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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평(문학춘하추동 제9호 2025 봄호)
시상의 포착과 주제 심화의 양상
김석철(한국시조시인협회 자문위원)
지난 2024년 12월 10일엔 우리나라 문학인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을 처음으로 소설가 한강(54)이 수상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이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시행되어 올해까지 수상자 총 121명을 배출했다고 하는데, 노벨상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이 밝힌 선정 기준인 ‘문학 분야에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을 심사해 수여했지만, 아시아 작가는 단 5명(인도1, 중국1, 일본2, 한국1)뿐이었으며, 특히 한강이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첫 수상이라고 하니 그 의의가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작가 한강은 1993년에 계간 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이듬해 다시 소설가로 재등단하여 이미 여러 권의 작품집을 출간해 왔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작가 한강이 등단 이후 지금까지도 즐거운 취미로 시집과 소설집 한 권씩은 매일 꼭 읽으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고 하니, 역시 타고난 자질보다는 꾸준한 노력과 집념의 결과라고 느끼게 된다. 사실, 요즈음 우리나라의 문화적 수준이 세계화를 이뤄가고 있는 중에, 특히 문학 부문에서 이렇게 한류가 빛나고 있음은 우리의 큰 자랑이다.
이제 2025년 을사년의 새해가 열렸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새해!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과 건필의 축복된 한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종합문예지 『문학춘하추동』 제8호(2024 겨울호)에 실린 ‘시조’와 ‘동시조’, ‘시’ 부문의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시조’부문이다. 시조는 문학의 한 장르이며 언어예술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는 그 형태에 따라 자유시와 정형시로 나누는데, 시조는 정형시이기에 정해진 기본적 틀이 있다. 따라서 그 틀은 율격을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형성하게 되는데 틀에서 벗어난 작품은 시조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시조를 읽다가 보면 무엇보다도 율격의 생동감에서 오는 리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율격은 우리 민족의 오랜 선험적 관습 체계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러기에 이 시조의 율격은 통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자연스레 민족성에 의해서 저절로 형성된 질서인 것이다.
그러면 ‘창작의 멋’란에 실린 시조들을 살펴본다. 모두 70여 편을 선보이고 있는데 대체로 함축과 절제의 미덕으로 승화된 서정의 꽃밭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었다. 먼저 작가들의 노고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그런데 가급적 지난 호에 거론하지 않았던 분들의 작품 중에서 고르다 보니 부득이 좋은 작품 몇 편을 놓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헛 소문도 자라면 새끼를 치는갑다
이리저리 새끼 팔아 돈벌이도 되는가 봐
돈 앞에 눈과 귀 멀면 못할 짓도 없겠다.
- 강성효, 「공룡(恐龍) 매체」 전문
제목인 "공룡(恐龍) 매체"는 3장의 단시조로서, 거대하고 힘센 매체를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헛소문이 퍼지고 확장되는 과정과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 시조에서는 비유와 상징성이 돋보이는 바, 초장의 "헛 소문도 자라면 새끼를 치는갑다"는 헛소문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치는갑다’는 ‘치-는가 보다’의 방언이다. 중장의 "새끼 팔아 돈벌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과 금전적 욕망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또 종장의 "못할 짓도 없겠다."에서는, 시대적 사회적 문제점인 금전만능주의를 강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간결함을 유지한 점이 인상적이다.
현대적 부조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사회적 불안과 개인의 내면적 갈등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는 시조라는 전통적 형식이 여전히 현대문학에서 유효하며,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관념이 구체화 되고 형상화될 때 시가 되고 시조가 된다.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비 온 뒤 높은 산은 물안개 자욱하고
마을의 아름다움 칠월과 함께하네
깊은 골 밀림 숲속에 물소리가 힘차다.
새소리 바람 소리 새벽을 알려주고
밝아온 텃밭에는 생기가 넘쳐나네
뒤돌아 하늘을 보니 둥근 태양 솟는다.
덧없이 흘러가는 반년은 어디 가고
동구 밖 정자나무 마음을 묶어주네
세상사 내 모습 찾아 거울 보며 웃는다.
- 남기철, 「아침이 밝아오네」 전문
남기철 시인의 시조 3편 중에서 고른 작품이다. 이 시조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간의 흐름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며,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시조의 기본 형식을 잘 지키며 감성을 잘 살리고 있다. 자연과 삶의 순환을 깊이 있게 담아낸 시조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 읽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색의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첫수에서는 자연의 생동감을 풍부한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비가 온 뒤 산에 자욱한 물안개는 독자에게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칠월의 생동감과 물소리가 더해져 자연의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독자를 자연 속으로 이끌며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종장 결미의 “물소리가 힘차다.”는 독자들에게 청각적 이미지를 제공하며, 생명의 힘과 자연의 역동성이 강조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새벽의 상쾌함과 하루를 여는 생명의 활기를 묘사하고 있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자연의 알람처럼 느껴지고, 텃밭의 생기와 솟아오르는 태양은 희망과 활력을 상징한다. 새벽의 청명함과 자연의 경이로움이 생생하게 표현되었으며, 독자에게 밝은 감정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종장의 결구 “둥근 태양 솟는다.”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로, 하루의 시작을 야심차게 느끼게 한다.
