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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그래그래 그 추임새의 마법魔法
- 김송배 시집 『나와 너의 장법章法』
오 양 수 시인 문학평론가
1. 추임새가 ‘극한’을 경험하게 한다.
김송배 시인의 문예미학이요 문학행위의 상징이다. 아, 아아, 그래그래…. 그 추임새가 석류 익는 가을 뜨락으로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손잡아 끄는 연유緣由 다. 나와 너의 장법이라…. 아마 해와 달의 순환주기를 장법章法으로 풀이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네 일상이 어둠이 가고나면 밝아 오느냐고, 차고나면 기우는 것이냐고 되묻는 그 순환구조 속에 활기찬 ‘너’와 그도 모자라 날개 달고 훨훨 날고 싶은 ‘너’ 사이의 이상향을 극복하고자 하는 설득의 미학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의도가 보인다.
어쩌면 우리네 민요 ‘아리랑’ 속의 ‘그 님’과의 관계 설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나는 그 ‘님’이 바로 김송배 시인의 ‘너’일 것이라는 가정이 흥미로워 진다. 나는 지금 여기 현존을 ‘나’라고 본다면 아리랑 속의 그 님은 이상세계 속의 ‘너’로 봐야 할 것이다. ‘오죽했으면 나를 버리고 갔을까?’
그러나 십 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으니, 나와 너의 치열한 간극을 이어야 하는 다툼과 성찰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현실과 이상을 나와 너로 형상화 하여 ‘우리’로 향하는 문예미학과 문학행위가 절묘하게 엮여있다.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 그 님(너)을 불러 “이봐, 들어봐 이제 제발 좀 깨어나라.” 나를 회유하는 너와 “아아, 내 생애에서 반추해보니… ” 바로 이렇더라고 설득하는 ‘나’가 주기적으로 만나 나와 너를 우리로 승화 시켜 윤택한 우리네 일상을 빚어주려는 김송배 시인의 치열한 일상이 보인다. 어떤 이가 노래는 나의 인생이라고 노래하고 있듯이 아마도 김송배 시인은 「시는 나의 인생」이라고 넌지시 미소 지어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나 자신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너’라는 인물을 설정 해놓고 묻고 또 물으며 자성의 비창悲愴을 참아냈던 것이리라. 너는 어떠냐?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나. 안 그런가? 등등 성찰과 회유로 사물현상의 본성을 꿰뚫어 적시하고 있다. 징 울음의 여운으로 우리네 영혼을 깨워 위무하는 작품세계이다.
2. 드러내지 않게 넌지시 사색하게 만드는 추임새 ‘아아’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 했다. 다스림에 대한 경구이다. 자신을 다스리려 또 다른 나인 너(님)를 불러 대나무 회초리를 들려 준 뒤 자신은 목침 위에 올라서서 종아리를 걷어붙이는 격이다. 다그쳐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신이고자 수행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시는 왜 쓰는가? 화두를 들고 끊임없이 심신을 닦는다. 사물현상의 상징적인 형상화를 위하여 걸 맞는 자양분을 장만하는 농심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글맛을 내는 재료가 언어이기 때문이다. 음식에도 궁합이 맞아야 하듯, 언어 사이의 궁합을 봐야하는 언어감각도 짚어낼 수 있어야 함이다. 이번 작품집『나와 너의 장법』작품들에 차용된 언어구조는 절창絶唱이다. 윤재 근은 ‘시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송배 시인의 작품이 그렇다. 차용된 언어와 언어 사이의 걸맞음이 노래요, 언어와 사물현상 간의 어울림이 곧 창唱이다.
『나와 너의 장법』여든다섯 행간에 흐르는 언어의 결합상태를 보면 우리네 삶이 그대로 배어난다. 위무慰撫의 언어, 결핍된 언어, 불신의 언어, 위안의 언어, 본연의 진실, 정서의 심연, 자아의 인식, 유년의 가을, 세월의 흔적, 계절의 향훈, 의식의 흐름, 올바른 훈수, 연약한 인간, 화자話者의 위치, 옹색한 변명, 각고의 시간, 인내의 시간, 엄청난 사유, 자신의 허물, 무지의 안일, 무지의 자각, 인생의 행로, 성취의 환희, 새해의 향기, 정심情深의 눈빛, 원망의 소리, 적막한 식욕, 명징한 주제, 져버린 낙엽, 구겨진 영욕, 상처의 영욕, 자애의 신념 이상 서른 두 개의 조합 상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김송배 시인의 장법이다.
