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까?
Text Nmb10,1-10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3)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7)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8)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1. 한때, 우리는 우리나라를 말씀의 홍수 시대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기근 시대가 올 때를 대비하여 은혜받을 수 있을 때 은혜를 많이 받으라고도 했습니다. 어쩌면 요즘이 말씀의 기근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메시지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말씀 기근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하나님 말씀의 기갈이라는 결과는 같고, 하나님 말씀의 기갈로 인하여 나타나는 결과도 같을 것입니다. 말씀의 기갈 시대를 예언한 아모스 예언자는 하나님 말씀의 기갈은 젊은이들이 쓰러진다고 하였습니다.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그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8,11-13) 예언에서 젊은 남녀는 그 시대의 가장 건장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요, 그들이 쓰러진다는 것은 꿈과 이상과 미래가 쓰러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가 바로 그 시대라는 것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묻지마 살해와 무차별적으로 아무나 살해하겠다는 예고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젊은이들입니다. 누구나 느끼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공익적인 꿈과 이상은 사라진지 이미 오랩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늘리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삶의 이유요 목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릴 때 어찌할 줄 몰라 극단적인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한 태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등한시하였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영적 감각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 삶의 목적과 목표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게 하고자 하며 성령님의 권능을 나의 능력으로 삼으려는 진지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나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의 나팔 소리는 당시 광야 길을 가던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동하게 하기 위한 소리였습니다. 잠시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던 사람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2. 1-7절 말씀은 유대인들이 진행하거나 소집을 할 때 나팔을 부는 법입니다.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소집 나팔 소리와 행진 나팔 소리를 잘 구분하여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나팔을 잘못 불거나 나팔 소리를 잘못 들어서 규칙에 따르지 않는 행동이 나온다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떤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든 늘 나팔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나팔 소리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는 부는 나팔 소리마다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나팔 소리의 의미를 알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으므로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의 크기나 횟수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허허벌판을 지나고 있었지만 젊은 장정만 6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나팔소리가 필요했다면, 오늘 우리 사회는 허허벌판에서 이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서로의 안전과 효율적인 이동을 위해 교통규칙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통법규들도 많이 바뀌어서 고속도로 지정차로제, 우회전 때 보행자 우선법, 전동스쿠터 운행법 등 새로 생기거나 달라진 법규가 많습니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나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사람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교통 싸인을 지키는 것은 더 큰 사고로 말미암은 어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교통 신호와 규칙보다 더 중요한 싸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신호입니다. 빨간 불도 있고 푸른 등도 있으며 황색등과 유턴표시등도 있습니다. 성도가 예배 시간에 예배당으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갈 때, 하나님께서 빨간색 불을 켜서 말씀하십니다. ‘안돼. 멈춰. 성일을 지켜야 해.’라고. 은혜받으러 가다가 주저하면 하나님께서는 푸른 신호드을 켜서, ‘고! 멈추지 말고 계속 가!’라고. 목적지를 지나쳐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유턴신호들을 켜서 ‘여기서 돌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들릴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많은 선지자들과 사역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듣지 않는 인생들을 답답해 하셨습니다. “(25)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26)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렘7,25-26) 부지런히 말씀하였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렘7,13) 이런 말씀은 성경 곳곳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광야의 은 나팔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자들에게 은 나팔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부터 자연의 소리, 꼬마의 노래 소리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귀 기울이면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은 나팔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큰일부터 사소한 일에서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나팔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신호등을 켜실 때, 하나님의 신호에 순응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혼란한 시대, 가정과 학교, 직장과 길거리 등 곳곳에 폭탄이 배치되어 언제든 터질 수 있게 된 오늘을 극복하고 피해 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요 승리하는 길입니다.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리십니까? 늘 그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자리하고 계십시오. 그리고 들리는 소리에 순종하십시오.
3. 다음, 8절을 봅니다.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나팔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영원히 지켜져야 할 율례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사역자들은 ‘나팔처럼 크게 소리를 내어’ 백성들의 죄를 일깨워야 하며(사58,1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먼저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고, 둘째는 백성들의 동태를 늘 주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나팔 소리는 많지만 가장 공신력 있는 소리는 바로 제사장들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팔수인 제사장들이 타락하거나 한눈팔다가 나팔을 제 때에 불지 못하거나 불지 않거나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 사사기는 당시의 비극적 혼란 상황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삿7,16과 삿21,26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들리는 나팔 소리가 없어서 자기 소견에 옳다고 여겨지는 대로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복을 받은 룻이 있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권위 있는 나팔수가 된 사무엘이 있습니다. 당시 나팔수였던 엘리 제사장은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땅에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덩달아 나팔수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지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 권위를 무시하는 제사장 엘리를 한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하며 존중하여 그의 축복기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나이부터 그 제사장 밑에서 순수하게 시중들며 자라났습니다. 그런 믿음이 한나에게는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하였고 그런 순수한 섬김이 사무엘에게는 아주 훌륭한 나팔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믿음이 좋은 왕이 믿음이 좋다고 소문난 여인의 집에 갔답니다. “이 집의 최고의 손님은 누구였나요?”하고 물었더니, “임금님이십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왕은 “아니... 예수님이 아니고요?”라고 되묻자, “예수님은 손님이 아닙니다. 내 주인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분입니다. 나는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하는 답을 듣고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나고 성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을 수종들고 있었지만 성전에서 하나님의 제물을 훔쳤던 것을 보면 자기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분을 받아 교회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수종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가 주인인 양 하는 것은 들리는 말씀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그냥 제사장 노릇하는 아버지였을 뿐이고 자기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백성이 묵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말씀의 종이 아닌 주인 노릇하다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나는 주의 사역자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사역자들은 가장 공신력 있는 나팔수입니다. 내가 듣고자 하면 그 사역자가 누구든 그를 통하여 가장 공신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행여 그가 말씀 사역을 생활비를 버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할지라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가장 공신력 있는 나팔수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9-10절입니다. “(9)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전시에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불었고 거룩한 절기의 집례를 알릴 때 불었습니다. 전쟁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따라야 하고 평화로운 성회가 있는 날을 살 때에도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듣고 따라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들은 어려울 때 어려워서 하나님을 찾고 평안할 때는 감사해서 하나님을 찾아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려울 때는 어렵다는 핑계로 하나님 찾기를 주저하고 평안할 때는 평안해서 하나님 찾기를 잊어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시련을 당할 때나 평안할 때나, 주님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방금 하늘에서 나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한 구절만이라도 생명의 말씀으로 붙들기만 하면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방탕하던 어거스틴은 롬13,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말씀을 읽고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을 따르던 무디는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뽕나무 꼭대기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골프 경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골프장에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골프장의 환경을 자신의 실력이면 충분히 이겨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다보면 반드시 실수가 나와 경기를 망칩니다. 골프장의 코스, 그날의 기후, 자기 몸의 컨디션 등에 최대한 맞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경기를 잘하는 비결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들으려 애쓰는 것이 변수가 많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지금 형편이 어떻든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있습니까? 그 나팔 소리가 있어야 정상입니다. 모두 그러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