셋째 수에선 시간의 덧없음과 삶의 성찰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정자나무가 주는 안정감과 함께 거울 속의 자신에게 미소 짓는 모습은 자연 속에서 삶을 관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거울 보며 웃는다."의 마지막 구절은 독자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와 다정함을 선사한다.
전체적으로,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서정적 묘사가 돋보이며, 연시조 세 수가 나란히 초장은 “〜고”, 중장은 “〜네”, 종장은 “〜다.”의 각운을 맞추고 있고, 시조의 정형미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잘 살리고 있는 강점이 있다. 전체가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으며, 첫수와 둘째 수에서 자연을, 셋째 수에서 인간과 삶을 다룬 구성이 매우 안정적이다.
시인은 이렇게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고 그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적 요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산과 나무, 바람 등의 자연 요소들이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며, 그 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시조는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적 접근을 보여준다.
영겁의 세월 속에 비워낸 몸과 마음
파도가 손 내밀어 아픔을 지워주어
가슴에 이름표 하나 떳떳하게 달았다
- 노민병, 「몽돌」 전문
이 시조는 짧은 단수 안에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아내며,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하나로 연결하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몽돌에서 시상을 포착하여 시간, 상처, 그리고 자아의 정체성을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전체 내용으로 볼 때 제목 선정 또한 잘 되었다고 본다.
"몽돌"은 영겁의 시간 동안 갈고 닦여 비워진 존재를 상징하며, 이는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연결된다. 자연에서 온 작은 돌 하나가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감정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철학적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중장의 "파도가 손 내밀어 아픔을 지워주어"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즉 자연의 치유력과 인간의 회복력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훌륭한 구절이다.
종장의 “가슴에 이름표 하나 떳떳하게 달았다”는 표현은 이 작품의 주제를 함유하고 있으며, 몽돌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우리가 ‘몽돌’이라면 흔히 굳고 강직한 이미지를 연상하기 쉬운데, 화자는 ‘몽돌’에 시적으로 고정관념 탈피의 시법을 적용하여 “비워낸 몸과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조적인 상상력이라고 할까, 아주 참신하고도 개성적인 발상이다. 이 시조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행간의 의미를 찬찬히 생각하게 하는 강점이 있다.
한적한 산골짝에 삶의 종이 울린다
빛 고인 양지 녘에 초가삼간 틀고 앉아
문풍지
바람에 우니
시름 곡조 절창이다
하늘 문 절로 열려 푸른빛 쏟아내니
풀싹들 고개 들어 샘물인 양 치솟는다
적막에
촛불을 드니
삼라만상 벗이로다
- 박무성, 「산중일락(山中逸樂)」 전문
자연과 삶의 철학을 시로 풀어내는 솜씨가 정말 인상적이다. 시조 "산중일락(山中逸樂)"은 자연 속에서의 고요한 삶과 내면의 즐거움을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다. 자연과 삶, 고독 속에서 발견한 행복을 시적 언어로 녹여내며, 동양적인 정서와 철학적 깊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자연 속의 고요와 내적 평화라는 주제의 심화가 이뤄지고 있다.
첫수의 "한적한 산골짝"과 "초가삼간"은 소박한 삶을 상징하며, "문풍지/ 바람에 우니/ 시름 곡조 절창이다"라는 표현은 고요 속에서도 삶의 정취를 발견하는 철학적 깨달음을 전한다.
둘째 수에서는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듯한 경이로움을 담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시적으로 묘사했다. 중장에서 "풀싹들 고개 들어 샘물인 양 치솟는다"는 자연의 생동감을 생생히 전달하는 표현의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특히 종장 "적막에/ 촛불을 드니/ 삼라만상 벗이로다"는 고독 속에서도 온 우주를 친구 삼아 살아가는 만족감을 표현하며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시조의 운율을 잘 살리고 있으며, 특히 리듬이 안정적으로, 읽는 맛이 있고, 구체적인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어 독자가 장면을 상상하기 쉬운 시조로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내적 성찰을 주제로 삼아 철학적 깊이와 시적 아름다움을 균형 있게 담아낸 가편이다.
한 곳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글벗님들
십여 년 긴 시간을 견디고 버텼더니
우연이 인연 되어서 하나가 되어있네
일상에 지친 마음 글로서 풀어내면
사계절 몸과 마음 서로가 등 기대고
마음의 빗장 열으니 평온함은 덤이라
오늘도 처음처럼 마주하고 앉으니
추억은 새록새록 잔 속을 유영하고
시간과 공간을 건너 지금 여기 와있네
- 박효석, 「인연」 전문
이 시조는 따뜻한 인연과 글벗 간의 우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삶의 한 부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중한 연결 고리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수는 인연의 시작과 지속의 내용으로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인연의 귀중함을 강조한다. 초장의 "한 곳을 바라보며"라는 구절은 같은 목표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시사하며, 특히 종장 "우연이 인연 되어서 하나가 되어있네"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발전한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짧은 시구 속에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깊이를 응축한 점이 돋보인다.
