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행(四川行)28
“호오.......”
얼굴을 일그리고 있는 아유타왕의 뒤쪽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저게 감탄할 광경은 절대로 아니었던 것이었다. 순
간 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어서 오시오. 사주(寺主)! 그렇지 않아도 찾는 중이었소”
아유타왕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이미 자신의 병력들의 얼굴에
일말의 두려움이 비쳐 나오고 있었다. 곰같은 덩치의 놈이 보여주는 투
지에 사기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었다. 이대로는 전투는커녕, 진군조차
힘들었다.
“저자들을 좀 치워주시겠소..... 무척이나 거슬리는 군요..”
“오호호호......... 그럼...... 생각좀 해 볼까요?....음....어쩐다?”
다리를 꼬고 앉으며 괜히 궁색한척하는 다래가였다. 그는 사실 아유타왕을 곱게 보고 있지 않았다.
아유타왕은 양다리를 걸쳤다. 자신의 색랍사와 소뢰음사에 모두 친분을 두고 있었다. 한 보름 쯤 전이었나 자신들이 한참 국경에서 병사들과 대기 하고 있을 때, 소뢰음사의 마애삼존불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의 품속에서 옥새가 발견되었다고 들었었다. 순리대로 풀자면 자신들에게 일을 맡겨야하는 것이 옳았다. 헌데..... 소뢰음사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그였다.
“.................”
아유타는 눈을 좁혔다.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슬쩍 보니 옥새 사건 때문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잘못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혹 옥새사건 때문에 그러시오 사주?”
“음?.....”
정곡을 찔린 다래가가 경호성을 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유타는 확신했다. 자신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 뭘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본 왕은 양다리를걸친 적이 없소..... 옥새는 원래 명국의 영친왕이 갖기로 되어 있었소....본 왕은 저기 희명공주를 인질로 보관하는 것이었고....”
“...........”
다래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의 눈이 망루로 향했다. 살풋이 이해가 가고 있었다.
“헌데 소뢰음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옥새를 탈취해간 거요.... 그로 인해 본 왕과 영친왕의 계약은 파기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출병을 해온 것이오, 원래 희명공주는 영친왕이 득세하게 되면 본왕의 첩으로 거둘 생각이었소, 저렇게 인질이 될 인물이 아니었단 말이오....”
“ ! ”
다래가는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현 황제의 눈을 돌린다. 서장의 아유타
왕이..... 그리고 그 사이를 틈타 옥새를 차지하고 정변을 일으킨다.......
다래가는 웃음이 나왔다. 한나라를 차지하겠다는 인간이 머리가 이렇게 밖에 안 돌아 가다니...... 당금 명의 황제가 바보로 보이는 인간들이 많은 것 같았다. 만일 다래가가 영친왕이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군부를 장악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외부의 도움 없이 해결했을 것이었다. 설사 강호인들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성공한들 국토가 좁아지면 무슨 소용인가?
“오호호호....그렇군요 왕이시여..... 진작 그렇게 시원스럽게 말씀해주셨으면 오죽 좋았겠습니까.....오호호호”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다래가가 웃어댔다. 언제 들어도 소름 돋는 아유타였다.
“그렇다면 제가 사과의 뜻으로 저 자들을 치워 드리지요....
겐단타! 가서 저 건방진 놈을 해치워라........알겠느냐?“
“옛 활마불이시여......”
낭랑한 대답과 함께 한 검은 승복을 입은 겐단타라고 불리는 승려가 허리
를 깊숙이 숙이더니 사라졌다. 그와 함께 다래가가 이번에 데리고 온 이십
여명의 승려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호호호호, 이제 조용히 즐기면서 지켜보시지요....아유타왕님”
느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뒤로 손을 뻗었다. 언제 있었는지 왠 소녀
가 그의 손아귀에 끌려 와 그의 앞에 앉혀졌다. 그는 눈을 전장으로 향한
채 손을 소녀의 가슴에 집어넣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제 열 댓살이나 되었을까 또랑한 눈이 상당히 귀여운 소녀였다. 채 여물
지도 않은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했다. 쿠파는 눈을 돌렸다.
‘변태같은 자식!’
쿠파는 그가 싫었다. 무림인이랍시고 사람을 깔보는 것도 그렇고 저렇게
어린 여자들에게 변태짓을 하는 것도 보기 싫었다. 그의 눈이 무섭게 전장
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 한켠에서.........차라리 저 긴머리의 청년이 이겼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니기미......와봐! 와봐!”
주먹을 흔들며 상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금 무정의 우측면
을 맡고 있었다.
