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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여름 특집으로 지역 가볼만한 곳 소개프로 그램
군산 지역에서 여름철에 가볼만 한 곳
우리 군산지역은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있어서 구불 길이 만들어져 4계절 관광지로 많은 외래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최근에는 근대 역사문화 탐방지와 선유도 해수욕장과 새만금 방조제를 찾아오시는 관광객들이 무척 늘어나고 있어,
즐거운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특히 야간 조명이 화려한 수를 놓고 있는 은파호수 공원과 금강 하구 둑 어도에 찾는 손님들에게 그 비경을 소개 해 보려고 한다 따라서 군산의 이야기는 우선 해상관광과 근대역사 경관지. 금강 하구둑을 중심으로 연계된 웅포 곰나루터.등 몇차례 나누어서 정리를 해볼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고군산 군도
해변에서 바라보는 선유도의 일몰,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장관이다. 서쪽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감동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고 한다. 고군산군도는 유인도 16개와 무인도 47, 총 63개의 도서로 구성된 천혜의 관광지이다. 거리는 군산에서 45km 지점에 위치하며 선유도를 중심으로 선유8경, 해수욕장 등 천혜의 비경과 갯벌을 간직하고 있다
1.선유낙조
서해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조그만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해가질 때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불바다를 이루어 황홀한 광경을 연출하는데,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가슴에 파고들어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해변에서 바라보는 선유도의 일몰,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장관이다. 서쪽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감동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고한다.
2.명사십리
선유도 해수욕장의 백사장 언덕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투명하고 유리알처럼 고운 모래가 십리에 걸쳐 깔려 이는 모습을 달이 밝은 밤에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3km 길게 백사장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 선유도해수욕장의 둑에는 해당화가 만발하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졌다. 고운 모래밭이 십리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모래밭에 달빛이 비치면 세상 시름을 잊을 만하다.
3.망주폭포
망주봉은 바위로만 이루어진2개의 산봉우리가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북쪽을 향해 서 있다. 젊은 부부가 임금님을 기다리다 그만 굳어져 바위산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해발 152m 의 이 봉우리에 여름철에 큰 비가 내리면 큰 망주봉에서 7~8 개의 불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장관을 이룬다.
4..평사낙안
선유도 마을 뒷산에서 망주봉을 바라보면 은빛의 모래사장인 모래톱의 모양이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내려 앉은 기러기 형상과 같다 하여 평사낙안이라 불려졌고 선유 8경 중의 하나가 되었다.
5.삼도귀범
섬주민들에게 항상 만선의 꿈과 기대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세 섬이 줄지어 있어 모습마저 아름답다. 세 섬은 무인도로 무녀도에 속해 있으나 선유도 앞마을을 돌아서는 어귀에 서 있고 갈매기와 물오리 등 바닷새의 천국이다.
6.장자어화
장자어화는 고군산도민의 자랑이었고 이 곳이 황금어장이었다는 표징이다. 과거에는 선유도 본 마을 뒤에 있는 장자도를 중심으로 이 곳에서 많이 나던 조기를 잡기 위해 수백척의 고깃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작업을 하면 주변의 바다는 온통 불빛에 일렁거려 장관을 이룬다해서 장자어화 라 불리웠다.
7.월영단풍
신시도에는 해발 199m 의 월영봉이 있어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가을철에 신시도 앞바다를 지날 때면 월영봉의 단풍이 한국 병풍을 보는 듯 하다. 특히 월영봉은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 선생이 절경에 반하여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머물며 글을 읽으며 잠시 살았다는 곳이다.
8.무산십이봉
고군산의 방벽 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산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무산십이봉이라 했으며 선유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면 하나의 병풍 또는 쩍을 막기 위해 배치된 무사들로 보인다. 가는길=전주-군산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한다. 자동차전용도로 종점에서 우회전,
다시 군산해양경찰서 사거리에서 우회전한다. 군산항 여객선터미널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국제여객선과 연안여객선터미널로 구분돼 있다. 선유도 방면은 연안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한다. 전주에서 여객선터미널까지는 자동차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무료 주차장과 유료 주차장이 있으며 유료 주차장은 24시간에 5,000원으로 저렴하다.배편;오전 6시 30분부터 시작해 오후 4시까지 12편이 있다.
