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을 지나 일간지 구독을 하나 더 늘렸다. 기존에 한겨레를 구독하고 있었고, 이번에 새로이 경향신문을 구독하게 되었다. 모두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언론이다. 설연휴를 맞이해서 지국에 전화를 해서 토요일 하루 신문을 넣지 말라고 알리고, 토요일자 신문은 사서 볼 마음을 먹었다. 신문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포항에 들어섰다. 건물들이 보이고 가게들이 보였다. 처가로 가는 길에 나는 거리의 가게들을 살폈다. 편의점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편의점에서는 신문을 살 수 있을 것이기에. 다음 날 아침 산책 삼아 그 편의점들을 돌아다니며 신문 파는 편의점을 찾아 신문을 사야 했으니까 말이다. 처가에 도착해 서울에서 배달온 신문들을 앉아서 찬찬히 읽고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 출근시간에 맞춰서 일어나는 습관에 일찍 일어났다. 옷을 껴입고 전날 처가에 들어올 때 봐 두었던 편의점으로 향했다. 첫 번째 편의점에는 아예 신문이 없었다. 또 다른 편의점으로 갔다. 그 곳은 좀 더 떨어진 곳이었지만, 아내가 전날 들어오는 길에 보니 그곳에는 신문이 있다고 했다. 신문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신문은 없었다. 그 곳에 있던 일간지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였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없냐는 질문을 했다. 안들어 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가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을 챙겨먹고, 뭐라도 소일거리가 필요해 신문을 사보자란 마음이 들어 나는 차를 몰고 신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포항 시청 근처까지 가면, 그곳에는 신문 파는 곳이 있을거라 예상했다. 그래도, 시청인데 나름대로의 여론을 읽어야 하는 관공서 근처에는 신문파는 곳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포항 시청으로 향했던 거다. 편의점이 많지 않았다. 한 군데 들러보니 앞서 방문한 편의점과 동일한 상황. 조선과 동아만 있었다. 다른 편의점을 찾기 위해 차를 몰아 돌아다니다가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뜻하지 않게 차선을 잘못 들어 멀리까지 나가게 되었다. 터미널로 가보자. 시외버서 터미널에는 그래도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신문이 있겠지. 잠깐 불법주차를 하고 뛰어 터미널로 들어갔다. 어지간한 신문이 다 있었다. 내가 찾는 경향신문이 있었다. 한겨레 신문은 없었다. 이건 뭐지? 왜 없지?
진보 성향의 두 신문이 가판대에서 보이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봤다. 경북 사투리와 경남 사투리가 다르듯이, 정치 성향도 약간 다르듯이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부산을 떠나고 얼마전까지는 그랬다) 대구와 포항의 정서가 다를 것이라고, 내가 아는 포항 출신 지인들은 야권 성향의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포항이 완전한 여권 도시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닌듯 하다. 포항은 이명박 전대통령의 고향, 적어도 나에겐 포스코보다 포항제철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그리고 박정희, 박태준으로 연결되는 도시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선 민주화란 표현보다 산업화, 근대화란 표현이 보다 더 익숙하지 않을까하는 짐작을 했다. 그렇기에 그 산업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듣는 도시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보 성향의 신문을 구할 수 없다고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단지 이 도시의 정서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것이다라고 하며, 이 상황을 해석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상상해봤다. 가져다 놓아도 팔리지 않으니, 읽히지 않으니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져다 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가게를 탓할 일은 아니다. 읽을 사람이 없어서 가져다 놓지 않는 것이고, 없으니 나처럼 읽고자 하는 사람도 기회를 못가지는 것이고. 이런 게 이 지역의 정서인가 보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조선, 동아가 하는 말은 들어주는 이가 이렇게 많은데, 한겨레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이는 이 도시에 없단 말인가? 경향신문도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야만 가판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황.
문득 궁금해졌다. 이웃하는 경주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경주도 꽤나 보수적인 성향의 도시라고 알고 있는데, 다르지 않겠지란 짐작. 그 짐작은 경주 시청 인근의 편의점 두 곳을 돌아보고 짐작을 넘어 확신에 접근했다. 이게 경북의 상황인거구나. 그렇다면, 경북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진보적인 언론은 무엇이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명박 정권부터 언론의 통제가 시작되고 지상파와 종편은 수구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진보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없다. 방송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면을 가진 신문이라도 그러한 의견을 시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신문을 구할 수 없다니, 편의점, 가판대에서 진보성향의 신문을 구할 수 없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나와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떤지, 어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지 않은 걸까? 나는 그래도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어떤 논리로 이야기를 하는지 가끔씩은 본다. 보면서 한 숨을 내쉰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말을 하고 있는지 보면서 놀란다. 그런데, 나와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들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들으려 하지 않고, 들을 기회도 없다.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TV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같은 편의 신문과, 신문에서 이런 보도가 나왔다는 패널들의 높은 목소리를 내보내는 종편의 이야기가 순환논리로 증폭되어 시민들에 전달된다. 이런 시민들은 TV방송은 공정한 보도만 나오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믿는 듯 하다. 방송에서 '종북'이란 표현이 나오면 그 표현의 대상자들은 "빨갱이"로 이야기되고, 왜 방송에서 '종북'이란 단어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 듯 하다. 중간과정보다는 결론이 중요하고, 그 결론에 따라 빨리빨리 움직여야 먹고 살수 있는, 그렇게 살았기에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거라고 믿는 사람들인 듯 하다. 중간과정은 배운 선생님들이 알아서 검증을 했을 테니, 그들이 TV와 언론에 나와 하는 말씀들은 모두가 진실일 거라고 믿는 듯 하다.
