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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아! 왜 그래? 야! 말 좀 해봐? “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화린도 강운에게 달려와 걱정스러
운 눈빛으로 강운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운아? 정신 좀 차려봐!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오라버니가 놀래켜서
그런 거면 화풀어.. 응? 운아? “
추남과 화린이 아무리 강운에게 말을 걸어봐도 강운은 멍한 표정으로
동쪽만 쳐다 볼 뿐이었다.
항상 자신감에 차있고 맑은 빛으로 반짝거리던 강운의 눈망울이 흔들
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추남과 화린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
을 엄습해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던 강운의 마음에 뭔가 동
요가 일어났음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강운은 갑자기 추남과 화린의 손을 뿌리치고는 객점 밖을 향해 달려
나갔고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 추남은 자신 때문에 강운이
충격을 먹었다 생각하여 죄책감에 얼굴에 그늘이 졌다.
화린은 강운을 쫓아 객점 밖으로 나가려다가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추남의 팔을 붙잡고는 객점 밖으로 끌고 나왔다.
“운이가 오라버니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닐 거예요. 일단 나가봐요. “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팔이 붙잡혀 끌려오고 있는 추남을 힐끗
바라본 화린은 한숨을 쉬며 갑자기 일어난 알 수 없는 상황에 어찌해
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이 객점에서 나오자 강운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두커니
서서 먹구름에 쌓여 있는 동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휴… “
멀리 갈 줄 알았던 강운이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한 화린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아직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추남을 질질 끌며
강운에게 다가가려 움직이려다가 갑자기 강운에게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추남도 뒤늦게 강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흠칫
떨더니만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화린아?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오라버니 저도 도무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어요. “
“왜.. 몸이 말을 안 듣는 거지? 운, 운이가 위험한 건 아니겠지? “
추남은 강운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어떻게서든 앞으로 나
아가기 위해 사력을 다 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화
린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눈을 꼭 감고 무언가에 집중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
던 강운이 느닷없이 눈을 팍 치켜뜨며 모든 기운을 거두어 들였다.
추남과 화린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던 기운이 사라지자 조심스럽게
허망한 표정으로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강운에게로 다가왔다.
“운, 운아? 무슨 일이야? 다친 곳은 없는 거야? “
화린은 알 수 없는 기운이 강운을 상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에 강운이 다친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추남은 강운과
동쪽 하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참동안 동쪽하늘을 쳐다보던 강운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울먹이
며 말을 했다.
“사.. 사부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사부의 기운이.. “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한 강운의 신형이 추남과 화린의 눈앞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린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약초 꾸러미에 약초를 잔뜩 채워 내려왔어야 정
상일 지리산의 약초꾼들은 지리산 자락을 가득 메운 사이한 기운을
내뿜는 검붉은 먹구름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보게들..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가 않구먼. 우리 이제 그만 내려
가 보는 게 좋겠네. 한여름인데도 이렇게 등골이 으스스 하니 뭔가
기분이 안 좋아. “
“그럽시다. 형님.. 저도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
벌써 대다수의 약초꾼들이 내려가고 남은 인원이라고는 3명 밖에 안
남아 있던 그들이 결국은 약초를 캐는 걸 포기하고 산 밑으로 내려가
려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어디선가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검은색
물체가 그들 곁으로 떨어져 버렸다.
언뜻 보면 늑대나 들개쯤으로 보이는 그것들이 하나 둘 약초꾼들의
주위를 포위하며 떨어져 내리자 약초꾼들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 이것들이 도대체 뭐지? “
분명 겉모습을 늑대의 모습이었지만 눈에 혈광을 빛내며 핏물이 뚝
뚝 흘러내리는 하얀 이빨을 들어내며 으르렁 거리고 있는 모습을 봤
을 때 단순한 늑대는 아닌 듯 했다.
늑대 한두 마리 정도라면 약초꾼들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10마리가 넘어가는 늑대를 상대할 만한 인원이 안 되었던 약초꾼들은
도망갈 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봤다.
“이보게들.. 저쪽이 약간 부실해 보이는 것 같구먼. 내가 우선 한대
후려칠 테니 틈을 봐서 모두 달려 나가자구. “
긴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노련해 보이는 약초꾼 한명이
입을 열자 모두들 이를 앙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침내 약초꾼 한명이 늑대 무리 중 가장 비실해 보이는 놈을 후려치
고 앞으로 달려나가자 남은 약초꾼들도 그를 뒤따라 지팡이를 휘두르
며 있는 힘껏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예상외의 약초꾼들의 공격에 약간 주춤거리던 늑대 무리가 곧 혈광을
더욱 빛내며 그들을 뒤쫓아 달리자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 제일 뒤
에 달려가던 약초꾼 한명이 선두에 달려오던 늑대에게 물리고 말았다.
“아악! 형, 형님! 살려줘요~! “
갑자기 들려온 비명소리에 앞서 달려가던 약초꾼들이 고개를 돌려 보
자 어느새 늑대 무리에 둘러싸여 조각조각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있
는 참혹한 동료의 모습이 보였다.
