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호텔 501호, 벌거벗은 몸뚱아리 서넛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조금 전까지 허름한 나이트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던 낯익은 녀석들이 인기척을 아는지 모르는지 꼼짝 않고 자고 있다. 501호로 오라는 재근, 유철이 연락을 받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려고 창호, 동규, 태호, 그리고 낯선 인물들이랑 문을 열고 들이 닥쳤는데, 전화 한 녀석들은 다 어디로 가고 눈뜨고 맞아 주는 이는 항덕이 밖에 없네. 202호로 바꿨다나? 우루루 몰려 202호로 가자는 데 난 그대로 누워버렸다.
코고는 소리 겨우 비껴 잠시 잠들었는가 싶은데, 웬놈의 전화 벨 소리가 받지 않으면 끊어 버리지 계속 울려 잠을 깨운다. 뭔가 이상하다, 방향 감각이 없다. 방문이 어디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이게 내 방이 아니구나. 흐릿한 불빛 사이로 보이는 시계 시침이 3자에 거의 정확히 멈춰 있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는데 이번엔 우루루 몰려 나갔던 녀석들이 어디서 헤매다 왔는지 방안으로 들이 닥쳐 누울 자릴 찾는다. 몇 녀석은 눕고, 다른 녀석들은 다시 나가 버리고. 이제는 잠이 완전히 날아 가버렸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지? 중동이 안동 왔다고 잠자리는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걸 걱정 말라며 녀석들 따라 헤매다가 여기 까지 왔는데...., 난 어제 볼일이 있었지 오늘은 볼일이 없는데...., 음주 단속에라도 걸릴까봐 잠시 헤매다 가려 했는데...., 난 대구로 가야하는데...., 차는 옥동에 있는데....
잠자고 있는 친구들에겐 소리내어 미안 하지만 욕조에 들어가 물소리 조금 낸 후, 옷 입고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확 트인다. 갇혀 있다가 풀려 나온 것 마냥 자유로움에 몸이 가볍다. 한 밤중인지 새벽인지 분간은 안되지만 좌우지간 고향 땅에서 오는 적막감은 오히려 푸근함을 준다. 여기에서 옥동 번화가까지는 꽤나 먼데....
옥동에서 자리 파한 후 기원, 연수는 택시 타고 가버리고, 오성이는 남겨두고 종, 창호, 중동이랑 택시 타고, 종이 "한국관" 하는 소리에 택시는 움직였는데, 차안에서 보지 소리 자주 하는 친구 "보지야!" 소리 몇 번 듣고 나니 내리란다. 그런데, 한국관 간판이 아니고 홍콩이다. 잘못 왔나 망설이는데 밑에서 찡그린 얼굴로 용진이가 올라온다. "분위기 개판이다"라고 투덜거리면서.
"야, 노는데는 사람 판보다 개판이 더 낫다"며 내려가는데, 요란한 음악소리, 남녀가 뒤섞여 복작거리는 스테이지, 술집 특유의 냄새, 술 취한 인간들의 비틀거림과 수다스러움, 자기가 무슨 가수라고 있는 폼 다 잡아 마이크 잡고 돌아가며 소리지르는 인간, 안개 끼인 것처럼 뿌연 시야에 사내들은 대부분 낯익은 얼굴들이다. 아낙네들은 모두 낯설고.
탁한 실내 공기 속에서 정신 없이 놀다가 파하고 거리에 나오니. 제 정신이 돌아오는지 삼삼오오 갈길을 찾아 흩어진다. 몇 시간 후면 또 만나게 될 사람들이 무슨 아쉬움이 그렇게 많은지 헤어지는 인사말을 하고 또 하며 흩어진다.
창호형이랑 갤러리 호텔로 가려는데, 아낙네 두 사람이 가까이 있다. 예쁘장한 아낙네 하나가" 니는 첨 보는 것 같은데", "예, 그런 것 같네요", "예가 뭐꼬, 친구인데", "그렇지~"하고 촌스레 얼버무리는데, 다른 아낙네 하나가 대각선 포장마차를 가리키며 오뎅 국물이라도 한 사발하고 가란다. 저녁부터 입에 넣는 걸로 이어와서 창자는 내키지 않지만, 자정을 넘겨 마음이 풀린 시간에 고향 땅 한 복판 길거리에서의 낭만은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낙네가 갑자기 태호를 찾는다. 자기 손으로 된장 끓여서 밥 먹여 보내야 한단다. 자랄 때 동규, 태호랑 이웃에 살아서 그렇게 해야 한단다. "왜, 하필 태호고, 동규도 있는데" 하고 물으려다 말았다. "태호, 낙동 강변에 술 한잔 더하러 갔다. 낙동 강변에 가면 있을 거다"라고 창호형이 답하는데, 태호 무리들이 옆을 지나간다.
