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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질수록 저에게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답니다. 저희 할아버지인데요. 저와 할아버지 얘기를 소설형식으로 꾸며봤어요. 물론 소설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요.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선생님들의 넓으신 아량으로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연말 잘 보내시구요.
제목: 할아버지의 방
다람쥐의 굴처럼 집을 드나들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인천에 있는 모 백화점의 협력업체 직원으로 직장근처에서 방을 얻어 생활하다 서울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연유인즉슨 내가 다니던 업체가 올 연말을 끝으로 백화점과의 계약을 종료하게 됨에 따라 부득불 나도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불과 몇 개월 채 남지도 않은 기간 ,밖에 나가 지내는 것도 지쳤고 하니,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와 다니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 나왔던 집을 다시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이런저런 이유로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때 마침 내가 자취하던 방의 2년 계약기간도 다 되어가고 자칫 허울뿐인 혼자만의 자유로움도 방탕 쪽으로 흘러가고 있던 터라 어쨌든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집에 들어오고 부터 나는 매일같이 첫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밤늦은 거의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아마 그날은 내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던 것 같다.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 떠가며 현관문을 밀고 나서는데, 어머니가 따라나서시며 하시는 말씀이, 할아버지가 편찮으셔 아버지와 같이 시골집에 다녀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몇 칠 걸릴지도 모르니 집단속 잘하고 있으라는 당부의 말씀까지 곁들였다. 나는 현관문을 나서며 할아버지의 연세도 있고 하시니 노환이 온 것이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고 도착역까지의 긴긴 출근길을 전철 안에서 내내 졸면서 갔다. 그리고 직장에 도착해 일과 사람들에 치여 지내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는 텅 빈 것 같은 실내를 둘러보며 문뜩문뜩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으나 아직까지 그것이 나의 관심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할아버지가 오신 것은 이틀이 지나고 난 뒤였다. 직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심야 TV방송을 보고 계셨고 화장실과 맞닿은 벽 쪽으로 방문 하나가 굳게 닫혀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말과 함께 할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간략히 여쭤보고는 직장에서의 피곤을 이유로 곧바로 내 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평상시와는 다른 약간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늦게까지 컴퓨터를 보다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도 나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출퇴근은 여전 반복되었고 더불어 할아버지가 계신 방문도 언제나 불이 꺼진 채 닫혀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굳게 닫힌 방문을 한 번씩 응시할 때 마다 맏아들인 아버지가 알아서 잘 하시겠지, 라며 바쁜 직장생활을 핑계로 거의 마음을 기우리지 않았다. 가끔 거실 소파에 앉아 늦게까지 자지 않고 심야 TV토론방송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고는 문안차 할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여쭤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의례적인 인사치례였을 뿐이지 그것이 나의 어떤 관심사가 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할아버지와의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거하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약간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전에도 할아버지가 병세를 이유로 집에 와계시긴 하였지만 이러지는 않으셨다. 무엇보다 할아버지는 잠이 적으셔 아침 일찍 일어나셨고, 시골집에 계셨을 때는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셨지만 서울 아들집에 와 계실 때는 가족들이 다 귀가할 때까지는 여간해서 주무시지 않으셨다. 설혹 잠이 드셨다 해도 잠귀가 밝으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계시곤 하였다. 또 언제라도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면 내 방으로 건너오셔 그간의 안부며 고향 돌아가는 소식을 간간히 한숨 섞어 토로하시곤 하였다. 