“이.. 이! 저런 미물들이 감히! “
노기가 하늘 끝까지 치 솟아오른 약초꾼 한명이 앞뒤 가리지 않고 늑
대 무리에 달려들려 하자 옆에서 그를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안됩니다. 지금 저것들에게 덤비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일 밖에
안됩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마을에 알려야 합니다. 형님! “
처음부터 약초꾼들에게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을 이끌어 왔
던 약초꾼은 피눈물을 흘리며 이젠 뼈밖에 남지 않은 그의 동료를
바라보다가 산 밑을 향해 죽어라 내달렸다.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산 밑으로 내
려가 마을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앙다문 그는 옆에서 같이 뛰고 있는 동료를 한번 바라보고 고개
를 돌려 뒤 쫓아 오고 있는 늑대 무리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가서는 그들 역시 늑대들에게 잡힐 것이 분명했다.
“이보게.. 나는 여기 남아서 시간을 벌어보겠네. 자네는 빨리 마을로
내려가서 사실을 알리도록 해주게. “
“헉헉.. 안됩니다.. 형님께서 안 가신다면 저도 남겠습니다. “
“자네 마음은 고맙지만 저것들의 행동으로 봤을 때 같이 왔던 다른
약초꾼들도 제대로 돌아갔는지 의문이군. 자네라도 무사히 돌아가서
산에서 일어난 소식을 전해줘야만 하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둘 다
저것들에게 잡히는 건 시간문제란 말일세! 어서 빨리.. 시간이 없어! “
점점 그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 오고 있는 늑대를 보며 조급한 마음에
동료를 힘껏 앞으로 밀어낸 그는 뒤로 돌아 지팡이를 들고 늑대무리
를 죽일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동료 약초꾼이 산 밑으로 내달려 버리자 혼자남게
된 그는 이젠 지척에 다가와 있는 늑대 무리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놈들! 감히 미물 주제에 사람을 헤하려 하다니! 내 오늘 죽더라도
네놈들을 같이 데려가야겠다. “
지팡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비실해 보이는 약초꾼 한명과 10마리가 넘
는 늑대무리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은 위태롭게만 보였고 마침내 늑대
무리가 약초꾼을 둘러싼 채 그를 덮치려 할 때 어디선가 산을 쩌렁쩌
렁 울리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약초꾼을 덮치려던 늑대무리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젠 죽었다는 생각에 눈을 꼭 감고 지팡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던 약초꾼은 갑자기 들려온 포효소리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미친 늑대도 모자라 이젠 호랑이까지… 이런.. 마을사람들 까지 위험
하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은 채 마을사람들이 위험하지는 않을까 걱정
하고 있는 약초꾼의 시야에 눈보다 새하얀 광채를 내뿜는 집채만 한
호랑이 한 마리가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백호와 눈이 마주친 약초꾼은 그만 오금이 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
그가 듣기로는 지리산에 천년이 넘게 살아온 백호 한 마리가 산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그 호랑이를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령
이라고 매년 제를 올리기도 했지만 실상 그 호랑이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 산신령은 고사하고 늑대무리와 함께 자신을 덮치러 온 흉악해
보이는 괴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백호가 허연 이를 들어내며 늑대무리를 무섭게 노려보자 이미 이성을
상실한 늑대무리들도 본능적인 공포에 의해 주춤거리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늑대들이 두려움에 떨며 뒤로 물러서자 백호는 고개를 저으며 약초꾼
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약초꾼의 백호의 돌연한 행동에 어찌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 밑으로 죽어라고 달려 내려갔고 늑대
들은 그런 그를 감히 쫓지 못하고 백호를 두렵다는 눈빛으로 바라보
고만 있었다.
마침내 약초꾼에 안전한 거리만큼 도망갔다고 생각한 백호는 다시금
하얀 이빨을 들어내며 늑대들을 덮쳐나갔다.
처음에는 본능적인 공포에 두 마리가 힘 한번 못써보고 백호에게 물려
죽어나갔지만 동료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늑대들은 혈광을 빛
내며 백호에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듯이 늑대무리를 상대하던 백호도 더 이상
쉽게 생각하지는 못하고 전력으로 늑대무리를 맞아나갔다.
혈광을 빛나는 늑대들은 힘과 빠르기 등 모든 면에서 일반 늑대들
보다 배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그런 늑대들을 8마리나 상대하던
백호는 이성을 못차리고 자신에게 덤벼오는 늑대무리에 화가 나서는
무자비하게 늑대무리를 살육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늑대무리가 강하다 하나 백호가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상대했
다면 이미 승부가 결정 났을 일이었다.
결국 늑대무리를 모두 죽여버린 백호는 고개를 쳐들고는 분노의 포효
를 내질렀다.
지금 백호가 산속을 돌아다니며 위험에 처한 약초꾼들을 도와주기 위
해 죽인 늑대를 비롯한 여러 맹수들은 이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
도로 많았던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검붉은 구름 때문에 백호를 제외한 모든 맹수들이
이성을 상실하고 무자비한 살생을 저지르고 다녔던 것이다.
온 산이 피로 뒤덮혀 버린 것 같았다. 백호는 영물이었기 때문에
강운의 부탁이 없을 때는 사냥이나 살생을 하지 않았었지만 오늘만은
어쩔 수 없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