알 수가 있는데요.
이것도 깨어있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본성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이나 동물들을 비추어 보면 오온과 생각 등이 소멸된 상태이기 때문 상대의 마음 상태를 금방 알 수가 있답니다.
이 정도는 무당들도 가능한 것이고요.
(이것은 기초에 속함)
그런데 실제로 비추어보면 사고사나 이와 유사한 경우라 하더라도 대부분이 안락하고 편안한 자리로 가게 되는데요.
간혹 2% 정도가 안정을 못 찾고 잠깐 헤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대부분 삼일 이내에 아무리 길어도 오십일 이내에는 모두 소멸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답니다.
아무리 깨닫고 부처님이 다시 살아돌아오셔도 죽은 사람의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답니다.
왜냐하면 본성이라는 자리는 그 자체가 공(空)이고 무(無)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산 사람 측에서나 죽은 사람 측에서나 본성만 드러낼 수 있을 뿐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드러날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도 없답니다.
그러나 행동이나 표정 등으로 뜻을 전할 수는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주의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들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죽거나, 친척이 죽거나, 친하던 사람이 죽거나 하면 생시처럼 똑같이 꿈에 나타날 때가 있지요.
이러한 현상은 잠을 잘 때에는 오온과 생각 등이 50% 이상은 소멸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송운처럼 너무 지쳐 있거나 힘이 들 때에도 오온과 생각 등은 50% 이상 소멸되지요.
이때에 본성은 드러난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내용 중에 달마대사가 말을 했다는 것은 순전히 중국식 표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송운이 본 것은 달마가 말없이 서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중국 글은 뜻글자이기 때문에 그들 끼리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실감이 나거든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죽었던 강시가 다시 살아나 말을 하고 하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모든 오온과 생각은 소멸된 상태가 되고 오로지 본성의 알아차림만이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으로 선문염송 내용이 중국 편으로 넘어 갈수록 중국식 표현으로 황당한 내용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
부처님 정법은 신비하고 초인적이고 황당한 것이 아니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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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에서 달마대사가 죽은지 삼 년 만에 송운이라는 승려에게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는 장면도 여기에 속하는데요.
또한 달마대사의 도력(道力)도 상당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내용인데요.
3년이라는 세월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요.
그러나 시대를 건너서 또는 현상세계와 다른 세계를 뛰어넘어서 비추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아주 먼 옛날의 도인들의 세계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보시면 이해하기 좋답니다.
도력(道力)이란 수리수리 마수리 같은 요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랍니다.
도력(道力)이란 마음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랍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성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성령의 힘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예수님 같은 경우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는 내용도 여기에 속한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일반 사람들이 죽어도 곧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부모나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망자가 자손들이나 당사자에게 꿈에 나타나는 현상들도 여기에 속한답니다.
그 이유는 육체와 육체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본성과 본성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잠들어 있을 때에는 육체의 오온과 모든 생각들이 내려놔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본성과 본성이 하나로 가능한 것이랍니다.
물론 개꿈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꿈들도 많답니다.
여러분들이 못 알아차려서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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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사람이 죽으면 본성만 남께 되지요..
육체가 살아있으면 본성은 오온(五蘊)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가 오온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본성은 드러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오온과 생각 등을 소멸시키려는 것이고요.
여기서 소멸시킨다는 의미는 내려놓고 버린다는 의미랍니다.
마치 레이더가 방해전파를 받으면 제 기능을 못하듯 본성 또한 오온에 둘러싸여 있는 한 제 기능을 못한답니다.
마치 강물이 흙탕물로 덮여 있으면 물고기들이 드러날 수 없듯이 우리의 본성 또한 그렇답니다.
그래서 오온과 생각 등이 살아있는 사람들 끼리는 불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오온과 생각 등이 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을 자고 있을 때에는 오온과 생각 등도 같이 거의 잠들어 있는 생태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상태..
예를 들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할 때..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에 놓이게 되면 오온과 생각 등을 내려놓게 되지요.
극한 절망 속에 빠져 있어도 오온과 생각 등은 내려놓게 됩니다.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고 힘들 때에도 오온과 생각 등은 내려놓게 됩니다.
특히 자살 직전에 있는 사람들 또한 오온과 생각 등을 내려놓게 되지요..
그리고 어린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에 빠져 있을 때에도 오온과 생각 등은 내려놓게 되지요.
