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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 신조 이지끼을 님에게: 에디오피아 내시 회심에서 보는 구원의 서정
四季 朴埰同 추천 0 조회 91 26.03.24 10:45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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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3.24 15:26

    첫댓글 저도 읽으며 공부가 되네요^^

  • 26.03.24 16:37

    사계님이 수고가 많으십니다!

  • 26.03.25 10:01


    제가 사계님께 감탄하는 것은 남의 말을 왜곡해서 잘 하신다는 것입니다.

    위의 글을 읽어 보니 막 16:16절에 대한 말씀은 있는데
    막 16:15절에 대한 말씀은 없네요, 그렇지요?

    막16;15-16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래서 막 16:16절a는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는 말씀입니다.

    막 16:16절도 예수님의 말씀이므로 믿어야겠지만
    복음을 믿어야지요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 26.03.25 10:07

    세례중생이라 하시는데
    카톨릭의 세례중생과는 다르다고 여러번 말씀드렸습니다.

    칼빈이 말한 것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칼빈도 세례중생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설명도 조금 덧붙입니다.

  • 26.03.25 10:02

    For as God, regenerating us in baptism, ingrafts us into the fellowship of his Church,
    and makes us his by adoption,
    so we have said that he performs the office of a provident parent, in continually supplying
    the food by which he may sustain and preserve us in the life to which he has begotten us
    by his word.

    하나님께서 세례로 우리를 중생케 하셔서, 그의 교회의 교제 안으로 접붙이시고
    양자삼아 주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을 지탱하고 보존할 수 있는
    양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심으로써 섭리적인 부모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강요 4. 17. 1)

  • 26.03.25 10:02


    칼빈이 성찬에 대하여 말할 때 이 말을 한 것인데

    칼빈의 말 중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 주신 그 생명(the life)" 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주신 새 생명을 말합니다.

  • 26.03.25 10:07


    그리고 제가 요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사계님은
    성령께서 말씀의 씨앗을 품에 안고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는데 이게 중생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잘 옮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사계님이 존경하는 김홍전 목사님께 배우신 것입니까?

    제가 보기에 김목사님의 중생에 대한 말씀은 사계님의 중생에 대한 말씀과 다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작성자 26.03.25 10:30

    @이지끼을 “제가 사계님께 감탄하는 것은 남의 말을 왜곡해서 잘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명예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특히, 진리를 다투는 일에서 제 명예가 훼손당할 때는 제 명예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틈나는 대로 꼭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26.03.26 05:41

    @四季 朴埰同 제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우선 위의 글을 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막 16:16절만 믿으면 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왜곡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앞절인 막16:15절의 "복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알게 된 것은
    김홍전 목사님의 글을 보면, 님의 주장과 달리,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한다는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김홍전 목사님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만든 제목을 붙여서 님이 소개하는 김홍전 목사님의 글을 사람들이 오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 26.03.26 05:40

    @四季 朴埰同 예를 들어

    님이 소개한 김 목사님의 글을 보면

    "중생한 다음에는 성신께서 신자 안에 늘 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새로운 배제配劑, 새로운 디스펜세이션(dispensation) 아래서 성신님의 역사 내용은
    크게 말하면, 첫째는 중생할 때 역사하시는 일입니다.
    둘째는 중생케 하신 다음에는 늘 그 안에 거하시고 내주內住하시는 일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김 목사님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중생은 성령님에 의한 것입니다.

  • 26.03.26 05:43

    @四季 朴埰同 그러나
    (1) 성령님에 의해 중생한다는 말과
    (2)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한다는 말은 다릅니다.

    그런데 님은 성령에 의해 중생한다는 의미가 담긴 말씀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한다는 말씀으로 읽고

    이를 또 확대하여 구약의 성도들도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김 목사님의 글에 "김홍전 <구약 성도들에게 성령의 내주가 없었는가?>" 라는 제목을 붙여
    김 목사님께서 구약의 성도들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했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오해하게 하였습니다.

  • 26.03.26 05:41

    @四季 朴埰同
    김 목사님의 글을 보면
    구약의 성도들도 중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의 말씀을 보면
    구약의 성도들이 (1) 성령님에 의해 중생했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님은 마치 김 목사님께서
    구약의 성도들이 (2)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했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호도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저는 왜곡이라고 합니다.

