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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정과 설죽의 애틋한 사랑
이원걸(문학박사)
청암정의 늦가을 풍광
(목차)
1. 청암정의 유래
2. 청암정 기문
3. 청암정 현판 시
1) 退溪 李滉(7언 율시 2수)
2) 灌圃 朴啓賢(7언 율시 2수)
3) 習齋 灌擘(7언 율시 2수)
4) 栢潭 具鳳齡(7언 율시 2수)
5) 栢巖 金玏(7언 율시 4수)
4. 청암정에서 시 읊던 설죽을 생각하며
1. 청암정의 유래
경북 봉화군 닭실[유곡]의 청암정은 충재 권벌이 중종 26년(1526)에 창건한 정자로 종택 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사적 및 명승 제33호로 보존되고 있다.
이 건물은 거북 바위 위에 세로 14척, 가로 20척 규모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재는 춘양목으로 지었다. 정자 주위에는 연못 擲躅泉이 둘러있고 뜰에서 정자까지는 돌다리가 놓여있다. 그 주변에는 오래된 소나무, 느티나무, 향나무가 자라며 바위틈에는 단풍과 철쭉이 자라고 있다.
정자에는 충재의 친필 현판과 退溪 李滉, 灌圃 朴啓賢, 習齋 權擘, 栢巖 金玏, 栢潭 具鳳齡, 訥隱 李光庭, 樊巖 蔡濟恭 등의 현판시가 있으며, 眉叟 許穆이 88세에 마지막으로 쓴 篆字 '靑巖水石' 4자가 남아 있다.
2. 청암정 기문
종택의 서쪽 약 십 보 되는 지점에 큰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높은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이 청암정이다. 연못으로 둘러있으며 맑고 깨끗한 모습이 마치 푸른 옥을 담가 놓은 것 같다. 돌다리를 가로 질러 돌아가면 그 가운데가 마치 외로운 섬과 같고 사방이 모두 한 덩어리 큰 반석으로 되어 있다. 정자가 바위 위에 우뚝 서서 전체 면적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였고 정자의 북쪽에 바위가 높게 솟아 그 높이가 약 한 길 정도나 되는데 그 빛이 푸르러 청암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는 선조 충정공이 창건한 것으로 마루가 여섯 칸이며 방은 두 칸이다. 처음 지었을 때에는 방이 아니고 마루였는데 고조부 청암공이 빈 곳을 의지하여 돌로 쌓아 증축한 것이다. 이 정자가 매우 크거나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높은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매우 시원하고 깨끗하다.
동쪽으로는 산봉우리를 엿볼 수 있고 정면으로는 남산을 바라보며 북쪽으로는 문수산을 통해 보여 지는 시야가 매우 넓다. 그리고 중간으로 작은 시냇물이 흘러 정자 옆으로 오면서 돌을 치면서 급하게 흘러가는데 냇물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
그리고 남쪽 헌함 밖에 심겨진 세 그루의 소나무의 높이는 집과 비슷하고 북쪽 바위틈에서 자생한 화양목은 키가 나지막하며 크게 자라지는 못한 채 앙상하다. 그 사이로 두어 떨기의 국화가 심겨져 있으며 연못 언덕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있는데 반쯤 마른 채 운치를 드러내고 있다. 돌다리 건너 못가에 세 칸의 집이 있는데 이는 선조께서 평소 거처하시던 방으로 ‘冲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이 집은 정자와 마주하고 있으면서 조금 낮은 편이다.
동쪽으로 다시 세 칸의 집을 지었는데 이는 우리 先考께서 지은 집으로 모두 온돌이며 뜰과 축을 정리하고 나지막하게 담을 쌓았으며 그 안에 모란․작약 등의 꽃과 풀을 심고 장미와 철쭉화도 곁들여 재배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 각각 작은 문을 설치하여 손님이 출입하도록 배려했으며 다시 동쪽에 작은 문을 만들어 진나라 때 도연명의 정원처럼 작은 세 가닥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쪽 시냇물을 끌어들여 남쪽 담장을 뚫고 연못물과 통하게 만들어 물소리가 정원을 돌면서 울어 이따금씩 홀로 고요하게 정 자위에 누워있으면 졸졸 흘러 들려오는 물소리가 밤 새워 귓가를 울리니 매우 사랑스럽다.
정원 가운데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서 푸른빛이 구름을 스치는 것 같고 무성하게 시원한 그늘이 온 마당을 덮고 있다. 그 사이로 단풍나무가 숲을 이루어 비록 무더운 한낮에도 더위를 느낄 수 없고 연못 가운데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활발하게 노닌다. 천 그루가 넘는 연꽃은 물 밖에 고운 모습을 드러내어 마치 붉고 푸른 구름이 솟아 있는 것 같은데 맑은 바람이 고요히 불어오면 그윽한 연꽃 향기가 사람을 감싸 안는다. 정자 앞에는 논과 밭에 벼와 오곡을 심어 풍성한데 농부의 노래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니 이것이 우리 정자의 빼어난 풍경이다.
때로 달 밝은 밤에 모든 소리가 쉬고 연못물은 매우 맑아 거울 속같이 텅 비어 물결은 잔잔하다. 찬란한 빛이 일렁거려 마치 금물을 녹여 흘리는 것 같고 어린 물고기가 뛰놀고 물새가 가끔씩 울며 소나무 그늘이 다락에 가득하면 한 점 티끌도 침범하지 않아 거기 누워 있어도 정신이 상큼해져서 잠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이 정자의 사찰 경치가 모두 다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여름․가을이지만 겨울은 춥기 때문에 거처하지 못한다.