어른들도 사랑하는 연인이나 좋아하는 그 무엇에 빠져 있을 때 오온과 생각 등은 내려놓고 모든 정신이 그 대상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상태일 때 오온과 생각은 내려놓게 되고 본성은 드러나게 된답니다.
천주교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금식이나 철야 기도 등으로 유도하기도 하고..
불교도 철야 수행 등으로 이러한 상태를 유도하기도 한답니다.
사람이 며칠 동안 철야를 한다는 것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거기다가 금식까지 해보십시오..
사람의 모든 의식은 본성으로 쏠리게 된답니다.
나중에는 생각이고 뭐고.. 힘들고 배고프고 뭐고.. 모든 것이 다 필요 없어진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는 오로지 본성 하나에만 매달리게 되거든요.
(※)
바로 이때 힘들어하는 그놈을 느껴보십시오.
송운 또한 서역을 다녀오면서 그 여정이 극도로 힘들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이때에도 본성 하나만 남게 되지요.
성경 책에도 이러한 구절은 자주 나온답니다.
지금도 중동 지역의 사막은 항상 살인과 도적 등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거든요..
큰 무역상을 했던 아브라함의 역사가 모두 고난의 역사랍니다.
예수님 같은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모두 고난의 역사였답니다.
목수의 아들이었던 관계로 당시에는 주로 인도와 무역을 많이 했던 중동지역이라 예수님의 아버지가 그 무역상들과 함께 인도로 도피를 했을 공산이 크다고 저는 보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운송수단은 모두 나무로 만든 마차들이었고 마차를 새로 짜고 고치는 일들 또한 모두 목수들이 했기 때문에 무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직업이었답니다.
저도 예수님이 인도에서 이 법을 수행하셨을 거라고 보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불교교리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인도 쪽 수행자들 얘기로는 예수가 수행하고 깨달은 자리가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무튼 그렇답니다.
사도 바울의 역사도 모두 고난의 역사입니다.
부처님 말씀의 제일 첫 번째 대상도 바로 고(苦)이고요.
부처님의 제일 첫 번째 가르침도 바로 일체 만물의 모든 것들이 바로 고(苦)로 연결이 되어있답니다.
부처님의 가르님은 바로 그 고(苦)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일 첫 번째 가르님이 바로 그 고(苦)를 바라보고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왜 부처님은 그 고(苦)를 바라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고(苦)를 느끼고 있는 본성을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공통은 바로 누가 느끼고 있느냐..?
내 몸이 느끼고 있느냐..?
아니면
내 머리가 느끼고 있느냐..?
아니면
내 의식이 느끼고 있느냐..?
아니면
내 본성이 그것을 느끼고 있느냐..?
과연 어느 것이 그 고통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있느냐..?
이것이 여러분들이 찾아야 할 숙제랍니다.
또
화두를 깨어서 바라볼 때에도 오온과 생각 등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의 오온의 작용들은.. 너무나 간사하고 야비해서 조금만 좋고 편해도 그것을 즐기고 차지하려고 극성을 부리지요.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절대로 본성이 드러나지 않는답니다.
(※)
그래서 지금도 그런 것들을 내려놓지를 못하기 때문에 많은 수행자들이 수행을 힘들어하시는 것이고요..
,
사람은 이렇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아무리 고집이 세고 기가 세더라도 자신의 몸이나 정신력이 한계가 오게 되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내려놓게 되어있답니다.
이렇게 오온의 작용과 생각이 멈춰있을 때 본성은 자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답니다.
송운 또한 이와 유사한 상태에 놓여 있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때 달마대사의 비춤도 가능한 것이랍니다.
아무리 달마대사가 도통했다 해도 오온과 생각 등으로 뒤덮여 있는 상태에서는 본성을 드러낼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었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는 엄청난 두려움과 고생과 괴로움 등을 수반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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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의 뜻은 반대로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에 푹 빠져있듯이 화두나 알아차림을 하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다는 것과 같답니다.
일심으로 화두를 간(看)하든..
일심으로 알아차림을 하든..
해야 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것이 처음에만 좀 어렵지 계속하게 되면 자리를 곧 잡게 된답니다.
이렇게 수행자들의 최대 목적은 달마대사처럼 본성을 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랍니다.
오온과 생각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는 본성을 찾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오온과 생각 등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현재 이 순간 깨어 있으라 하는 것이랍니다..