둘째 수는 일상의 피로를 글을 통해 풀어내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장 "사계절 몸과 마음 서로가 등 기대고"라는 표현은 사시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우정을 자연에 비유하여 돈독함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종장 "마음의 빗장 열으니 평온함은 덤이라"는 글과 인연이 주는 치유의 힘이 강조되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따스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지막 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글벗의 존재와 그 특별함을 담고 있다. 중장의 "추억은 새록새록 잔 속을 유영하고"는 함께한 시간 속 추억의 선명함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종장 "시간과 공간을 건너 지금 여기 와있네"는 인연이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우정과 글의 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함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시조는 글과 인연이라는 두 축을 통해 공동체적 유대와 인간적인 온기를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각 수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시조의 특성인 연결성, 통일성, 완결성을 잘 갖추고 있다. 간결한 언어로 깊은 의미를 전하면서, 독자에게 자신만의 인연과 글벗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아픔이 커질수록 맑고도 청아한 삶
장엄한 목소리로 참살이 일깨우며
긴 여운 세상을 감싸 대자연을 울린다.
용마루 타고 올라 하늘의 소리 되고
어둠의 장막 걷어 아침노을 밝아오네
귀보다 가슴을 울려 깊은 속내 적신다.
힘들고 고달픈 삶 환희의 메아리로
비구승 간절함이 녹아든 화두처럼
비우고 깨달은 만큼 행복으로 쌓인다.
- 배원식, 「산사의 새벽 종소리)」 전문
이 시조는 깊은 감성과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현대시조로, 고통과 깨달음, 그리고 내면의 성장에 대한 시적 성찰을 보여준다. 각 수마다 독특한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아픔"을 역설적으로 "맑고 청아한 삶"과 연결시키며, 고통이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일깨우는 계기가 됨을 보여준다. "장엄한 목소리"와 "대자연"을 울리는 이미지는 개인의 아픔이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감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공간적, 상징적 상승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초장의 "용마루 타고 올라 하늘의 소리가 되고"에서는 시적 화자가 현실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침노을"을 맞이하는 이미지는 희망과 각성의 메타포로 읽힌다.
마지막 수에서는 고난과 깨달음의 변증법적 관계를 그리고 있다. 초장의 "힘들고 고달픈 삶"이 역설적으로 "환희의 메아리"가 되고, 중장의 "비구승의 간절함"과 "화두"를 통해 불교적 깨달음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특히 종장의 "비우고 깨달은 만큼 행복으로 쌓인다"는 내면의 성장과 해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이 시조는 고통과 깨달음, 상승과 초월의 주제를 섬세하고도 심오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종소리’라는 시적 모티프를 통해 내면의 울림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시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언뜻 새벽 종소리가 들려오는 산사의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한 대로 튼실하게 자라야 하는 건데
어쩌다 갈래갈래 줏대 없이 나오느냐
널 보는 내 새가슴은 벌어질 듯 아프다.
따뜻한 삼동 철에 웃자랄 가 걱정하다
봄비에 수가 좋아 한시름 놓았더니
마늘쫑 뽑기도 전에 판가름 난 올 농사.
순이네 논 마늘도 하동댁 밭 마늘도
땅심과 상관없이 벌마늘 지천이라
경매도 못하는 농심 알기라도 하느냐.
하늘이 짓는 농사 누구를 탓하랴만
보물초 호박 농사 일손 걱정하다 보면
노을이 붉기도 전에 앙가슴에 불난다.
- 백상봉, 「벌마늘」 전문
제목 “벌마늘”의 의미는 생리 이상으로 생긴 마늘을 말하며, 가을에 싹이 나고 봄에 수확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2차 생장으로 인해 봄에 수확하기 전에 다시 싹이 나서 먹지 못하게 되는 현상의 마늘을 뜻한다. 이 시조는 농부의 고단한 현실과 농업의 불확실성,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마늘의 생장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 "갈래갈래 줏대 없이" 자라는 마늘의 모습은 농부의 기대와는 다른 현실을 상징한다. "새가슴은 벌어질 듯 아프다"는 표현은 농부의 심정적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농사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봄비로 잠시 안도했지만, 종장의 "마늘쫑 뽑기도 전에 판가름 난 올 농사."라는 의미는 농업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자연조건에 승패가 완전히 좌우되는 농부의 처지를 암시하고 있다.
셋째 수에선 지역을 막론한 농업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땅심과 상관없이 벌마늘 지천이라"는 표현은 농작물의 무분별한 생산과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상징한다. 특히 종장의 "경매도 못하는 농심"은 농민들의 경제적 고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수에서는 농부의 체념과 동시에 여전히 존재하는 희망을 보여준다. "하늘이 짓는 농사 누구를 탓하랴만"은 자연의 힘 앞에 선 농부의 겸허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노을이 붉기도 전에 앙가슴에 불난다."는 표현은 여전히 존재하는 농부의 내적 고통과 불안을 암시한다.
