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그렇게 악명 높은 놈들은 잡아가지 않고, 이처럼 많은 이들을 슬프게 만드는가. 황망하고 비통하며, 참담하고 암담하고 억울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믿기지 않는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아침 8시가 좀 넘어 예전과 다름없이 가을(개)이 산책시키려 집을 나선다. 강둑으로 나가니 갈마산 정상에 헬기가 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지난 산불에 얼마나 놀랐는지 헬리콥터 소리만 들리면 산불을 연상한다. 약간의 트라우마 현상인가? “어디에 불났지?“라며 자세히 보니 불이 난건 아니고, 등산객이 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
환자 후송용 들것을 내려 주고 주위를 배회하다, 다시 돌아와 들 것을 실고 대구 쪽으로 향한다. 갈마산 정상에 앉을 듯 맴도는 헬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 한참을 봤다. 누군지 무사하기를 기원했다.
두바이 여행기간에 이행하지 못한 쑥을 뜯으러 집 뒤편 휴면 밭으로 갔다. 깨끗한 곳이라 작년에 많이 뜯어 먹었다. 혹시 모를 뱀이 무서워 장화를 신고 나선다.
너무 많이 자란 쑥은 가뭄에 잎 끝이 살짝 말라 괜찮은 쑥이 별로 없다. 그래도 맛있는 쑥 떡이 그리워 한 땀 한 땀 캐는데, 귀찮아 장갑을 벗어버린 왼 손등에 무언가 기어간다. 거미새끼 같아 뭉개보지만 죽지 않는다. “이게 뭐지?”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부나리(진드기)새끼다. 깜짝 놀랐다.
“어디 또 있나”하고 보니 오른손 장갑위에 5~6마리가 먹잇감을 찾아 기어 다닌다. “어이구~”너무 놀라 장갑 벗고, 소매를 뒤집어 보니 벌써 몇 마리 박혀있다. 쑥과 장갑 모두 버리고 밖으로 나와 옷을 하나씩 벗어 툴툴 털어도 불안해 뒤집어서 또 탈탈 털었다. 바구니에도 두 마리 붙어 있어 꼭꼭 눌러 제거 한다. 한낮에 벌거 벗었지만 부끄러움도 두려움에 묻혀버린다. 마지막 속옷까지 죄다 벗어 세탁기에 넣어 버렸다.
약간 몸이 가려우면 혹시나 해서 옷을 벗어 확인할 정도로 심하게 놀랐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진드기는 처음이다. 그 곳이 예전에 보지 못한 진드기의 온상이라니, 이제 두 번 다시 쑥 캐러 가지 않으리.
즉시 목욕탕으로 가 정신을 가다듬고 한국바둑리그 지방투어 현장인 문화예술회관으로 향한다. 오후 3시 프로기사와 다면기가 있다. 우리의 ‘수려한 합천’팀이 전년도 우승을 한 덕분에 첫 지방투어를 내일 있을 벚꽃마라톤대회와 연계해서 실시한다.
다면기마치고 저녁 만찬시간과의 짬을 채우려고 인도어 골프연습장으로 갔다. 커피를 한잔 뽑아 안으로 들어가니 아는 분이 열심히 연습한다. “라운딩 있습니까? 웬 연습을 땀 나도록 하세요.” “오늘 시간이 많아서.”라며 건성으로 답한다.
앞에 앉아 커피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던지는데, “***이 죽어 재미없다”고 한다. 잘 못 들었나 해서 다시 물으니 “아침에 ***이 등산하다가 죽었어.” 모두들 믿기지 않아 야단들이었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아침에 가을이와 산책 갔다가 본 그 헬기였다. 오호 통제라 허망한 삶이로다. 어제 삼천포에서 맛있는 것 먹고 기분이 좋아, 오늘 오전에 스크린치자고 약속까지 한 분이 아침에 영면에 들었다니 누가 믿겠는가.
그냥 앉은 채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분이 생각킨다. 항상 웃으시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함께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시던 분이다. 형사지만 형사답지 않았고 정이 많고 마음까지 고우신 분이라 얼마나 앵통해 할까.
정말 신은 계실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양같이 온순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이웃을 빨리 데리고 가는가! 삶이란 이렇게 허망한 것이란 말인가. 운동할 맛이 나지 않아 그냥 나와 버렸다.
운전대에 앉아 시동 걸 생각을 않고 멍 때리고 있다. 모두에게 소중한 삶, 울분을 삼킨 죽음. 삶과 죽음의 경계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너무나 좋은 분을 일찍 잃은 아픔은 컸다.
만약 내가 사라지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나의 삶도 이처럼 모든 이를 마음 아프게 할까? 아니면 ‘에이 그 사람 잘 갔어.‘라며 시원해 할까? 지인들이 울고 하늘이 우는 당신은 그래도 인생을 참 잘 살았소. 부족한 삶이랑 그곳에서 마음껏 누리시오. 그동안 정말 고마웠소. 편안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