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재지이(聊齋志異)
Strange Stories From Chinese Studio /
Ghosts and Wizards: Fables and Fairy Tales from Late China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살던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이 1670년대 산둥에서 지은 기담 모음집으로 모두 12권이다. 요재지이의 요(聊) 자부터가 산둥성 서부의 現 랴오청(요성:聊城)시의 요 자와 같다.
포송령은 환갑이 넘어서야 겨우 1차 시험에 붙은 '만년 고시생'이었다.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세도가의 가숙에서 한동안 교사로 있으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불운한 선비였으나, 요재지이를 씀으로써 중국에서 김시습급 반열에 올랐다.
유학을 닦은 선비였지만 일찍부터 각지에 전하는 수많은 괴사나 전설 등에 관심이 많았고, 갖가지 이물(異物)들에 해박했고 산해경이나 박물지 등 기서에도 밝았던 듯하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살아생전 찬사를 듣지 못했다. 포송령이 죽은 지 51년이 지나 1766년에서야 책이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포송령이 직접 쓴 원본 중 절반은 남에게 빌려주었다 잃어버렸다고 한다. 다행히 생전부터 인기작이라 남이 베껴 갔기에 내용 전체는 온전히 전한다.
포송령은 요재지이에서 자신을 '이사씨(異史氏)'라고 칭하여 "이사씨는 말한다(異史氏曰)." 하며 운을 떼어 단편의 결말부에 자기 의견을 달기도 했다.
요재지이는 중국의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작자 포송령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민담이나 심지어 자신의 경험담까지 합쳐서 간행되었는데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수십 년 동안 모은 포송령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천녀유혼으로 유명한 섭소천 이야기도 출전이 바로 요재지이.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얘기가 많다. 일례로 여자가 출세하는 이야기나, 어떤 평범한 남자가 협녀와 엮인다는 이야기라든가
한 남자가 표류해서 식인귀들의 땅에 떨어져 식인귀 여자와 결혼했는데, 자식들은 중국에 와서 크게 성공한다거나, 한 남자가 전생의 인연으로 견씨를 만났는데 조조는 며느리가 바람피우니까 개의 모습으로 나와서 훼방을 놓는다거나, 구주삼괴나 야구자 같은 독특한 중국 요괴도 나오고, 조선에 놀러간 남자가 신선들이 산다는 안기도에 놀러 가는 등 대륙의 판타지 모음집이다.
방정환의 '효자가 된 호랑이'와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한 노인의 아들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자 관리가 호랑이를 잡았는데, 관리가 "네가 진심으로 그녀의 아들로 살아간다면 용서해 주겠다."라고 말하자 호랑이는 정말로 노파에게 짐승을 잡아다 주며 자식처럼 노파를 봉양하였다. 시간이 흘러 노파가 죽자 호랑이는 사람이 통곡하듯이 크게 울부짖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
하지만 단연 많이 나오는 것은 여우나 귀신, 요괴 등과 관계하는 이야기이다. 대체로 남자가 길을 가다가 여자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다가 여우나 귀신임을 알아차리지만, 남자의 반응은 열에 아홉은 여자가 사람이 아니지만 어쨌든 예쁘니까 상관없음.
이렇게 연을 맺었으니 당연히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애초에 여기 등장하는 여우와 귀신, 요괴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개념 충만하다.
그리고 왠지 귀신인 여자가 멀쩡히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잘만 보이며 상견례 후 혼인까지 한 다음에 애도 낳아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엔딩이 거의 대부분.
이 외에 기생인 줄 알고 좋아서 안아봤더니 남자라 실망했는데 어찌어찌 말이 통해서 친구가 되었다거나,
모태 고자였던 남정네가 여우가 준 약으로 고자 신세에서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처벌로 나비를 바치게 하는 관리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모자에 흰 꽃을 달아놓은 걸 깜빡하게 만들어 다음 날 온 상관에게 꾸중을 듣게 하는 귀여운 나비 귀신도 나온다. 어찌 되었든 고전적인 동양 기담을 읽고 싶다면 추천.