다음은 침묵의 양식장에서 건져온 낱말의 결합상태를 음미해 보자. 번민의 세상, 불멸의 환영, 참아낸 인내, 눈물의 갈구, 쓸쓸한 식성, 풀잎의 비애, 우리의 허탈, 가혹한 현실, 불면의 고통, 육신의 고통, 각고의 고통, 정신의 환란, 육체의 질병, 불치不治의 시대, 처량한 달빛, 자성의 비창悲愴, 황량한 자태, 육신의 병마, 절망의 눈물, 창백한 환우, 천형의 환란, 침울한 적막, 참혹한 울분, 쏟아낸 울분, 퇴색한 성숙, 상처의 영욕, 알량한 명함, 칠정의 고초 이상 스물여덟의 상像으로 보아 어제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애환을 담아낸 시대정신을 읊어낼 수가 있다. 그러나 허기진 영혼을 위로하고 우리네 혈류를 원활하게 하는 해법도 거기 있다. 운동화 꾼을 조여 매게 한다.
다음을 보자. 혜휼惠恤의 향기, 혈류의 향방, 정숙한 성찰, 한 줄의 환희, 살아온 세월, 유일한 기호嗜好, 쟁쟁한 훈시, 마법의 시몽詩夢, 공존하는 영혼, 만유의 자연, 성취의 환희,
사랑의 선율, 승리의 노래, 풍요의 계절 등등, 이상 열네 개의 조합 형태는 사뭇 우리네 삶을 다시 그리워지게도 한다.
아아, 한생을 살면서 눈물 없는 세상이 어디 있었던가. 아아, 생고生苦,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의 사고四苦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행로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지. (너와 나의 장법·19) 그래서 지금부터 사후가 걱정 되냐. 이봐, 합장하고 기도 해야지. 기다리겠지. 사라지겠지. 아아, 신비로운 생명력 이여, 나는…. 이것 봐, 무슨 그런 해괴한 상념을 아직도 삼키고 있나. 그래 암, 그게 삶이 아니겠나.
- 「나와 너의 장법· 16」 일부
생生에 대한 애착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불멸의 환영을 만나보게 한다.
3. 아, 아아, 그래그래 그 추임새의 마법
“이 사람아, 칭찬에는 고래도 춤춘다고 하지 않던가.” 아, 아아, 그래그래…. 이야기 하듯이 텍스트를 구성하는 장법이 절묘하다. 마력에 걸린 듯 수긍하여 받아들이는 설득의 미학을 체험하게 만든다. 그냥 새어나오는 추임새가 아니다. 깨친 연후에 설設하는 침묵의 외침이요 내려치는 주장자柱杖子의 위의威儀이다. 방황 끝에 가려운 데를 콕 짚어 긁어주는 효자손과도 일맥상통한다. 추임새들을 모아 읽다보면, 시詩 작법作法이 보이고 인생고락이 입맛 돋운다. 추임새를 앞세운 글월들의 예를 읽어보기로 하자.
이봐, 들어봐 이제 제발 좀 깨어나라, 암 그렇고 말구지. 너는 그 시절이 그리운 것 인가. 아, 시대의 주검들, 아아, 내 생애에서 반추해 보니…. 거봐, 진작 체험을 했어야지. 살아가는 일도 나의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일진대. 아아, 벌써 휘움한 새벽빛이 창문을 어른거린다. 아아, 너는 나의 뇌리에서 언제나 동행하는 반려자 이리, 아아, 나는 나를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아아, 한생을 살면서 눈물 없는 세상이 어디 있었던가. 아아, 신비로운 생명력이여. 아아, 우리의 멍울진 응어리 삭여나길 그 안식의 맑은 혼불을 지녔노니 여기로 오라. 아, 나의 혈류는 화해를 기피한다. 아아, 이 세상에 면역되지 않은 사람들이 우굴 거리고, 아아, 끝까지 살아 있기만 해다오. 그래, 나는 누구에게 달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느냐 너는 달에게 무엇
이 될 수 있다고 믿느냐. - (여든 다섯 작품 글월에서 발췌한 문장임)
위 글월을 읽다보면 초롱불 밝히고 세상만사를 보여주기라도 할 듯 그렇게 아련한 동영상을 담아낸 작품으로 보인다. 때론 불러 세워 회유하고 성찰하게 하며 애잔한 눈물도 자아내게 한다. 이렇듯 김송배 시인의 장법은 획기적인 시 작법의 혁명으로 보인다.