“글게요 성님..... 사고 한번 크게 칠라는데 영 저 잡쉐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안주네!”
하귀가 질세라 소리를 질렀다. 그는 무정의 좌측면을 막고 있었다.
“............”
고죽노인은 창대를 잡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제일 현명한 것은 이 자리
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헌데 이놈들은 한수 더뜨고 있었다. 도대체가 겁이
라는 것이 없는것인지.... 아니면 전장의 개념이 안서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그였다.,
무정은 가물거리는 눈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일행이 겨우 막은
일격이었다. 어떻게든 해야 했다. 허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힘은 여
기저기서 돌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를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 고
죽노인의 앞으로 나머지 기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은색의 갑주를 걸
친자가 맨 뒤였다.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도가 느껴졌다. 고죽노인
도 그런 기도를 보고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료직은 목숨을 걸었다. 이젠 더 볼 것도 없었다. 그가 가진 모든 힘을 이끌
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육척짜리 거검에 허연 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는 무공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이런....”
고죽노인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렀다. 상대는 무공을 하는 사람이다. 거기
다 말까지 타고, 피할 수 없었다. 그러면 무정이 죽는다.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자신의 내공수위를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언뜻 보니 자신보다 좀 떨어지는 정도였다. 상귀나 하귀하고는 비교도 안 되었다. 상귀, 하귀는 내력이 충실한 것이 아니라 그 쌍창술이 기가 막히게 호흡이 맞은 것뿐이었다. 그들은 일초지적도 안될 것이었다. 더구나 검기를 동반한 마상격은 그 위력이 대여섯 배로 보면 된다. 그의 기력을 모두 쓴다고 해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두발을 굳건히 땅을 딛고 서 있었다. 그의 단창에 영롱한 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상귀, 하귀는 두 눈을 크게 역팔자로 휘였다. 살아남은 약 사십여 기의 기
마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철추를 쥐었다. 기마에게는 이게 제일 좋았다.
“두두두두두”
진형이 바뀌었다. 학익진이 아니었다. 그냥 넓게 서서 오는 공격이었다.
어느 순간 가까이 오면 자유스럽게 바뀔 것이었다. 이래서는 철삭을 사용
할 순 없었다. 상대의 인솔자는 경험이 많은 사람일 것이었다. 상귀의 눈
이 빛나고 있었다.
“니기미.......좀 아는 쉐이네.....쓰벌..... 하귀야 그냥 던져!”
상귀의 외침이 들렸다. 그는 공중을 향해 철추를 던졌다. 두개의 철추가
공중을 날았다. 하귀도 같이 던진 것이었다.
“따당”
철추가 마갑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솔직히 말 다리에라도 감겼으면 하
는 그들의 마음이었지만 결과는 어이없게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
의 신형이 십오장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멍청한 놈들..... 그걸 공격이라고 하냐! 냉큼 내 뒤에 서 있어!”
고죽노인의 일갈이 터졌다. 안하느니만 못한 공격이었다. 철추는 그다지
훌룡한 무기는 아니었다. 허나 처음에 성공한 것은 그들이 몰랐기 때문이
었다. 안다면 아무 소용없는 무기가 철삭에 달린 철추였다.
상귀와 하귀는 뭐라 하려다 고죽노인의 얼굴이 심상치 않는 것을 보고 잽
싸게 노인의 뒤에 숨었다. 고죽노인, 상귀, 하귀, 무정순으로 일장 간격으
로 이루어진 직선 형태가 나타났다.
“ ! ”
료직의 눈이 커졌다. 어이없는 놈들이었다. 아무리 무공을 지닌 놈들이라
지만 자만이 지나치다. 그의 손이 하늘로 들리며 입이 열렸다.
“직선으로! 그대로 좌우로 연차격진(連次擊陣)!”
일갈이 터지면서 진영이 좌우 두 줄 형태로 바뀌었다. 그래도 돌진 할 셈인
것이었다. 고죽노인은 신형을 앞으로옮겼다. 우선 자신이 공격대상일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일행을 안전하게 해야 했다. 십여보정도 앞으로 간 그는 기식을 고르기 시작했다. 십장안으로 들어온 기마대였다.
“.............”
명각의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료애를 느껴본 그였다. 그런 그의 동료들이 저기서 목숨을 걸고 있었다. 자신은 ....... 여기서 그냥 전혀 모르는 남남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명경이 눈이 명각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명각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명각은 차기 방장으로 지목되는 사람이었다. 함부로 처신해서는 안 되는 그였다. 허나 그는 명각의 마음에 자리 잡은 무인의 본능을 잘 알고 있었다. 이성이 아무리 과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는 조용히 신형을 옮겼다. 명각의 눈앞을 지나 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형, 뭐하십니까? 안 갈껍니까?”
