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김형진
날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샤워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라도 목욕을 하지 않으면 몸이 개운치 않아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언제나 몸이 해맑아 티끌 많은 세상에 사는 나와는 먼 거리에서 살 것 같다. 어쩌면 집집마다 욕실이 있는 요즈음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옷을 벗고 목욕을 하지 않았다. 농사철 들일을 하고 돌아오면 등목이 고작이었고, 겨울철 몸이 근지러우면 데운 물에 적신 무명수건으로 가슴과 등을 닦아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목욕을 했다. 어둠침침한 부엌에 들여놓은 큼직한 통 속에 들어앉아 정성스럽게 몸과 마음을 씻었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 몸을 자주 씻지 않는 편이다. 여름철 외출에서 땀을 많이 흘리고 돌아온 때라야 샤워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하는 것도 귀찮아할 정도다. 조상의 제삿날도 제사상 앞에서야 목욕재계하지 않은 나를 알아차리기 일쑤였다. 화장실 안에 있는 욕조는 맥없이 아가리만 벌리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다가 담배까지 피워 몸을 자주 씻는 사람들로부터 타박을 받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내 몸에 밴 내 냄새를 말끔히 씻어내지 않고 사는 나를 미개인 대하듯 한다.
점심을 자주 먹으러 다니는 밥집 아주머니는, 좁은 주방에서 날마다 음식을 조리하다 보니 자기 몸에는 음식 냄새가 배어 있다고,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난다고, 병원에 가면 의사가 밥집 아줌마냐고 묻는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늦가을에 야외공연을 관람하고 왔다는 여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져 떨고 있는 자기를 본 옆에 앉은, 건설현장에서 바로 온 듯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겉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더란다. 그런데 옷에서 땀 냄새가 나더라고, 몇 번이나 코를 벌름거리며 맡아도, 맡아도 그 냄새가 싫지 않더란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목욕을 하고, 하루에 한 번 이상 옷을 갈아 입는 사람들에게선 무슨 냄새가 날까? 비염으로 냄새를 잘 맡지 못해서인지 내 코로는 가름할 수가 없다. 가끔은 비염을 뚫고 콧속을 자극하는 향수 냄새가 있긴 하지만.
한때 육감적인 아름다움으로 이름을 떨치던 미국 여배우는 잠자리에 들 때면 속옷도 잠옷이 아닌 샤넬5만 몸에 두르고 침대에 눕곤 했다 한다. 그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자 샤넬5는 전 세계에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젊어 한때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 적이 있었다. 5년 넘게 골초로 살아온 터라 금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끊을 생각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밖에 나갈 때는 몸에 진한 향수를 뿌렸다. 그때 내가 거처하던 집은 낡은 한옥이어서 집 안에 목욕시설이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대중목욕탕에 가곤 했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말에 의하면 향수가 몸에 밴 냄새를 중화시키지 못하고 체취와 합성하면 오히려 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했다. 친숙함과 낯섦이 어우러져 고약함으로 타락하는 현상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 휘말려 나를 잃어버리고 산 적이 그때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아내는 식구들이 벗어놓은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냄새를 맡는 버릇이 있단다. 옷에 밴 냄새를 통해 남편, 아들, 딸의 냄새 맡는 게 재미있어서란다. 계속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눈을 감고 코만 벌름거려도 식구들 옷의 주인을 알아맞힐 수 있게 되었단다.
몸을 자주 씻고 옷을 자주 갈아입는 사람들. 씻고 갈아입어 지워버린 자기 냄새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향수를 몸에 두르고 잠자리에 드는 여배우와 그녀를 추종하는 여성들. 그들에게서도 사람 냄새가 날까? 미개인인데다가 후각까지 시원찮은 나로선 그 해답을 알아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