아아, 그 고독함과 함께 투사하는 시어의 어눌함은 한 생을 두고두고 전율하는 동행자의 난치병인가. 아아, 작품을 위한 고뇌가 없으니까 사유의 깊이가 얕아서, 아아, 나의 미숙한 시법詩法은 언제쯤 샛별로 반짝일 수 있으랴. 아아, 이제야 시가 어째서 언어의 예술인지 눈치 챘겠구먼, 그래그래 보름달의 이미지나 상징을 시인들의 심리에서 어머니로 분화分化 하는 시법을 잘 활용하는 것이 너의 장기가 아니더
냐. - (여든 다섯 작품 글월에서 발췌한 문장임)
위 글월이 풍기는 성향은 약방의 감초요 계피이다. 이른바 사물의 본성을 뿜어내는 달고도 톡 쏘는 향기이다. 이 대목에서 김송배 시인의 장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라캉의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를 두루 섭렵한 경지에 이르러 서야 “그래그래 그거야.” 너는 이제야 알았나. 황량한 들판에서도 순정한 꽃 한 송이 피우려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는 것을. 하늘보고 우짖는 송학의 숨겨진 속내를 알 것만 같다. 평생을 글밭 가꾸는 일에 일생을 바친 김송배 시인의 침묵 속 노래가 아니랴. 우리네 삶에 대한 내력을 펼쳐 본 감흥이다. 김송배 시인의 감미로운 인생사를 되새김 해보는 것 같다. 또 다른 추임새를 차용한 글월들을 감상해 보자.
글쎄나, 우리의 역사의식은 어디까지 인가. 오오라, 그러니까 많은 체험을 축적해
야지, 어허, 떠 간섭이군, 이봐,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나. 다시 챙겨봐
야 하지 않겠나. 어쩔거나, 좀처럼 들어내지 않는 허우대들만 무리지어 활보하고
있는데, 아니다, 가다듬고 나눠야 한다. 거봐, 진작 체험을 했어야지, 어쩌랴, 너의
주술에 걸려 위태하니까, 안 그런가? 너무 골똘히 깊게 들어가지 마시라. 왜 이제
사, 그대 세상이 하도 삭막하니까. 그래, 그 시집에는 한 시인의 순정적인 진실만
질펀하게 충만해 있음을 알아야 해. 그래, 그것이 필생의 염원이라며, 그래서 지금
부터 사후가 걱정 되냐. 그래 암, 그게 삶이 아니겠나. 어허, 진정하라니까. 이제야
눈치 챘겠지. 이봐, 그러기에 평소에 언어 훈련을 충실히 하라는 선각자들의 말씀
을 새겼어야지. 왜 그래? 그러면 지금부터 나와 너의 영육을 송두리째 바꿔서 살아
보지 않겠나. - (여든 다섯 작품 글월에서 발췌한 문장임)
고통 뒤에 오는 주이상스jouissance 즉 온갖 고난을 견뎌낸 뒤의 절정이 곧 시라면 어떨까. 일생을 시와 함께 고락을 함께한 김송배 시인으로써는 풍성한 수확을 거 두고자 했음이 분명하다.『나와 너의 장법』작품들에서 의도하는 관점은 오로지 좋은 글귀의 생성과 그 쓰임으로 보인다. 순정적인 진실을 그려내 영욕을 바꿔 율려律呂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라고 추측된다. 사랑과 평화로 충만한 활기찬 일상을 맞으려는 꿈을 접지 않고 있다. 칠순의 고비를 넘어 팔순을 바라보는 원숙한 작품 세계인 것이다. 일생동안 시를 섬겨 살아 온 시인의 뒷이야기는 눈물 없인 읊어낼 수가 없다. 사색의 시간과 공간에서 시인을 상봉할 수 있을 것이다.
4. 칠정의 고초를 견뎌 온 시인의 추임새는 눈물겹다
시란 칠정(기쁨, 노여움, 근심, 두려움, 사랑, 미움, 욕심)의 고초를 그려낸 예술 의 백미라고 한다면 확장된 표현일까. 시에게 시대를 물어보라 한다. 어허, 고초 당초 맵다한들 시의 시집살이만 하겠어. 아마 이렇게 응답 했으리라. 가장 견딜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소리가 시詩라던가. 김송배 시인의 작품성은 여기에 있다.