화두를 일심으로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구구단을 외우면서 연필로 글을 쓸 수 없듯이..
사람은 한 곳에 몰입이 되어 있으면 오온과 생각 등은 멈추게 되어 있답니다.
바로 이때 드러나는 것이 본성이랍니다.
(※)
어쩌면 이 본성은 여러분들이 평상시에 흔히 본 것일 수도 있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아.!" 이것이 본성이구나.!" 하는 것을 몰랐을 뿐이지요. (진실)
본성을 깨닫는 것은 평상시에 늘 여러분들도 같이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만 깨어서 안으로 돌리기만 하면 머지않아 여러분들도 곧 스스로 아시게 된답니다.
,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들도 본성이 쉽게 드러날 수 있답니다.
단 오온(五蘊)과 생각 등이 쉬고 있을 때라야 한답니다.
오온(五蘊)이 쉬고 있을 때란 자고 있을 때를 말한답니다.
또는 그와 유사한 상태에 있을 때를 말한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요인은 본성은 본래 불이(不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성 안에서는 가능한 일이랍니다.
본래는 불이(不二)인데 오온(五蘊)이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풍선 속의 공기와 같답니다.
여러 개의 풍선이 있습니다.
풍선을 우리의 육체라고 비교해 봤을 때..
풍선이 터지면 풍선 속의 공기는 밖의 공기와 하나가 됩니다.
다른 풍선이 터져도 그 안의 공기는 밖의 공기와 하나가 되지요.
풍선 밖의 공기나 풍선 안의 공기는 서로가 다르지 않습니다.
풍선 안에 있을 때에나 내 풍선 네 풍선이 있지..
풍선이 소멸되고 나면 모두가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요.
풍선이 터지고 나면 안의 공기와 밖의 공기는 하나가 되기 때문에 내 풍선 네 풍선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不二)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오온과 생각 등을 터트려 버리라는 것이고요..
,
육체가 목숨을 다하면 본성은 자동으로 본성 자체만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치 풍선이 터지면 그 안의 공기는 자동으로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듯이..
육체가 살아 있어도 풍선 입구만 잠시 열려 있어도 안의 공기와 밖의 공기가 서로 통할 수 있듯이..
죽은 달마대사와 살아있는 송운과도 통할 수 있는 거랍니다.
우리의 육체 또한 나라는 관념 즉 육체가 나라는 관념, 오온이 나라는 관념, 생각이 나라는 관념만 제거하고 소멸 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이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생각은 물론 나라는 존재도 잊어버리게 되고 바로 이때 본성은 자동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여기서 본성의 힘, 즉 도력의 힘인 초능력이 나오기도 함. 마치 어머니가 불길 속에서 아이를 구하듯이..)
,
수행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이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을 법화경에서 비유하기를 화택(火宅)에 처해진 아이들을 장자가 방편(方便)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등을 이용하여 스스로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를 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이고요.
이렇게 했는데에도 오온과 생각 등이 작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행 방법이 잘 못되어 있거나 아니면 아직 연습이 덜된 상태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ㅡ
(※)
사람을 포함해 모든 동물들은 피곤하고 졸리면 스스로 잠이 들지요..
오온과 생각도 마찬가지랍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마른 장작이 다 타고 나면 자연히 소멸되듯이.."
라고 표현을 하셨답니다.
ㅡ
오온과 생각 등도 어떤 한계점에 다다르면 스스로 잠들게 되어있답니다..
송운도 서역을 다녀오는 여정에서 그럴 공산이 크고요.
이때 산 사람의 본성도 스스로 드러나게 된답니다.
이때 가능하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현상들이고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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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돌아가신 부모나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은 거의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부모의 상을 치르고 특정인에게 꿈에 생시와 같이 나타나는 현상이 이에 속한답니다.
보통은 50일 이내에서 좀 길면 100일 이내에 아주 길면 3년 정도에도 나타날 수 있는데요.
사람에 따라 안 나타나는 경우도 있답니다.
보통은 죽은 사람 쪽에서 많이 나타나는데요..
일반 사람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사실이랍니다.
도력이 높으신 분들은 즉 오온(五蘊)의 작용이 거의 해탈(解脫)에 이르신 분들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도 가능하답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 끼리는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의사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소통하는 옛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고요.
즉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것은 본성끼리의 소통이랍니다.
