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지적은 역효과를 불러들여...균형적인 논리.감성.신뢰가 필요하다
지적은 생산성을 낳아야하고
비판은 발전성을 불러들어야 하고
비난은 모두가 공감형성이 되어야한다
혀끝이 칼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어떠한 문제를 보고 지적하는 발언을 하거나 글을 써 올린다. 이런 발언이나 글은 논리성으로 또는 감성적으로 또는 신뢰성으로 지적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성으로 하는 것을 ‘로고스(Logos)’ , 감성적으로 하는 것을 ‘파토스(Pithos)’ , 신뢰성을 반영하는 것을 ‘에토스(Ethos)’ 라고 정의하며, 논쟁에서 이 세 가지를 적절하게 쓰며 상대를 설득했다.
지금 안산시호남향우회는 향우회 자금 유용해 대해 출처를 정확히 밝히라고 따지듯이 까발리고 있다. 심지어 카카오 톡과 밴드에 공개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걸 볼 때 문제성 제기가 향우회와 향우를 위한 일인가 아니면 어느 한 특정인을 욕보이고 망신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 시키고 잘 난척하려는 짓인가 아니면 히스테리적인 정신성.신경성 발로로 그런 것인가 도대체 그런 행위에 대해 알쏭달쏭하다.
올리는 것을 보면 그럴듯한 문제제기요, 지적인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미덥지가 않는다. 왜 그럴까 정말 알 수가 없다. 앞전 회장 때도 그런 문제로 시끄러워졌고 그로인한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된 원인이 됐다. 이번 회장 때도 역시 습관처럼 또 자금문제를 제기하며 회장과 싸우고 있다.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죽이려는 살인마 같다고 공격을 당한 자는 말 해된다.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에 감시를 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감사를 두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가 문제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분이 향우회 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에 스스로 통장내역을 확인해본 것 같아 문제가 되고 있다. 자신이 감사원장이요, 금융감독원장이요, 검찰총장인 듯 감시자로 행세를 해되고 있어 사실 알림이 미덥지가 않아 보인다. 젊잖지 않은 행동이라고 본 편이다.
향우회 통장을 고구마로 보고 깨낸 듯이 한다. 줄기를 뽑으면 줄줄이 매달려 나올 거야하며 고구마 수확에 한참이다. 깨낸 고구마로 향우들에게 그 비리를 알리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고구마가 과연 맛있는 간식으로 식구들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깨낸 고구마가 먹는 자를 배탈나게 한 것이라면 때깔 좋고 실하게 생긴 고구마라도 꺼림직 하게 생각할 것이다.
안산시호남향우회여서 심은 고구마를 두고 한쪽에서는 향우들 건 먹거리로, 다른 한쪽에서는 무슨 문제가 있는 부정의 고구마로 보고 호미를 들었다.
향우회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 가에 대해서 정확히 확인해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있다면 향우회 정관에 의해 조치를 취하면 된다. 문제가 있다며 이것을 까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말 문제성을 발견했다면 회칙에 의거해 처리하면 될 것이고, 법으로 다르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비열하고 치사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자꾸 SNS에다 까발리고만 있어 이것은 비판과 지적을 넘어 잔인한 방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죽이는 일로 번지게 하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 된다. 비판과 지적의 일색일 뿐 선악, 시비. 미추를 평가하여 가치를 논하는 비평(批評)과는 거리가 먼듯하다.
지금 내가 지적하는 말과 글들이 논리성의 로고스인가, 감성적의 파토스인가. 신뢰성의 에토스인가를 분명히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논리성을 너무 맞추다보면 감성과 신뢰가 흐릿해지기가 쉽다. 감성적인 것을 너무 적용하다보면 지나친 감수성에 빠져 일을 그릇 치기가 쉽다. 신뢰성을 너무 내세우다보면 논리성도 감성적도 모두 망치게 되는 실수를 낳게 된다.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 논리정연하게 풀어야한다. 그리고 감성적인 언어도 쓸 줄 알아야한다. 또 신뢰성인 믿음도 굳게 해줄 필요가 있다. 현재 향우회애서 자금문제 출처를 두고 따지고 있는 것을 보면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이 세 가지에 균형이 없어 보인다.