평상시에는 1일 7회를 운항하지만, 여름 휴가철을 맞아 증편했다. 배편 문의는 군산항 여객터미널(472-2712) 현지숙박선유도 진리(2구)에 숙박지가 몰려있다. 안정모텔(466-4886), 중앙여관(465-3450), 풀 하우스 등. 민박 문의는 선유도관광안내소(465-5320), 군산시수협(450-6695). 이밖에 선유 1구(통개마을)와 선유 3구(진월마을), 선유 4구(남악마을), 장자도 등에도 민박은 물론 최근 신축한 팬션형 숙소가 있다.
선유 4구 끄트머리인 남악마을에 소재한 밀파소(466-6024)는 조용하며, 주변 풍광이 뛰어나 특히 추천하고 싶다.고군산 열도는 천연적인 해상 공원이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섬 스물네 개가 모여 있다.이 가운데 열두 개는 사람이 살지만 나머지 열두 개는 무인도이다. 군산항에서 뱃길로 50여킬로미터, 2시간여 달려가면 닿을수 있다. 고산열도의 중심섬인 선유도는 이름 그대로 신선이 놀만큼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름처럼 서해안의 보석이라 할 수 있다
선유도 여행 포인트
세 개의 다리로 연결된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 대장도를 자전거를 대여하여 하이킹. (자전거대여 1시간에 3,000원) 선유도의 상징인 망주봉 등반(노약자나,어린이는 위험) 망주봉 남쪽 기슭의 토속 신앙처인 오룡묘 답사.
서해안의 전통장례 풍습인 무녀도 초분
대장도 윤연수씨의 도원경이라는 분재수석원에서 1,500여점의 수석 관람 유람선을 이용한 고군산열도 바닷길 관광 교통안내 : 피서철 1일 3회운항 하절기 1일 2회운항 동절기 1일 1회운항 출발시간은 매일 물 때에 맞추어 달라지므로
연안여객터미널에문의 전화 446-7171 2. 고군산군도 유람선 여행;군산발(도선장) → 오식도 → 횡경도(할매바위, 거북바위) → 방축도(떡바위, 독립문바위) → 관리도(삼선바위, 폭포바위, 만물상바위, 천공굴) → 장자도(도원경, 장자대교, 사자봉, 장자 할매바위) → 선유도(망주봉, 오룡묘, 군산진터, 선유대교, 명사십리) → 군산
소요시간 - 도선장 앞에서 해상관광유람선이 매일 1시에 출발하는데 30인 이상 단체 관람은 시간에 관계 없이 출발 가능하다.
유람선 코스 및 요금
교통 및 숙박(군산의 교통 - 여객선) 참조 3. 상세정보
군산진터 -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고군산 일대에서 들려오던 뱃노래가 20여년 사이에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조기 멸치 등 만선의 꿈을 안고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공동체 시절은 옛 이야기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고군산군도는 야미 신시 선유 무녀 장자 대장 관리 방축 명 말도 등의 10개의 유인도와 20여개의 무인도를 거느린다.고군산의 원 명칭은 군산이다.
고군산이라는 명칭은 조선 태조6년(1397) 수군 만호영을 군산도에 설치 했다가 세종 때 진포로 옮겨감에 따라 군산(群山)이라는 지명도 옮겨 진포(鎭浦ㆍ현 군산)가 군산포진이 되고 기존 군산도는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古群山)이라 칭했다.