태호를 보고서는 우동을 먹여 보내야 한단다. 우동 잘 하는 집으로 가잔다. 무리들이 우동 집을 찾아가는지,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는지 그냥 따라 갔는데, 도착하고 보니 목성교 근처다. 우동 집은 보이지 않고, 몸은 무겁고 해서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갤러리 호텔로 오는데, 골목길이라 운전사도 헷갈린다.
운전사도 헷갈리는 호텔 골목길을 한밤중에 빠져 나오니, 지난 주 우리가 묶었던 문화장 밑 길이다. 가을 밤 공기는 고향이라도 싸늘하다. 택시를 탈 수도 있지만 그냥 걸어 보고 싶다.
조금 걸어오니 동화당 약국이 있던 위치에 새로운 모양의 건물이 불꺼진 채 서있다. 재근이 집에서 신세도 많이 졌는데, 사람도리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적막속에 발소리 요란하게 내며 걸어오니 사장둑이다.
일 사진관이 있었고, 안동 서점, 시장 서점이 있었고, 건너편에는 신발 집, 이불 집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어디로 가고 커다란 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몇 발짝을 더 옮기니 불이 켜인 집이 있다. 신시장 사거리에 손 만두집이다. 전에 자전거 방이었는지 문방구 집이었는지 기억은 희미한데, 연탄 난로 옆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던 찐빵을 먹던 기억이 나서 1000원을 주니 4개를 준다. 보기에는 멀쩡한 놈이 한 밤중에 이슬 맞으며 목적지도 없이 배회하는 것 같아서 주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곧장 걸어가니 고등학교 시절 2년을 보낸 당북동 뒷길, 이제는 도로가 생겨 상당히 변해버렸다. 이 근처에 내가 있었고, 가까이에 인목이네 집도 있었다. 솥 공장인가를 따라 두 사람이 비켜가기 어려운 좁은 길도 있었는데 그런 흔적은 찾기가 어렵다. 그렇게 걸어걸어 막다른 곳에 이르니 내가 다닌 안동중학교 담이 길게 늘어져 있다.
우측으로 돌아 몇 발짝 옮기니, 바질스런 아이들이 많이 살던 삼거리다. 이젠 삼거리가 아니고 몇 거리가 더 붙었네. 안동중학교 후문 너머 비포장 길이 있었고, 그 곳에 홍섭이 집과 중동이 집이 있었다. 시험 공부한다고 어울리던 시절에는 가까웠었는데, 홍섭아 세월과 살아가는 공간이 옛 기억들을 아물거리게 하는구나.
태파 바로 옆 교회에 다니던 성도란 녀석이 있었다. 고 3 여름 방학 전에 학교에서 단체로 장티푸스 예방 주사 맞을 때, 교실 창문 뛰어 넘어 도망갔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달리하였지. 나를 포함해서 도망간 녀석들도 많았었는데....
텁털하고 능력도 있어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제 역할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놈이었다.
졸업하고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은 국화꽃 한 송이 지난주에 사진 옆에 꽂아 주었다. 그런데, 너에게까지는 생각이 못 미쳐 그도 못했구나. 그 순간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반가워 너란 놈은 잊었는데, 여기에 오니 네놈 생각이 나는구나. 미안하이 친구야. 너의 아버지가 친구들 몇이 두고 이렇게 기도했다. 이 세상보다는 하늘 나라에서 더 필요해 아버지 하나님이 너를 불러갔다고. 나야 교인이 아니어서 모르겠다만 하늘 나라에서 필요한 존재로 제 역할 잘하고 있느냐?
