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산행이나 둘레길을 걸으며 찌든 세상사는 이야길 나눈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행운이 아니겠는가.
친구와 어울려 건강을 챙기자는 의도로 둘레길을 걷지만 걸으며 나누는 다양한 이야기가 훨씬 건강한 삶을 만들어 준다. 산행길이나 삼겹살을 구우며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활력소가 되고 흥미롭다.
오래전 시골 구멍가게에 들린 적 있었다. 옛날 구멍가게는 동네 사랑방이자 지나는 길손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선반 맨 꼭대기에 먼지를 뒤집어쓴 라면 봉지가 눈에 띄었다.
쥐가 뜯어 먹어 팔지 못해 방치했다는 라면은 ‘왈자’만 남아 있는 걸로 보아 1965년 20대 전후 청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 라면인 ‘왈순마’라면이었다.
왈순마 라면 외에도 시락면, 브이라면, 까만소라면, 느타리라면, 한 봉에 200원이라 해서 ‘이백냥’ 라면 등은 이제 기억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나르던 구멍가게, 낡은 노트에 빼곡히 써 내려간 외상장부는 시골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대변한다.
산행길에서 만난 200살을 살았다는 시골 동네 느티나무는 마을 안녕을 위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구멍가게 주인인 할머니는 구수하고 투박한 말솜씨로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그냥 지날 수 없어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을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하나둘 구멍가게 앞 느티나무 정자로 모여든다.
어르신들의 주름진 골골 마다 삶의 역사가 숨어 있는듯하다. 지팡이에 턱을 고이신 어르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어버이날이 다가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어르신이다.
세월의 잔인함이 덕지덕지 몸에 붙은 할아버지 얼굴은 핼쑥하다.
할아버지는 해 지는 서쪽 산을 바라보시며 중얼중얼하신다.
“자식? 자식이란 품 안에 자식이지, 둥지 떠난 자식은 남보다 조금 가까운 자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