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수석장로직을 맡아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수기 11장 17절)
내가 출석하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장충단교회는 6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 교회는 당회가 활기차게 운영되는 교회로 교단 내에서도 유명하다. 홍순우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 담임목사님을 청빙할 때 우리 교단의 유명한 중앙성결교회의 이만신 목사님이 치리목사로 오셨다. 그때 이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중앙성결교회는 목사가 교회를 이끌고, 장충단교회는 당회가 교회를 이끌고 간다는 말씀이었다. 우리 교회의 수석장로라 하면 자타가 모두 인정하는 책임 있는 자리요, 권위가 있는 자리이다. 그것은 교회 창립 초기부터 우리 교회를 지켜온 전기주 장로님과 대법관 출신 김상원 장로님이 무려 40여 년간 수석장로로 시무하면서 수석장로의 위상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장로 서열 4번인 나는 항상 부담감 없이 뒤를 따라가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고 늘 편하게 시무하는 장로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수석장로의 어려운 자리를 주시어 나를 연단시키셨다. 수석장로이신 김상원 장로님이 대법관을 퇴임하고 전관예우를 받지 않으려고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셨을 때였다. 차석장로인 김주봉 장로님은 교환교수로 1년간 일본에 출장 중이셨고, 차차석인 정광조 장로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부족한 내가 하루아침에 수석 장로 자리를 임시로 이어받게 된 것이다. 갑자기 중책을 감당하게 된 나는 새벽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나에게 주어진 직분을 대과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힘 주시고 능력을 주옵소서.” “비록 내가 수석장로 자리에는 있지만 주님께서 다 감당해 주옵소서.”
그러던 어느 날 담임목사이신 홍순우 목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목사님이 서울신학대학교 총장으로 가게 되었으니 그리 알고 일을 잘 처리해 달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미국과 일본으로 전화를 걸어 선임장로님들에게 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고 뒤처리를 의논하였다. 담임목사 인사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홍 목사님은 서울신대로 출근을 하시며 교회의 유지를 위해 부목사님들과 자주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얼마 후 장충단교회 당회장과 서울신대 총장을 겸직할 수 없다는 교단의 유권해석으로 홍 목사님은 부득이 당회장직 사임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회장 사임 문제는 교회의 중요한 인사 문제로 감히 소홀히 다룰 수가 없어 나는 다시 미국과 일본에 전화를 걸어 선임장로님들의 허락을 받고 사임서의 결재는 유보하기로 하였다. 사임서 결재 유보는 후일 지내놓고 보니 참 잘 처리된 일이었다.
1개월 후 서울신대의 사정으로 홍 목사님은 서울신대 총장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다시 장충단교회로 오기를 원하셨다. 나는 또 한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사임에 결재는 안 했지만 결재를 한 것과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 것인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당시 당회원은 12명이었다. 임시 당회를 여러 번 열어 의견을 조율하였지만 결론이 간단히 나지 않았다.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한 당회의 의견이 양분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순한 의견 조율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사안인 것 같아서 밤새도록 의논했지만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하였다. 물론 다수결로 결의할 수도 있었지만 교회 일이란 단지 다수결의 원칙으로만 풀 수 없었다. 이렇게 진지하게 의논하던 중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문득 새로운 발전적인 안이 떠올랐다. 그 절충안은 사표는 반려하고 정년을 18개월간 단축하는 안이었다. 홍 목사님의 당시 남은 임기는 36개월이었다. 이 안에 대해 당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졌고 홍 목사님도 쾌히 승낙을 하셨다.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이 된 것이다. 이때 나는 당회 대표로서 홍순우 목사님을 만나 의견을 타진하였는데 홍 목사님의 답변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언제나 당회를 존중하며 당회의 결정에 절대 승복하겠습니다. 즉 당회의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알고 존중하겠습니다.”
지금도 홍 목사님의 그 말씀은 나의 머리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으며 홍 목사님의 결단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때 일에 대해 후회가 없으며 원칙적으로 잘 처리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들이나 교회, 모두에게 은혜로운 처리였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년이 단축된 홍 목사님께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로 인하여 나는 체중이 3Kg이나 빠졌으며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수석장로의 어려움을 체험했다. 오랫동안 수석장로로 수고하신 전기주 장로님과 김상원 장로님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