때론 저녁뉴스거리를 가져와 먼저 화재로 삼으시기도 하고 또 한자 책을 보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넌지시 다가와 물어보시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아무리 내가 일찍 집을 나와 늦게 들어간다손 쳐도 어찌 이때까지 숨소리 한 번 들을 수 없는지, 화장실에 물 내리는 소리 한 번 들을 수 없었다. 마치 동화 속 요술나라의 마법에 걸린 성을 보는 것 같은 할아버지의 끝없이 가라앉아만 가는 방을 바라보며 나 또한 시공간을 떠난 듯한 무안한 상상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도대체 할아버지의 방에선 지금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불현 듯 할아버지의 방문을 열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가 너를 많이 찾았어. 눈만 뜨면 너 어디 갔냐고 자꾸 그러시는데, 이 아버지가 뭐라 할 말이 있어야지. 그냥 너 어디 외국 나가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 했지.”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고는 시선은 정면을 응시한 채 집 나갔던 자식이 한편으로는 야속하고 또 그러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다행이라는 듯 볼 메인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다시 씻지 못할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뭐라 대꾸거리를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기에는 일이 그만큼 작게 느껴지지가 않았고 또 그냥 죄송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형식적인 말처럼 들렸다.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뒷좌석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가 다시 아들의 옹졸한 생각을 책망하는 듯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래 너는 밖에 나가 지내면서 할아버지가 꿈속에 보이거나 그러지도 않았니.”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서 문뜩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쯤 해 꾼 꿈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것을 말로 드러내지는 못했다. 왠지 현실과 꿈을 연계시킨다는 것이 다소 허황된 것처럼 보였고 또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잘 기억으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크게 고통스러워하거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나는 머뭇거리다 이쯤에서 뭐라 한마디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에 말을 꺼냈으나 그것이 꺼내놓고 보니 영 어법에도 맞지 않고 생뚱맞다고까지 여겨졌다. 그럼 누군들 임종을 앞두고 고통스럽지, 고통스럽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어머니가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지 뜸을 드렸다가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뭘 드시지를 못했어. 잡수면 토하고, 토하고 해서….”
“돌아가실 땐 거의 뼈만 남으셨어.”
아버지가 부연 설명하듯 짧게 말을 받았다. 백미러를 통해 바라본 아버지의 주름골은 이전보다 더 깊이 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 눈의 한가운데 또렷하게 자리 잡은 눈동자는 더 살아있는 듯 생기가 돌았고 그 속에는 마치 큰일을 치러낸 사람 같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자신감과 여유로움까지 내비춰졌다. 건축업을 하시는 아버지는 내가 집을 나가있는 만 3년 동안 재개발사업의 하청업자로 참여해 많은 일을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서울 외곽 쪽에다 직접 땅을 사 빌라 몇 동을 올렸는데, 그것이 성공적으로 분양이 돼 꽤 큰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 그 돈으로 할아버지의 선산도 사 이전하고 남은 돈으로는 동생에게 여주 쪽에 가게도 얻어줬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는 남들처럼 쉬어야 할 나이에 쉬지도 못하고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끝에 가 어머니는 이것이 다 하느님이 돌봐줘서 그런 거라 잊지 않고 힘을 줘서 강조하셨고 너도 이제부터는 열심히 성당을 다녀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를 따라 뒤 늦게 성당에 다니시기 시작한 아버지는 지금의 어머니보다 더 열성적이신데 가끔 성경의 표현을 빌려 말씀하시곤 한다. 내가 집을 나갔다가 들어온 것을 성경에 나오는 어느 집 장자의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에 비유해 마치 아들을 새로이 얻은 것 같다는 식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완곡한 표현을 빌려 종교를 권하는 반면, 아버지는 나에게 이것이 그 어떤 대단한 의무라도 되는 양 반강제적으로 권유해 나와 종종 마찰을 일으키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자유로운 정신을 볼모로 종교적 위안을 얻고 싶지는 않았다. 때로는 사는 것이 절망에 가까울 정도로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살아가는 이유가 충분한 동안만큼은 이 기적에 가까운 존재의 영역에 대한 사유를 마음껏 향유하고 싶었다. 성경의 이해는 단지 이해로써 충분할 따름이었다.