“투명하게 하라. 정확히 하라. 정직하게 하라. 공개하라” 이런 주문을 해되며 향우회를 바로 잡고자 나서는 측과 “자금은 꼭 필요로 하는데 썼다. 함부로 남발하지 않았다. 착복하지도 않았다. 비리를 저지르는 일은 티클 하나도 없다” 고 서로 말들을 해되며 기를 세우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금이 필요 없이 쓰이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고, 한쪽에서는 “무슨 소리냐 그건 오해다.” 음해적인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감시는 할 필요가 있다. 감시는 의도적이거나 앙심을 품고 해서는 안 된다. 요즘 상황을 보면 “그 사람 전에도 자금가지고 그러더니만 이번에도 또 그러네” 이런 말이 나오게 만들어 어떠한 저의를 갖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는 게 바로잡은 일이지만 의외로 더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
안산시호남향우회는 고구마 농장을 가꾸고 있다. 심은 고구마는 향우들을 위한 먹거리다. 고구마 줄기를 뽑으면 토실토실한 고구마들이 줄줄이 따라 올라온다. 이런 고구마를 수확해 향우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고구마를 무슨 부정적으로 기른 고구마로 취급한단 게 서운하고 아쉬움이 있다.
회장은 30만 향우를 위해 건강 고구마를 심었고 깨어 먹이려고 하는데, 이걸 일부 사람들이 “그 고구마는 친환경 고구마가 아니다. 나쁜 고구마다” 라고 고구마를 깨면 깰수록 달린 고구마마다 먹어서는 안 될 문제 있는 고구마라고 하면서 좋은 고구마를 깬 것이 아닌 안 좋은 고구마보고 현 회장이 심은 고구마를 다른 의미로 깨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줄기 하나를 뽑으면 줄줄이 다 드러날 것이라며 고구마 수확에 나섰다.
한분은 향우를 위한 고구마로, 한분은 향우회를 망치게 하는 고구마로 보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가릴 것은 가려야한다. 근데 의도적으로 상대를 지적하거나 비판과 비난하는 일은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상대의 약점을 꺼내어 욕을 보이거나 끌어내기 위한 생각은 진정한 사람이 아닌 듯싶다. 그때도 그랬고 이때도 그러니 이걸 우리는 ‘고질병(痼疾病)’ 이라고 하질 않는가?
안산시에 주소를 두고 살지 않는 사람이 안산시호남향우회 회원이라고 향우 행세하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거주지는 다른 곳이면서 안산시에 거주지를 두고 사는 사람보다 더 안산시호남향우회의 일에 사사사건 개입하고 있는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조언이고, 나쁘게 말하면 ‘참견(參見)’ 이다. 안산거주자가 아니라면 이러 쿵 저러 쿵 말한 자격이 없다.
자신부터 올바른 사람이지 되돌아봤으면 한다. 전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해서 큰소리치를 듯 하는 데 요사이 하는 행동을 보면 지나침이 없지나 않아 보인다. 도를 넘은 듯하고, 그런 일은 향우회를 정립시키는 일보다는 무너지게 하고 있고,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되고 있다. 이간질이다. 아주 나쁜 심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의는 불타야 멋있다. 그 정의가 진정 멋진 정의인지 묻고 싶고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자신한테 내 정의가 괜찮은 거야 하고 자문해봤으면 한다. 상대가 맘에 안 든다고 자기 생각대로 안 따라 준다고 헤서 상대의 약점이나 일에 꼬투리를 잡아 상대를 욕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없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라는 말과 또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라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하는 말과 글들은 지나침이 있어 보인다.
투명하라고 외치려면 자신의 마음을 곱게 하고 써야한다. 자신도 투명하지 못하면서 가장 투명한 사람인양 투명하라고 외친다면 그것은 양의 탈을 쓴 ‘늑대’ 다.
또한 공개하라고 외치려면 자신의 행동을 똑바로 하고 외쳐야한다, 자신도 공개적이지 못하면서 가장 공개적으로 일을 해보인 것처럼 공개라는 단어를 꺼낸다면 그것은 마음을 홀린 ‘악마’ 다.
또한 정확하게 하라고 외치려면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하고 요구해야한다. 자신도 정확하지 못하면서 가장 정확하고 솔직한 사람으로 여기며 큰소리친다면 그것은 타락한 ‘천사’ 다.