저도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위에서 죽어 있는 고양이나 고라니 등을 참으로 많이 보게 되는데요..
운전을 하고 지나가면서 그 죽은 동물 시체의 본성 자리를 비추어보면 바로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답니다.
물론 사람이 죽어도 마찬가지이고요.
대부분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이지만 간혹 크게 불안해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요.
그러면 제 경우는 그 죽은 망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지는 행위를 하지요..
"괞찬아.. 괞찬아..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죽는 법이야.. 다음 생은 꼭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법을 배워서 성불을 하렴.."
하면서 [반야심경]을 들려주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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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동물이든 육체는 목숨을 다하면 땅에 묻히든, 불에 태워지든, 강물로 들어가든 그것으로 끝이랍니다.
이 육체는 죽어서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모두 흩어지고 마는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나
본성(불성/성령/마음)은 다르답니다.
본성은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고 없어지려야 없어질 수도 없는 그런 거랍니다.
그야말로 불생불멸(不生不滅) 이지요.
깨닫고 보면 본성이란 실로 그러하답니다.
그리고 누구나 이 본성(불성/성령/마음)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고요.
바로 이 상태에서 본성은 일 순간 산 사람 앞에 형상을 나타낼 수 있는데요.
보통은 꿈을 통해서 또는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나타난답니다.
그 이유는 본성이란 육체와 같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답니다.
왜냐하면 불이(不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만약에 있다면 보통 3일 이내에 다시 살아나는 경우는 종종 있는데요.
그것은 인체의 혈맥이 잠시 막혀서 죽음으로 오인했다가 다시 숨을 쉬고 살아는 경우인데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삼일장을 치르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삼일 안에 종종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때에도 오온과 생각 등은 일시에 중단되어서 본성만 남기 때문에 본성 자리를 체험할 수 있답니다.
저도 이런 경우를 직접 본 적이 있고요.
참고로 최근에 아르엔티나에서 실제로 있었던 내용인데요.
이런 일은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는 일이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tMA6JnnIj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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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50일 이내나 아주 길어봐야 100일 이상은 못 버티고 본성으로 휩쓸리고 마는데 반해 달마대사는 3년이라는 긴 세월을 유지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인데요.
대부분은 아무리 길어야 100일 이후에는 새로운 인연이 될 때까지 오래도록 본성 상태로 거한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3일장을 치르고 49재를 지내고 100일 제사를 지내고 3년 상을 치렀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민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수행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민족이 자료상으로는 고조선(古朝鮮) 이전의 [홍산문화]라고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옛 우리 땅이었던 동북삼성과 몽골 지역에서는 그 당시의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고 있지요.
그 당시의 유물들을 보면 수행을 하는 모습과 좌선을 하는 모습들의 토기들이 무더기로 출토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민족은 그 이전부터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었고 수행과 깊은 이연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역사는 왜곡할 수 있어도 무덤에서 나오는 자료는 외곡할수 없지요.
[참고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query=%ED%99%8D%EC%82%B0%EB%AC%B8%ED%99%94+%EC%97%AC%EC%8B%A0%EC%83%81&where=m&sm=mob_sly.hst&acr=1
(2)
https://m.search.daum.net/search?w=tot&q=%ED%99%8D%EC%82%B0%EB%AC%B8%ED%99%94%20%EC%97%AC%EC%8B%A0%EC%83%81&nil_profile=reckwd&f=androidapp&DN=ADDA&nil_app=daumapp&enc_all=utf8&DA=B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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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기(氣)가 센 경우라 해도 1~2년을 넘기기 힘든 경우가 많지요.
달마대사는 3년 이상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도력(마음의 힘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대화까지 나누었다는 것을 보면 보통 일이 아닌데요.
사실 이 내용은 과장된 것이랍니다.
중국식 표현이지요.
왜냐하면 본성은 드러날 수는 있어도 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송운이 본 것은 서쪽으로 가는 달마대사를 본 것이지요.
중국 글은 뜻글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뜻만 맞으면 지기들끼리는 통한답니다.
이런 묘사는 중국 문화의 특징 중에 하나인데요.
왜냐하면 중국 문화는 도교(道敎)의 영향 때문에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표현들이 대중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하늘을 날아다니고 지붕 위와 성곽(城郭) 위를 날아서 뛰어넘는 표현들이 모두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런 영향들이 중국에서 지어진 불교 경전들에도 그대로 적용된 내용들이 많이 있답니다.
