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랜드
우리를 태운 프린세스 크루즈는 그린랜드의 항구 나노택이라는 도시에 정착했다. Nanortaik 은 지금도 덴막에 법율을 따르고 그들의 통치를 받고있다. 인구 천여명되는 항구도시로 그린랜드에서 열한번 째 큰 도시라고 한다. 이곳은 2020년 현제 폴라베어 (polar Bear) 가 1185마리가 살고 있다하니 사람이 폴라베어랑 더불어 사는 곳이다. 날씨는 일년 열두달 춥고 7월과 8월만 섭씨 8도 로 관광객이 온단다.
우리 배가 그곳에 도착 한 8월 19일도 춥다고 노인이나 연약한사람은 배 속에 남아 있으라고 방송을 계속한다. 항구 주변의 물 수면이 낮아 배가 가까이 정박 할 수 없으니 쿠르즈에서 통통보트로 사람을 나르고 있었다. 한 번에 150명만 나르면서 오고가고 했다. 나와 남편은 언제 그린랜드에 다시 와 보겠냐며 추위를 막론하고 통통배줄에 앞장서서 나갔다. 내가 가지고 간 제일 따듯한 옷에 마후라와 장갑을 온몸에 감았다. 그날의 추위는 내가 중학교 다닐 때 광화문에서 청운동 까지 걸어서 갈때의 추위를 방불케 했다.
이 도시는 200년전 낙후한대로 발전을 안하고 있었다. 작은 도시 산 꼭대기엔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교회가 있었다. 건물 양식은 덴막을 닮아 노랑,빨강,파랑 색으로 원색을 칠했으나 추운 날씨와 잘 어울렸다. 여기저기 낡은 집 들이 관광 오는 사람들을 위해 박물관 같이 남겨 놓았다. 원주민들의 삶을 사진으로 찍어 놓았고 그들의 부엌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오래된 오븐이 녹쓸은 채로 있었고 겨울에 고기 잡으려고 물속에 들어가있는 원주민이 동양인과 닮았다. 옛날에 만주에서 이동 했다는 동양사람들이 맞는 것도 같았다. 아직도 여기저기서 기타를 들고 나와 관광객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얼굴도 우리와 닮아 있었다.
남편과 나는 춥기도 하고 전화로 와이파이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멨다. 백인여자가 젊은 동양남자랑 커피도 팔고 샌드위치도 파는 카페가 있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이 기뻤다. 마침 사람도 많이 않아 제일 먼저 화장실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와이파이를 썼다. 주인은 아주 친절 했고, 커피도 미국에서 파는 기계를 사용하여서 전혀 낙후한 곳 같이 않았다. 이곳은 21세기 우리와 같은 문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전세계가 하나라는 마음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색다른것 이 없다는 점에서 실망이었다.
쿠르즈에서는 이곳에 커피점도 와이파이도 화장실도 없다고 광고를 했다. 왜 그렇게 터무니 없는 광고를 했나 의아 해졌다.
이 조그마한 항구 도시는 바다로 휩싸여 있어서 공기는 상큼 했고 도시에서 보는 공해는 찾아 볼 수없었다. 사람들은 순박해 보였고, 말은 안 통하고, 그들의 길 이름은 덴막용어를 써서 도저히 읽을 수 가 없었다. 알파벳을 쓰나 어떤 글짜는 영어를 거꾸로 써 놓은 것 같아 발음도 못 해보았다. 잠시 이렇게 어려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생각 해보니 일부러 그렇게 하나 싶기도 했다. 이곳 원주민이 언어 배우는데 힘들어서 그린랜드 원주민이 똑독해 지는 것을 막을려고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우리가 일본식민지에서 36년 동안 우리 국민들을 교육도 못 받겠했던 일본 정부의 나뿐 의도가 기억이 나니 기분이 좋치 않았다. 그러나 그 곳엔 많은 덴막 회사가 눈에 띄었다. 큰 조선업이나 수산업 하는 공장이 있는 것을 보니 그린랜드 주민들을 위해서 있겠지 하면서 굳이 좋게 생각 해 보았다. 어렵게 멀리 돌아돌아 와서 구경한 그린랜든의 산뜻한 공기는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