그러나 눈이 쌓여 바위를 묻어버렸을 때 푸른 소나무와 전나무가 독야청청하여 구부러진 몸으로도 눈과 싸워 굴하지 않는 그 모습은 참으로 구경하다가도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문 위에 퇴계 선생이 지어 보낸 사운 시가 걸려 있는데 글과 글씨가 단정하며 시내 계곡이 빛을 머금은 것 같다. 이어 이 시에 화답한 글로, 박계현과 권벽의 글이 있으며, 그 뒤에 다시 여러 선배들의 화답시가 이어져 있다. 모두 [유곡잡영]에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뛰어난 문장가며 시인들이다.
정자 이름의 큰 액자 세 글자는 자획이 매우 굳세고 건장하고 고고한 명필의 필체이지만 안타깝게도 쓴 분의 이름이 누락되어 전하지 않는다. 아! 사람은 좋은 땅을 만났으며 땅은 주인을 잘 만나 명승의 이름을 얻었다. 이 정자가 우리 선조를 만나 명성이 드러나고 뒤의 선배들의 좋은 글로 더욱 빛나니 어찌 산천이 아름답고 경치가 빼어날 뿐이
랴. 하당 권두인(1643-1719) 지음.
3. 청암정 현판 시
1) 退溪 李滉(7언 율시 2수)
공께선 평소에 깊은 뜻을 품었는데
길흉의 운수가 번개처럼 지나갔네.
빼어난 바위 위의 정자가 아직 남아있고
연못에 피고 지는 연꽃은 옛 모습 그대로일세.
눈 가득한 노을은 천연적인 즐거움이요
뜰의 난초 향기는 오랜 유풍을 간직했네.
못난 이 사람이 공을 안 덕분에
흰머리 날리며 글 읊으니 회포가 무궁하네.
我公平昔抱深衷
倚伏茫茫一電空
至今亭在奇巖上
依舊荷生古沼中
滿目煙霞懷素樂
一庭蘭玉見遺風
鯫生幾誤蒙知獎
白首吟詩意不窮
선생께서 이곳 유곡에 좋은 터를 잡으시어
산에는 구름이 둘러있고 연못엔 물이 빙둘러있네.
외딴 섬의 정자는 돌다리 건너서 들어가고
맑은 연못에 비친 연꽃은 살아있는 그림일세.
농사짓고 채전 가꾸는 건 학문의 일이 아니지만
벼슬은 사모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네.
어여쁜 바위틈에 서있는 소나무를 자세히 보니
풍상과 싸우며 늙어가는 모습이 고고해라.
酉谷先公卜宅寬
雲山回復水彎環
亭開絶嶼橫橋入
荷映淸池活畫看
稼圃自能非假學
軒裳無慕不相關
更隣巖穴矮松在
激厲風霜老勢盤
2) 灌圃 朴啓賢(7언 율시 2수)
청암정의 현판이 나의 충심을 일으켜
그분은 떠났지만 이름은 길이 남았네.
빼어난 경치는 삼 선산 섬을 구할 것도 없고
연기와 노을은 스스로 한곳에 만족하네.
질그릇 굽고 고기잡이와 농사를 지음은 초년의 일이었고
높은 절개와 빛나는 학문은 닦아온 풍채일세.
몇 번 찾으려다가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지금까지 서린 한은 끝이 없어라.
靑巖亭扁起余衷
人去高名不落空
形勝莫求三島外
煙霞自足一區中
陶漁耕稼皆前業
節義文章是素風
幾欲停車終未遂
至今遺恨更無窮
티끌세상 밖에 있어 절로 평탄하고 너그러워
외로운 섬 맑은 연못은 푸른 옥빛으로 둘러있네.
공과 같은 조정의 대신을 모두 시귀처럼 여겼으니
정자에 앉은 사람들 모두 그림처럼 보이네.
아름다운 숲 상서로운 풀은 영원한 봄빛이요
대나무 집 소나무 문은 밤에도 닫지 않았네.
구원에 충직한 기운을 묻었다고 말하지 말지니
공이 나라에 세운 큰 공훈은 반석과 같다네.
(이 시의 글씨는 청암공이 썼다)
境逢塵外自平寬
孤嶼淸池碧玉環
大老國將龜筮視
小亭人作畫圖看
瓊林瑤草春長在
竹屋松扉夜不關
莫道九原埋直氣
保邦餘烈帖如盤
(此扁 靑巖公所書)
3) 習齋 灌擘(1520~1593 : 7언 율시 2수)
시를 읊고자 하니 내 마음엔 느낌도 많아
대현의 마음과 높은 뜻 이미 비어버렸네.
저 세상으로 떠난 공의 소식은 들을 길 없어도
이 땅엔 공을 기리는 높은 명성만 가득해.
옛 집을 감싼 연기 노을은 어제처럼 눈에 선한데
맑은 못의 만발한 연꽃은 다시 가을을 맞았네.
가문을 이어 조상 추모하는 정자가 우뚝하니
아득한 광경을 눈이 시리도록 우러러 본다네.
欲賦詩篇感我衷
大賢心跡已成空
更無消息聞泉下
猶覺聲名滿域中
古宅煙霞如昨日
淸池菡萏又秋風
承家尙有事亭孝
悵望難堪眼力窮
이 푸른 정자는 원래 큰 인물이 세운 것
사람은 가버리고 바위만 텅 빈 지 오래 되었다네.
공명과 사업은 푸른 역사책에 실렸는데
뛰어난 풍치를 모두 우뚝하게 쳐다보네.
정자는 옛 못의 빈 곳을 의지해 세워졌고
문은 가을 을 향해 종일 닫혀있네.