고군산은 고려시대 이래 해운교역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몽고와일본,중국은 물론 멀리 대식국(大食國ㆍ아라비아) 상인까지 개성의 예성항을 왕래하였고 송나라와의 항로는 황해 중부횡단항로(중국의 산둥반도에서 충남 당진까지를 잇는 직선 항로)를 이용하였는데
장보고 이래 이곳 군산도는 중국과 일본,통일 신라(이후 고려,조선까지)를 잇는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고려 인종(1123)때 사신으로 왔던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군산도에 관해 공해오룡묘(公 五龍廟)와 자복사송산행궁(資福寺송山行宮) 등이 있고
접반사 김부식(接伴使 金富軾) 등이 자신을 영접했다는데 늘어선 사람이 백여인이요 민가가 수십 호였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조선 선조2년(1569) 선유도에 김영아문이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장관으로 수군절제사를 두었다.이 절제사는 고군산군도와 임피군창,만경,김제,부안,무장,고창,영광등 8개 군현을 관할토록 했다.현재는 모든 건물이 소실되고 주춧돌만이 흩어져 남아있다.
선유도는 1906년 만경현에서 지도군(智島郡ㆍ현 전남 신안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가 1914년 옥구군,1993년 군산시 소속이 되었다.이곳 선유도에는 옛 영화를 말해주듯이 진말(鎭里) 입구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당초 동헌이 있던 산 중턱에 절제사 허공밀 인덕선정비(節制使 許公密 仁德善政碑ㆍ道光6년ㆍ1826)등 여러 기가 있었으나 5기 밖에 남지않아 현 위치로 옮겨졌다.
과거 이곳 선유도는 1,000여호가 살았으며 상당수는 관리와 수군이었고 일반 주민들은 주로 청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전한다.선유도는 빼어난 지형과 풍광을 자랑한다.얕은 백사장과 해질 무렵의 환상적인 서해의 낙조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해수욕장 건너에는 두 개의 섬이 사구에 의해 연결되어 두 산봉우리 모양 만들어 놓은 망주봉(望主峯ㆍ해발 80m와 25m)이 해안의 경치를 더해준다.
현재 선유도는 5개마을 150여 가구 640여 주민이 있는데,관광객을 상대하는 민박과 함께 어업이 주된 수입원이다.선유도∼장자도,선유도∼무녀도간은 지난 1984년에 착공 1986년에 완공된 쌍둥이 다리(길이 268m,폭 3m,높이 30m)가 있어 대장도까지 4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통계마을과 진말사이 낮은 구릉에 4,800여 년전의 조개무지가 있고 즐문토기 타제석기 등이 발굴되었으며 망주봉 암벽에는 희귀 난초인 석곡이 자생하나, 극성 채집가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진리의 이장님은 "1995∼1996년 2년 동안 충남해안에서 모래를 1억 원어치 사다가 해수욕장에 깔았다"며 "전국에서 바다 낚시꾼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고 최근 동향을 들려주었다.근래에는 이들 섬에 이도(移島)현상과 1980년대 땅투기 바람이 불어 고유의 정감이 사라지고 돈벌이에 집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매우 아쉽다.거기에 서해안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섬들을 방조제로 연결해 육지와 연결하고 항만이 들어서면 섬으로서의 전통과 정취는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곳은 또 정감록에 「고군산의 범씨 천년도읍」설이 있다.「퇴조 退潮 3백리 범씨 천년도읍이 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군산에서 바다가 300리 밖으로 물러나 이 일대에 국제항과 국제공항이 들어서 서양인들이 오고가면 바로 이것이 천년도읍의 징후라는 것이다.과연 이곳에 천년의 도읍이 열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오래 살아야 확인을 할텐데........................
또 전라북도는 신시 선유 장자도 등 5개 섬지역 150만 평을 2006년까지 민자와 공공자금 1조원을 들여 국제적인 해양관광단지로 개발할 예정이다. 기대해 볼 만한 일이다. 끝으로 군산에서부터 출발하여 만나는 순서데로 섬들을 소개해 볼까한다.야미도는 원래 밤섬이라 불렸다.
