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도 꽃이여
양상태
비교 대상 1호.
대부분 사람은 서로 비교하기를 즐겨 하지만,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은 꺼린다. 그런데 가끔 직간접으로 비교 대상이 되는 호박, 그리고 꽃.
“호박꽃도 꽃이냐?” 엄연하게 꽃일진 데 꽃이냐고 얕잡아 보기도 한다. 잎이며 줄기, 열매 등 우리에게 많은 식재료를 공급하여 식단을 풍성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노랗게 익은 늙은 호박, 그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곳간에 쌓아 놓은 늙은 호박을 보면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는 안도감에 왠지 부자가 된 듯하다. 과육은 썰어 오가리를 만들고 천정에 걸어 놓으면 갓난아이에게는 모빌이 되어 준다. 죽 하면 호박죽 아닌가? 죽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호박죽 전문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게으르지 않고 저녁에 피는 달맞이꽃이나 분꽃보다 부지런한 꽃이다. 새벽이슬이 햇살에 마르기 전에 피고 밤하늘 별을 보다가 별처럼 피고 이울어지면 마른 불가사리처럼 쪼그라든다.
딴에는,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큼지막하게 꽃피우려는 꿈도 있을 터이고 이웃집 담장 정도야 거뜬히 넘기는 기세도 있다.
다른 꽃에 비하여 생김새가 조금 크고 그러할 뿐, 꽃가루를 듬뿍듬뿍 묻혀가는 나비와 벌의 입을 보면 인심 좋은 국밥집 아주머니처럼 넉넉한 마음마저 읽어 낼 수 있다.
둥근 원은 시작이요 끝이며 끝인 듯 시작이다. 어릴 적에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별명 “뚱글 마치”와 같이 둥글게 살아가리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게 살아간다면, 근심 걱정 없이 사는 세상 얼마나 행복할까? 인류 최고의 발견은 원이요, 발명은 바퀴라 하거늘 서로의 마음 벽이나 각을 버리고 구르며 살았으면 한다.
동네 구석구석 가위질하며 고샅을 돌아, 온 동네를 들썩이던 엿장수. 어릴 적 나에게 폐품 재활용을 일깨워 주던 호박엿이다. 믿거나 말거나 모두가 울릉도 호박엿이었다. 울릉도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때깔부터 탐스러우며 먹음직스러운 과육은 엿, 빵, 젤리, 조청은 물론이요, 약재로까지 쓰인다. 산모의 부종에는 으뜸이요, 건강식으로 녹말 성분이 많아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을 받음은 물론이다. 찰떡에 붙어 이름까지 바꿔버린 호박떡. 연한 줄기와 잎을 쪄 싸 먹는 쌈밥. 동지섣달 기나긴 밤에 심심풀이 호박씨 까먹기.
호박을 가장 업신여겼던 사람. 발로 차고 말뚝 박은 사람. 흥부 형 놀부. 늦은 겨울밤, 호박죽은 먹어나 보았는지 모를 일이다.
더하여, 씨는 씨대로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 ‘꽁무니로 호박씨 깐다.’ 하필 이 말에 초대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까놓은 호박씨는 땅콩, 호두와 더불어 3대 견과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겉으로는 얌전하게 보이나 속으로는 의뭉스럽게 딴짓하는 이에 쓰는 말일 것이다. 실로, 요즈음 호박씨를 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평상시에는 삼백 명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선거철이 되니 경쟁적으로 모두가 그러고 그렇다.
섬 아닌 섬에 사무실을 가지고 계신 분이나 사무실을 가지시려는 분들께 부탁의 말씀 올립니다. 깔 것을 까야지 호박씨는 제발 까지 말아 달라고. 호박에 부끄럽지는 않은지, 알면 그러기야 하겠소만.
암수가 떨어져 지내면서도 충분한 화분과 꿀, 잎과 줄기, 옹골진 덩어리까지 모두 다 주는 호박에 감사의 서한이라도 보내야 할까 싶다.
멸치는 생선이다.
첫댓글 '호박꽃도 꽃이여'
네 꽃이고 말고요.
며칠 전 선산 빈 땅에 호박 싹이 돋아나는 걸 보고 꽃 중에 꽃은 호박꽃이라고 대화가 고급졌습니다ㅎ
뚱글마치님의 닉네임이 어릴 적 별명이라는 것도 넉넉해지는 마음입니다.
누가 날보고 호박꽃이라고 하면 엄청 좋아할래요.
하얀 박꽃이 떠올려지는 이유는 무얼까?
그래도 호박꽃일 때가 좋은 시절이었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할미꽃이 되어버렸네요. ㅎ
허리를 접지 않는 동강의 할미꽃.
세월을 '지연'시킬 수 있다면 하고 하곤 한다.
할애비꽃이 없어 다행입니다.
유머, 운율이 넘치는 글 입니다. 초가집 호박넝쿨 은 우리의 본향. 죽 이라면 호박죽.호박 같이 푸근하고 너그러움이 우리와 함께 하지요. 애호박 늙은호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