일찍 글 읊으며 돌아와 이런 강산을 차지했으니
반곡 같은 좋은 대현의 터를 누가 감히 넘보리.
翠亭曾是碩人寬
人去巖空歲幾環
事業已從靑史識
風流還向白眉間
亭臨古沼憑虛搆
門對秋山盡日關
早賦歸來專一壑
誰爭子所谷名盤
4) 栢潭 具鳳齡(1526~1586 : 7언 율시 2수)
시를 읊으려니 가슴이 격동하는데
푸른 바위 옛날 같은데 높은 정자는 비어 있네.
하늘의 밝은 달은 차가운 창을 비추고
세상일은 뜬 구름 같아 지나간 꿈일세.
천고에 변함없는 법칙은 현인이 지은 것
대대로 내려온 순박한 전통은 이곳의 가풍일세.
언덕과 산에 의지한 집의 양담루를
숲의 연못 향해 뿌리니 내 회포는 끝이 없네.
詩句吟來激寸衷
蒼巖依舊野亭空
洞天明月寒窓裏
世事浮雲昨夢中
千古森嚴遺士則
百年淳朴見家風
丘山華屋羊曇淚
灑向林塘恨不窮
고운 연꽃 핀 연못은 거울처럼 아름답고
돌다리 가로 놓였고 푸른 물결 둘러있네.
꽃답고 빛나는 자취는 당년을 따라 다하지 않았고
아름다운 경치 오래 남아 후인들 감상케 하네.
위태로운 바위는 뾰쪽한 구름처럼 구렁에 걸려 있고
굳센 기상은 눈과 싸웠고 대나무 문은 둘러있네.
평범한 물색이 모두 세속보다 뛰어나니
조용한 명성의 이곳은 이원의 반곡같다네.
規作荷池一鑑寬
小橋橫截碧波環
芳華不逐當時盡
勝賞長留後世看
危骨矗雲巖跨壑
勁心衝雪竹圍關
尋常物色俱驚俗
寥落名區只似盤
5) 栢巖 金玏(7언 율시 4수)
숨어 지내는 세월 그윽한 취미는 참으로 너그러운데
옥 돌병풍은 열렸고 비단결 연못 물 둘러있네.
이 좋은 터전을 개척하자 산 귀신은 몇 번이나 울었을까
구름을 헤지고 열려진 땅은 신선의 별장이어라.
정자 따라 만든 돌길은 보기에도 어여쁘고
산 밑의 사립문은 길손 위해 닫지 않았네.
바람 부는 석양의 정자 경치는 더욱 고운데
솔잎 술 나물 안주가 금반에 담겨오네.
巖居日日野懷寬
玉峽屛開錦水環
鑿谷幾敎山鬼泣
披雲方遣地仙看
憐池閣道要須闢
喜客山扃不許關
風欖斜陽陪勝賞
松醪溪簌薦金盤
그윽한 땅을 열어 놓으니 시야는 참으로 넓어
한 점 푸른 바위 우뚝한데 푸른 물은 둘러있네.
진퇴를 결정 못했지만 세상의 즐거움 잊었고
정자에 오르니 어찌 경치에만 끌려 마음이 해이하랴.
연하에 취한 오늘은 임금의 은혜가 중함을 알겠는데
비오고 눈바람 사납던 당시에 나라 위해 크게 염려하였네.
높고 밝은 바람 우러르니 무한한 회포가 일어나고
슬프게 시 읊고 반나절 지내며 술을 마신다네.
劈開天奧眼猶寬
一點靑巖綠水環
進退未成忘世樂
登臨肯作放情看
煙霞此日君思重
雨雪當時國事關
緬溯淸風無限意
悲吟半日接盃盤
피 끓는 푸른 상소는 임금의 심금을 울려
남겨 놓은 빛이 대를 이어 전해진다네.
정자에 앉았을 때가 가장 한가하고
경치 가운데서 정의로운 힘 찾을 수 있네.
천 층의 벽 위엔 밝은 달이 걸려있고
솔바람 소리 나는 십리 길에 서리가 내렸네.
이어온 충성과 효도는 공의 가문 전통인데
정자 위에서 공을 추모하니 감회가 무궁하여라.
血洒靑牋冒聖衷
餘光歷世未全空
閑情最想巖居裏
義氣堪懷景物中
壁立千層留霽月
松聲十里閱霜風
錦錦忠孝公家事
亭上思人意不窮
험난한 시기에 온전히 절개지킴은 타고난 성품인데
지나간 자취를 더듬으니 잠깐 사이에 흘러갔네.
서릿발 같은 높은 의리 우레 번개에도 꺾이지 않았고
구름과 물위의 정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있네.
버드나무 그림자 주렴에 가득한데 봄비 내렸고
연꽃 향기 베개를 감싸고 밤바람이 멎지 않네.
세월이 지나도 정자 모습 예와 다름없으니
지극한 즐거움 길이 전해져 끊어지지 않기를.
履險能全帝降衷
如今往事轉頭空
氷霜高義雷霆下
雲水孤亭宇宙中
柳影滿簾春得雨
荷香撲枕夜多風
年年物色渾如舊
至樂相傳矢未窮
만추의 청암정에서 설죽을 생각하며
4. 청암정에서 시 읊던 설죽의 한시 기행
■ 머리말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87~1547)의 손자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1617)의 심부름을 하는 여자 종이었던 설죽(雪竹)의 시에 관한 것이다. 설죽은 여종의 신분으로 여성 정감이 담뿍 담긴 한시를 많이 창작했다. 설죽과 관련된 학적 관심은 홍만종의 [시화총림] 소재 임방의 [수촌만록]에서 이미 제기되어 왔다.