이 시조는 한국 농업의 현실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연과 경제적 조건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부의 삶, 그들의 희망과 좌절, 체념과 고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벌마늘'이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통해 농업의 보편적인 어려움을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풍부한 농업 현장의 이미지와 섬세한 감정 표현을 통해 농부의 삶의 애환을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 농업의 불확실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시제와 어법도 통일적으로 잘 쓰였으며, 시조의 특성인 시대성, 문학성, 예술성, 현대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허한 곳 어디 없다
가득하고 포근하고 시가 있는 푸른 오월
얼마나 아름다운가 비단 같은 풍경이
하늘을 안고 누운 강속의 달은 밝고
청보리 남실남실 춤을 추는 저 들판을
두견새 서글픈 울음 들길이 흥건하다
복사꽃 능금꽃은 향운으로 걸려있고
아카시꽃 하모니에 찔레꽃 향기 짙어
달빛이 흔드는 오월 얼마나 장엄한가
풀내음 꽃향기가 훈풍에 뒤척인다
황홀하고 감미로운 젊음이 손짓하는
들길을 걸어 보아라 얼마나 위대한지를.
- 이종갑, 「야행」 전문
이 시조는 오월의 아름다움과 생명력, 그리고 그 속에 깃든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각 수마다 자연의 풍경과 계절감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오월의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첫수에서는 "아무리 둘러봐도 허한 곳 어디 없다"라는 표현을 통해 오월의 충만함과 생동감을 강조한다.
둘째 수에서는 달빛, 청보리, 두견새의 울음 등을 통해 밤의 서정적이면서도 애수 어린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셋째 수에선 오월의 달빛 아래 보이는 활짝 핀 꽃들의 모양과 짙은 향기를 여러 이미지로 표현하며 감탄한다.
마지막 수에서는 다양한 꽃들의 향기와 봄의 생명력, 젊음의 감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풍요로움과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이 드러나고 있으며, 종장의 "얼마나 위대한지를"이라는 결구는 생략의 표현 기교이면서도 자연과 생명, 그리고 젊음의 경이로움을 강조한다. 특히 반복적인 "얼마나"와 같은 감탄사를 통해 감정의 고조를 이끌어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시조의 종장의 기본형은 음수율 3, 5, 4, 3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결구를 3, 5로 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언뜻 시조의 율격에 대한 얘기를 꺼냈지만, 우리말이 교착어(부착어)이기 때문에 시조의 기본형에서 부득이 한두 글자는 어긋나더라도 허용하지만 너무 무리하면 시조의 율격이 깨지기 때문에 유념해야만 한다.
이 작품은 자연의 풍경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전달하고 있으며, 풍부한 감각적 이미지(시각, 청각, 후각)를 잘 활용하여 오월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시조는 오월의 아름다움을 통해 생명의 경이로움과 젊음의 강렬함을 노래하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작품이며, 자연의 섬세한 디테일을 통해 깊은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씹지도 아니하고 서둘러 삼키더니
배 속이 거북한지 허겁지겁 토해내네
보시오,
내 뭐라 했소,
너무 큰 걸 잡쉈어.
- 정진상, 「태양을 삼킨 달」 전문
정진상 시인의 단시조 4편 중에서 고른 작품이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을 일식(日食)이라고 한다. 그러니 일식은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해 태양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릴 때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다. 제목 “태양을 삼킨 달”은 이런 일식 현상에서 시상을 포착한 것이라고 본다. 달은 태양보다 그 크기가 훨씬 작으면서도 일식 현상에서는 태양을 완전히 가렸다가 서서히 비켜가는 경우가 생긴다.
이 시조는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후회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다. 제목인 "태양을 삼킨 달"이 상징하는 바처럼, 지나치게 큰 욕망이나 무리한 시도가 결국 고통이나 후회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간결하고 쉽게 읽히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의 화자의 발화가 다분히 풍자적이다.
초장에서 "씹지도 아니하고 서둘러 삼키더니"라는 표현은 무언가를 신중히 대하지 않고 급하게 받아들이는 욕망을 의미한다. 이는 과도한 욕심이나 순간적인 충동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람의 본능적인 욕망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중장의 "배 속이 거북한지 허겁지겁 토해내네"는 초장에서의 급한 행동이 결국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후회와 괴로움을 겪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토해낸다는 행위는 일종의 정화나 후회, 자책을 의미할 수 있으며, 잘못된 욕망에 대한 깨우침을 나타낸다.
종장에선 "보시오,/ 내 뭐라 했소,/ 너무 큰 걸 잡쉈어."라고 하여, 첫 음보를 한 행으로 제시하여 시상의 전환과, 의미를 강조하면서, 이어서 큰 욕망을 잡으려 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깨달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결미구 "너무 큰 걸 잡쉈어."는 지나친 욕망이나 목표가 오히려 자기에게 해를 끼친 결과를 의미하며, 독자들에게 자아를 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적인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시조는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후회라는 주제를 간결하고도 직설적인 언어로 풀어낸 작품으로, 태양을 삼킨 달이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사람의 무리하고 비현실적인 욕망을 잘 전달하고 있다. 각 장은 상황의 전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 시조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그로 인한 교훈을 풍자적으로 강하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시조를 ‘시조’이게 하는 그 솜씨가 이만하면 부러운 지경이다.