밤나무가 많아서이다. 그러다 뱀이 많다하여 뱀섬으로 변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밤의 첫 자인 야(夜)와 맛있다는 미(味)를 붙여 야미도라 하였다.신시도는 고군산군도 중 가장 면적이 넓다.이 섬은 신라시대 대학자인 최치원이 잠시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섬에 우뚝솟은 월영봉에 올라 돌담을 치고 「월영대」라 칭한 뒤 그 글을 읽는 소리가 중국의 남경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또 조선말의 유학자인 전간재(1841~1922) 선생도 한동안 머물며 흥학계(興學契)를 조직, 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무녀도는 무당이 춤을 추는 형국이라는 설도 있으나 원래는 「서들이」라 하여 일손을 바쁘게 놀려 서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비롯 되었다.이곳은 염전을 빼놓을 수 없다1951년에 시작 1962년에 완성시킨 완양 염전으로 16만평의 간척지 중 일부는 논과 저수지로 사용하고 18,000평에 소금을 만들었으나
염전을 비롯하여 1980년대 이후에는 논마저도 해안 저습지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대장도는 장자봉 남쪽 중턱 8m 높이에둥글고 뾰족하게 우뚝 솟아 바다를 바라보는 수호신 장자할머니 바위가 있고 횡경도에는 장자할아버지 바위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장자도 옆 관리도(곶리도ㆍ串里島)는 꽂지섬으로 불리웠고 투구봉 질망봉(馬峰),승봉(僧峰)등 군사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그리고 횡경도-방축도-명도-말도 등은 옆으로 이어져 고군산군도의 천연의 병풍 역할을 한다.
오룡묘
선유도의 망주보 중턱에는 오룡묘라는 2채의 당집이 있다
(현지 주민들은 위당, 아랫당이라 한다) 바다를 굽어보는 위치의 오룡묘는 정면 550.5㎝,측면 306㎝ 규모에 기와지붕이며 기둥은 모두 12개다.다섯 마리의 용이 모여 살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토지신ㆍ망주대감ㆍ오씨할머니ㆍ용왕님 등 다섯을 대상으로 한 제사를 모셨으나 1952년을 끝으로 중단되었다.당(堂)이라 하지 않고 묘(廟)라 한 것은 이 섬에 수군진영이 있어 그렇게 불리웠다 한다.
이곳에는 오구유왕 명두아가씨 최씨부인 수문장(守門將) 성주 등 5매의 그림이 있었으나 10년전에 도난당하였다.현재는 산신이 호랑이와 용을 옆에두고 있는 초라한 그림 두 점만이 있다. 오룡묘 뒤 1m 높이에는 또 한 채의 당집이 있는데 산신 북두칠성 임씨할머니 등 화상이 있었으나
이것도 모두 도난을 당했다.이곳을 관리하던 무녀가 1990년 초 죽고나서 관리하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풍어와 무사를 비는 당산제(용왕제)와 3년마다 오룡묘를 중심으로 이 부근 섬의 모든 배가 모여 지내는 오룡제(별신제)가 열렸다.광대 5명과 무인 3명이 참가했다는 오룡제에는 고군산도에서 모여든 모든 배들이 3일간 깃발을 달고 항구에서 제각각 굿을 벌이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전한다.하지만 섬이 뭍과 비교적 가까운데다 기독교의 전파와 미신타파 그리고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같은 의식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선유도 말고도 야미도 신시도 방축도 관리도 말도 등에 아직도 당산이 남아 있으나 당제는 지내지 않고 있다.
초분
우리나라 서해안과 섬일대에는 1970년대 가지만 해도 초분(草墳)이 널리 퍼져 있었다.지금은 육지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으면 바로 안장을 하지만 섬의 여건상 갑작스런 상을 당하거나 한정된 토지에 묘지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고기잡이 나간 상주를 기다리는 경우 또 정월에 사람이 죽으면 흙을 다루지 않는 풍습이 있어 초분을 사용했다.돌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눕힌 후 짚으로 덮었다.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육탈하게 되면 그때 뼈만 골라 이장을 했다.이러한 이중장제(二重葬制)는 백제의 유명한 무녕왕이 죽은 지 2년이 지난 후에야 무녕왕릉에 묻힌 것으로 보아 백제에서도 이중장제가 행해졌던 것으로 짐작된다.고군산군도에는 무녀도와 선유도에 각 1구씩 2구가 전해오는데 선유도의 초분은 뒷장골이라 불리는 소나무 숲에 바다를 향해 길게 놓여 있다.