이천의 휴게소가 보였다.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며 아버지가 핸들을 돌리셨다. 차가 서서히 휴게소의 광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침이었다. 그 날은 다니던 백화점이 정기휴무여서 해가 창문을 뿌옇게 물들일 때까지 잤다. 자고 일어나 보니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계셨고 어머니가 주방에서 남은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너무 늦잠 잔 것 같아 얼른 욕실에 들어가 세수만 하고 나와 식탁에 앉으니,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둔 반찬에 밥과 국을 떠 앞에 놓으시고는 마른 행주수건으로 손을 닦으시며 하시는 말씀이, 오늘 아버지 대신 네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요 앞 큰 길 건너 병원에 좀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항상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는데, 오늘은 따로 밖에 볼일이 있으시다는 것이었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나자, 아버지가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오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나섰다. 할아버지는 마치 당신의 노쇠를 인정이나 하듯 현관 앞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딛으셨다. 한 계단, 한 계단을 내려서시는 것이 손에 땀을 쥐듯 어찌나 힘들어하시는지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다 내려서시고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약간의 숨을 가다듬으시고는 손에 잡은 지팡이에 힘을 주시고 한 걸음 내딛으며 말씀하셨다.
“오늘은 회샤에 안 나가?”
“예, 오늘은 회사가 쉬는 날이예요.”
나는 평소의 귀가 안 좋은 할아버지를 위해 큰 소리로 대답했다.
“머라구, 나는 당최 귀가 먹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못 알아묵어.”
“회사가 쉬는 날이라구요.”할아버지의 먼 산 바라보듯 한 얼굴에 대고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 그려, 회사가 쉬는 낼이라구.”
할아버지는 그제야 알아들으셨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이셨다. 지나가는 중년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할아버지, 드시는 건 어떠세요.”
“아이구, 뭘 먹기만 하면 소화가 안 돼야… 뭘 먹을 수가 있어야지.”
허공에서 흘러나오듯 한 할아버지의 가느다란 음성 속에는 짜증과 안타까움도 함께 배어있었다. 할아버지는 지난겨울 와 계실 때 까지만 해도 보통 어른 양의 밥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가끔 지병으로 고생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연세에 비해 정신과 신체가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신 할아버지는, 그러나 그것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주름살마냥 늘어만 가는 나이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할아버지는 몇 년 전 임종한 세상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모 그룹의 회장과 나이가 같다. 할아버지는 2년 전에 구순이 지나셨다. 구순잔치 때 신내동의 한 음식점에서 할아버지를 뵙고는, 이렇게 건강하시니 아마 백세까지 장수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치를 가졌었다. 그러던 것이, 해를 달리할수록 쇠약해지시더니 이제 거동마저 불편하게 된 것이다. 어려서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의 품에서 커온 나를 할아버지는 끔찍이나 아끼셨다. 거기에 비해 나는 커가면서 할아버지에게 근심만 안겨드렸을 뿐 이태까지 보답한 것이 너무 적다. 그런 심리적 부담감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못 본 척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인제 내가 주글려는겨.”
나는 할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말씀에 옆모습을 바라보았으나 당신은 마치 준비라도 하고 계셨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셨다.
“하, 기력이 떨어져 어딜 다녀올라 혀두 이 다리가 떨어져야지.”
“아이 참, 할아버지두… 오래 사셔야죠.” 손자가 잘 돼 효도하는 것두 보구, 라는 말은 입언저리를 간지럽게 맴돌기만 했다. 이때까지 자식들한테 얹혀살기를 싫어하시는 할아버지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그래도 자식 된 도리로써 할아버지를 편히 모시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추운 겨울에는 서울 아들집에 와 계시다가도 날씨가 좀 풀리기라도 하면 한사코 당신 집으로 내려가시려 하는 할아버지를 아버지도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아니여, 인제 난 다 살은겨. 아 지난번에… 아랫말 상득이네… 거길 일 있어 댕겨오는데, 뭣인가가 하고 이마빼게 툭 떨어지는 게 있는 것 아녀. 그래 내 뭣인가 하고 맨져봤더니 그노메 새가 똥을 지리고 간겨. 새가 머리에 똥을 지리고 가면 그 사람은 얼마 못가 죽는댜.”
할아버지는 그때의 장면이 못내 서운하신지 원망스럽다는 듯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셨다.
“아이 할아버지, 그런 게 다 미신이여요, 미신.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 걸 믿어요.”
나는 당장 할아버지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해드리고자 말은 이렇게 떠벌려놨지만 왠지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사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미신적인 예측이나 예감 같은 것은 설혹 맞아떨어진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적 수치일 따름이겠으나 거기에는 예로부터 고유한 믿음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여…,”
할아버지는 마치 확신에 차다는 듯 단오하게 선을 그어 말씀하셨다.