다음은 ‘동시조’이다. 동시조(童時調)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시조를 말한다. 시조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표현을 사용한 작품이다. 전통적인 시조의 운율과 구조(3장 6구 12음보 형식)를 따르되, 내용은 동심(童心)을 담아 밝고 단순하며 재미있는 주제를 주로 다루는 게 특징이다. 동시조의 주제와 내용은 주로 어린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자연, 동물, 계절, 놀이, 꿈과 같은 소재를 다루며,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언어는 쉬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며, 반복적이거나 리듬감 있는 구절을 통해 어린이들이 전통 문학에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한다. 그리하여 동시조의 교육적 요소는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하고 정서를 풍요롭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동시조’란의 두 분의 작품 중에서 각기 한 편씩을 골라 살펴보기로 한다.
엄마 닭 물 마시면 병아린 따라 마셔
하늘도 따라 보고 마실도 따라 가요
해지면
삐약 삐약이
품고 자는 엄마 닭.
- 심성보, 「엄마 닭과 병아리」 전문
심성보 시인의 동시조 네 편 중에서 고른 「엄마 닭과 병아리」는 비교적 짧은 동시조이지만 그 정경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시적 형상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이 동시조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따뜻한 분위기를 잘 담고 있으며, 엄마 닭과 병아리 사이의 애정을 표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장면들을 담아낸 것이다.
"엄마 닭 물 마시면 병아린 따라 마셔"는 반복적인 운율과 리듬감이 있어 어린 독자에게 쉽게 다가간다. 또한 마무리에서 병아리를 "삐약 삐약이"라는 의성어로 표현하여 재미를 더하면서 정겨움을 준다.
이 동시조에서는 병아리들이 엄마를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동물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표현한 점이 돋보이고 있다. 특히 엄마 닭이 병아리를 품고 자는 종장에선 모성애와 가족 간의 사랑이 잘 드러나 있어 읽는 이에게 따스함과 안도감을 주는 작품이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지붕 밑 마디마다 들쑥날쑥 키 자랑
높낮이 서로 다른 건반을 두드리듯
추운 날
처마에 모여
겨울 노래 부른다.
- 이철우, 「고드름 1」 전문
이철우 시인의 “고드름”에 대한 연작 동시조 네 편 중에서 한 편을 골랐다. 이 작품은 겨울의 고드름을 매우 독특하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고드름을 음악적 이미지와 연결하여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풍부하게 만들어내 주고 있다.
초장에서 "들쑥날쑥 키 자랑"이라는 표현은 고드름의 불규칙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키 자랑"이라는 표현은 고드름이 마치 자신의 모양을 뽐내는 듯한 의인화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중장의 "높낮이 서로 다른 건반을 두드리듯"은 고드름의 낙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는 매우 창의적인 비유이다. 고드름의 다양한 길이와 형태를 피아노 건반에 비유함으로써, 겨울의 고드름을 하나의 음악적 풍경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종장에서는 고드름들이 "처마에 모여 겨울 노래 부른다"고 표현하여, 고드름을 음악을 만드는 존재로 의인화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는 추운 겨울의 차가움을 역설적으로 따스하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이 동시조는 고드름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적 존재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음악성을 발견해내고 있어, 시인의 뛰어난 은유와 감각적인 이미지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평범 속에서 발견하는 비범이랄까 평범에서 동심을 발견하는 참신한 착상이다.
다음은 ‘시’부문의 작품들이다. 지난 겨울호에서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약간 언급을 했지만, 시는 인간의 감정, 사상, 경험 등을 함축적이고 음악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장르다. 일반적으로 산문보다 언어가 응축되고 정제되어 있으며, 감각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 그 특징이다. 따라서 시는 독자에게 미적 감동을 주거나, 깊은 성찰과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시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자문자답해 본다. 시인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하찮은 일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포착하고, 그 의미를 다시금 2차, 3차 사유의 공정을 거치며 창조를 시도함은 물론, 언어를 다루는 연금술사로서 누구도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끼며, 이를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여야 한다. 시인은 독자와 시인 사이의 감정적, 철학적 교류를 만들어 내며, 독자가 자신을 재발견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게 이끌어야 한다. 시인은 이렇게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탐구하면서, 독자가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
그러면‘창작의 기쁨’란에서 시 몇 편을 골라 살펴보기로 한다.
바람은 밝은 눈이 없어도
선택한 곳으로 불어 가고
고독을 삼키며
캄캄한 밤을 선택한 달님은
저 멀리서
물체의 그림자를 만들어
어디서도 추앙을 받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나는 귀로 눈으로 보고 듣고 있는데도
아직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 고원구, 「나는 누구일까요?」 전문
제목인 "나는 누구일까요?"는 이 시의 화두로, 자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혼란과 탐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자기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다분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제목에만은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게 돼 있지만 이렇게 의미 강조를 위해선 예외가 되기도 한다.
