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고전음악감상실- 대구녹향(綠鄕)음악실.
대한민국 제1호 고전음악감상실- 대구녹향(綠鄕)음악실.
1946년 10월 중구 향촌동에서 축음기 한대로 문을 연 뒤
64년의 연륜이 쌓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전 음악실 !
창업자 이창수 옹(90세)은 클래식이라는 용어도 모르는
이 땅에서 야심 하나만 가지고 출발 했다.
특히 1950년 6.25 전쟁 피난지, 대구의 녹향 음악실은
대구에 머물렀던 양주동, 이중섭, 유치환, 양명문, 최정희 등
당대 최고의 문인·예술가들이 이곳 음악실에 죽치고 앉아
하루를 보냈다.
구석진 자리 어딘가에서 한국인의 애창가곡 '명태'의 가사가
만들어졌으며,
비운의 화가 이중섭은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 시절 예술인들이 남긴 갖가지 일화와 흔적은 대구 문화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수많은 예술인과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출입으로 북적이던
녹향도 홈오디오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조락을 피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더 많아졌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주인이 직접 서빙을 하고, 그래도 어려워
10여 차례 장소를 옮겨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의 주도로 녹향을 살리겠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것도 반짝이었다.
그동안 녹향은 순전히 이창수옹 가족의 희생으로 유지돼 왔다.
잘해야 하루 1~2명,
1인당 3천원의 입장료로는
매달 31만원의 임차료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이창수옹의 6남매는 녹향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와 부친이
음악실에 기울이는 애정을 생각해 매달 기꺼이 임차료를 맡아 왔다.
하지만 최근 아들이 부도를 맞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녹향의 폐관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다.
60대의 한 대구시민은 "녹향에서 음악을 들으며 젊음을 보냈다.
임차료가 없어 문을 닫는다니 가슴이 아프다.
대구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박물관, 기념관 등을 짓는 것도 좋지만
우리 곁에 마지막까지 남은 근대유산을 지켜 주는 노력도 필요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창수 옹은 "평생을 지켜온 음악실 문을 닫을 생각에 요즘
밤잠을 뒤척인다.
평생 손때가 묻은 LP, SP를 어디에다 처분해야 할 지도 막막하다.
누군가 작은 공간이라도 제공해주면 죽을 때까지 음악실을 지키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2010년 3월19일 밤 MBC 방송을 타고 이 소식이 전해젔다
대구시청과,60~70 년 대 녹향과 함께 젊음을 보냈던
지역 상공인들과 학계에서 녹향음악실을 살리기에
분주 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70 년을 한 길로 달려 온 이창수옹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2007년초 송죽거리
구 대구극장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지금의 자리 8번째 이사했다고 한다.
주간인데도 손님 없다 보니~ 네온간판은 불이 꺼져있다.
음악실 전경인데~70년대 이러한 구조로 유지 스피커 위치 변하지 않았다 한다.
메인스피커는 빈티지에는 틀립없으나~기종이 뭔지 사장님도 기억 못하신다~
전성기에는 성악가들이 작품 발표회 그래서 피아노가 있다.
소니 릴테이프가 전시용으로 모셔져 있다.
좌측편 앰프실 모습이다~메킨 7270 AMP와 소스기기들이 있다.
AR2 스피커도 세칸더리로 사용된듯 하다.
음악실 벽면에는 화려했던 전성기 신문과 사진이 있다.
1946년 오픈시에는 음악실 주력기로 축음기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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