경사가 장난이 아닌 긴 신작로를 조금은 숨차게 올라오니 여긴 별천지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 주변은 대부분 어둠이 깔려 고요 그 자체였는데, 위에서 아래로 보이는 신시가지 옥동은 아직도 네온사인 불빛과 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안동 상권이 구시장, 신시장 거쳐 여기에 머물렀나 보다. 밤의 적막함도 밤이 가진 매력이지만, 밤의 화려함 또한 인간을 강력하게 끄는 힘이 있고 메마른 세상에서 겪은 온갖 일들을 게워 낼 수 있는 매력이 있어서 좋다.
오르막을 올라 올 때 보다 내리막을 내려갈 때가 훨씬 편하다. 숨이 차지 않아서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지나간 시간들 회상 할 수도 있어 훨씬 여유롭다. 인생의 내리막 길도 오르막 길 보다 훨씬 편하고 여유로운가? 난 지금 인생의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내 나이는 몇 인가? 난, 내라고 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도무지 헷갈린다. 아직은 대부분이 잠자리에 있을 이른 새벽, 시간에 취해서인지 추억에 취해서인지 마음이 들떠 모든 게 헷갈린다.
초겨울 새벽 버스에 올랐을 때 오는 한기에다 차가운 핸들을 잡고 낙동강 다리를 건너오려니 가슴이 써늘하다. 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엷지도 않은 뿌연 안개가 더욱 가슴팍을 텅 비도록 한다. 어렴풋한 잔영으로 남아 있는 군상들이 있다. 어제 후식으로 먹은 식혜 맛이 고향 맛과 어울려 아련한 맛으로 남아 있다. 무주무 고개를 넘어설 때의 아쉬움은 어둠 속에서 더 짙게 깔린다. 손 흔들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북대구 톨게이트, 어둠이 많이 걷혔다. 시간의 흐름 때문인지 도회지 삶의 바둥거림 때문인지 신천 대로에는 차량들이 줄지어 모두가 바쁘게 달린다. 이곳저곳 살피며, 옆에서 말 받아주는 못난이 하나도 없이 터벅터벅 걷던 길에서는 모두가 여유로와 보였는데, 여기는 모두가 바쁘다. 뭐가 바쁜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에 바쁘다.
골아 떨어져 자고 있는데 진지 드시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하고 눈꺼풀을 여는데 이상하다. 내가 늘 누워 잠자던 포근한 그 자리에 내가 있네.
"내가 책임진다"던 중동이도, "나는 알아, 나는 다 알아"하던 종이도, "니는 내하고 같이 있어야 돼"하던 창호도, 봉다리에 술 몇 병 담아 끝까지 들고 다니던 동규도 , 남산동 술집 헤매던 청택, 재인, 대현이도 오랜만에 보았는데 없고, 옆에 누웠던 기마노도 없다. 낡은 사이키 조명에 언뜻언뜻 보이던 그 친구들이 다 아디로 갔네.
내가 꿈꾸었나?
밤새 내가 꿈을 꾸었나?
첫댓글 실명을 들어 미안 합니다. 가명을 원하면 가명으로 바꿀게요. 정감이 가서 불러 봤어요.
시를 쓰더니, 소설가로 데뷔해도 되겠다.
어쩌면 그날과 30년전의 얘기를 엮어 이렇게 재미있게 쓸수 있나~~재미있게 잘 읽었다.글구 항상 건강하구~~~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성도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가슴이 찡하구나. 그 동안 너무 무심했는 것 같구나.
가셨는지, 오셨는지...... 암튼 새벽 4:30분까지 포장마차, 노래방에 붙잡혀 주인없는 술만..... 그리고 만취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나에고향 금소로, 이것이 인생.......
월남골 옆에있던 권성도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늦게나마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 만세!!!!!!!!!!!!!!!!
아련한 추억속에 한바탕 꿈을 꾸고 오셔네구려~~요새 자주꾸네 교현아~~~
내 떠나고 없는 안동에서 다들 잘도 놀았네 변영대 샘 모셔다 드리고 대굴 가는데 너무나 허전하고 미치겠더라 이 글을 보니 다시 그날이 생각나네.....
이 이야긴 꿈도 아니고, 꾸민 얘기도 아니고 실화야, 실화. 꼬리 글 형님들 안동에서 새로 다시 한 번 만나자.
항상 수고하는 교현이는 완전히 시인이구나. 네 글 모아 두었다가 책 한권 엮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