이 시는 한 연으로 구성된 전련시로서 "바람은 밝은 눈이 없어도/ 선택한 곳으로 불어 가고"라고 시상을 열고 있다. 바람은 눈이 없어도 스스로 방향을 정해 움직이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이 본능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화자는 바람의 이러한 특성을 보며 스스로의 방향성과 목적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고독을 삼키며/ 캄캄한 밤을 선택한 달님은/ 저 멀리서/ 물체의 그림자를 만들어/ 어디서도 추앙을 받고 있는데"에서는, 달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달은 외로움과 고독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밝히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이다. 이는 달과 같은 역할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화자의 심정과 대비된다.
"만물의 영장인/ 나는 귀로 눈으로 보고 듣고 있는데도/ 아직/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려"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하며 인간의 이성을 자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찾지 못한 상태이다. 인간은 자연과는 다르게 의식과 감각(귀와 눈)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능력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라는 마지막 질문은 화자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시도의 결론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질문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이 삶 속에서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하는 보편적 주제이기도 하다.
이 시는 인간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탐구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연(바람과 달)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지만, 인간은 이성과 감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동시에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화자는 스스로의 목적과 역할을 찾고자 고민하며, 독자들에게도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작품에서 화자는 순리에 따라 적응하며 살아가는 겸양의 덕을 감춰두고 있다. 이 시는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 해답을 찾으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이 시에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상기하게 한다. 구어체의 어법으로 운율이 살아 있고, 철학적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가편이다.
이 시의 행 바꿈이 리듬과 이미지, 그리고 의미를 고려해서 구성한 고도의 시법임이 인지되고 있다.
9자는 머리가 커 무겁다
국인 벼이삭의 고개를 봐라
들기가 불편한 저 몸짓
한번 흔드는데 아홉 번은 벼르게 된다지
이슬이 합쳐진 무게라 할까
숙이는 자세를 보면 짐작되리
9자로 치켜들었다가
6자로 내려 숙이는 9월
살아온 나이를 따지고 보니
아홉이란 고비는 멀지 않았다
익어야 할 고비란 뜻이다
가을이란 나이가 새롭게 고마워진다
나이로 익어가는 모퉁이가 9월인가
노을의 나이로 된다고
곡식이나 풀들이 먼저 알고
저만치 서서 얼굴을 바꾸고 살구나.
- 변창렬, 「9월」 전문
시 "9월"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성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4연 구성의 작품이다. 1연에서의 "9자는 머리가 커 무겁다"라는 첫 행은 무거워진 벼이삭의 모습을 통해 성숙과 무게, 그리고 삶의 무게를 상징하고 있다. 벼이삭의 고개를 묘사하면서 생명체의 성장과 익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2연에서는 9월은 가을의 시작점으로, 성숙과 수확의 계절을 대표한다는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3연에서 "살아온 나이를 따지고 보니/ 아홉이란 고비는 멀지 않았다"는 부분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9월을 인생의 특정 시기와 연결시키며, 나이듦과 성숙의 의미를 탐구한다. 또 "익어야 할 고비"라는 표현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암시하며,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곡식과 풀들이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아는 모습은 자연의 순환적 지혜를 나타내 주며, "저만치 서서 얼굴을 바꾸고 살구나"라는 결미 행은 변화와 성장에 대한 자연스러운 수용을 보여준다. 숫자(9, 6)의 반복적 사용이 리듬감을 만들며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시의 표현법에 있어서 주로 은유와 대구를 통해 깊이 있는 시적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 시는 자연의 순환, 인생의 성장,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고 은유적인 언어로 표현하며,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인 연결고리를 탐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새소리
풋 내음 숲길 따라
내림 비에 쓸쓸함이
산길을 헤맨다
세월이 빚어낸 휴양림
오지 않을 길목에
비 꽃이 흩어진 금원산 허리
그리움도 젖은 한낮
온통
피었다 시들어질 숲
질퍽한 장마
여로가 묻힌 금원계곡
오지 못할
굽이 흐르는 물결이 무정하다
씁쓸한 찻잔에
무엇을 지우고 새길까
빗줄기에 묻어놓고
젖어 우는 산새소리 그리움도 산허리를 헤맨다.