  • 작성자 26.03.27 00:22

    @이지끼을

    《우선 위의 글을 봐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막 16:16절만 믿으면 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왜곡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앞 절인 막 16:15절 “복음”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 저와 논쟁을 하면서 이지끼을 님이 마가복음 16장 15절을 언급하신 적 있습니까? 이 카페에서 이지끼을 님과 제가 논쟁을 시작한 날은 지난 ‘2월 25일 08시 50분’입니다. 이 시각은 이지끼을 님이 저에게 첫 댓글을 쓰신 시각입니다. 그 이후, 이 답글란 외에, 저와 논쟁하면서 마가복음 16장 15절을 언급하신 적 있으면 그 텍스트 가져오십시오.

  • 작성자 26.03.27 00:32

    @이지끼을

    김홍전 목사님 신학을 얼마나 아십니까? 얼마나 알아서 저를 두고 “왜곡한다.” 하십니까?

    음해하지 마시기를 그토록 간절히 부탁드렸건만, “그런데 님은 김홍전 목사님의 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만든 제목을 붙여서 님이 소개하는 김홍전 목사님의 글을 사람들이 오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호도”요??? 제가 옮긴 ‘김홍전 목사님 강설에 적힌 중생론과 성령론’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김홍전 목사님께서는 중생을 설명하시면서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는 창고 같은 집’ 비유를 드셨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그 집에 들어가 살려고 하는 사람이 그 집에 들어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 집에 들어가 그 집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고쳐야겠지요. 물론, 고치면서 오염 물질은 깨끗하게 빗자루로 쓸어내 물청소도 해야겠지요. 뿐만 아니라, 단번 청소로 하룻밤이나 며칠 밤은 지낼 수 있겠지만, 쾌적하게 계속 살려면 날마다 청소해야겠지요.

  • 작성자 26.03.27 00:32

    @이지끼을

    이지끼을 님, 이 비유에서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는 창고 같은 집’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고치며 청소한 집’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에 들어가 살려고 그 집에 들어가 그 집을 고친 사람’은 누구를 뜻하겠습니까?

    집안에 강도가 들어가 안 나옵니다. 온갖 방법을 써도, 죽어도 안 나오는 그 강도를 집 밖으로 내쫓아 그 집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집에 들어가 그 강도를 결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 어떤 말씀을 응용한 비유인지는 이지끼을 님이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집 비유에서 이지끼을 님은 “물청소”라는 말이 반갑겠지만, 제발 좀 구원의 서정을 세기의 듣보잡 피터 마스터스 목사와 같이 ‘기계적인 시간순’으로 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발 좀 정신 차리시기를 바랍니다.

  • 26.03.27 07:33

    @四季 朴埰同

    제가 막 16:15절을 말하지 않았다고요?

    여러번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16:16절을 쓸 때
    (복음을)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고 썼습니다.

    이 앞에 (복음을)이라고 쓴 것이 15절을 의미합니다.

    집 청소를 예로 드셨는데
    성령께서 더러운 집 안에 들어 오셔서 청소하신다고요?

    성령님의 다른 이름은 성결의 영이십니다.

  • 26.03.27 07:34

    @四季 朴埰同
    그리고 배주현 목사님께서 쓰신 “김홍전 목사의 성령론” 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https://blog.chch.kr/numz/view.php?bid=blog1&bno=8485&start_num=0&bst=&blid=kco6567&sort=1000000001133&chksort=1000000001133

    “새롭게 중생한 새 사람에게는 성신이 내주하고 내주함으로 그리스도적인 품성들이 들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서 성령의 내주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인 변화에 그 목적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김박사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성령의 내주하심이 어떤 목적이라고 말씀합니까?
    중생인가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인 변화인가요?

    중생이 성령님에 의한 것은 맞지만
    김 목사님께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한다고 말씀한 것은 없습니다.

  • 작성자 26.03.27 19:51

    @이지끼을 <이지끼을 님, 교만을 쳐 내십시오.>

    “그(김홍전)는 성령의 구약적인 임재와 신약의 내주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신약의 내주는 취소됨이 없는 내주이지만 구약에서는 범죄함으로 성령이 떠나시거나 사역이 끝나는 경우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는 글이 있는, 링크하신 ‘백주현 [김홍전 목사의 성령론]’은 2012년에 읽은 글입니다.