너무 기뻐서 새어나오는 눈물이다. 못내 참지 못해 흐느끼는 신음呻吟이다. 넘어졌다 일어서서 내지르는 함성이다. 어쩌면 칠정의 고초를 받아 재우는 집을 짓고 싶었으리라. 그런 세상을 꿈꿨으리라. 그것이 곧 시집詩集이리라.『나와 너 의 장법』작품의 시적 공간은 칠정이 추구하는 보편적 공간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그려보았을 그림 같은 집이 현대인이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랴. 하늘에는 별이 젖어 있다. 그 시각 땅에서도 아침 풀이 흠뻑 젖어 있다. 하늘에서 눈물이 유성우流星雨로 쏟아지는 날 마침 이 땅에서도 한恨의 낙루落淚가 계속되었
지. 어느 날 내가 젖은 별과 젖은 풀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세상은 모두 눈물로 젖어서 나도 젖은 채 어디론가 눈물 속을 쫓아가고 있었다. 어허, 진정하라니까. 나에게 충고하는 너의 의미는 만유萬有의 젖은 것들이 자신이 왜 젖고 있는지, 어떻게 젖고 있는지를 아직 감지感知 못한 무지를 알려주는 거야. 이미 내장까지 젖어버린 행로에서 태양의 열기는 다가오려나. 또 다른 행성들이 복잡하게 내 곁에서 웅성인다. 서로 절규의 깃발을 세우고 얼룩덜룩 함성으로 과시하는 인간들의 행렬에는 별 과 풀과 내가 동시에 젖은 옷을 말리고 있었다. - 「나와 너의 장법·12」 전문
한恨이 쏟아 내는 유성우를 소재로 하늘과 땅의 조화를 그린 김송배 시인의 장법이다. 밤과 낮의 동화, 별도 젖고 풀도 젖고 그리고 시인도 젖어서 어울림의 한 마당을 그려내는 그 장법, 태양 그리고 행성의 순환구조를 그려낸 그 장법, 젖고 말리는 말리고 젖은 시간의 순환을 그린 그 장법, 나와 너 사이를 조율하는 그 장법, 외형과 내장 사이를 흐르는 교감 그 장법, 앎과 무지 사이의 간극을 아파하는 그 장법, 기쁨과 눈물을 구별 짖지 않으려는 그 장법, 눈물을 쫓아가는 길과 기쁨을 쫓아가는 유목민의 일상을 그린 그 장법, 절규의 깃발과 과시의 깃발 사이의 긴장관계를 그린 그 장법, 젖음과 마름 사이 물의 승화를 그린 장법 등 표현의 확장을 위해 만유와 함께 젖다 함께 건조하는 조화와 질서를 형상화 한 작품으로 보인다.
내가 너에게 너의 정체에 대하여 정중하게 질문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행위
에 불신의 언어로 반격하는 도저到底한 너의 표정과 언로言路는 너무나 지나친 게 아
닌가. 어쩌면 너는 나를 닮은 듯도 하지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정밀하게 감
시하면서 참견하는 그 고약한 심사는 누구를 위한 충언인가. 명확하게 응답하지 않
으면 여하한 소통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나와 너의 통섭統攝을
위해서 성실한 자세와 화자話者의 위치를 명징하게 밝혀야 한다. 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내가 갈기는 글 한 줄에 대하여도 일일이 대꾸하는 너의 참견이나 간섭은 내
의식의 흐름에 자각된 성찰인가 기원인가 아니면 그 좌절과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절규하는 기도인가 너는 나를 오늘도 미행하면서도 정도正道를 안내하려는 영원
한 반려자인가. 생사고락을 함께할 동반자인가. 이제는 우리 서로 정체를 밝혀두고
동행하면 어떠한가. - 『나와 너의 장법·
1』 전문