중국에서 지어진 불경들을 보면 간혹 신비주의를 추가한 글들이 많이 있지요.
그러나 부처님 정법은 그런 신비주의 같은 것은 없답니다.
선문염송 98편 내용에서도 달마대사가 양무제에게 답해주듯..
"확연히 거룩한 진리가 없습니다." 라고 했듯이
부처님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말을 하고 하는 신비주의나 거룩한 것은 없답니다.
너무나 평범한 것인데 여러분들이 못 보고 모르기 때문에 신비하게 보일뿐이지요.
그리고
참고로 사후에 극락이나 지옥 따위도 없답니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 본성 자리로 모두 돌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있다면 다음 생의 삶이 지옥이나 극락은 될 수 있지요.
이러한 내용들은 불교가 중국을 거쳐서 이 땅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토속신앙과 합쳐지면서 생긴 문화인데요.
부처님 법에는 이런 것이 없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자체가 지옥이요 극락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지옥을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해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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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확실히 아셔야 할 것은..
수행의 목적은 현실 세계의 지옥에서 극락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 있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이란 지금 생(生)만 말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다음 생.. 그리고 또 다음 생까지 쭉~ 무수히 연결이 된답니다.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해탈
(解脫)을 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답니다.
오온(五蘊)으로부터의 해탈이지요.
생각으로부터의 해탈입니다.
그렇다고 오온과 생각을 아예 쓰지 말고 살라는 뜻이 아니랍니다.
쓰면서 살되 거기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쓰고 바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어떻게 배가 고프고, 몸이 아프고, 골치 아픈 일들이 있는데 어떻게 안 먹고 생각을 안 하고 살까요.
부처님 말씀의 뜻은 그것들로부터의 해탈을 뜻하는 거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탈(解脫)이란
"벗어남" 이랍니다.
불교식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해탈(解脫)이란..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 본디 열반과 같이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유위(有爲) 해탈, 무위(無爲)해탈 , 성정(性淨) 해탈, 장진(障盡) 해탈 따위로 나누어진다.]
랍니다.
한마디로 말해 해탈이나 열반은 모든 것들로부터의 벗어남이랍니다.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괴로움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랍니다.
(※)
그리고 이렇게 증득한 것들은 다음 생을 받아도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고 다음 생에도 이법을 다시 만나 더한층 도력을 쌓는 것이라고 유마거사도 부처님 말씀을 듣고 이야기하고 계시답니다.
(부록 2부에서 같이 듣고 있는 부처님 말씀 중에 '보살들의 불국토' 이야기가 모두 여기에 해당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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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도 똥 마려우면 똥을 누셨을 것이고,
부처님도 배가 고프면 식사를 하셨답니다.
부처님 자신도 대장장이의 아들인 [쭌다]가 만들어준 돼지고기를(버섯요리라고 하는 학자도 있음) 잘못 드시고 돌아가셨는데요.
이처럼 부처님도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이셨답니다.
부처님은 신(神)이 아니랍니다.
부처님 자신이 일심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오직 하나..
모든 것으로부터의 내려놓음 이랍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탈이랍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벗어남 이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부터 알아차려서 깨닫고
마음을 비우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고 벗어나지 못하면 해탈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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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신격화(神格化) 된 주된 원인은 후대 사람들이 특히 중국과 우리 조상들이 기존에 모시고 있던 여러 신(神) 들과 합쳐지면서 신격화해놓은 것인데요.
부처님의 참 가르침은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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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부처님에게 배워야 할 점은..
나를 (1) 깨닫고 (2) 해탈을 이루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가르침이 중국과 한국을 거치면서 기존에 토속신앙을 불교가 받아들이면서 현재는 중국과 한국 불교의 대부분이 무속화(巫俗化) 되어가고 있다고 보시면 된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모양인데요..
본래 부처님 가르침은 이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답니다.
오히려 부처님은 이러한 행위를 외도라 해서 아주 경멸하셨답니다.
(참고: 중국은 이미 완전히 불교가 무속신앙으로 바뀌었고 형식적인 불교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됨. 그 뒤를 그대로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음.)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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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오늘도 알아차림에 대한 부처님 수행 방법인 [대념처경]에 나오는 내용 중 일곱 번째 내용인데요.
