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미스테리>
수세미가 사라졌습니다.
오늘 아침 설거지를 하던 중 일어난 일입니다. 이곳에서는 화장실에서 씻고 싸는 것 그리고 설거지와 빨래까지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아침 설거지 당번인 저는 “뺑끼통”이라고도 불리는 그 곳에서 평소처럼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릇을 다 헹궈서 내놓고 고무장갑과 퐁퐁 그리고 수세미를 걸어놓으려고 보니 수세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제가 쓰던 철수세미였는데 말이죠. 순간 당황한 저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기에 밖에서 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방안에서 수세미 보았느냐고. 그러자 그들은 웬 황당한 질문이냐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셋이서 함께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수세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그렇다면 수세미가 있을 만한 곳은 이제 한 곳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곳은 바로, 변기통 안입니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저도 모르는 새에 제가 수세미를 빠뜨렸고, 잡수통(바케스) 물을 한 번에 비우는 와중에 수세미도 함께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저는 수세미를 버린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수세미가 없어진 이 미스테리 같은 상황에서 저를 포함한 방사람들은 황당함을 넘어 그 어이없음에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수세미를 빠뜨렸든 수세미가 알아서 빠진 것이든 더 신기한 일은 수세미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변기는 막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변기까지 막혔더라면 붐비는 아침 화장실에 큰 파장과 혼란을 불러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세미는 사라졌지만, 그래서 새로 수세미를 구할 때까지 설거지 하는 데에 좀 애를 먹겠지만, 덕분에 간만에 다같이 펑펑 웃을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 아침 그 호탕한 웃음이 방안에 불어넣은 활력이 반가웠습니다. 2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서 슬슬 날카로워지던 서로의 기운을 순식간에 전환시켜준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당분간은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게 서로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1. 4.26.
봄비 내리는 오후에, 날맹 드림
첫댓글 뭐랄까, 이런 일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새삼 신기하네요. 방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이 편지는 무려 '등기'로 왔는데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날에 왔었어서 조금 늦게 올리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