- 유점순, 「금원산 허리에서」 전문
이 시는 금원산의 풍경과 감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내면의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첫째 연은 금원산 숲속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새소리”와 “풋내음”은 생기와 자연의 맑음을 상징하는데, 이어지는 “내림 비”와 “쓸쓸함”은 감정의 대비를 보여준다. 숲길을 헤매는 쓸쓸함은 단순히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방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연의 풍경이 곧 시인의 마음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연에서는 금원산이 단순한 자연 공간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빚어낸 역사적이고 정서적인 장소로 그려지고 있다. "오지 않을 길목"은 시인의 기다림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상징하는데, 이는 곧 금원산 허리를 적시는 비 꽃과 연결된다. "그리움도 젖은 한낮"은 시인의 마음이 자연 속에서 젖어들고,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는 순간을 나타낸다. 이어지는 “피었다 시들어질 숲”은 생명의 순환을 통해 무상함과 유한함을 드러내고 있다. 자연이 보다 압도적이고 고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장마로 인해 질퍽해진 금원계곡은 시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오지 못할”이라는 표현에서는 시인의 내적 갈망, 또는 어떤 미련과 닿아 있다. "굽이 흐르는 물결이 무정하다"는 자연이 인간의 감정과 무관하게 흘러가며, 무심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성찰한다. "씁쓸한 찻잔"은 그가 현재 느끼는 감정의 상태를 대변한다. “무엇을 지우고 새길까”라는 질문은 과거의 기억과 후회, 혹은 앞으로의 다짐을 두고 망설이는 모습으로 설의법의 시적 표현이다. “빗줄기에 묻어놓고”는 그의 감정을 비에 의탁하는 모습이고, 산새의 울음소리와 그리움이 산허리를 맴도는 이미지는 시인의 내면과 자연이 다시 한번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 시는 기-서-결의 3연 구성으로 금원산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인의 내적 정서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자연의 생기와 장엄함 속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무상함이 시인의 내면 풍경과 맞물려 있고, 특히 그리움, 기다림, 지나가는 시간이라는 주제가 곳곳에서 드러나며, 자연의 변화와 흐름을 통해 인간 삶의 유한성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시인은 금원산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보고, 자연에 기대어 마음을 씻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은 그의 감정을 담아주기보다는 무심히 흐를 뿐이며, 이는 우리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이처럼 시적 대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개성의 색깔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장강(長江)의 도도함은 부러워하고
찰나의 인생을 슬퍼함으로
다가오는 세상일에
가슴을 열었다.
댓돌 앞 오동나무는
쏜살같이
시절을 쫓아
낙엽 소리를 들려준다
불꽃 같은 연정도
이슬처럼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담겨 있구나.
저 해원(海原) 속에 담겨 있는
영원한 것을 뒤돌아보아
오늘도
마음을 묶는다.
- 유형수, 「심지(心志)」 전문
이 시의 제목 “심지(心志)”는 마음속의 뜻과 다짐을 의미하며, 화자의 철학적 사유와 깨달음을 잘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인생과 시간의 유한함, 그리고 그 속에서의 깨달음을 담아낸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1연 “장강(長江)의 도도함은 부러워하고/ 찰나의 인생을 슬퍼함으로”에서는 자연(장강)의 거대한 흐름과 인간 삶의 유한함을 대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장강의 도도함”이 자연의 웅장함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영원성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찰나의 인생”은 인간의 삶은 짧고도 덧없음을 니타낸다. 첫행과 둘째 행의 이런 대조법은 화자의 슬픔을 가중시키고 있다. “다가오는 세상일에/ 가슴을 열었다”는 인생의 덧없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열린 자세를 보인다. 이는 삶을 긍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적인 태도를 상징하고 있다.
2연의 “댓돌 앞 오동나무는/ 쏜살같이/ 시절을 쫓아/ 낙엽 소리를 들려준다”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묘사이다. “오동나무”는 오래된 자연의 상징으로, 시간을 견디며 변화를 겪어온 존재를 나타낸다. 그리고 “쏜살같이 시절을 쫓아”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며, 그 속에서 나무조차도 변화를 겪는다. “낙엽 소리”는 떨어지는 낙엽을 시간의 흐름과 무상함을 청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화자는 이를 통해 덧없는 세월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3연의 “불꽃 같은 연정도/ 이슬처럼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담겨 있구나.”는 사랑과 감정, 그리고 그 기억에 대한 성찰의 표현이다. “불꽃 같은 연정”은 뜨겁고 강렬했던 사랑과 열정이 과거의 한순간이었음을 상징하며, “이슬처럼 사라지고”는 사랑은 결국 사라지고, 덧없음을 강조한다.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담겨 있구나”에서는, 사라진 것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내면의 성숙과 회상을 의미한다고 본다.