시민들의 이런 성향을 간파했으니, 돈이 있는 언론들은 어떻게든 방송으로 진출하기 위해 그렇게도 애를 썼나 보다. 대단한 선견지명이다.
문득 한겨레와 경향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매출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을테니 상황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개선을 시켜야할지 고민을,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비록 계몽주의적 관점으로 몰고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한 쪽에 있는 의견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겨레와 경향은 영남지방 취재를 하고 있을까? 매출이 거의 없으므로, 굳이 취재를 하지 않는 것일까? 영남지방의 논객들을 불러 글을 청탁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을 할 지 나는 모른다. 단순히 지면에 나오는 기사들만을 접하니까.
살수차로 사람을 넘어뜨려 죽음의 입구까지 몰아넣어도, 야당을 설득하고 국정을 같이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길거리로 나와 기업을 위한 법안 제청 서명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아니 아무런 일도 하지 않든, 새누리당 혹은 박대통령의 지지도는 30%는 나온다는 이야기. 이제는 알 것 같다. 이런 이야기조차 포항에서는 접할 수 없을 것이다.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지오웰의 소설, '1984'의 '텔레스크린'이외는 없는 듯하다. 그 텔레스크린에서는 전부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끄는 이들의 행패만 드러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현재) 야권의 정치인들이 진출할 수 있을까?
상황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포항에 내려가 한겨레와 경향신문 지국을 개설해서 한 번 해볼까? 있겠지. 없진 않겠지. (확인하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도 받아 보지 않는, 그래서 사람들이 읽지 않는 신문을 배급/보급하는 사무실을 차린다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거나, 엄청난 블루 오션을 발견하는 일이다. 결국,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아내와 나누며 차를 몰다 보니 부산에 도착했다. 어렵지 않게 한겨레를 발견했다. 그나마 반갑다.
첫댓글 글 잘 읽었어요*^
심지어 안양에서도 경향신문 보려는데 우리아파트엔 보는사람이없어서 중앙일보 지국에서 같이 보내줘요.
지금생각해보면 많은 반대에 부딪혔던 손석희의 JTBC행이 선견지명 아니었나 합니다.
고향가서 우선 가족들한테 정기구독이라도 끊어드리는 수밖에요..
앗. suki님이닷!
정기구독 선물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군요.
잘 지내시지요?
@철수 넵 잘지내요. 넘 오래 잠수탄거 미안요..
@sukifree suki님은 어디 갔다 오셨나요,두분이서 해외여행이라도 갔다 오셨나요?ㅋㅋ
한달에 만얼마하는 신문대 안 바꿉니다,좃선동아중앙 맛깔나게 입맛에 맞게 꾸며내니 무슨 가문에 영광을 가져올거라고 바꾸지 않아요.경향은 무슨 자산이 조금있어 버티고 있는거 같고,한겨레는 신문대 다른 신문사보다 조금 비싸게 받는 것으로 버티고 있는 거같고,호남에서도 바꾸지 안아서 강준만교수가 가슴을 쳤다는 얘기 아닙니까,조중동 짜라시같은 신문보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이유가 있겠지요. 나름대로의 이유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
안녕하세요. 부산에 사는 한겨레신문 창간호 때부터 구독자 입니다.
좃선일보와 매일경제신문 2부에 10만원어치 상품권, 현금까지 들고 꼬드겨도 싸안 시선으로 바라만 보았을 뿐...
최근 상영한 "내부자들"에는 조국신문 이강회와 여당 국회의원 등이 세상의 판을 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 대중들 그 개,돼지들에게 무어하러 설명합니까 먹을꺼만 적당히 던져주면되지..." 영화 속 대사이긴 하지만 좃선이나 동아나 그 밖의 찌라시들의 세계관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진보는 이름의 세계관이 야당의 분열로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려야 하는 상황이 몹시 안쓰럽니다. 통신대학생 씀.
지난 설.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부산에서 일하는 큰형과 광주에서 일하는 작은형이랑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중에 저도 공감한 것 중에 하나가 진보진영의 계몽의식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을 명분을 제공한다였습니다.
교육을 받을 만큼 받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누군가 자길 가르치려고 하는 건 불편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 부분에 대한 고려도 진보진영에서 해야할 과제라 생각합니다.
@철수 ㅎㅎㅎ... 한겨레신문 창간호 때부터 독자라는 글이 아마도 진보의 당파성 계몽의식 등의 뉘앙스를 만든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도 진보의 분열입니다. 전부 지가 잘났다고 떠벌이죠. 고노무현대통령 장례식이 있었던 봉화마을에서도 그것을 느꼈습니다.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어중이떠중이 진보들이 다 모였었지요. 타자의 말을 경청할 줄도 모르고 지들 말만 뇌까리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반적 교양 수준에도 한참 못미치는... 예의 조차도 없는 무례한 인간들로 바글거렸습니다. 시민단체가 특히 그런 인상을 많이 주었습니다. 헤게모니를 장악한 소수가 단체를 좌지우지하면서 저들만의 단체라는...
@아방게릴라 시민단체에 시민은 없고 시민단체파만이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요. 그래서 예전부터 그쪽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최근 YMCA 감사라는 분이 YMCA 회계부정을 지적하자 회원 정지를 시켰고, 오늘 신문에 법원에서 회원 정지 신청 가처분이 받아 들여졌더군요.
따라서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곳 조차 부패하였다는, 그들만의 아지트화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참여TV 시민기자단 모집에 응하여 한 차례 모임에 다녀 왔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담에 또 기회가 된다면 전하겠습니다.
@아방게릴라 네. 믿음이 다르면 뭉치기 힘들고. 이익이 같으면 뭉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본성을 탓할 수 밖에 없나하는 한숨이 앞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