이어서 보겠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면서 힌트를 얻어 보십시오..♡
(이 내용은 부처님이 직접 수행하셨던 방법들을 전하는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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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조개처럼 하얗게 뼈로 변해 버린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실로 이 몸도 (저 시체와) 똑같은 성질을 것이다. 이 몸도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고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고,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고,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한 몸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낸다.
"이것이 몸이다"라는 알아차림은 그에게 확립된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르지 지혜와 알아차림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지내는 방법이다.
(11:50~ 은 다음 주에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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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 내용도 지난번과 같이 시체가 썩어가고 분해되는 과정을 보면서 나의 몸 안팎에서 일어나고 살아지는 것들을 관찰해 알아차려 보라는 가르침인데요.
이렇게 시체를 보면서 수행하는 방법을 백골관(白骨觀)이라고 한답니다.
이렇게 백골관으로 크게 깨달으신 분이 신라 때 자장율사가 계시는데요.
이 백골관을 통해 무상(無常)을 깨닫고 허무(虛無)를 깨달으란 뜻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상(無常)과 허무(虛無)는 모두 공(空)을 가리키는 것이랍니다.
인생의 덧없을 깨닫고 자신들이 들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이지요.
나 자신을 모두 공(空)으로 만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피안(彼岸)의 언덕으로 건너가는 맛을 볼 수가 있답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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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분들의 글이랍니다. ♡
오늘도 [유마경] 내용을 들어보시면서 각자가 내가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 가늠해 보시지요..♡
아직은 유마거사의 내용은 안 나오고 서품(서론)에 해당하는 부처님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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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
몸소 계유의 조문을 준수하면서 정작 타인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일이야말로 보살의 불국토임에 틀림없다.
그곳에서는 잘못이라는 말조차 들을 수가 없다.
ㅡ
(해설)
법화경과 유마경은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에 속하는데요.
보살들이란 최소한 견성을 한사람 즉 수다원과 이상 또는 1지 보살 이상을 가르치는 내용이랍니다..
오늘 내용은 앞 부분이 유마경 원본과 비교해 봤을 때 너무 모양을 내서 고급스럽게 글을 포장한 내용이라 앞 부분을 원본에 맞추어 수정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국토란 불성의 자리를 표현한 내용이랍니다.
여기서 불성의 자리란 현재 여러분들의 마음 상태를 이르는 이야기랍니다.
현재 여러분들의 마음 상태는 불성의 마음처럼 아주 고요라고 안락하고 행복하고 집착이 끊어진 상태인가요?
아니라면 견성은 하셨어도 불성을 증득하진 못하신 거랍니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려보십시오.
이것이 불성을 증득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랍니다. (멸성제 참고)
마음을 깨닫고 비우고 버리면 불국토가 된다는 것이랍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도피안(到彼岸) 즉 피안(彼岸)의 언덕에 도달했다(到)는 뜻으로 표현했고요.
이렇게 피안의 언덕에 도달하게 되면 현재 지속적으로 세존께서 나열하고 있는 내용들의 마음들이 스스로 일어나는 마음을 불국토로 표현한 내용들이 지금 유마경에서 하는 이야기들이랍니다.
쉽게 말해 지금 나열하고 있는 내용들과 현재 나의 마음을 비교해보면서 나도 이런 마음이 일어나고 있는지 비교해 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비교해 보시고 모자라는 부분이 있으면 수행을 통해 내려놓고 버리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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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도 보면
[몸소 계유의 조문을 준수하면서 정작 타인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일이야말로 보살의 불국토임에 틀림없다.]
라는 문구에서 나는 현재 타인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고
이것이 보살의 불국토 즉 불성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ㅡ
오늘 내용 중에 앞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 원문(原文) 내용과 다르게 해석되어 있어서 일부 수정해 보았습니다.
수정할 부분은
(몸소 계유의 조문을 준수하면서) → (스스로 계를 지키고 행하며)로 수정하시면 되겠습니다.
원문에는 [自守戒行]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 글자를 우리글로 옮기면서 너무 모양을 내서 유식하게 해석을 해두었네요.
특히 [계유]라는 한자 단어는 [啓誘]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당이나 점장이들이 흔히 쓰는 계유일주(癸酉日柱) 할 때에 그 [癸酉] 한자를 뜻하는 것인지?
그 출처가 불명확하게 해석되어 있는데요.
