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친 콩! 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 있을까? 생각지 못했고 예상치 못한 더위가 6월 내내 지속되고 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작년 이맘때도 그랬을까? 하는데, 덥다고 해도 올해만큼 힘든 더위는 아니었던거 같다. 아니, 습도가 높아서 힘이 더 들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런 기억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여하튼 작년엔 덥기도 했고 습하기도 했고 비가 일찍부터 많이 내렸던거 같다. 그래도 삶은 늘 새로운 법! 작년이 어쨌든 간에 이 순간 맞는 것이 중요하니, 아! 더워도 너무 덥다.
5월 하순 부지런히 콩을 심었다. 사래 긴 밭, 600여 평에 심었다. 초반에 심을 때는 콩 모종기로 심다가 모종기 작동이 잘 안되어 한 구멍에 콩알이 너무 많이 떨어져 이 진도로 나갔다가는 종자가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직접 호미를 들고 구멍을 뚫고 콩을 심고 흙을 덮었다. 모종기로 하면 한 번에 할 것인데 호미 들고 하자니 거의 세 번을 움직여야 하는 중노동이 되었다. 게다가 무릎을 꿇거나 허리를 굽혀서 하니 저녁이면 온몸이 쑤셨다. 이런 고생 후에 낙이 있어야 하는데 농사 여정은 순탄치 않다. 내 마음과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더위가 찾아왔다. 낮 기온은 높고 저녁 기온은 싸늘했다. 사실 5월까지 일교차가 너무 커서 고추가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산 밑에 심은 고추는 마을 밭의 고추보다 더 더디 자랐다. 일교차와 일조량이 농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에 더더욱 깨닫게 되었다. 또한 척박한 땅이었으니 죽지 않고 용케 살아나서 열매를 맺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6월 초반에 한낮 더위가 30도까지 갔다. 그리곤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이런 날씨에 콩도 맥을 못 추었다. 밭에 가면 어느 이랑은 콩이 줄지어 자라있고, 어느 이랑은 시작 지점에 한두 개 자랐고 나머지는 전멸이었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하다’는 말을 이번에 절실히 체감한다. 당황스럽고 씁쓸하고 맥이 빠졌다. 기대하지 않았다지만 이 정도라니.
어쩔 것인가! 빈 구멍에 다시 콩을 심었다. 처음에 했던 노동을 두 번째로 재현했다. 구멍을 뚫고 콩을 심고 흙을 덮었다. 두 번째 심으면서 보았는데 비닐 속은 수분이 있었다. 땅속에서 썩거나 곰팡이가 나서 올라오지 못한 콩들이 다반사였다. 설령 싹이 올라와도 내리쬐는 열기 아래에 여린 싹들은 그대로 말라 버렸다. 태양 말고 공중에는 또 하나의 적이 있었다. 바로 물까치였다. 오디, 앵두, 버찌 등 넘쳐나는 열매들을 뒤로 하고 왜 콩밭 위에서 공중제비를 하는가. 녀석들의 눈은 매우 밝다. 저 높은 하늘에서도 올라오는 콩은 기막히게 찾았다. 구멍에 머리를 박고 콩이나 이제 막 올라오는 싹을 쏙쏙 빼 먹고 있었다. 짱돌을 던졌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부아가 나서 가까이 달려가면 녀석들은 약 올리듯 총총 뛰어 저만치 가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새총이 절실했다. 반질반질한 녀석의 동그란 머리에 명중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 그럴 뿐이다. 녀석의 머리를 명중시킨들 먹힌 콩이 토해져 자라겠는가. 때마침 쏟아진다는 비는 요란스레 천둥만 치고 오다가 말았다. 애석했다.
콩을 다시 심은거나 진배없었다. 좀 남은 콩은 고랑에 심었다. 나중에 안나온 구멍에 모종으로 심기 위해서다. 웬걸! 두 번째 심고 난 뒤의 밭은 여전히 가뭄에 콩 난 듯한 풍경이다. 거기다가 고랑엔 풀이 콩보다 더 자라있다. 심란하다. 콩은 언제 다시 보식할 것이며, 풀은 언제 벨 것인가. 예년에는 더위가 오면 오전이나 오후 4시 이후면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올 6월의 기온은 아침부터 30도를 향해 오르다가 해가 떨어질 즈음에 찬 바람을 내는 기후 이상이다. 작년과 같은 날씨였다면 지금쯤 낫을 들고 풀과 씨름중일 것인데 지금은 그런 의욕이 없다. 풀을 벨 계획은 없이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런 자세로 과연 콩 농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에고! 더위에 지친 것은 콩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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