토 달지 말라, 초 치지 말라, 간 보려 말라, 손 보려 말라, 말 걸지 말라, 선 긋지 말라. 나와 너 사이에 벌어진 실랑이다. 변하지 않는 규칙은 없다지 않았는가. 시공간의 상황에 따라 조율해야하는 위무慰撫이다. 결국 여기서 실랑이는 생산적인 추임새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와 너를 자웅동체인 달팽이로 보지는 않았다. 통섭을 위한 실랑이다. 나와 네가 두루 통하여 사물현상의 속내를 정밀하게 꿰뚫어 보고자 하는 성찰이요 심사深思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위치를 명징하게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정밀하게 감시하면서 참견하려는 그 고약한 심사는 어쩌면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다는 점을 넌짓 일러주려는 아련함도 느낄 수 있다. 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내가 갈기는 글 한 줄에 대하여도 일일이 대꾸하는 너의 참견이나 간섭은 내 의식의 흐름에 자각된 성찰인가 기원인가 아니면 그 좌절과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서 절규하는 기도인가 너는 나를 오늘도 미행하면서도 정도正道를 안내하려는 영원한 반려자인가. 생사고락을 함께할 동반자인가. 이제는 우리 서로 정체를 밝혀두고 동행하면 어떠한가. 라고 매듭짓는 것으로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김송배 시인의 장법이 이렇다. 피아노 조율사가 음의 위치를 잡아 주듯 김송배 시인은 나를 너로 환치 시켜놓고 되묻고 또 되물어서 사물현상의 순환 질서를 명징한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김송배 시인의 변화된 장법이다.「( )에서의 탈출기」는 바로 자신의 시작법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적 삶의 에너지 축적을 위한 시 작법의 의도가 침묵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누설漏泄을 들었음이다. 어쩐 일인지, 비밀로 감추었던 몇 개의 모음들이 소란한 바깥을 떠나
-아닌데 그게 아닌데- 늦게나마 제 몸을 결박하고 있다. 어쩔거나,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허우대들만 무리지어 신촌에서 다시 이 지상 어디로 활보하고 있는데. - 「( )A에 관하여」 일부
언제나 아슬아슬한 위기의 언어로 / 온몸 휘감겼던 착목의 그 언저리에서 / 다시 회생의 꿈 찾아보지만 / 아, 나의 혈류는 화해를 깊이 한다. / 요즘 세상에서 갑자기 횡행하는 / 갑질의 횡포나 / 패배의 술잔이 / 겨울밤이 이슥하도록 / 눈물과 동시에 흔들거리고 있었나니. - 「( )C에 관하여」 일부
이젠 그 껍질을 벗어나야 한다 / 무인의 횡포는 없어져야 한다 / 내면에서 창궐하는 이기주의는 배척해야 한다 / 철망으로 둘러싸인 욕망의 그늘에서 탈출해야 한다 / 철옹성에 갇혀 있는 그들의 사고思考를 깔아뭉개야 한다 / 속박된 이 세상에서의 더러운 야심들을 맑은 물로 헹궈내야 한다 / (…) 이젠 빗장을 열고 조마로움을 태워버려야 한다. - 「( )D에 관하여」 일부
오로지 한 생을 진선미의 실현을 탐구하는 사람들 / 그 행복한 웃음소리를 외면하는 / 청맹과니와 귀머거리가 득실거리는 세상 / 우리 모두는 수의를 입고 / 뻔뻔스럽게 허우적이고 있다. - 「( )G에 관하여」 일부
오, 신선한 한 줄기 햇살이 / 만물에 스며드는 대자연의 조화 / 태초에 내린 환희를 보전하고 있었다. - 「숲의 언어」 일부
아아, 우리들 멍울진 응어리 삭여나갈 / 그 안식의 맑은 혼불을 지폈노니 / 허기진 영혼을 위해 / 우리들 사랑을 위해 / 빈 가슴으로 오라 / 대학로에 오라 / 어디에도 비춰지지 않는 내 모습을 찾고 / 이미 낡아 허우적이는 대 영혼을 찾고 / 그리하여, 길바닥에 널브러진 / 싸늘한 가슴을 찾고 사랑을 찾고 / 잠시 방황이나 번뇌는 비워둔 채 / 여기로 오라. - 「외출」 일부
언제나 따라오는 산새들 / 그 노래마저 들을 수 없는 / 폐허의 숲에서 또 우리는 / 산 오르고 내려갈 준비를 한다. - 「등산길에」 일부
함평 땅에 / 뿌려진 풍요의 색채들 / 대자연과 어우러져 / 아아, 여기에서 친환경 삶을 / 예술로 승화하노니(…) / 혼불아, 비상하라 / 더 높이 활활 타 올라라 .