길이 270㎝,높이 150㎝ 크기로 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덮여 있다.초분 전체를 나이론 줄로 묶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했으며 돌멩이를 매달고 소나무 가지를 꽂아 놓았다.선유도 1구 송봉호씨의 부친으로 32년전에 작고한 화영시의 빈이다.초분에 소나무를 꽂은 것은 새나 짐승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아쉽게도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무녀도의 초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초분이 있다.선유도 다리를 건너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200여m 들어가면 나오는 이 초분은 밑에 짚을 엮어 세워 놓고 그 위에 이엉을 이었다.이 초분은 당초 땅에 안장했으나 그 집에 우환이 생겨 점을 쳐보니 조상의 시체를 땅에 안장했기 때문이라 하여 다시 초분을 해 오늘까지 보존하고 있다.2년에 한 번씩 한식때 이엉을 갈아주는 관리를 했다
백년 불빛으로 뱃사람과의 약속을 지켜온 어청도 등대
옛 세관에서 관광해설사로 근무를 하다 보니 원 도심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날로 늘어나 이들에게 작은 단위로 몇 명 씩, 근대역사 현장에 현지관광 안내를 해 야 할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대개 이관광객들은 소규모 단위배낭 여행객으로,군산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 지역실정을 파악하고 관광지로 찾아오고 있어,
도보로 관광을 시키면 원 도심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본 다.이들은 많은 것을 원 하지 않고, 지리를 잘 아는 시민들이 나서서 지역정보만 알려주면 되는데, 대부분 시민들조차 우리지역에 있는 근대문화 역사관광지에 대한 무관심과 정보를 전혀 파악치 못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된다.실제로 필자가 시티투어 버스로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한 시내버스 운전자가 나를 향해 군산에 뭣이 그렇게 볼 것이 있다고 매일 투어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깜짝 놀랐다,이제는 많은 사업비를 투자하는 관광사업보다 친절한 시민들이 나서서 군산관광을 활성화 시키는 몫을 담당해 원 도심 지역은 물론 농촌지역의 관광지를 알리는 일에 동참 해줘야 할 때 라 고 본다.
바다와 섬 이야기는 섬에 사는 주민들이.숲 이야기는 숲에 사는 주민들이. 농촌이야기는 오랫동안 농촌에서 살아온 농촌에 사는 농민들이 하면 되는데 무관심속에 1백여 년 전 에 일어난 우리지역 일제강점기에 시절이야기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시민의식으로 소중한 관광자원이 뭍 혀 저 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실제로 관광객들은 세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당시를 기억해내는 사진들 중 일본인들이 사망한
일본세관원에 대한 유골을 수습해 일본으로 송환하는 사진을 보고우리 문화제를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해방이 되어 못 가져가고, 발산 초등학교 공원에 그냥 둔 보물들의 이야기와 문화제를 모아서 일본으로 가져간 대형 금고 이야기, 아산 리 뒷산에서 장작을 쌓아 높고 화장을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큰 관심을 갖고 재미있어 한다,
이들은 큰 걸 원하지 않는 다 그저 있는 그대로가 관광자원이고 주민들의 친절하고 성의 있는 안내가 자원이다, 예를 들면 젊은 시절 취미로 연주해보던 악기로 연주하는 할아버지 음악단이 외교사절단처럼 군산을 처음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오는 장소에서 연주를 해주면 좋아 할 것 이고, 주민들이 틈틈이 참여 만들어내는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축제는 원 도심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본다, 지난 2010년 8월 10일 내가 만난 한 일본인 관광객 중에는 일본의 근대역사 스페셜을 제작을 계획하는 일본인 작가 한분이 오후 4시경에 군산 세관에 허름한 복장으로 다녀갔다,군산지역 일제강점기 시대 가옥들을 여기저기 돌아본 후 그는 히 로 스 가옥과 동국사절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나에게 말했다,