    이 글은 김홍전 목사님 강설을 인용하기는 했지만, 김홍전 목사님 성령론과 다르게 ‘구약 성도들 중생 시 임하신 성령의 영원하신 내주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김홍전 목사님 성령론이 아닙니다. 백주현 목사님은 총신 신대원 서철원 목사님 제자 목사님으로 기억합니다.ㅡ제 정보가 틀릴 수 있어서 책임회피 단어 ‘기억’을 썼습니다.ㅡ 그렇다면, ‘백주현 [김홍전 목사의 성령론]’은 ‘김홍전 목사님 성령론’에 ‘구약 성도들 중생을 성부에 의한 중생, 주님 공생애 시 성도들 중생을 성자에 의한 중생,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성도들 중생을 성령의 중생으로 주장하신 서철원 목사님, 그분 세대주의 성령론’을 짬뽕한 성령론입니다.

  • 작성자 26.03.27 19:53

    @이지끼을

    이 글은 ‘무엇이 김홍전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무엇이 김홍전 목사님 강설을 두고 한, 백주현 목사님 해석인지’를 무척 독해하기 힘든 글입니다.

    ① “그(김홍전)는 성령의 구약적인 임재와 신약의 내주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 백주현 목사님 해설인 이 주장은 서철원 목사님 세대주의 성령론 내용이지만, 김홍전 목사님 성령론과 전혀 상관없는 주장입니다.

    김홍전 목사님께서는 벤자민 워필드 목사님과 똑같이 ‘중생(구원)을 위한 성령의 임재’와 ‘직임(은사)을 위한 성령의 임재’와 구별하십니다. 김홍전, 최낙재 목사님 제자이신 이승구 목사님 역시 이 둘을 구별하십니다.

    ② “신약의 내주는 취소됨이 없는 내주이지만 구약에서는 범죄함으로 성령이 떠나시거나 사역이 끝나는 경우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주어가 생략돼 있는데, 주어는 ‘백주현 목사님’입니다.

  • 작성자 26.03.27 19:53

    @이지끼을

    저에게 “왜곡”, “호도”를 따지며 저를 음해해 제 명예를 훼손하신 분이 ‘중생의 증거인 사과’도 없이, 이를 피하려고 고작 내미신 것이 김홍전 목사님 성령론을 ‘왜곡’한 글입니까?

    제가 “김홍전 목사님 신학을 얼마나 아십니까?” 했음에도, “제가 옮긴 ‘김홍전 목사님 강설에 적힌 중생론과 성령론’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했음에도, 정신 못 차리신 나머지 고작 저에게 내미신 것이 김홍전 목사님 성령론을 왜곡한 글입니까? ‘중생’과 ‘성령의 내주’ 동시성을 말씀하신 김홍전 목사님 강설 올려놨으니, 이 시대 최고 신학자 이지끼을 님이 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십시오.

    중생자가 성령을 근심케 하고 소멸할 때는 ‘사과’라는 단어는 모르고 “핏물” 운운하는 ‘저주’라는 단어는 아는 까닭으로, 저를 두고 음해하신 일, 사과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오만에 따른 성령의 소멸을 깨닫지 못하는 중생자 이지끼을 님을 흑암 속에 완전히 가두시기 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곰곰이 돌이켜보십시오.

  • 26.03.29 07:51

    @四季 朴埰同
    여기도 같은 글을 써 드립니다.

    제 생각에 님은 성경 그리고 신학을 논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님이 제 글에 쓴 댓글을 인용합니다.


    "10 년이 지난 뒤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10 년이 지났더라도 저와 이지끼을 님이 주고받았던 메시지, 독자들이 독해하기 쉽도록 교정을 허락하신 메시지를 생각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하셨는데

    저는 교정을 허락한 적 없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저의 글을 다 바꿨겠지요? 안그렇습니까?

    저는 그때 이미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120 명이 아니라 12 사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시네요

    간단하게 거짓말을 하며 넘어 가려는 것을 보니

    어떤 영을 받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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