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유혹
손진숙
봄 입맛을 살릴 요량으로 재래시장엘 갔다. 어시장에서 생선을 고르고 채소전에서 냉이와 달래 등을 사서 장바구니에 담아 들고 시장바닥을 빠져나오는 길. 과일가게 앞에 진열된 딸기가 붉은 눈웃음을 쳤다. 큐피드의 화살에라도 맞은 듯이 발을 멈추었다.
어릴 때, 할머니를 따라 양동마을의 심인당心印堂에 간 적이 있었다. 햇볕이 다사로운 봄날이었다. 할머니는 금강합장金剛合掌을 하고 ‘옴마니반메훔’을 외며 예배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지루해 경내를 둘러보았다. 담장 앞 화단의 화초들을 구경하다가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빨갛게 익은 열매를 발견했다.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듯 묵달졌다. 그것이 난생처음 본 양딸기였다.
그때까지 내가 잘 아는 것은 뱀딸기였다. 뱀딸기는 동네 주변 풀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엄지손가락 반 마디쯤 되는 크기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군침이 돌았으나 먹어보면 아무 맛도 향도 없었다. 지나다가 혹은 동무들과 놀다가 눈에 띄면 재미 삼아 따 먹어보는 정도였다. 동무들과 쏘다니다 뒷산 기슭 덤불에서 만난 산딸기는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싫증나지 않았으나 귀해서 금방 동이 났다. 양딸기는 산딸기보다 더 탐스럽고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으나 그저 바라보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서였다. 우리 마을에서도 양딸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재종숙모인 대전 아지매가 동네에서 제일 먼저 조성한 딸기밭을 매며 촘촘한 순을 솎아 밭 밖으로 내놓았다. 그 순을 엄마가 얻어다 안채 옆 빈터에 심었다. 열 평 남짓 될까. 삽과 괭이로 뒤지고 호미로 매어 마늘도 키우고 고추도 가꾸던 뒤울안이 딸기밭으로 변모했다.
딸기가 익은 첫해, 나는 틈만 나면 딸기밭에 드나들었다. 처음에는 새빨갛게 익기를 기다리다 못해 붉은빛이 들기 시작한 것도 따먹어 보았다. 한물이 되자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와 엄지와 검지가 딸기 색과 향이 배도록 따먹었다. 딸기 철이 끝날 즈음, 내 몸피가 부쩍 불어나 있었다. 딸기를 원 없이 먹은 기쁨 못지않게 뚱보가 된 슬픔도 생겼다.
사람도 노쇠하면 그러하듯 딸기도 노화하면서 활발히 생산하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처럼 드문드문 맺은 열매도 시원찮고 앙그러지게 익히지도 못했다.
어느새 우리 동네 여기저기에 딸기밭이 들어섰다. 마을길을 걸으면 길가 밭에서 빛깔 곱게 익은 열매들이 이팔청춘을 자랑하며 저마다 매력을 뽐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보름달 뜬 밤이었다. 밤마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동우물을 지나 몇 가호를 지나면 돌담을 두른 우리 아랫집이 있다. 아랫집에 이르기 전, 오른편에 맑은 물이 돌돌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대나무 숲이 개울을 감싸고 있어 계집아이들이 여름날 빨래를 하고 난 뒤 땀에 젖은 몸을 씻던 곳이기도 했다.
그 왼편이 아랫집 딸기밭이었다. 좁다랗고 구불텅한 밭둑길을 따라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해지기 전에 보았던 고혹적인 모습과 빛깔로 나를 유인하던 딸기들의 천국. 딸기들의 낙원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갔다. 긴치마를 감아 모으고 딸기 밭고랑에 앉았다. 딸기가 열려 있는 두둑을 살폈으나 이파리 속에 몸을 숨긴 딸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붉은지 푸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손을 벋어 잡히는 딸기의 감촉을 가늠하고 있는데 골목길에서 수런대는 말소리가 들렸다.
내 또래 머슴애들이 발소리를 투덕거리며 걸어 내려왔다. 제발 모르고 지나쳐주기를 숨죽이며 바랐으나 “뭐고?” 나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몇 발짝 오다가 멈춰 살피는듯하더니 돌아서 다시 지껄이며 가던 길을 갔다. 딸기밭을 습격하다 들킨 처지가 되어 몹시 창피스러웠다. 온몸을 죄어드는 수치심….
후들대는 걸음을 재촉하여 집에 들어가 내 방문을 열었다. 전등불을 켜기 전, 달빛이 먼저 방안을 흐릿하게 비춰주었다. 형설지공螢雪之功과는 거리가 먼 월광지도月光之盜라고나 할까.
올봄에는 딸기가 호황인 것 같다. 집 부근 마트에서 수시로 경쟁하듯 할인 판매를 했다. 매번 딸기를 사 오지만 잘 먹지는 않는 편이다. 시골집에서 먹었던 노지 재배가 아닌 하우스 딸기라 단맛보다 신맛이 강해서이다. 내가 먹지 않더라도 상해서 버릴 염려는 않아도 된다. 즐겁게 먹어 주는 가족이 있으니 말이다.
그 좋아하던 딸기의 신맛을 꺼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입맛마저 달라지게 했나 보다. 그래도 마음은 바뀌지 않아 여태 딸기 맛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플레도 딸기 맛을 고르고, 아이스크림도 ‘사랑에 빠진 딸기’ 맛을 주문한다. 그 달콤하고 싱그러운 청춘의 맛을 놓아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딸기에 끌리는 내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산문》 202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