여기에 설죽의 시 「추사시」․「방석전고거」 두 수가 소개되어 있으며, 설죽의 호는 얼현(孼玄)으로, 안동 권 아무개의 여종으로 재주가 있고 예뻤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시도 잘 지어 자호(自號)를 취선(翠竹)이라고 했으며, 「추사시」에는 취선이라는 기생의 이름으로 잘못 실려 있고, 「방석전고거」에는 무명씨의 것으로 되어 있어 세상에 취죽(翠竹)이라는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하였다. 그동안 설죽의 행적은 학계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근년에 안동 권씨 문헌 가운데 원유(遠遊) 권상원(權尙遠, 1571~?)의 시문집 [백운자시고(白雲子詩稿)]의 말미에 실린 설죽의 시가 발굴되었다. 여기에 오언절구 37수, 오언율시 5수, 칠언절구 122수, 칠언율시 2수 등 두 166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추후, 타 문헌을 통해 발굴된 '백마강회고' 작품을 포함하여 설죽이 남긴 한시는 모두 167수이다. 이는 역대 우리나라 여성 시인들이 남긴 한시의 분량에 해 적은 것이 아니다. 현재우리 나라 역대 여류 시인과 작품들을 통산하면, 대략 200여명의 여류 시인들이 2000여수의 한시를 남겼다고 한다. 조선조 여류 한시로는 [허난설헌집]․[매창집] 등에 다수 전해지고 있으며, [대동시선]이나 일반 사대부 문집 말미에 몇 수가 실려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만만찮은 시를 남긴 설죽은 간략한 「해제」 형식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말미에 설죽시 원문인 필사본도 실어 두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후속 연구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대 한문학 유산에 대한 문예적 평가는 사대부들에 의해 창작된 시문을 위주로 하여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안동의 경우 이런 경향은 지배적이라 할 수 있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층에게 일반 사대부들이 즐겨 창작하는 한문학 작품 창작의 기회가 전면적으로는 개방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사대부들의 적극적인 자세마저 결여되었기에 여성들에 의한 한문학 작품의 생산이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 일반적인 추세가 그러했겠지만 요즘처럼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집을 출간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다만 여성들의 작품이 사대부 문집의 말미에 실려 전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런 점에서 조선조 여성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제약과 구속의 삶을 살아왔다.
우리 역사상 조선조까지는 여성들에게 공적인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종의 신분인 설죽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주어진 자료를 통해 보건대, 그녀가 특정인에게 구체적으로 수업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사대부들이 수업하는 어깨 너머로 문장과 한시 기법을 터득하고, 타고난 문학 역량과 여성의 감수성을
발휘하여 고운 한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이런 점이 설죽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설죽은 자신 앞에 놓인 삶을 개척하고 문예적 소질을 발휘한 여성이었다. 설죽시를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토대로 하여 설죽의 삶을 재구성해 보기로 한다. 이어 설죽 시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그녀의 시가 한국 여류 한시사에서 갖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 설죽의 삶과 풍류 정신
설죽의 행적은 [백운자시고]의 말미 「설죽사적(雪竹事蹟)」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그녀의 생몰 연대는 미상이다. 이름은 알현(閼玄)이며, 호는 설죽(雪竹)․설창(雪窓)․월연(月蓮)․취선(翠仙) 등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영리하여 늘 창이나 벽을 사이로 두고 선비들이 시문을 읊는 것을 엿듣고는 그 문장과 시구의 의미를 파악했으며, 시에도 능하여 당시 사람들이 중국 후한의 학자였던 강성(康成) 정현(鄭玄)의 여종과 비슷했다고 한다. 아울러 그녀는 빼어난 재주 외에 미색도 겸비했다.
설죽도 조선조 여느 여류 시인들 못지않은 로맨스를 남긴 여성이었다. 설죽의 시 가운데 여러 수에 걸쳐 석전(石田) 성로(成輅, 1550~1615)를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들이 많다. 당시, 성로가 청암정(靑巖亭)에 이르러 그녀와 더불어 유흥을 즐기고자 하자, 모두 그녀로 하여금 석전의 생전 만시(輓詩)를 짓게 하였다. 그런데 좌객들은 그녀에게 조건은 제시하였다. 그녀가 살아 있는 성석전을 두고 만시(輓詩)를 지어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성석전의 시침(侍寢)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녀는 즉석에서 만시를 지어 석전을 비롯한 일행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이로 인해 세상에 그녀의 시명(詩名)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녀는 이런 인연으로 인해 결국 부인과 사별한 후 10년이 지난 석전의 계실(繼室)이 되었다. 만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적막한 서호의 초당 문 닫혔고
주인 잃은 봄 누각에 벽도향만 흩날리네.
푸른 산 어디에 호걸스런 뼈를 묻으셨나요.
무심한 강물은 말없이 흘러갑니다.
寂寞西湖鎖草堂
春臺無主碧桃香
靑山何處埋豪骨
唯有江流不語長
나이 어린 설죽이 술좌석에서 살아있는 성석전이 죽은 것으로 가정을 하고 슬픔을 표현한 만시를 지었던 것이다. 일행은 설죽의 시에 감동되어 저마다 눈시울을 적셨다. 기구와 승구에서 임이 떠난 서호 초당에 완연한 봄이 찾아 들었지만 주인 잃은 처량한 심정을 표현하였다. 굳게 닫힌 초당문에 비해 흩날리는 벽도향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구도이다. 설죽의 여성 정감은 전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죽은 임에 대한 애절감이 고조되고 있다.