백제의 역사를 살피려고 금강줄기를 따라서 공주를 거쳐서 여러 날.군산까지 걸어서 도보로 찾아왔는데 이곳에오니 더 생생하게 당시의 흔적을 실제로 많이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하면서 실제로 아직도 백제시대부터 이어진 많은 당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가 있는 곳이 어디냐 말 했다, 우리 지역은 백제시대의 성곽들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는데, 성곽 형태는 태 머리 식 토성이고,
대야면 탑동마을 3층 석탑이 백제의 고유 양식이라 말하고 백제인 들의 충절이 담긴 오성산 이야기를 우리말을 잘하는 그에게 손짓발짓을 해가면서 필자가 짧게 알고 있는 데 로 열심히 말해주면서 비가 촉촉이 내리는 오후 시간에 그를 정중히 안내를 했다,
그의 눈에는 지금도 백제의 문화 역사가 숨 쉬는 금강을 따라서 부여에서 군산까지 내려오면서 왜선 5백 척 이 침몰한 진포 대첩과 최근에 만들어진 진포테마 공원에는 고정이 되어 있었고 여러 곳을 다녀본 내용에 대하여 정리를 해보는 것 같았다,
군산 세관에는 요지 음 예전에 비해 많은 경제인들과 대학교수 여러 동창회 등, 군산관광을 사전에 준비하기 위한 현지답사팀이 찾아 온 다, 그들에게 숙박업소와 관광지 음식점을 여행계획을 코디 해주면 대부분 문화관광해설사들의 이야기대로 여행설계를 하고 찾아 온 다,필자에게 하루는 야경을 보여 줄 수 없냐고 해, 은파 물빛다리와 금강가에 있는 비단 강 길 야경을 소개하기도 하고 하구 뚝의 어도를 안내해보았다.
내가 조그마한 정성을 들였는데 그들은 크게 감동을 받고 있 었 다 ,중동에서 사시는 시민한분께서 월명공원 수시 탑에서 옛 군산세관을 뭍는 젊은 학생들을 직접 안내해 오셨다, 그분이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군산에 오래 살았지만 이렇게 좋은 내용이 있는 줄 모른다고 말하고 가셨다,
우리지역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은 많은 경비와 시간을 투자해 먼 곳까지 찾아와서 설명을 듣고 근대문화 유산이 있는 현지에 꼭 가보기를 원 한다, 주민들을 중심으로 현지안내 자원 봉사자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문화 유산을 설명을 해주면 관광객유치를 날로 크게 번창 하리라는 자신감을 말하고 싶다 원 도심 활성화에 매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문화관광해설을 하면서, 집에 가실 때 엔 복성루. 쌍용반점에서 짬뽕를 들고 경암동철길마를 사진을 찍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에서 선물로 빵을 사가세요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이미 빵도 사먹고 사진을 찍어왔어요, 그런데 경암동 철길위로 집을 하나지었데요 ...
이들의 손에 들려줄 안내지도가 부족하다. 적산가옥 (히 로 스 가옥)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183호로 지정된 가운데 영화 ‘타짜’의 촬영 장소로 알려져 있다. 옛 군산세관과 은행 같은 관공서 등에는 일제 강점기 건물이 남아있어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군산에서 여객선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어청도는 낚시도 즐기고 삼치 잡아 가세요 하면 그들은 어느 세 마음이 강태공이 되어버린다,
이들의 발길이 에메랄드 빛 처 럼 파란 바다로 가 있고 변덕스런 날씨가 좌우해서 일어나는 파도소리도 어머니 품 같은 생각을 들게 한 다, 요지음 처럼 무더운 날 에는 푸른 바다 가운데 한없이 투영에 가까운 어~청~도 변화 무쌍한 바다에 가고픈 마음이 든 다. 어머니 눈길처럼 일본으로 쌀을 실어가는 오고가는 선박을 바라 보고만 있었을 ,
어청도 등대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1912년 3월에 서해고도의 별처럼 적막한 봉수대가 패지 된 후 300년이 지난 지금도, 소가먹이로 무척 좋아하는 자귀나무의 아름다운 꽃의 자 테 와 바다를 향해하는 선박의 등대 지도에 나타난 외연도 와 어청도 봉수대에서 저녁이 되면 멀리서 12초마다 깜박이는 등대 불은 5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다 한 다.