유마경 원문에는 간략하게 너무 잘 표현되어 있는 글을 굳이 한껏 멋을 부려서 번역하는 바람에 후대 사람들이 보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참고: 유마경 원문 내용]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유마경 원문
- http://naver.me/xH2EfiF4
,
음..
깨다고 나서 공부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답니다.
그 방법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속적으로..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고..
화두를 드시는 분들은 화두를 알아차리고..
(2)
지속 적으로 마음을 관찰하시면서 관리를 해야 하고..
(3)
지속 적으로 보살들에게 가르치는 경전들을 보면서 자신과 비교를 하면서 부처님과 닮아가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랍니다.
(4)
그리고 자신이 증득한 마음자리로 부처님처럼 세상을 비추어 보면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이랍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본성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성으로 살아가 보십시오.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본성을 보고 안다는 뜻이고
본성을 보고 안다는 뜻은 본성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안다는 뜻이랍니다.
그 메시지대로 걸림 없이 살아가시라는 뜻이랍니다.
그 외에는 절대로 욕심을 내지 마시고 순리대로 살다 보면 내가 무엇을 찾지 않아도 스스로 필요한 것들이 찾아옴을 느끼실 것입니다.
깨닫고도 새로운 업(業)들을 쌓을 것 같으면
차라리 부처님처럼 처음 깨닫고 열반에나 들어야겠다는 말씀처럼 스스로 열반에 드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 할 수 있답니다.
여기서 새로운 업(業)이란 본성이 아닌 모든 것들을 뜻한답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는 것이지요.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주님을 보고 아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랍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성을 볼 줄 알아야 불성의 뜻대로 맡기든 말든 하겠지요.
그래서 먼저 본성부터 깨달으라는 것이고요.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점은 현재의 업(業)이 그대로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부처님은 이에 대해서 설명하시기를
"너의 과거 생을 알려면 지금 너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요.
이 말은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진리랍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이 마음 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수가 있을 건데요.
그 이유는
본성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곳으로 이 육체를 몰고 가지를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이 육체를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곳으로 몰고 가는 순간 본성 자신도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본성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렵고 고생스러운 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가 자신의 고집과 아집과 욕심들 때문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실 건데요..
이 점을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사업을 하시든 장사를 하시든 직장 생활을 하시든 유마거사처럼 하시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시면 되겠습니다.
특히 살아가시면서 살아있는 생명체 등에게는 절대로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마시고요.
(21:40~ 은 다음 주에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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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에 보내드릴 선문염송 104편인데요.♡
뜻을 아시는 분들은 요점만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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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04편)
20210414
바라제 존자에게 이견왕이 묻 되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하니 존자가 대답하되
"불성을 본 이가 부처입니다"
"스님은 불성을 보았습니까"
"예, 나는 불성을 보았습니다"
"불성이 어디에 있습디까"
"예, 불성은 작용하는 곳에 있습니다"
"그게 무슨 작용이게 나에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예, 지금 작용하는 것이 보이건만 대왕 스스로가 보지 못하십니다"
"나에게도 그 작용이 있습니까?"
"예, 대왕께서 착용하신다면 그것 아닌 것이 없지만 왕께서 작용치 않으신다면 본체마저 보기 어렵습니다"
"작용할 때엔 몇 곳으로 나타납니까?"
"예 나타나는 곳은 여덟 곳이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 나타나는 법을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예, 태에서는 몸이라 하고, 세상에서는 사람이라 하고, 눈에서는 본다 하고, 귀에서는 듣는다 하고, 코에서는 냄새를 맡는다 하고, 혀로서는 말을 하고, 손으로는 물건을 잡고, 발로는 다니니, 두루 나타내면 항하사 세계에 퍼지고, 거두고 모으면 한 티끌에 들어갑니다. 아는 이는 불성인 줄 알 거니와 모르는 이는 정신 영혼이라 합니다" 하니
왕이 말을 듣고 마음이 트이어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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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튜브 동영상 내용은 오늘 본문 내용과 연관 지어 올려보았는데요..♡
(종범스님)과 (구담스님)의 본성 이야기랍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제목: [대한불교삼보회] 종범스님 영가법문 / 2019년 1월 13일
https://youtu.be/oY8ArWI11Pk
(2)
제목: 201017 2. 깨닫고 나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됩니까? 구담스님 차담법문. 대안정사 일물선원.
https://youtu.be/8v8_pd6E7RI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