설죽은 이 부분에서 임과 사별한 여인의 심정을 감정이입시켰다. 그 애상감은 결구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다. 짧은 인생살이에서 사별의 아픔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강물은 인생은 짧고 자연은 무궁하다는 논리가 전개된다. 이후 그녀가 성석전과 화답한 시는 무려 20수나 된다. 그녀와 성석전의 관계는 특별했다.
그녀에 대한 성석전의 애정 역시 매우 컸다. 성석전이 큰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것도 그녀와의 정분을 끊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성석전은 송강 정철의 문인으로 시에 능했다. 석전은 스승 송강이 기구한 유배 생활을 하는 것과 동학하던 권필이 죽은 이후로 세상을 비관하다가 술과 시로 여생을 마친 인물이었다. 다음 시도 석전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남산 잠령은 산수 가운데 으뜸
당신은 시인 가운데 최고입니다.
서로 만나 취하기도 전에
달이 양화진에 떨어진다오.
蠶嶺煙霞主
石田詩主人
相逢不覺醉
月墜楊花津
석전이 설죽을 아낀 데에는 설죽이 뛰어난 시적 재능을 지녔던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석전의 시풍이 청고(淸古)하다고 했는데, 위에서 설죽은 시의 주인으로서 석전을 사모하고 있다. 서로 만나 정회를 채 나누기도 전에 이미 달이 진고 만다는 표현은 석전을 사모하는 여심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석전이 설죽의 시재를 인정한 것처럼, 설죽도 그에 대한 사모의 정을 독실했던 것이다.
설죽의 자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의 행적을 자세히 살필 수 없지만 그녀는 개성적인 삶을 추구해 갔음을 다음의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타고난 시적 재능과 호방한 성격을 지녔기에 여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예속의 삶을 거부하고 말았다. 그녀는 당시 여성의 성년에 해당하는 15세 무렵에 집을 뛰쳐나와 당대 명성이 높던 선비들과 어울려 노닐었다고 한다. 이렇듯 유연한 그녀의 삶의 방식은 조선 중종 때의 명기 황진이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후 그녀의 삶은 당대 명망이 높았던 선비, 문인들과 시로 교유하며 호방한 삶을 이어 갔던 것 같다. 이 무렵 설죽의 대표적인 시로, 「등관악산차윤상사운」을 들 수 있는데, 이 시 역시 당대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결국 그녀는 숙명적 여종의 삶을 거부하고 여류 문인적 기질을 살려 당대 명사들과 교유하다가 후일 재상의 첩이 되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설죽이 노년까지 성석전과 관계를 지속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즉 그녀는 일정 기간 동안 그와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녀는 다양한 인물들과 사귀며 살아갔던 것으로 추측된다.
설죽이 남긴 시 가운데 자신의 형제들과 시를 주고받은 것이 있다. 한죽․ 칠송․초선 등은 그녀의 동생들로 모두 시에 뛰어났다. 이처럼 설죽의 형제들은 모두 문예 방면에 뛰어난 재질을 갖추었던 것이다. 이제 설죽의 여성 정감이 반영된 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 그리운 당신
설죽은 여성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던 시대에 첩으로 생애를 마감했던 인물이다. 그러기에 그녀의 시는 그리움과 고독감을 시로 승화한 것이 대부분이다. 설죽의 아픔과 서러움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간 동일 계층의 여인들의 것이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죽은 신분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졌기 때문에 그녀의 생애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녀의 단편적인 생애를 추적하면서 확인했지만 그녀의 생애가 매우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재상의 첩이 되기까지 많은 애환의 삶을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녀는 평범한 한 지아비의 여인이기 보다는 뭇 남정들과의 애정을 공유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임에 대한 그리움도 남달랐다.
낭군님 떠난 뒤에 소식마저 끊긴 채
봄날 청루에서 홀로 잠들어요.
촛불 꺼진 창가에서 무한히 우는 밤
두견새 울고 배꽃도 떨어져요.
郞君去後音塵絶
獨宿靑樓芳草節
燭盡紗窓無限啼
杜鵑叫落梨花月
낭군님을 떠나보낸 여인의 고독한 심상이 그려져 있다. 떠나신 임의 소식 단절과 함께 여인에게 외로운 생활이 이어진다. 화창한 봄날, 만물이 약동하며 고운 자태를 발하지만 여인의 외로움은 증폭되고 있다. 촛불이 꺼진 빈 방에서 여인 홀로 흐느껴 우는 정경에 애상감이 모아져 있다. 그리고 두견새의 처량한 울음과 말없이 지는 배꽃은 청각과 시각적 묘미를 더해 준다.
비단 장막 걷고 중문도 닫아거니
모시 적삼 소매는 눈물로 얼룩지네.
그리운 임은 지금 어디 계실까
삼경에 흐르는 눈물 견딜 길 없어요.
錦帷秉却掩重門
白苧衫襟見淚痕
玉勒金鞍何處在
三更殘淚不堪聞
비단 장막을 내리고 겹 문마저 내린 여인의 정한을 담고 있다. 여인 홀로 흐느껴 울기에 알아줄 이가 없다. 그런 가운데 여인의 고운 모시 적삼엔 임에 대한 그리움이 얼룩지고 있다. 여인의 그리움은 한밤을 지나 삼경까지 지속되어 홀로 빈 방을 지키는 여인의 심정이 절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용한 분위기의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다음 시를 보기로 한다.
제비 날고 앵무새 노래하는 긴 봄날
버들개지 날고 주렴의 향기도 날려요.
낭군님 다시는 약속 기일 잊지 마요
또 그러시면 애간장 다 타잖아요.