논리성과 이론적, 원리적, 합리적, 추론을 뜻하는 ‘로고스’ , 감성적, 감정적, 심리적, 감각적, 이성적인 측면인 ‘파토스’ , 말하는 사람의 성품,바탕.품행.몸가짐.메너.태도와 신뢰성, 신임, 신의, 신망, 신념의 반영인 ‘에토스’ 이 세 가지에 오늘 이 시간부터 가슴에 새기고 성찰에 들어가 보자.
The goal of criticism is to just meet your unsatisfied desire wrongly.
비판의 목적은 단지 당신의 채우지 못한 욕망을 부당하게 충족시키는 것이다.
데일 카네기는 “남을 비난하는 것은 위험한 불꽃이다. 그 불꽃은 자존심이라는 화약고의 폭발을 유벌하기 쉽다. 이 폭발은 가끔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아 간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레프 톨스토이는 “남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를 망신시키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난하는 것은 불성실하다. 덕을 기만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명언을 남겼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남이 하는 일을 애써 깎아내리는 사람은 자신도 악평을 불러 모은다” 라고 명언을 남겼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메러디스가 “비꼬는 버릇은 유식한 자의 멋이다” 라고 했는데 남 말하기 좋아하고, 그것도 안 좋게 말한 것이 자랑인양 해되며 유식하는 척, 많이 배운 척, 바른 척, 멋이 있는 척, 품위를 갖춘 척, 품격이 있는 척, 모범인 척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어 슬프다.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비난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그냥 "평생 저러고 사는 게 인생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게 마음 편한 것 같아요" 이 말에 가슴에 새기면서 그런 비난은 잊고 현재의 일에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 봤으면 함이다.
잘 못한 것을 바로 고치기 위한 문제를 삼으며 지적한 것은 백번 천 번을 해도 된다. 하지만 지나치면 그 문제제기에 대해 저의가 있다고 본다. 이번 자금출처를 밝히라고 문제를 삼은 일은 지나침이 있어 보이고, 뭔가를 노리고 그런 지적을 해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지워지지도 가시지 않는다. 지적을 넘어 ‘발목잡기’ 이며, 비판을 넘어 ‘음해적’ 인 것 같다. 이런 비화가 ‘살인적인 무기’ 로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런 정황을 봐선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일이 아닌 ‘비생산적이고 발전을 더디게 하는 일’ 로써 결국은 향우회 이미지를 훼손한 일이고, 부끄럽게 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있으면 자꾸 옆에서 그러지 말고 자금문제는 감사한테 맡겨라. 감사의 역할을 해보인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그릇된 생각을 버려라. 자신이 하는 '지적과 비판과 비난은 향우회를 어지럽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안산시향우회는 한 사람으로 인해 복잡성을 넘어 손가락질만 당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가 있어 보이면 ‘감사(監事)’ 한테 맡기면 된다. 공금횡령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법(法)' 으로 처리하게 하면 되는 일이다. 감사가 할 일을 법이 할 일을 자신이 더 나서서 한다면 웃기는 일로 볼 수밖에 없다. 지적과 비판과 비난으로 인한 '혼란을 야기하고 분란을 초래하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절대 안 된다.
지적, 비판은 좋은 조언으로 향우회에 대한 애정에서 그러리라고 이해도 간다. 허나 자꾸 전임자들이 현 집행부의 하는 일에 간섭하듯 나선다면, 어턴 문제를 캐보려고 의도적으로 그런다면 서로 간의 갈등은 물론 발전에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그리고 기성세대와 신진세대들과의 간격이 넓어지는 등 호남은 하나라는 화합과 단합은 멀어질 것으로 본다. 회장을 역임한 분 등 워로들은 향우회에 대한 덕담이나 조언은 해줄 수는 있어도 깊이 간여하거나 꼬집어 비판하거나 까발리는 일은 향우들한테 존경을 받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은 ‘끝’ 을 조심하라고 했다. 혀를 잘 못 놀리면 혀끝을 칼로 본다. 자적과 비판과 비난 달인, 시슬 퍼런 칼날을 드는 무사의 무신인가? 아니면 정론을 논하는 군신의 신하인가?
지적, 비판, 비난 일색
향우회와 향우를 사랑하는마음이여서 그러는가?
영웅이 되고자 하는 건가?
우상이라도 되고 싶단 말인가?
존경 받고자 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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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잡기 헐뜯기를 좋아하고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비판과 비난의 일색인데...
정체성을 밝혀라! 자신부터 바로 세워라!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