요괴나 어리석은 사람을 빌어 우회적으로 현실 비판을 하는 얘기도 상당히 많다.
포송령은 과부들이 정절을 지키는 이야기를 두고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만,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베를 짜며 사는 과부의 정절을 조롱한 적이 있다.
이 외에도 고장에서 명망 있는 사람들의 전기를 편찬한 신사층들도 비웃었다.
괴담이나 기괴한 이야기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 혹은 과연 정말 이랬을까 싶은 믿거나 말거나 일화들도 나와 있다. 가령 필리핀에서 표류해 온 표류객 이야기, 개구리 실로폰, 청대에 태국에서 진짜 사자가 들어왔을 때 이야기[7],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남장을 하고 과거를 봐서 장원으로 합격한 뒤 시부모도 벼슬을 받는 혜택을 누리게 한 여인, 수간을 하다 잡혀 사지가 찢겨 죽은 개와 여인[8]
동성애와 관련된 단편도 있다.[9] 첩이 된 남자(人妖) 편의 내용으로 여장을 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려고 한 자에 대한 평이다. 다른 이야기, 남첩(男妾)의 내용을 보면 소년을 여장시켜 첩으로 판 노파가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포송령의 평은 다음과 같다. "지음을 만난다면, 남위(男妾)와도 바꾸지 않으리라. 무식한 노파 같으니, 왜 굳이 사기를 쳤는가!"
요재지이에서는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산해경과 더불어 조선은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나온다. 보이시한 조선 여인도 등장
조선이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신선이 사는 곳이 있다고도 했다
그 외에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의 음식을 먹다 보면 다시 인간이 된다는, 아주 기발한 언데드 처리법도 나온다.
김용과 더불어 20세기 말 가장 뛰어난 무협 소설가로 손꼽혔던 고룡의 소설 작법과 사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평가받는다. 서술이나 전개 방식은 서양 근대 문학과 영화의 기법이지만, 괴사건을 해결하며 맺혔던 은원을 하나씩 풀어가는 전개는 일반적인 서양 소설보다는 요재지이와 더욱 비슷하다. 혹자는 김용이 중국인들의 낮의 세계를 그려냈다면, 고룡은 중국인들의 밤의 세계를 그려냈다고 평했다.
프란츠 카프카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읽고서 감명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손오공 항목에는 요재지이의 손오공 사당 이야기가 나온다.
그 유명한 영화 천녀유혼이 요재지이 '섭소천' 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에 개봉한 중국 영화 '화피(畵皮)'도 같은 제목의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0년 6월부터 한 달 동안 홍콩에서는 25부작 드라마인 '포송령'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2011년에 개봉한 화벽도 요재지이에서 나온 벽화 속 여인 이야기를 원전으로 한 것이다.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게게게의 키타로의 등장 요괴 가히(게게게의 키타로) 역시 화피(畵皮) 에피소드의 괴물을 모티브로 했다.
소설가 이문열은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한 번쯤 일독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동방신령묘》의 등장인물 곽청아의 배경은 《요재지이》 7권 청아 편에서 유래했다. 청아의 능력 역시 요재지이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제괴지이는 이 작품의 제목을 따와서 지은 이름. 다만 제괴지이 자체는 수신기의 영향을 더 받았다고 한다.
타이완의 에로 동인지 작가 싼써팡(三色坊)의 흑청낭군 요재야화(聊齋夜畫) 시리즈가 요재지이에 기반한 작품이다.
일본의 소설가 야스오카 쇼타로(安岡章太郎)가, 저자 포송령의 마흔 살 가까이 과거 시험에 얽매였던 인생을 자기 삶에 대입하여 쓴 사소설인, 사설 요재지이(私設聊齋志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