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재미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깨우침, 깨달음에 관하여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명리학으로 불교 공사상에 대하여 접근한 사람이기 때문에 음과 양을 나누지 않는 무극이 불교에서 나오는 불성, 무아라고 생각을 한다.
결국 부르는 말만 달랐을 뿐 본질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양 철학은 대부분 이러한 무극, 무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들을 한다. 그 착각이 무엇이냐? 깨달은 자는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색깔로 따지면 '검은 색'이 되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아무 것도 희망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즐거움도 없는 그저 허무한 상태... 그것은 마치 텅 빈 검은색 아니겠나?
그래서 무아를 잘 못 이해한 자는 꼭 이렇게 묻는다.
"스님, 그렇게 부처님 말씀대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집착을 내려놓고 내려놓다 보면 결국 허무해 지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질문은 법륜스님의 방청객들과의 소통에서도 나왔던 질문이다.
과연 깨우치면 마음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허인 검은 색이 되는가?
그것은 마음수련을 잘 못 한 것이다. 음양, 공, 철학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머리와 가슴 모두 새카맣게 탄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정말로 초월한 상태는 검은 색이 아니라 "투명한 색"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나를 감추며 타인들에게 의식되지 않는 것이다.
축구에서도 좋은 심판이란 그가 경기장 내에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심판이지, 좋은 판단을 내렸다고 칭찬받는 심판이 아니다.
만약 깨우침을 잘못 이해한 자가 투명한 색이 아닌 검은 색을 갖게 되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냐면
철학으로 머리를 좀 채우고 명상으로 가슴을 조금 비웠다고 하여 나만의 자유를 내세우고 주변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타인들을 오히려 괴롭게 만드는 사람, 더욱 완고한 자아정체성을 갖고 차갑게 식어버린 블랙홀처럼 주변 모든 것을 공허로 만드는 괴물이 되고 만다.
우리 주변에서는 수행을 꽤나 했다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을 많이 볼 수가 있다.
그들은 잘못된 길을 찾아냈던 것이다.
진정한 무극, 무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검은 색이 아니라 투명한 색이 되는 것! 그렇기에 주변의 색깔을 내가 가리지 않아 잘 융화되고 기쁨과 슬픔도 함께 누리며 타인의 색깔이 나를 통하여 더욱 잘 비칠 수 있도록 하는 것, 타인의 생각과 사상을 이해하는 것, 나 자신이 아닌 주변을 더욱 고려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색깔에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마음은 항상 투명한 상태를 유지하여 순수한 상태를 잃지 않는 것이다.
결국 깨우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충돌하지 않고 순수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말이 쉽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다.
단순히 사회성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이다. 하지만 도전하고 싶은 길이다.
첫댓글 '충돌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 들이기'
깊은 공감 입니다.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빈배 이야기...같습니다.
잘 안될 때가 더 많아서 이렇게 좋은 글을 또 만납니다....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제일 쉽지만 제일 어렵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