“너, 새태 사는 장서방이라는 이 알지. 그이가 새가 똥을 지라고 간 것을 맞았댜. 그러더니만 그이 그 햐를 못 넘기고 죽었어.”
나는 새들이 어떻게 사람의 머리에 똥을 지리고 가는가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는 보이지 않았고 전신주 위로 하늘만 높다랗게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있는 동안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아버지가 배가 고프지 않느냐고 해, 나는 아직 괜찮다고 했다. 휴게소직원이 직접 커피분쇄기로 갈아 만들어준 커피를 마시고는 다시 이글거리는 광장으로 나왔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생수를 사가지고 뒷좌석에 오르자, 아버지가 차에 시동을 거셨다. 차는 7인승 승합차로 형이 타다가 아버지에게 넘겨준 것인데 관리를 잘해 탄 년 수에 비해 차가 깨끗하였다. 그걸 아버지가 실내를 약간 개조해 현장으로 다닐 때 마다 타고 다니는 것이다. 아버지가 차를 빼 휴게소 옆의 주유소로 갔다. 기름을 넣고는 차는 다시 고속도로로 빠져나왔고 평일의 한적한 도로를 차는 서서히 속력을 내 달리기 시작했다.
“은수는 공부를 잘햐, 이번에도 전교에서 1등 했다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니 걔가 그렇게 공부를 잘해요.”
“그래도 니 형수가 얘덜 교육은 지디루 시키는가봐.”
평상시에 형수 하는 것을 못 마땅해 하시는 어머니도 이 부문에서만큼은 크게 인정하는 눈치였다.
“특히 수학을 잘한댜. 먼저 번엔 뭔 경시대횐가에 나가서 상도 받아왔다던데.”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손자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듯 한결 목소리가 밝아지셨다.
“은주는 어떻데요?”
“아 갸는 말을 그렇게 잘햐. 꼭 무슨 소셜 씨듯 말도 잘한 데다, 또 얘가 붙임성은 을-매나 좋은지, 학교선상이 갸만 따로 불러내 영화도 뵈주고 밥도 사맥이고 한데는 가봐.”
어머니가 뒤에서 말을 받으셨다.
나는 집에 와, 아직 얼굴도 못 본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조카가 둘 있다. 한참 크는 나이라 지금 보면 얼굴도 제대로 못 알아볼 지경인데, 그렇게 공부를 잘 한다니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예전에도 공부 잘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잘 할지는 몰랐다.
차는 점점 더 속력을 내 한창 물이 오른 초록의 산과 들을 헤치며 달렸고, 이야기도 계속 이어져,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것과, 그때 형의 인맥이 대단했다는 것, 그리고 고향에서 일을 치르고 난 뒤 고향사람들이 너무 자기 잇속만 챙겨 서운했더라는 얘기도 했다. 막내삼촌의 사업얘기에 접어들면서 차가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국도에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한 번 운전해보지 않겠냐고 해 나는 아지 운전도 서투르고 길도 익숙하지 않아 안 된다고 했다. 한 십오 분쯤 지나 차가 샛길로 접어들었다. 포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깨끗한 도로였다. 차는 몇 번의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S자 모양의 커브 길을 길게 돌기도 했다. 길옆으로 가로수며 전봇대, 논과 밭이 빠르게 움직였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 함석지붕 얹은 몇 안 되는 가구가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한적한 초여름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가끔은 날렵한 모습을 한 승용차며 짐을 실은 육중한 트럭이 맞은편에서 달려와 지나쳤고 그 뒤를 흰 모자를 쓴 농부가 탕탕거리며 경운기를 몰고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얼마를 더 달렸을까. 머리를 아래로 길게 늘어트린 버드나무가 횡렬로 숲을 이룬 곳에서부터 저수지가 서서히 몸체를 드러냈다. 이곳은 내가 어렸을 때 고향친구들과 몇 번 원정하듯 왔던 곳인데 그때의 느낌에 비해 지금은 아주 보잘 것 없다고 여겨졌다. 하긴 그때는 아직 바다도 구경해보지 못했을 때였으니까.