- 「함평 나비들」 일부
-매연으로 오염된 지상에서 / 흔들림과 무력함으로 / 다가오고 있는 신록의 울분 - 「오월의 언어」 일부
아아, 그동안의 울분이 버무려져 살아온 / 지향점이 너 쭈그러진 온몸에서 /우리 인간들이 고달프게 영위해온 / 사고의 향기가 피어나고 있다 / 사랑의 미소 그 소멸의 희열에 넘치는 / 퇴색한 성숙의 의미가 남아 있다. - 「다시 낙엽에게」 일부
아아, 들리지도 않을 애잔한 함성을 / 장엄한 저 푸른 물결이 찰랑찰랑 / 한가롭게 음미하고 있었다. - 「다시 백두산에서」 일부
어쩌다가 꿈으로 어머니를 만나고 / 돌아온 서울의 밤, 나는 아직도 / 잠들지 못한 채 / 눈물로 영혼을 달래고 있었다 . - 「서울의 밤」 일부
귀가 시간이 많이 늦었다 / 퇴근하면서 들른 호프집에는 / 근무 중에 풀어내지 못한 울분들이 / 한자리에 모여서 절규하고 있었다 / 퉤퉤 이놈의 세상-비틀, 비틀거 리며 / 집 앞 좁은 길로 들어선다 / 저기서 반갑게 맞아주는 가로든 불빛 / ‘취했어? 어서 들어가 편히 쉬어-’ / 이 늦은 밤에도 환하게 웃으면서 / 건네는 정겨운 골목의 언어 / 언제나 굳은 표정의 침묵이지만 / 거기에는 훈훈한 온기가 깔려 있다 / 다음 날 다시 빠져나가는 출근 시간 / 등 뒤에서 ‘오늘은 좀 일찍 들어 와 -’ / 목련 꽃잎이 하얗게 휘날리는 이곳 / 언제나 정중동靜中動의 애환이 넘친다.
- 「골목에서」 일부
「( )에서의 탈출기」작품들 속에서 발췌한 내용들인데, 요즘 시대가 어떠하더냐?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시詩의 응답이기에 긴 호흡으로 되새김하여 보았다. 한 개인의 일상사가 전체의 일상사가 될 수 있으며, 전체의 일상사가 개인의 일상을 가늠할 수 있기에 김송배 시인의 작품 속 인물의 일상사는 그 파장이 크다 하겠다. 특히 사회적 삶의 에너지 충전을 위해 극한 작업을 무릅쓴 시인의 고초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위에 열거한 작품들을 깊이 감상하다보면 세상이 보이고 우리가 보이며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보일 것이다. 깊이 읽기를 권한다.
5. 김송배 시인의『나와 너의 장법章法』작품 감상 그 뒷이야기
김송배 시인은 흑맥주 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시는 나의 인생”이라고. 고희를 넘어 팔순이 머지않은 세월동안 시 창작에 혼신을 다해왔음이다. 그 짜릿한 삶의 절정을 시로 풀어내는 한 생 이었기에 그렇다.
김송배 시인의 시는 브리콜라주bricolage화畵다. 즉 살아 온 순간순간들의 조각들을 결합하고 버무려 낸 작품이기에.‘시란 이런 것이고 시라는 그릇에 담는 내용물은 이러해야 한다.’ 이 명징한 범례를 장만해서 바람에 실려 보내는 작품이기에 그 상징성은 크다고 본다. 요번『나와 너의 장법』작품들을 읽다보면 승화의 화학적 변화를 느끼게 한다. 아, 아아, 그래그래 그 추임새의 마법은 얼음이 온기가 되고, 그 온기가 새 생명을 낳아 기르는 위대한 가치 창출이기에 맞장구 치고 싶다. 라캉의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의 커다란 알레고리가 순환하는 중심에 김송배 시인이 있다. 승화 그 주기적인 우주의 침묵을 대화체로 표현한 점이 획기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거나 수사학을 풀어낸 시작법이라면 어떨지. 대화체의 시 작품들이기에 수긍이 간다. 『나와 너의 장법章法』작품 감상 그 뒷이야기는 천일야화 속의 세헤라자데에게 물을 일이다. ‘칠정의 고초를 견뎌낸 뒤 끝에 그려가는 화가의 그림이 김송배 시인의 詩라고. 김송배 시인은 시문학 계의 ‘태두泰斗’라고. 뭔가 맑은 울림의 여운이 태산을 부르고 북두칠성을 그릴 것이라는 확신이다. 김송배 시인이 가꾼 이화세계理化世界로 발걸음 하고 싶다. 김송배 시인의 사색적인 삶 속으로.