燕舞鸚歌春晝長
楊花凌亂撲簾香
郞君莫更佳期誤
孤妾從來斷寸膓
이 시는 전반부의 화창한 봄의 향연과 후반부 여인의 애상감 표현으로 짜여진 작품이다. 제비와 앵무새가 쌍쌍이 날며 홀로 남은 여인의 외로운 심정을 부추겨 끝내 마음속에 접어 둔 원망을 표현하게 되었다.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독백 속에 임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를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남녀가 이별할 때, 버들가지를 정표로 꺾어 주었다고 하는데, 흩날리는 버들개지는 떠나신 임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큼 강렬하다는 의미를 제시해 주고 있다. 다음 시도 이런 정서를 담고 있다.
제 모습 쇠잔한 연꽃 같구요
낭군님 마음 흘러가는 물 같아요.
흘러가는 물이야 물결 흔적 없지만
연꽃 향기는 멎질 않거든요.
妾貌似殘荷
郎心如逝水
水逝波無痕
荷殘香不死
남녀의 애정을 다룬 시이다. 유동적인 남성에 비해 정적인 여성의 면모가 그려져 있다. 여성에 비유된 연꽃은 시절을 따라 날로 쇠잔해 가지만 여전히 향기를 품고 있기 때문에 연꽃 특유의 향기를 발한다. 하지만 남성에 비유되고 있는 흐르는 물은 일시적인 물결을 일으키고는 이내 흘러가 버린다. 여기의 물결은 임과의 짧은 애정 행각을 의미한다. 무심한 남성의 이미지와 그를 못 잊는 여인의 정서가 뒤섞인 작품이다. 이는 설죽의 다른 시 「차서계운」에서 그대 마음은 연잎 위 이슬 같아 잠시라도 머물 수 없다는 것과 같은 구도이다.
이어 이별의 슬픔을 담은 시를 보기로 한다.
■ 슬픈 이별이여
설죽은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한 지아비를 모신 여인은 아니었다. 평범한 아내로 한 지아비의 사랑을 받는 행복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뭇 남성들의 연인으로 살면서, 연정에 따른 이별의 슬픔을 남겼다.
초승달과 난간이 주렴에 어른거리고
누대에서 잠 깨니 절로 수심에 쌓이네.
서풍은 이별의 아픔 아랑곳 않고
오동잎 흔들며 이른 가을 알려요.
新月紅欄卦玉釣
夢迴樓上自生愁
西風不解離腸斷
吹動梧桐報早秋
초승달과 고운 난간이 주렴 사이로 아른거리는 누대에서 잠을 깬 여인의 수심을 표현한 시이다. 초승달이 오른 새벽 무렵 여인의 이별 슬픔은 새롭다. 그리고 여인의 이별과 무관하게 불어오는 서풍은 오동잎을 일깨워 가을의 스산함을 알려 준다. 가을의 계절감과 함께 여인의 이별 정서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다음 시에도 이러한 정서가 그려져 있다.
이별 아픔을 생각하면
멀리 이별한 정이 그리워져요.
부질없이 서러운 신세
호수 가에서 평생을 지낸다오.
念別千般恨
懷歸萬里情
空將此身世
湖上寄平生
먼 곳 임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리운 심정을 표현하였다. 전체 시상이 신세 한탄조로 마무리되면서 이별의 심정이 드러난다. 호숫가에 홀로 남은 여인이 만 리 밖에 계신 임을 그리워하는 한편 이별도 서러워하였다. 설죽은 이 시에서 심각한 감정 표현은 하지 않았다. 이별의 슬픔을 홀로 참아내는 여성의 이미지를 표출하였다. 그러기에 임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은 시에 담지 않았다. 감정 절제에 따른 언어를 구사했던 것이다. 다음 시를 보기로 한다.
이별했던 강가에 시절이 뒤바뀌니
근심스레 흘린 눈물이 샘을 이뤄요.
귀뚜라민 내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베개 머리에서 무한히 가을을 알려요.
一別江頭歲月還
鰥鰥愁緖淚成泉
莎鷄不解離腸斷
無限秋情說枕邊
나루터를 배경으로 해서 지은 작품이다. 당시, 나루터는 오가는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무대였다. 여성 화자는 시절이 바뀜에 따라 임과 이별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귀뚜라미는 계절감을 더해 주고 여인으로 하여금 고독과 애상을 깊게 해 준다. 무심한 귀뚜라미는 이별의 슬픔에 젖은 여인의 마음을 헤아릴 길 없다. 처량한 가을밤이 깊어감과 함께 여인의 별한(別恨)도 깊어 간다.
탕자의 정이란 본디 가볍다지만
좋은 인연이 도리어 불행이 되었어요.
말 몰아 돌아오는 길 적삼 적시며
서강으로 머리 돌리니 아득하여라.
蕩子恩情本不堅
好緣還作惡人緣
歸衫淚滿鞭征馬
回頭西江却杳然
떠돌이 생활하는 남정네에게 정을 준 것이 잘못되었음을 뒤늦게 인식하고 후회하는 심정을 읊은 작품이다. 여인은 서두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남자의 마음은 경박하기 짝이 없다고 전제하고 나서, 일정한 동안 그와 함께 지냈던 추억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일시적인 만남은 남성이 제 길을 떠남으로써 종결되었고 여인의 가슴에 그리움만 남겨 주었다고 한탄했다.