아버지가 다 왔다고 하며 간신히 차 한 대나 들어갈 것 같은 작은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차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줄지어 늘어선 옥수수며, 수숫대 등이 위 아래로 초점 없이 흔들렸다. 그런 상태로 조금 더 들어가자 앞에 좁은 논둑길을 점거하며 주차된 승용차 몇 대가 보였고 멀리 흰 상복 입은 여자들이 산의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차를 멈췄다. 그리고 다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차의 시동을 끄고는 안전밸트를 풀며 말했다.
“다 왔어, 여기여, 너는 여기 처음 와보지.”
“예, 여긴 처음 와보죠. 저 앞 저수지까진 어렸을 때 동네친구들 하고 몇 번 와보긴 했었는데.”
차에서 내리자, 이 낯 선 방문객을 조롱이나 하듯 더운 열기가 몸에 ‘확’하고 끼쳐들었다.
“저어 기, 저거 보이지.”
차에서 내린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바로 저거구나 싶게 조성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묏등 세 구가 눈에 들어왔다.
“있잖니, 이 아버지가….”아버지는 벌써 이곳을 몇 번을 더 와서 보고 또 많은 사람들과 같이 다녀가셨을 것임에도 불구 그 동안 아들이 없는 사이 일궈놓은 업적을 새로 아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다시 감정이라도 북받쳤는지 흥분된 어투로 말씀하셨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조상 묘덜을 이리로 다 이장해놓고 나니, 맴이 얼마나 갸붓한지 만사 다 시름이 놓이더래니까.”
“아버지, 큰일 하셨어요.”
나는 이렇게 아버지를 추켜세우듯 말했지만 이건 아버지가 그간 이룩한 일에 어떤 감동을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그냥 의례적인 행위였을 따름이다.
“그리고 먼저 번에… 성당에… 보좌신부님이 여길 다 왔다가셨는데, 그 신부님 하는 말이 이 자리가 명당자리라는 거야. 그 분이 풍수를 좀 볼 줄 아시거든. 이 자리가 새가 날아가는 형세를 하고 있다는 거야.”
“새가 날아가는 형세를 취하고 있으면 좋은 거래요.”
“아 그럼, 최고로 쳐주지.”
아버지는 영혼이 새로 화해 날아가는 것을 믿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건네준 모자를 쓰고 아버지가 앞서 걸었고 그 뒤를 내가 바짝 뒤따랐다. 어머니가 힘에 붙인 듯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따라오셨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 길의 윤곽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장 지쳐 올라가셨다. 어른 키만큼이나 자란 개망초 꽃이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가볍게 몸이 흔들리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앙증맞게 웃고 있는 폼이 꼭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붙여볼 것만 같았다.
“아유- 그새 풀이 많이 자랐네.”
묘소에 먼저 도착한 아버지가 곧 허리를 굽혀 잡풀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풀은 무덤 가 쪽으로 경계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자라있었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눈에 띄는 데로 잡풀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어머니가 도착했다.
“여봐요, 아니 풀은 얼마 있다 삼촌덜 하고 같이 와 뽑기로 했다면서….”
“어 그려, 얘들하고 다 와서 뽑기로 했어.”
“그럼 그때 가 뽑으면 되지, 이걸 어느 철년에 다 뽑을라구.”
어머니가 다소 짜증이 난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아니 그래도 일단 눈에 걸구치는 건 뽑아야지.”