4연의 “저 해원(海原) 속에 담겨 있는/ 영원한 것을 뒤돌아보아/ 오늘도/ 마음을 묶는다.”는
영원과 현재에 대한 사색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해원”은 넓고 깊은 바다로, 영원과 무한함을 상징함으로 화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삶의 근본적이고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 한다. 화자는 덧없음 속에서 영원한 가치를 성찰하며 그것을 되새기고 있다. “마음을 묶는다.”에서는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중심을 잡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시의 구성은 기-승-전-결의 탄탄한 구성이며, 시상의 전개도 정연한 점이 돋보였다. 그리고 이 시는 인생과 자연, 시간, 그리고 내면의 성찰을 주제로 한다. 화자는 자연과 인간의 대조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그것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특히 사랑과 같은 감정의 유한함과 기억 속의 영속성에 대해 성찰하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시는 철학적 성찰과 서정적 정서를 조화롭게 담아내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아플 줄을
갈잎 서걱거린 소리에도
가슴이 무너져 내릴 줄을
사랑이 가고야
마음을 쓸어내린다
그늘진 빈자리
고독이 밀려와
한바탕 소동이다
바람이 쫓는 대로
질서 정연한 배열
사르륵사르륵
사랑이 일렁이다가
사랑이 스러진다
- 조경례, 「갈잎 사랑」 전문
이 시는 이별과 상실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감정의 점진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처음에는 알지 못했던 고통이었으나 사랑의 상실로 인한 심리적 붕괴가 나타나고 있다. 갈잎의 서걱거리는 소리와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낙엽의 이미지 등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은유하고 있다. 정서적 특징으로 "사르륵사르륵"과 같은 의성어 사용으로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리듬감 있게 표현하며, 사랑의 소멸과 상실에 대한 애잔함과 무너져 내리는 듯한 감정의 붕괴를 감지하게 된다. 갈잎의 소리에서 느끼는 사랑의 그 절실한 감정! 사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기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여성적 화자는 사랑의 소멸을 갈잎의 움직임에 비유하며, 감정의 미묘하고 부드러운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운 우리말을 취택하여 사랑스러운 어조를 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인지된다.
산에 올라 보면 안다.
산은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있음을,
사람들
산이 오르는 데에 뜻이 있는 줄 알지만
산은 내려다보이는 데에다 산자락 펼쳐놓고
나무도 풀도 다람쥐도
다독이며 같이 살 것을 알아,
사람들 높이 올라 환호할 때
산은 그림자를 늘어뜨려 놓고
아래로 가는 길을 내어 주고 있다.
높이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머리 맞대고 사는 동네를
내보이고 있다.
- 조홍규, 「산에 올라 보면」 전문
이 시는 산을 소재로 삼아 인간의 삶과 태도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이다. 이 시는 "산에 올라 보면 안다"라는 말로 시상을 열며, 산에 올라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진실이나 깨달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선 산이라는 자연적 공간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이는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시인의 참신한 시상 포착이라고 본다.
1연의 "산은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고 있음을,"에서는 산에 올라 보면 우리가 산을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산 자체는 아래로 향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성취나 노력에 몰두하며 무언가를 쌓아 올리려 하지만, 결국은 겸손하게 내려놓아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집착과 욕망에 대한 성찰, 그리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의 방식에 대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2연의 "산은 내려다보이는 데에다 산자락 펼쳐놓고"에서는, 산은 단순히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품고 있는 자연(나무, 풀, 다람쥐 등)과 더불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자연은 조화와 공존을 중시하며, 인간 역시 이러한 삶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3연에서는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오르는 것에 기쁨을 느낄 때, 산은 자신을 낮추며 아래로 내려갈 길을 만들어준다는 내용이다. 산의 겸손함과 희생은 인간이 본받아야 할 덕목을 상징하고 있다. 즉 높이 올라서 자랑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공생의 교훈이 느껴진다.
4연의 "높이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머리 맞대고 사는 동네를/ 내보이고 있다."에서는 산은 자신의 높이를 자랑하지 않고, 대신 산 아래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마을과 자연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 사회의 경쟁과 성공 중심적 사고방식에 대한 경고이며, 조화로운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시에서는 비유와 상징이 돋보이며, 강렬한 대조적 이미지, 그리고 자연을 단순히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시는 자연을 통해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며,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가 하면, 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또한 화자의 눈길이 마냥 밝음을 향하고 있어 긍정적인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삶의 태도에 정감이 가는 작품이다. 오래 숙고하고 퇴고한 노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이상으로 지난 겨울호(제8호)의 일반 시조와 동시조, 시부문의 작품들에서, 주로 어떻게 시상을 포착하고 주제를 어떻게 심화시켜 나기는 지 그 양상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와 시조는 영혼의 기쁨을 위한 창조의 산물이다. 정서와 지혜와 예지의 꽃인 시와 시조! 시인은 자기의 감정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때로는 상대의 위치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의 번민과 고뇌, 아픔까지도 대신해주어야 한다. 그러기에 시와 시조에서는 작자가 있고 시의 화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석공이 돌을 깎는 자세로 시어를 조탁하고 지고(至高), 지순(至純)의 경지에서 작품으로서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빚어내려고 비지땀을 흘리는 것이다.
시인은 항상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해석을 하는 예술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기존의 생각과 개념의 틀에서 벗어나 시적 대상을 새롭게 보는 탈관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리의 삶이 다 그러하겠지만 문학, 특히 시와 시조에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는 각고의 노력이 없이는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가 없다.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실험정신이 없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일이다.
사실 예술 작품이나 문학 작품, 특히 시와 시조는 주관적인 창작품이기에 어떤 문법적, 교과적으로 상세히 분석하거나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저의 평소 신념인데, 혹여 제가 본 관점이 작품을 쓴 작가님들의 의도에 어긋날 수도 있으니 넓은 도량으로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