여인은 어차피 떠날 임이기에 굳이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이별의 슬픔을 참아내며 눈물로 적삼은 얼룩이 진다. 이런 심정은 결구에서 떠나가신 임의 뒷모습이나마 눈에 새겨 두려고 돌아보는 순간에 더욱 증폭된다. 거기엔 떠나신 임의 모습은 뵈질 않고 그리움만 남아 여인의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이처럼 설죽의 별한시는 감정을 홀로 참아내는 한국의 전통적 여성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설죽은 이별의 감정을 조절하는 한편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여 아픔을 초연히 극복하는 여성 이미지를 시에 그려내었다. 그렇지만 여인의 가슴 깊은 곳에 별한의 아픔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전통적 이별 정한과도 연관이 있다고 본다.
■ 나의 살던 고향은
설죽은 어린 시절에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첩으로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서 어릴 적 고향은 그리움의 종착점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려져 있다.
벌레 울음 그치자 등불이 꺼지고
주렴이 흐릿하게 새벽안개 가르네.
아득한 고향은 어디쯤일까
창가의 달만 하늘에 남았어라.
土蟲消盡暗缸花
簾幕依俙隔曉霞
鄕國不知何處是
半窓殘月在天涯
벌레 울음소리가 그치고 등불마저 꺼졌다는 것으로 보아 새벽녘인 것 같다. 여인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여 창문을 열었다. 주렴이 여인과 뿌연 새벽안개를 사이에 두고 드리워져 있다. 이어 여인의 향수가 구체화되고 하늘에 높이 오른 달은 타향과 고향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새벽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은 향수에 젖은 설죽의 내면세계를 의미해 준다. 다음 시를 보기로 한다.
늦가을 강마을의 누대도 푸른데
아득하고 찬 물결 소리 문가에 들려요.
이 밤엔 무던히도 부모님 그리웁고
귀향의 꿈 깨니 달만 성에 오르네요.
秋後江村水欖淸
寒潮寂寞過門聲
今宵無限思親淚
歸夢難成月上城
늦가을 강마을의 누대는 강물 빛을 받아 푸르게 반사되었고, 차가운 물결 소리가 여인의 귀향심을 불러 일으켰다. 긴 밤은 설죽에게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게 했고 결국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말았다. 설죽은 꿈에서나마 고향으로 가고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달만 하늘에 떠올랐다. 늦은 밤까지 향수가 지속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홀로 남은 달은 향수에 젖어 슬퍼하는 설죽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다음 시는 고향의 부모님을 그리워한 시이다.
여러 해 떠돌며 눈물 흘렸는데
고향엔 늙으신 부모님 계셔요.
간 밤 무서리에 기러기 떼 놀라
하늘가 울음 그치더니 대오가 끊겼어요.
幾年流落幾沾裳
鶴髮雙親在故鄕
一夜霜風驚雁陳
天涯聲斷不成行
여러 해 고향을 떠나 살아 온 타향살이의 고달픈 애환이 담겨 있다. 타향에서의 고독감이 클수록 고향의 혈육에 대한 정은 더욱 간절하기 마련이다. 설죽이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어버이를 사모하는 정은 여느 여인과 다를 바 없다. 이렇듯 개인의 정서는 전구와 결구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간밤 무서리가 정답게 날아가던 기러기 떼를 혼란시켜 결국 기러기들의 행렬을 끊게 하였다고 하였다. 행렬에서 떨어져 외롭게 날아가는 기러기는 곧 설죽의 분신이다. 설죽은 외로운 기러기에게 자신의 고독한 심정을 전이시켜 이렇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다음 시는 고향이 그리워 꿈에 달려가려고 한 것이다.
강남의 가을비 쓸쓸히 내리고
하늘 멀리 병든 몸 눈물만 나와요.
복주에 제 집 있어도 가질 못하고
석천 서쪽엘 꿈길로 가려 해요.
江南秋雨正凄凄
臥病天涯無限啼
家在福州歸未得
夢魂長落石泉西
이 시 역시 설죽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설죽은 가을비 내리는 스산함 속에 병마저 겹쳤다. 객지에서 병마에 신음하는 여인 설죽의 고향 안동에 대한 향수가 구체화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남에게 예속된 삶을 살아가는 터에 고향을 찾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꿈을 통해 이를 해소해 보고자 한 것이다. 꿈에 고향의 석천을 찾아 가리라고 다짐해 보았다. 다음 시는 설죽이 객지에서 병든 몸으로 고향을 그리워한 것이다.
타향에서 병들어 더욱 슬픈 가을
편지 한 장에 온갖 사연 담아요.
천리 고향 돌아갈 계획 아득하니
홀로 누워 하염없이 울기만 해요.
天涯臥病倍悲秋
一片家書萬斛愁
千里故園歸計阻
不堪孤枕淚隻流
타향에서 몸져누운 여인 설죽의 슬픔과 향수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전체 시상이 어둡고 슬프다. 가을의 계절감과 함께 병든 여인의 향수는 그 무엇으로도 달랠 길 없다. 그래서 시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 한 장에 담아 보내기로 하였다. 고향에 편지를 보냈지만 아쉬움을 덜어줄 길이 없어 잠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고 하였다.
설죽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이처럼 다양하게 표현된 것은 결국 설죽이 타향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자신의 신분 한계에서 오는 복합적 감정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이처럼 애수를 담은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 내 마음 나도 몰라요
위에서 설죽의 애수가 담긴 시를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이는 설죽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설죽의 고독한 정서를 담은 작품을 보기로 한다.
산달이 촛불처럼 밝은데
산속의 밤 길기만 하여요.
찬 갈 까마귀 까악까악 울고
서리 맞은 잎 쓸쓸이 지네요.