아버지의 풀 뽑기 작업은 금방 멈출 것 같진 않았다. 묘는 모두 세구였다. 조부모와 증조, 고조 모두 삼대가 합장으로 모셔져있는 것이다. 아직 때를 입힌 지 얼마 되지 않아 군데군데 황토가 그대로 드러났다. 주위로 크게 자란 밤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길게 뻗치며 무덤의 가로부터 그늘을 드리웠다. 땀이 얼굴과 겨드랑이, 등줄기를 흠뻑 적실 무렵 아버지는 어느 정도 풀을 뽑았다고 생각했는지 묘 앞에 서게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먼저 성호를 긋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버지는 무덤 주인의 내력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곁들였고 이어 나에게 준비해온 술을 올리게 하고 절을 시켰다. 고조와 증조를 거쳐 마지막으로 조부모의 묘 앞에 섰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에 이름으로 아멘. 주여 이 요셉과 박 마리아는 살아생전 주님을 의지하였고 바랐사오니…”
아버지의 경건한 기도가 울려 퍼지는 동안, 나는 지금껏 기억의 뒷전으로 밀려나있던 할아버지와 관련된 영상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처음 숫자를 배우고 사랑에서 주의 기도문을 외던 일(할아버지는 항상 주무시기 전에 주의 기도문을 외우셨다), 몸이 아파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읍내의 병원을 다녀올 때 마다 빠트리지 않고 과자봉지를 안겨주시던 일, 대학입학 할 무렵 시골에서 올라오셔 대학등록금으로 선뜻 백만 원을 내놓으시던 일 등이 촉수 낮은 전등불처럼 잠깐씩 점멸되었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철없던 시절을 통틀어 후원자이셨고 그림자처럼 나를 지켜보셨던 것이다. 어느덧 나도 머리가 커감에 따라 삶에 무게가 더해갈 때 쯤 할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럴수록 삶에 대한 회의와 부끄러움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가 지금 멀리 외유를 다녀오고 나니 내 낯익은 인식의 장에서 한 사람이 지워져있던 것이다. 나는 잔에 술을 부어 할아버지에게 올렸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입안 언저리를 맴도는 순간 나는 울음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자 나는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이미 각본에 나와 있는 지독히 형식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더위 탓인가는 모르겠다. 어쩌면 임종도 못 본 자식이라 목 놓아 펑펑 울기를 바랐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뜨거운 햇살이 숨이 막힐 듯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선산 밑으로 밭떼기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낸 것 같은 개망초 꽃이 빼곡히 들어서 그간 너의 행적을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저희들끼리 몸을 부벼대며, 히히덕거리며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무지 향기도 없고 볼품도 없어 마치 없는 듯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익히 눈에 익혀온 것이 다시 할아버지의 영상이 되어 떠올랐고 그것이 이미 운명을 감지한 듯한 할아버지의 메아리 같은 텅 빈 울림이 되어 전해져왔다.
아버지가 차에 시동을 거셨다. 차가 논둑길을 빠져나와 제방 앞에 이르렀다. 제방의 육중한 문은 가뭄에 굳게 닫혀 한동안 물을 흘려보내지 못한 듯 시멘트가루가 허옇게 올라와있었다.
“너, 여기 와본지 꽤 오래되지?”
아버지가 기도가 끝난 뒤의 여운 같은 것을 남기며 말했다.
“예, 근데 여기 도로는 언제 이렇게 잘 닦아놨데요, 전엔 여기가 전부 흙길이었는데….”
“글쎄, 이게 은제드라, 한 오륙 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 저기 저 앞에 공장이 들어서며 길을 낸 것 같은데.”
아버지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제법 규모가 돼 보이는 큰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차가 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라는 말이 실감이 들 정도로 개울의 물길은 변해 황폐하게 메말라있었고 신작로를 따라 허리 잘린 미루나무가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흰 구름만이 형상을 바꿔가며 기억의 한 측면을 이어가고 있었다.
“시골집에 한 번 가보고 싶지 않니?”
어머니는 마치 당신도 가보고 싶은 듯한 은근한 어조로 물어오셨다.
“가봐야 아무 것도 없어, 집은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누가 한 번 와 들여다보기를 혀나, 쓸 만한 것들은 남들이 죄-다 쓸어가 버리고, 뭐가 있어, 이제 가 자지도 못해.”
아버지는 마치 집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탓이라도 되는 양 격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집은 자물쇠로 채워놨어요?”
“그럼, 채워놨지, 그래도 거기 어느 놈이 들어올지 아니.”
“동네엔 사람들 좀 있어요?”
“있긴 누가 있어. 다 떠나고, 죽고…, 새로 이사 온 사람 몇 하고, 아직 죽지 않은 중늙은이 몇 있지.”