1백년의 선광으로 뱃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군산항으로 요지 음도 오고가는 무역선 과 여러 선박들과 무언의 교신으로 숭고한 청록 빛 바다의 밤을 섬처럼 떠도는 뱃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쳐준다, 삶의 애환을 실고 오가는 배들을 안내 한 길잡이 이다 ,
어청도는 일본인들이 러 일 전쟁 후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 어 오는 중간 기착지를 삼았던 곳으로 옛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고래가 많아 그물에 자주 잡히는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1970년대에는 포경선들로 불야성을 이룬 곳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 선원들의 발길이 멈 춘곳 에는 당시엔 냉장고 안에 밍크 고래와 흰 수염고래 고기가 가득했다 한 다, 고래 고기를 포식했다던 주민들은 지금도 아릿 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때를 증언하고 있다,
막잡혀온 고래는 5천관에서 6천관이 넘은 지금으로 말하면 20톤 정도의 소고기처럼 바다동물이 고기가 뜨거웠지, 그 시절 고래 고기맛과 제 5진양호 항해일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다, 1980년 4월10일 시간대로 고래잡이 기록으로 당시 선장에 의해 꼼꼼하게 메모해둔 기록에는 고래가 발견되었다, 15분정도 명중. 또 발견 명중, 고래 5마리 포획 큰고래 22.7M~ 33M등이 적힌 빛바랜 항해일지에 말하고 있다한다.
이항해 일지도 새로 짓는 우fl 근대역사 박물관 자료로 확보했으면 좋겠다,어청도 뒷산 봉수대 비탈진 곳은 고려 의종 서기1149년에 출발해 서기1598년 임진왜란에서부터의 긴 세월을 항아리 속 에 담긴 장맛처럼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기1667년까지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과 의 연관성 그리고 1989년 충남 금산군과 행정구역을 바꾸면서우리 군산의 품에 안긴 가장 머나먼 섬 어청도는 당시에는 갖고 있은 것이 바다 밖에 없고 보잘 것이 없었지만
그 지금은 우리지역의 역사를 정리하고 옛 시절를 회상하면서 관광을 자원화하려는 사람들른 보물임 셈이다,바로 이웃 섬인 충남 외연도와 녹 도 등은 요지 음 메스 컴에 서 많이 알려져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데, 중국 제나라 장수 전횡 장군이 5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망명한 고도에서는 서해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충청 수영과의 관계 등,
우리 군산의 진포 대첩의 역사를 말 하는데, 그 당시 섬에 봉수대는 지금의 남극 세종기지 처 럼 대단했던 조선 수군의 봉수대 봉화 불은 나라를 지킨
당시 국권인 왕권의 상징 점방산 봉수대와 오성산 봉수대는 조선의 수군의 발자취에도 관심을 갖게 하고, 지금도 수덕산 자락에서 진포 주변에 쌓인 군량미를 지켜오던 현재 해망동에 남아있는 해군들의 발자취와도 연관을 시켜가면서 나라의 국란을 최초로 알리려고 불 피웠을
어청도 지역의 봉수대가 지금은 대한민국 해군들에 의해 잘 보존해오고 있다 그때 수군들과 선유도에 있었던 진영 터 수군과 수덕산 즉 지금의 세관 근처에 2000여명이 주둔했던 수군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관심을 더 갖게 하고 있다.
우리지역의 근대사에는 분명한 나라 사랑의 역사가 항일 운동의 3,1만세 운동과 옥구농민 항쟁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들과 일제강점기에 격었던 수많은 당시에 있었던 맛있는 요리집 이야기가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다, 이러한 일에 시민 모두가 나서서 자원봉사측면에서 친절한 안내와 참여를 시민운동으로 전개해 나가면 분명히 군산 관광의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