山月皎如燭
山窓夜定遙
寒鴉啼啞啞
霜葉落蕭蕭
청명한 산속의 달이 오른 밤 여인의 외로운 심회를 표현한 시이다. 촛불처럼 맑고 고운 달이 뜬 밤은 깊어만 간다. 늦가을을 알려주는 갈 가마귀 울음과 단풍잎 지는 소리는 청각적 이미지로 다가 온다. 청각적 이미지와 시각적 이미지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전체 시가 차분한 가운데 진행되면서 고독감이 형상화되고 있다. 여인은 시에 등장하지 않았다. 여인이 객관 사물의 추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고독한 이미지를 살려 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면적으로는 자신의 고독한 정서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다음 시는 가을밤의 고독을 표현한 것이다.
비단 창가엔 반딧불 반짝이구요
풀벌레는 고운 우물가에서 울어요.
무정한 가을밤 풀벌레가
절 슬프고 처량하게만 해요.
螢火綺窓點
草蟲金井啼
無情秋夜物
令我自悲悽
반딧불 반짝이는 창가에 앉은 여인에게 가을을 알려 주는 풀벌레가 외로운 여인의 심정을 가눌 길 없게 하였다. 반딧불이 명멸하고 풀벌레가 우는 것으로 보아 늦여름과 가을이 교차되는 시점인 것 같다. 무정한 가을밤의 풀벌레 울음소리는 여인 내면에 깊이 잠재되었던 고독한 서정 자아를 자극하여 설죽으로 하여금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게 하였다. 이러한 고독의 정서는 긴 밤에도 이어진다.
맑은 밤 어두워지더니 강바람 일고
창가에 홀로 앉아 강물 소릴 듣네.
적적한 초당엔 인적이 끊기고
등불 하나 제 마음 달래 주어요.
淸夜沈沈風正急
窓間獨坐聽江聲
草堂寂寂無人到
一點殘燈照我情
초당에 홀로 밤을 지새우는 여인의 심정이 드러나 있다. 밤이 되어 강물에 물결이 일어 초당까지 들려오는 가운데 인적이 끊긴 초당에 외로운 등불만 여인의 짝이 되어 긴 밤을 위로해 준다. 여인은 고독한 여성 심회를 조용하게 시편에 담아내었다. 이는 「추규삼수중기일」에서 귀뚜라미 울고 반딧불 깜빡이는 밤에 외로운 여인과 짝해 주는 것은 은 항아리뿐이라는 표현과 동일하다. 이는 곧 외로움이 체질화된 여인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신세를 한탄하는 심정이 담긴 것이다.
주렴과 등불 긴 밤을 짝했고
화로의 남은 연기 향기처럼 피오르네.
평생토록 한스럽긴 청루객에게 몸 맡겨
울며 지내자니 제 가슴만 타요.
珠箔飄燈伴夜長
鴨鐪殘篆吐纖香
平生恨嫁靑樓客
泣損雙眸斷盡腸
긴 밤을 주렴과 등불을 벗 삼아 지새우고 나니, 화로 불도 거의 다 사그라질 무렵 남은 향기만 실처럼 가늘게 피어오른다. 화로가 밤새도록 열기를 품었다가 점차 식어지는 것처럼 설죽의 고독과 슬픔의 한도 긴 밤 내내 그러했던 셈이다. 그 여운은 새벽이 되어도 종래 사라지질 않고 실연기가 되어 피어오르고 있다. 전구에서 설죽의 내심이 비쳐지고 있다.
여기에 여종의 신분 비하에 따른 고독감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체념한 지 오래 된 터일지도 모른다. 다만 첩의 생애가 슬프고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 설죽의 내면에 신분적인 제한과 첩으로 살아가는 복합적인 슬픔을 읽어낼 수 있다.
■ 마무리
여종 설죽의 시를 살펴보았다. 설죽은 조선조 신분상 비천한 여종의 몸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신분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불행한 시대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여종이었지만 뛰어난 재주와 미모, 호방한 성격을 지녔던 탓에 일찍이 집을 나와 많은 남성을 연인으로 해서 살아갔다. 이는 설죽이 여종으로 생애를 마치기보다는 뭇 남성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기를 희망한 데서 비롯되었다.
설죽이 남긴 167수의 시는 첩으로 살아가는 여인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떠나가신 임을 그리워하는 그리움, 임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홀로 삭히는 이별의 정한, 떠나 온 고향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 첩의 애환 이면에 깊이 잠재된 고독한 여심 등으로 표출되었다. 설죽 시의 전반적인 경향은 슬픔에 잠긴 여성의 형상화였다. 설죽은 주어진 삶을 참아내는 한국 여인의 전통상을 답습하고 있었다.
실제로 설죽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계실'이란 존재가 당대에 그렇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신분이고 보면, 그녀의 삶이 고단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어려운 현실 여건은 그녀로 하여금 우수와 애환의 정서에 깊이 잠기게 했으며, 이러한 정서가 시에 반영된 것이다.
그렇지만 설죽은 격한 감정을 절제하고 홀로 아픔을 이겨내며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여 고운 시를 창작했다. 그녀의 시를 통해서 별리와 고독의 아픔을 초극하고 이를 시로 승화한 여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설죽의 시는 한국 문학의 전통 정서와도 접맥된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설죽의 시는 한국 여류 대표 시인인 황진이․허난설헌․매창 등과 함께 한국 여류 한시 유산을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하게 되리라고 본다. 이후 설죽에 대한 전기적 자료가 확보되고 그녀와 교유했던 인물들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토대로 하여 당대 봉화 유곡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문학 유산의 종합적인 검토 과정을 거쳐 설죽의 시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풍 잎 가득한 청암정에서 그 옛날의 설죽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