“집 앞 쪽으로 길이 새로 났다면서요, 산 하나를 통째로 들어냈다고 하던데.”
“어, 그려.”
아버지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듯 백미러를 통해 눈길이 마주쳤다.
고향집이 눈에 훤히 보였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떡도 찧고 기타 음식들도 장만하느라 사람들로 북적대는 가운데,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가오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어떻게 여길 다 오셨을까, 내가 잠시 멀뚱히 서있는 사이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돌아서셨다. 어째 할머니는 오랜만에 대하는 손자를 보고도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돌아서셨을까. 내가 혹시 뭐라도 잘못한 것이 있나. 나는 그것이 잠시 서운하게 여겨졌다. 대청으로 올라섰다. 할아버지가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여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내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나는 할아버지 입에서 무슨 말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기다렸으나 할아버지 또한 물속이라는 생활터전을 잃고 뭍으로 이끌려온 생선마냥 갸름하게 눈만 껌벅이고 계셨다. 머리맡으로 깊은 동굴 같은 게 나있어 나는 그것이 곧 할아버지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벽 쪽으로 길게 제사상이 차려져있었다. 모두를 어딘가로 간다며 떠나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꿈들이 몇 칠을 두고 연속해서 꿔졌던 것이다. 나는 ‘설마’ 하면서도 거의 확신에 가까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으셨나, 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깨고 나면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그럴수록 나의 지장전 출입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또 한동안은 할아버지의 기억이 밀려났다가 산철 해제할 때쯤 해 시골집에 꼭 한 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곧 결심으로 굳어졌다. 이전 기껏해야 차로 두어 시간 밖에 안 되는 거리를 이제껏 무슨 벽이 그리 높아 쉽게 넘나들지 못하던 곳이었다.
산철 해제를 하던 날, 나는 도반들과 함께 시내로 나왔다. 그리고 모처 음식점에 들려 식사를 마치고는 도반들과 헤어져 곧바로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청주에서 내려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또 고향읍내로 옮겨가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익숙할 무렵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 도착했다. 혹시나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마을회관 가까이 이르러 돌아서왔다. 산의 단풍잎이 빨갛게 물들던 11월 초순쯤의 일이었다.
차가 교차로에 다다라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고향집이다. 순간 나는 고향집이 가보고 싶어졌다. 아버지가 서서히 차를 돌리셨다.
첫댓글 아우~, 읽기가 조금 불편 해서 그렇지 문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쪽으로 나가샤도 될 듯..
소설가 박규전 선생.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쓸까>?
부럽네요. 소설가로 인정합니다.
출품하시려고 쓰시는 것 아닌가요? ^^ 담담한 문체가 부담없고 할아버지가 어찌되었는지 궁금증도 생깁니다.
출품이라니요. 정말 고수는 마지막 한 칼을 숨기고 있는 거랍니다. 근데 중요한 자료를 잊어버렸어요. 제가 컴맹에 가깝거든요. 사실 이것 올린 것도 실수였답니다. 그냥 다시 넣어버린다는 것이 등록이 되어버렸네요. 어쨋든 많은 관심 가져준 것에 대해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 내용적으로 봤을 땐 괜찮지만 군데군데 상투적인 표현이 마음에 걸리네요.
각 신문의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시기에 단편소설 잘 읽었습니다. 끝 부분 "산철 해제" 뜻이 생소해 사전확인해보니 수행하신적 있나 궁금증이 생깁니다.
꼭 절에서 수행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랍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모두 심지어 밥먹고 똥 싸는 것 까지 수행이랄 수 있지요. 만약 수행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이법이고 분별입니다. 수행의 요체는 모든 분별망상을 일소해버린 것에 또렷이 드러나는 그 하나를 자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요, 채험이랄 수 있습니다. 오늘 양선생님 소개로 중랑구청에 다녀왔는데 운전이 서투르다고 하니깐 안 된다고 하네요, 주차장관리인데요. 조만간에 만나서 같이 한 잔 했으면 합니다. 제가 벌써 한 번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잘 안 되네요.
놀랍네요~신춘문예 당선작을 본 느낌입니다. 갑자기 술맛이 땡기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