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이 극을 당하는 것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것이 관이 설기되는 상황, 즉 관설이다.
관설이란 사주 팔자 내에 용신으로 들어가 있는 관성(이 때는 정관, 편관을 가리지 않는다)이 인성이나 비겁으로 인하여 힘을 잃는 경우이다. 관이 용신이 아닌 팔자는 신약사주로서 인성이나 비겁은 일간을 생부하여 도와주는 용신으로 해석한다.
이 관설이 그토록 무서운 이유는 관이 아예 충극을 당하여 파괴되는 경우는 재빠르게 다음 대안을 세울 수가 있으나 관이 설기가 되는 상황에서는 가뭄이 들어 천천히 땅이 메마르듯 나의 이익과 권위가 서서히 붕괴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관견관이 되면 직장에서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박차고 나오는 것이다. 이 때는 아예 박살을 낸 것이므로 다른 회사를 들어가거나 내 가게를 차린다거나 하여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개척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관설이 되면 직장에서 인정도 못 받고 스트레스는 다 받으면서 사표를 던질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성이 과하면 식신상관을 극제하므로 인왕자에게 있어서 사표를 던진다는 행위는 목숨을 걸어도 나오기 힘든 행위인 것이다. 차라리 회사에서 알아서 나를 해고해주길 바란다.(실제로 인왕자들은 그것을 바라면서 상식을 넘는 이상한 짓을 할 때가 있다.)
관성이란 일간인 나를 제어해 주기도 하지만 안하무인을 불러오는 비견겁재를 제어해 주므로 관이 제대로 된 명식은 공명정대한 상황을 추구하고 본인도 그렇게 행동하며 자신의 이권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이권도 지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관성이 설기되어 제 역할을 못 하게 되면 자신의 이권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눈치가 없으며 본인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곧장 패배를 맛본다.
관설의 진정한 무서움은 처음에는 좋았다가 나중으로 갈수록 안 좋아지는 형태라는 것이다. 이것이 몇년, 몇십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구리가 처음부터 팔팔 끓는 물에 넣으면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미지근한 물에 넣어 놓았다가 천천히 온도를 올리면 익는 줄도 모르고 죽어가듯이 관설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며 서서히 그 삶을 잠식해 나아간다.
그래서 관설의 대안은 대운에서 재성을 보는 수밖에 없다. 운세에서 재성이 들어오면 사주팔자 내의 왕한 인성과 처음에는 충을 하여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상처를 극복해 내며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비견겁재가 너무 왕하여 관설되면 인성이 왕하여 관설되는 것보다 알아채기가 어렵다. 하지만 비겁이 왕한 사주는 쟁재를 막을 수 없으므로 관이 있다 하여도 팔자 내의 쟁재를 막아주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는 관설로 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