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에니어그램2) 손권의 성격 - 협조주의자
조 성 민 (한양대 로스쿨 명예교수)
1. 인내심이 강함
손권은 협조주의자로서 일을 처리할 때 참모들과 상의하고 토론하는 스타일이다. 손권은 겸손하고 온화하며 참을성이 강했다. 허리를 굽혀 찬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연장자나 재능 있는 부하에 대해 자세를 낮추고 가르침을 청했다.
유비와의 이릉전투를 앞둔 어느 날, 손권은 위나라의 신하국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위나라와 대립하는 상황에서 촉나라와 싸워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위나라 황제인 문제(조조의 아들 조비)는 신하국이 되겠다는 손권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위나라 황제는 손권에게 신하가 되겠다는 증거로 상아와 코뿔소의 뿔 등 비싸고 희귀한 물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손권의 참모들은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편이라 해도 굴욕을 당할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지만, 몸을 낮추고 치욕을 참았다.
이처럼 손권은 주변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여 참아야 할 경우에는 어떠한 난관도 견뎌내는 인내심으로 삼국의 여러 군주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황제의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다.
2. 넘버 2의 인생철학
손권은 정치에 있어서 차선의 방법을 택했다. 조조나 유비가 천하제패를 목표로 한데 반해, 손권은 무리한 모험을 피하고 정세가 호전되기를 기다려 행동했다. 손권이 통일천하를 목표로 삼지 못한 원인은 주위환경이 여러 측면에서 열악했기 때문이다.
① 지리적 환경이 열악했다. 오나라는 산세가 험악하고 장강이 있는 지리적 여건은 수비에는 유리하지만 공격에는 불리했다.
② 위나 촉에 비해 오나라는 상대적으로 인재가 부족했다. 오는 지역이 협소하여 현지에서 인재들을 찾아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유능한 인재들이 사망하면 이들을 이을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위나라는 영토가 넓어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또 뒤를 이을 인재가 끊임없이 배출되었다.
③ 오와 촉이 손을 잡으면 조조를 견제할 수 있으나, 오와 촉이 형주를 두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바람에 손권은 통일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없었다. 또한 오나라는 위나라로부터 한상 경계를 받는 입장이었다.
오나라의 이러한 여건 때문에 손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완전무결하면 무리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수재이기는 하지만 톱이 되려고 하지 않는 넘버 2의 타입이었다.
3. 창업공신을 중용함
손권은 인재의 육성에 열정적이며, 부하의 장점을 살려 성장을 촉진시켰다. 손권의 격려와 육성에 의해 대성한 부장이 오나라에 많았다. 손권은 적재적소에 능력이 출중한 인물을 배치하고 그들에게 자율성을 보장해 주었다. 손권이 등용한 주유, 노숙, 장소, 육손 등은 그 재능을 발휘하여 각자의 직무를 다했다.
주유는 오나라 창업공신과 더불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손권은 명장이며 책사인 노숙을 귀하게 여겨 그의 모친에게 의복과 휘장, 거처와 잡다한 물품을 주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했다. 그러자 노숙은 한 황실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며, 손권에게 천하통일을 도모하기를 권했다. 위나라에 투항하기를 권유한 장소조차도, 손권은 그를 전쟁에 참여시켜 공신으로 만드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여몽은 원래 무예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으나, 손권이 학문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여몽을 분발시킴으로써 오나라의 우수한 전략가로 변신하어 관우가 지키고 있던 형주성을 함락시켰다.
손권은 지모와 용맹을 겸비한 명장인 육손을 자주 불러 정치문제에 관해 의견을 구했다. 이릉대전 중 손권에 의해 최고사령관으로 발탁된 육손은 뛰어난 작전을 펼쳐 승리를 이끌었다. 이릉대전의 결과 강남지방에 대한 오나라의 지배력이 공고해졌다. 그 후 육손은 손권에 의해 승상이 되었다(244년).
4. 결단력이 부족함
손책이 수하들에게 습격을 당해 사경을 헤맬 때 아우인 손권에게 “나라 안의 문제는 장소와 상의하고, 나라 밖의 문제는 주유와 상의하라”고 유언했다. 손책은 결단력이 부족한 손권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적벽에서 오나라와 위나락 군사가 서로 대치중에 오나라 신하들이 항전이냐 항복이는 참모에게 모든 일을 위임하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국정을 처리하는 능력에는 자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그의 결단력이 부족한 성격으로 공격적인 나라경영을 하기보다는 수성책을 펼쳤다.
(참고문헌) 조성민, 삼국지에서 내 성격을 찾다(제2쇄), 박영사, 20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