“사....사제?.....”
명각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다니....어딜 간단 말인가? 이대로 등을 보이
며 떠나자는 말인가? 그럴 리 없었다. 무공은 높지 않았지만 그 의기만은
청천을 떠도는 명경이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었다.
“전 저기 무시주 일행을 도우러 갑니다. 불자의 도리도 있지만 이것
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전 구경만 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무공이 형편없습니다. 이 명경을........ 지켜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명각의 눈에 미소를 지으며 빗속에서 말 앞에 서있는 명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일순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질 않았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제.............. 지켜달라고?......어디서 그런 말을 하는가! 난 자네의 사형이다.! 지켜주마, 나 명각!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사제를 지켜주마!”
대호(大虎)의 포효인가......쩌렁쩌렁한 울림이 중인들의 귀에 울렸다. 가
슴이 벅찬 명각이 순간, 올라오는 감정에 내공을 실어 토해낸 것이었다.
그의 신형이 자신의 말로 향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무시주...... 당신은 이제 아시겠습니까? 힘이란 무공이 아닙니다. 진정한 힘은 목숨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선재..선재..”
나직한 구여신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의 제자들의 손에 모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무정은 무인의 혼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당패성도 주먹을 굳게 쥐고 떨고 있었다. 허나 그의 생각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그의 안색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그의 눈에 명각과 명경이 말을 타고 전장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미친 짓이었다. 저건 미친 짓거리 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라면 저기에서 단 일각도 있고 싶지 않았다.
당현은 슬쩍 자신의 가솔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형편없었다. 다들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지금 자신의 가슴속에서는 무인의 자존심이 주최할 수 없을 만큼 피어오르고 있는데 이들은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대제자 당욱도, 당패성도, 당혜도, 그 외의 모든 식솔들과 몇몇 장로들도.......심지어 당세극조차 얼굴은 태연하지만 뒷짐지고 있는 손이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그도 두렵다는 말이었다.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수족 같은 몇몇 원로들뿐이었다. 이미 세수가 팔십을 넘긴........
“하아.......내가 부덕했음이야.......”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 얼굴로 맞는 암격제였다. 그의 주위로 몇 명의 원로들이 그 속뜻을 눈치 채고 모여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앗~”
“콰앙”
“하얏!”
“콰앙”
고죽노인의 입에서 일갈이 터질 때마다 기마가 스치고 지나갔다. 고죽노
인은 지금 기가 서린 단창으로 그 긴 기마의 행렬을 막아내고 있었다. 벌
써 십여기의 마상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그였다. 그의 신형은 어느덧 다섯
걸음을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연속공격에 내력이 울렁 거리고 있었다.
“니기미......”
상귀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렀다. 눈앞의 고죽노인은 혼신의 힘을 다하
고 있는데 자신은 이리도 편하게 뒤에서 숨어있는 것이었다.
한심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노인네를 졸라 내공이라도 배웠다면, 아니면 초식이라도 더 연습했다면 지금 이런 꼴은 아닐 것이었다. 그의 눈이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쓰벌 하귀야 일루와!”
하귀를 부른 그는 고죽노인의 뒤에가 그의 어깨를 받쳤다. 상귀가 얼른 와
서 상귀의 등을 받쳤다. 세 사람이 한 몸이 된 형상이었다.
“ ! ”
고죽노인은 흘긋 뒤를 보곤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는 이런 것이 필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력으로 막아내는 것인데 이럴 필요는 없었다. 허
나 이 우거지 화상들은 비장한 얼굴로 팔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하긴
..........자꾸 뒤로 밀리니 이들이 도움이 될 것도 같았다. 그의 몸에서
내력이 다시 한 번 솟고 있었다.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으음.....”
로얀은 침음성을 흘렸다. 상상외로 저 노인의 공력이 높았다. 자신은 대뢰
음사의 천뢰신공(天?神功)을 육성가량 익힌 터였다. 저 노인은 그런 자신보다도 훨씬 상위의 인물이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멀리서 자신의 부하들이 양쪽으로 한바퀴씩 돌아오고 있었다. 이미 마지막 공격이 노인에게 가해지고 있었다. 저 엉성한 자세에서 마상격을 막아 낸 것이었다. 놀라운 무공이었다. 그의 두발이 말의 배를 박찼다. 이젠 끝내야 했다. 그의 눈에 노인의 입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