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39
조의홍 시인
조의홍 시인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 초 심상해변시인학교에서였다. 그는 월간 『心象』출신들이 여름 바닷가에 모여서 참가한 독자들의 담임시인을 하면서 주최자 박동규 교수를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들은 낮에는 독자들과 강의와 토론을 하고 밤에는 자연스럽게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는 부산 사나이답게 열변을 토하거나 뱃사람 기질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조용 술잔만 비우는 점잖은 선비스타일이었다. 그는 부산동고등학교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자기반 독자들에게는 다정하게 혹은 엄하게 시인학교의 규칙을 훈계하거나 작품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후 우리는 심상시인회 멤버로 해마다 각 지방에서 열리는 정기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의기상투(意氣相投)해서 오랜만의 술판을 또 벌인다. 밤새도록 무슨 화제의 얘기가 많은지 날 새는 줄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부산 해운대 어느 레스토랑에서, 미포횟집 등에서 만나서 봄 도다리 가을 전어로 소주를 마시면서 문단 이야기, 문학론 토론, 사랑학 담론 등으로 절절한 교감을 나눈다.
그는 『心象』지 나의 선배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한 두 살 위이다. 그는 부산 해운대 토박이다. 『心象』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나와서 시집『여름산에 올라』『꿈 . 2408』『닐리리야 또 늴리리』『현실적』『서투른 기록』과 산문집『현실의 나무』그리고 문학연구서『한국 산문시 연구』등을 발간하고 동아문인회 회장과 부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동아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동아대, 경성대, 동의대, 신라대, 부산예술대에서 강의를 했거나 지금도 강의 중에 있으며 한국시인협회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서 왕성하게 이론과 창작 열정으로 정성을 쏟고 있다.
金松培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혼자 춤추는 異邦人』의 제호는 잠시 사유와 휴지(休止)를 요구한다. 그것은 고독하여야할 이방인이 어떤 연유에서건 고독을 승화시킨 내면의 춤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시인은 이러한 관능의 현상을 다른 의미로 도출하여 그것이 은유하는 언어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한다. 그것은 일반적인 고독을 꿈꾸지 않는 특수상징에 대한 염려스러움 아니면 모든 통시적 고뇌가 이질적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묵시하는 깊은 우수의 메시지로 작용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번 시집은 지금 불혹의 강을 이미 건너 가버린 김 시인이 사물의 존재에 대하여 강한 의의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시집에 위와 같이 해설을 해주었다. 그가 작품을 분석하면서 거기에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정서의 원류를 짚어주는 시문학 이론의 권위자였다. 그는 특히 존재에 관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대체로 존재(being)에 대한 수용, 실험, 현장, 달관 등의 의미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요지의 평설이 내 작품의 상황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어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이러한 존재의 문제는 그의 산문집『현실의 나무』에서도 “존재는 존재자에 있어서의 ‘존재의 작용’을 뜻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무엇’이며 그 무엇은 각 존재자에게 고유한 것이다. 모든 존재자에게 적용되는 ‘있다’라는 술어로 모든 존재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공통적인 것이다. 모든 존재 물질이 어느 일정한 유(類) 안에 한정되는 데 대하여 ‘있다’ 술어는 유의 한정을 초월한다.”라는 논리로 심도(深度)있게 설파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서울에서 열리는 ‘심상문학회’에서 만나 밤새워 술을 마셨다. 그는 서울 오면 박동규 교수 외엔 성춘복 시인과 교감하는 사이였다. 그는 성춘복 시인이 문협 이사장 재임시에는 『월간문학』에 시월평도 썼었다.
그후 나는 문협 시분과회장과 부이사장 출사표를 던지기 전에 그와 상의했다. 한국문단의 실정과 부산문단의 동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반신반의했으나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서 목적을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었다.
오늘은 꽃이 피는 세상, 붉은 꽃 천지에 가득해 있네. 햇빛 속의 꽃들은 피고 또 어둠 속으로 꽃들은 잠이 드네. // 어둠 속 꽃들은 바람에 떠가네. 오세요, 오세요, 수만리 그리운 일들이 어둠의 꽃들 속으로 가득하게 피어나네. // 내일은 꽃이 지는 세상, 반짝이는 햇빛 속으로 또 검은 어둠 속으로 꽃들은 피고 지고 그리고 어둠이 지나면 또 바람 속의 꽃들이 피어.
그는『心象』 2012년 4월호에 위의 작품「추억 같은 . 23」을 발표했기에 나는 ‘김송배의 시 읽기’ 코너에 사족을 붙였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자기만이 간직하면서 영원히 잊지 못하는 추억이 있다. 이런 일들이 하나의 체험(혹은 경험)일수도 있지만, 우리 시인들에게는 진솔한 시적 주제로 투영되는 창작의 발원지가 되기도 한다. 조의홍 시인은 이러한 ‘추억’을 ‘같은’이라는 비유법으로 형상화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실재(實在)의 ‘꽃’에서 유추하는 그의 상상은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성과 대비함으로써 그가 창출하려는 인생(혹은 삶)의 의미를 재음미하고자 하는 속내를 엿보게 한다.
우리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시적 언어의 묘미는 시인의 단순한 언어의 유희에서 독자들이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시어의 구성이나 전체의 흐름에서 탐색하는 시적 구조의 절묘한 발성(發聲)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는 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이 송바이 형(그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언제 시 평론까지 했노? 『心象』4월호 잘 읽었데이. 근데 부산 한번 안오나? 또 한 잔 찌끌여야재. 아직 도다리 펄쩍펄쩍 한다.’ 그도 이젠 정년퇴임을 해서 시간이 남는다는 첨언까지 했다. 우리는 올해 심상시인회 전주 총회에 참석해서 전주골의 풍광과 함께 또 일잔 올려야지 약속을 했다.
섬들이 있는 바다에는 사람과 집들이 둥실 떠 있어 놀라워라, 세상일들이 하루 종일 떠 있다는 소문을 이제야 알겠네 / 섬을 방문하면서 돌아가는 배들을 만났네. 손을 흔들고 붉고 푸른 화학 염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서로 웃으면서 헤어지네.
그는 제5시집 『서투른 기록』을 상재했는데 작품 「서투른 기록 . 100」이다. 이와 같이 제목이 모두「서투른 기록」인데 아마도 2백 편 정도는 창작하지 않았나 짐작이 간다.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정도를 떠올리게 하는데 어떤 평자는 ‘그의 시 제목은 겸손한 것일까 아니면 더 깊고 의도 된 바가 있을까? 시를 읽고 나면 그 의문은 사라진다. 조 시인이 하나의 제목으로 치열하게 시적 대상에 다가간 시간의 궤적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조의홍 시인이 탐색하는 시의 주제나 그 경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법. 누구도 정확하게 논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어이 조도시바 형(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부디 건강하시오. 전주에서 만나 시와 술 이야기로 또 한밤을 날로 새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